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품은 술 ‘母月’을 빚는 金院鎬 대표
원주에서 전통주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는 ‘모월’ 양조장
인공 감미료도 첨가물도 한 방울 들어가지 않는 전통주 ‘母月’
“원주에도 전통주 양조장이 있어요?”
원주로 양조장 취재를 떠난다니까 자칭 술 박사들이 하는 말이다. 해 묵은 양조장이 아니어서 아직은 술 냄새를 풀풀 풍기지는 않지만 진짜 고수들은 원주시 태장동에 위치한 ‘협동조합주담(대표이사 金院鎬, 48세)’이 빚어내는 ‘모월(母月)’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기자가 모월이란 술을 알게 된 것도 막걸리학교의 허시명 교장이 원주에 괜찮은 술이 있다고 귀띔해서 알게 되었을 만큼 ‘모월’은 흔하게 보급된 술은 아니었다.
‘모월’이 일반인들한테 선을 보인 것은 지난 해 8월이다. 때문에 그 흔한 스토리텔링도 수상경력도 없는 술이다. 그렇지만 ‘모월’의 김원호 대표는 원주에서 새로운 술 역사를 써내려가겠다는 포부만은 당차고 알찬 인물이다.
증류과정에서 초류, 후류는 버린다
벚꽃이 꽃비 되어 내리는 봄날 ‘모월’을 빚는 양조장을 찾았다. 태장동 도로가에 자리 잡고 있는 크지 않은 작은 양조장이다. 상호 역시 신경 써서 찾아야 할 만큼 작은 상호를 달고 있었다.
양조장 취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시음. 41% 母月인부터 맛을 보았다. 아주 작은 잔으로 입가심 하듯 마셨다. 입안에 들어온 모월은 입안 전체로 퍼지는 알싸한 느낌이 마치 은단을 꽉 깨물었을 때 퍼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기분 좋은 느낌이 입안 가득하다.
‘모월’의 김 대표는 이를 두고 ‘깔끔’ 그 자체라고 하지만 기자가 느끼기에는 방금 목욕을 하고 난 여인네의 민낯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 많은 증류식 소주를 내리는 양조장들이 소주에 이것저것 첨가물을 넣어서 증류식 소주의 참맛을 느낄 수 없었는데 ‘모월인’은 흔한 립스틱도 바르지 않은 민낯의 여인처럼 순수했다.
그런데 진짜 주당들은 이 같은 순수한 증류식 소주를 선호하겠지만 각종 조미료에 길 들여져 있는 젊은 층들은 어떨지 궁금하다.
김 대표는 기자에게 술 맛이 어떠냐고 묻는다.
“잡맛을 전혀 느낄 수 없네요, 어떻게 내리셨나요?”
“모월은 정말 쌀과 물 그리고 누룩만으로 빚는 술입니다. 그리고 소주를 내릴 때는 깊은 향을 만들어 주는 동(銅) 증류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김 대표의 부연 설명을 들어 보면 상압방식으로 하다 보니 여타 첨가물을 넣지 않아도 특유의 향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모월은 증류식 소주 특유의 누룩향이나 화덕 냄새를 거의 맡을 수 없는데 이는 증류시 모월만의 노하우와 증류과정에서 초류(75~80도수의 알코올)2~3%, 후류(30도 미만의 알코올) 2~3% 정도를 과감하게 제거하기 때문에 두통을 유발하는 성분이나 기분 나쁜 냄새 등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는 소주를 제성할 수 있다.”고 했다.
전체 생산량에서 4~6%의 알코올을 제거 한다는 것은 아까운 일이지만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프리미엄 약주(청주) ‘母月연’도 출시
김 대표는 원주 관설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김 대표 역시 보통 사람들이 겪은 부모님의 술 받아오는 심부름을 하다가 막걸리를 처음 맛 본 것이 시초가 되었고, 어머니께서 잔칫날 쓰일 술빚는 일을 어깨너머로 배우고, 원주 대성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술 잘 먹기로는 짱이었다고 했다.
대학에서는 기계공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회사가 현대전자. 하이닉스, 현재 현대통신 강남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큰돈은 못 벌어도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은 없을 만하지만 항상 맘에 걸리는 것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이었다. 쌀농사를 지으시지만 해가 갈수록 어려움은 가중되었다. 그래서 쌀 소비를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술 빚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김 대표 부모님이 짓는 쌀의 품종은 밥 맛 좋기로 유명한 추청쌀(秋晴,아끼바레)이고, 원주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의 브랜드는 토토미(土土米)다. 농업인의 날 발상지인 원주지역에선 매년 11월11일(土자를 해자 하면 十과 一이 되어 11이 됨)을 농업인의 날에 행사를 할 만큼 유명한 쌀이다. 일반미에 비해 20~30% 정도 가격이 비싸다.
이 쌀을 가지고 술을 빚기 바로 전에 도정하여 술을 빚으니 술 맛이 훌륭했다. 차제에 양조장을 차릴 것을 결심하고 친지, 친구 9명과 협동조합 형태의 회사를 차리고 본격적인 술 빚기에 나선 것이다.
이렇다 보니 본격적인 홍보나 판로보다는 좋은 술 빚는 데만 열중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했던가.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좋은 술 냄새 맡은 사람들이 불원천리 찾아와 술 맛을 보고 간다. 이들이 입소문을 내기 시작하여 그 술 향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모월’에서는 41도의 증류식 소주 말고도 13%의 프리미엄 약주(청주) ‘母月연’도 출시하고 있다.
모월연은 이양주로 백일 이상 발효와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만 맛볼 수 있는 술이다. 식욕을 자극시키는 황금색의 술이 유혹의 손길을 뻗히게 한다.
