권녕하 칼럼
꽃들은 어디로
권 녕 하(시인·문화평론가·<한강문학>발행인)
2018년 2월 9일 저녁 8시,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3만 5000여 관중이 입장한 가운데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1988년 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불타오른 성화의 불길은 이후 17일간 지구촌의 이목을 끌며 평창, 강릉을 겨울 스포츠 축제로 들썩이게 할 것이다. 피부색도 인간들이 그어놓은 국경도 일단 접어둔 채, 인류화합과 우정의 상징인 오륜기가 태극기와 함께 펄럭일 것이다.
그런데, 4년이란 시간은 준비된 선수들에게는 긴 시간이고 도전하는 선수들에겐 짧은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다 출전이 좌절된 ‘빅토르 안’에게 4년은 기가 막히는 좌절의 시간이 됐다. 동계올림픽 참가를 위한 기다림은 이제 8년이 되고 말았다. IOC의 출전금지처분의 부당성을 밝혀내고 명예를 되찾는다 해도 그 때까지 선수로 건재할 수나 있을지 알 수 없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도 4년 뒤 ‘베이징’(北京)에서 과연 몇 명이나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반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꽃들에게 4년이란 시간은 고통과 환희를 네 번씩이나 겪어내야 하는 곤고(困苦)한 시간이 된다. 이러한 순환 사이클을 지구 행성의 땅거죽에 붙어서 살다가 죽는, 인간들의 단 한 번뿐인 생명(生命)과 비교해보면, 식물은 그나마 다행이고 축복받은 생명체다. 사람은 한 번 죽으면 그것으로 이 세상과는 영영 이별이고 땡이고 끝 아닌가. 윤회? 부활? 차라리 재활용이라면 그나마 믿을까 말까.
“안녕하세요? 낮에 뵈니~ 새롭네요?” 출근길을 함박웃음으로 밝힌 여성은 퇴근길에 가끔 들리는 실내 포장마차에서 일하는 알바 여성이다. “밝을 때 보니~ 더 이뽀요!” 이 말에 얼굴이 분홍색으로 물이 든다. 종로의 피맛골 좁은 골목길에서 스친 짧은 순간, 그 여성의 얼굴이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이었음을 생각해냈다. 그래서 얼굴 표정이 다 보였구나! 평소에도 짧은 헤어스타일에 부지런한 몸놀림에 순박한 말투는 술과 음식 맛을 돋우어 주는 효과가 있었지. 곧 잘 손님들을 이끌고 가던 그 술집! 그래~ 그래서 그랬었구나!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유년 시절, 한 길에서, 서울 가는 버스만 봐도 가슴 설레던 시절, 눈부시게 발전해나가는 서울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청량리, 천호동, 영동시장, 영등포, 마포, 신촌, 미아리 등등 위성도시처럼 인구가 불어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갔다.
“직행버스 타고 서울 가서 놀다 오곤 했지요”, “서울 가야~ 대학생들하고 놀지요”, “그 때 친구들 다 잘됐어요?”, “나만~ 이래요” 말끝에 푸웃 하고 웃는 얼굴이 참 곱기도 하다. “길 건너편 탑골공원 담장 따라서 ‘파고다 아케이드’ 있던 거 기억나요?”, “그럼요! 내 친구 언니가 그 곳 2층에서 핸드백 장사 했어요. 그래서 잘 놀러 갔어요!”, “그럼~ ‘디즈니 다방’도 알겠네요?”, “알아요! 한쪽 벽면에 존 레논 초상화 사진 커다랗게 걸어놓은 다방이요!” 그래서, ‘혹시~?’ 물어볼 뻔 했다. 그 시절 그 꽃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몰래 길게 조심해서 탄식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