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 녀의 안주

오징어 피데기

김 여사의 술 이야기 ④

 

혼술 녀의 안주

 

김 경 녀(도로교통공단 제주지부장)

김경녀 지부장아버지는 유난히 비린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바닷가 태생도 아니면서 하다못해 된장찌개에 멸치꽁다리라도 들어가야 밥상 취급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너무 싫었어요. 중학생이 되면서 한 달이면 두세 번은 꼭두새벽에 억지로 일으켜져 노량진수산시장엘 가야 했거든요. 사실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렇지 가는 도중 잠이 깨고, 시장에 도착하면 참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경매사들이 빠르게 웅얼거리는 소리, 난전에서 시끄럽게 호객하는 소리, 생선궤짝을 내동댕이치며 싸움질 하는 고함소리…. 시장은 막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처럼 싱싱했고 그 사이를 분주하게 누비는 상인들의 몸짓과 목소리는 생선의 그것보다 훨씬 더 펄펄 생기 있었지요.

 

그렇게 수산시장엘 가면, 아버지는 경매장 옆에서 기웃거리며 마음에 드는 물건이 어느 상인의 손에 떨어지는지 보고 계시다가 바로 가서 흥정을 하고 짝으로 사들이셨습니다.

1학년짜리 막냇동생 키만 한 대구, 등딱지가 큰 접시만한 영덕대게, 제가 덮고도 남을 만큼 크고 넓적한 홍어….

위에 적은 건 덩치 큰 녀석들이고, 작은 건 멍게․해삼․멸치․고등어․조기․사요리․아나고…. 기타 등등…. 그리고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오징어였습니다. 물론 대부분 그날의 주인공으로 커다란 녀석들이 하나씩 선정되고 작은 것들은 그저 들러리 서는 정도였는데 그래도 오징어라면 보통 두세 짝쯤 샀습니다.

 

그렇게 우리 집으로 오게 된 생선들은 몇몇은 바로 요리가 되지만, 대구나 홍어 등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은 앞마당의 커다란 수수꽃다리 나무에 높이 매달려 마당을 쓸고 다니는 바람에 꾸덕꾸덕 말라가면서 아래서부터 조금씩 베어져 식구들의 입 속으로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었지요. 날이 좀 더워져 파리가 꼬이는 듯 하면 생선들은 모기장으로 옷을 해 입은 채 그렇게 말라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조금씩 작아져갔습니다.

 

특히 홍어가 맞춤하게 말랐을 때 손바닥만 하게 잘라 솥에 넣고 말랑말랑하게 쪄선, 결대로 길게 죽죽 찢어 새콤달콤한 초고추장에 폭 찍어 먹곤 했는데, 남도 홍어 찜의 머릿속까지 찌르는 찡한 기운이 아니고 살짝만 숙성되어 싸아~한 기운이 콧구멍을 살짝 후비고 지나가는 그 느낌~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합니다.

오징어는 배를 따고 내장을 꺼낸 후 목욕재계 시켜 빨랫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조르륵 줄맞춰 척척 걸쳐 널었습니다. 딱딱하고 질긴 것을 씹으면 두통이 생겨 마른 오징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빨랫줄에서 말라가고 있는 못생긴 오징어를 하나씩 걷어 구우면 살이 통통하고, 물기도 많고, 쫄깃거리는 것이, 모양을 잡아 늘려 말린 요즘 시중의 반건조 오징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맛이었지요. 나중에서야 사요리는 학꽁치이고 과메기의 원료이며, 아나고는 붕장어, 반건조 오징어는 피데기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주로 발령 받아 새로운 직원들과 낯익히기부터 업무 파악, 사택으로 돌아오면 짐정리와 이 구석 저 구석 청소에 매달리다보니 어찌 갔는지도 모르게 훌쩍 한 달이 가버렸고, 자연히 혼술 할 짬도 없었지요.

바람 몹시 부는 주말 오후, 원고를 끌어안고 끙끙댄다 했더니 ‘삶과 술’ 편집자님께서 혼술을 권하시는 거예요. 뒤지지 않아도 가난한 제 냉장고 속엔 아무 것도 없고, 아쉬운 마음으로 추억 속 안주거리를 꺼내 보니, 입 궁금할 때 한 마리씩 잡아먹는 재미가 쏠쏠했던 피데기 생각이 간절합니다~ ^^

 

내일은 혼술 안주거리 장을 보러 나가야겠어요. 막걸리에 잘 어울리는 특별한 안주, 알려 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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