모월연 역시 산미가 강하지 않으면서 드라이한 술맛을 내고 있다. 막걸리는 조금만 신경 쓰면 웬만한 맛은 낼 수 있지만 약주술은 그렇지 않다. 산미가 지나치거나 또는 단맛이 강해 호불호가 심하게 갈라지는 술인데 모월연은 그야말로 손에 꼽을 만큼 달지 않고 상큼한 맛을 가지고 있는 술이다. 이래서 애주가들 입에 모월이 오르내리는 것은 아닌가.
역사가 미천한데도 양질의 술을 내놓을 수 있는 비결은 원칙에 입각한 술 빚기를 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고 보니 모월인과 모월연은 ‘인연’으로 또는 ‘연인“으로 이어짐을 뒤늦게 깨달았다.
모월은 유약을 바르지 않은 숙성 전용 옹기에서 숙성
‘모월’에서 안주인 역을 하고 있는 이는 김 대표의 막내처제인 이정민 씨다. 현재 연구소장 직을 맡고 있는데 대학에서 미생물 관련 학과를 전공했으며, 국순당 등에서 연구생활을 오래한 덕에 모월의 맛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소장은 “우리 모월 소주를 드신 분들은 아무리 마셔도 머리가 아프지 않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유는 추청쌀, 밀 누룩, 그리고 강원의 좋은 물 때문인 것”같다고 했다.
물론 전통 기술을 연구하고 그 맛을 현대화 하는데 노력도 들어갔을 것이다.
술은 발효과정도 중요하지만 숙성과정도 매우 중요하다. 모월은 특별히 제작한 유약을 바르지 않은 숙성 전용 옹기에서 숙성되고 있다. 또한 병마개도 300원이나 하는 콜크마개를 사용하는 것도 모월만의 특징이다.
모월연은 생주인데도 보관만 잘하면 몇 개월을 두고 먹어도 된다고 했다. 후발효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월인은 고기나 버섯요리, 제철 나물무침은 물론 한식과도 잘 어울리는 술이다. 여성분들은 41도가 부담이 된다면 양주처럼 언더 락으로 해서 마셔도 좋을 듯싶다.
모월연은 식전 주나 생선 요리에 잘 어울리며 차게 마셔야 그 상큼함이 배가 된다.
‘母月’ 상표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치악산의 옛 이름이 ‘모월산’이다. 모월로 불리었던 이곳의 이름을 그대로 술의 이름에 반영했다는 뜻인데 김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월은 단순한 모월이 아니다. 그 말속에는 원주사람들의 삶과 철학이 들어 있다는 뜻도 된다.
“모월은 가부장은 가라라는 뜻이라고 봐도 돼, 가부장식 사고를 버리고 어머니 품 같은 자세로 살자는 거야 어머니는 참 대단하지 않아?
임금도 안고, 남편도 안고, 자식도 안고….
그 안에 세상이 다 안긴단 말야, 월(月), 곧 달은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에서 길 안내를 하는 존재지, 술에 취한 놈이든 도둑놈이든 가림이 없지 남녀노소 가림이 없어요.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모월(母月)이야. 이 모월에 들어오면 나갈 수가 없어 편안하니까, 신나니까.
원주에 오는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처럼 대접을 해야 해. 모두 배불리 잡수시고 편히 주무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런 눈길로 원주를 보며 살자는 거야, 어머니가 제 자식 생각하듯 말이야.”
-<좁쌀 한 알>중에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말-
무위당(无爲堂) 장일순(1928~1994)선생은 김원호 대표가 학창시절을 보낸 원주대성학원의 설립자이자 사회운동가, 생명운동가이기도 했으며 도농 직거래 조직인 한살림조합도 만들었다. 당시 원주 사람들은 장일순을 모르면 간첩소리를 들을 만큼 원주뿐만 아니라 한국의 지식인이라면 그를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고 지학순 주교, 고 이영희 교수 등 명사들과 교분이 두터웠던 인물이며 오적을 쓴 생명사상가 김지하 시인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즐겨 사용했던 말 ‘母月’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김원호 대표가 양조장을 하면서 ‘모월’이란 상표를 내 건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일인지 모를 일이다.
원주 사람들은 장일순 선생이 늘 써왔던 ‘모월’의 뜻이 좋다하여 원주시 이름을 모월로 바꾸자는 논의도 했었다 한다.
“‘모월’이 인기를 끌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 원주를 모월로 바꾸자는 논의가 다시 일어나지 않겠어요?” 김 대표가 꾸는 꿈이 언젠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모월을 마시며 동시대 미술을 감상하다
모월은 분기별 혹은 월별로 병라벨에 동시대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술작가들의 작품을 싣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병라벨에 작가들의 그림을 싣는 것에 대해 김 대표는 “우리 술과 함께 예술을 즐겼던 선조들의 전통을 새기는 것 뿐 아니라 모월과 함께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바람에서 시작되었다”며 “술 한 잔 마시며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한 잔의 술이 곧 예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생각 자체가 아름답다. 그렇다 술은 예술이요 하늘이 내려준 생명수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모월을 마시는 사람은 현대미술 후원자가 되는 것이다. 술을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생각을 하며 술을 마시면 그 술을 곧 예술이 되는 것이다.
‘모월’은 금명간 원주시 판부면 신촌리로 확장 이전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한다. 이전이 만료되면 복숭아를 소재로 한 리큐류도 생산할 계획이란다.
전통주 생산이 전무했던 원주에서 새로운 전통주 역사를 써내려가는 젊은 술 ‘母月’이 번창하길 바란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