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철 칼럼
신문을 보는 사람, 세상을 안다
임재철 칼럼리스트
요즘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인터넷 시대, 사람들은 신문을 애써 찾지 않은 편이다. 정부기관은 물론 기업체 홍보부서에서도 자사와 관련된 기사만을 선택해 본다. 어쩌면 신문보기가 괴로운 세상이고 신문을 넘기기가 두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때문에 가정에서 구독하는 신문은 경품이 풍부한 부자신문이라 해야 할까. 지방에서도 푸짐한 경품과 덤으로 주는 스포츠지 등 서비스해주는 중앙지를 보기 때문에 말하자면 중앙지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야 할 판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는 신문의 품질과 상관없이 이른바 ‘자전거, 상품권’등의 경품의 품질에 따라 신문독자가 형성됐다. 다른 분야는 품질과 가격 등이 소비자 선택의 주요 기준이 되지만 신문시장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부자신문 재벌신문은 부피가 큰 신문, 광고가 넘쳐나는 신문으로 왜곡돼 신문시장의 고착화를 심화시켰다.
한때 영국에서는 ‘더 타임스’를 들고만 있어도 사람이 다시 보인다고 할 정도였다. 미국의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종교단체에서 발행하는 신문이지만 공정성과 고품격으로 ‘신문의 캐딜락’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영국의 세계적인 권위지 ‘파이낸셜 타임스’의 독자는 25만~40만 명 내외다. 많이 팔리는 신문이 잘 만드는 신문이라는 한국적 상식이 영국 같은 사회에서는 부정된다. 진실을 추구하고 공정보도를 하는 신문은 그런 품격을 찾는 사회지식층, 조직 내 의사결정권자들(decision makers)이 반드시 찾는다.
그렇다면 과연 일반 대중의 독자에게 신문은 무엇인가. 매스 미디어 가운데 인쇄매체의 대표 저널리즘(?). 그 보다는 거기에 진리가 있고 세상이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신문을 통해 정보를 얻고 배우고 느끼는 것이란 실로 많았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신문은 쉽게 볼 수 있지만, 거기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재발견하는 것이 독자의 미학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빅데이터 산업으로 일컬어지는 현 우리사회에서는 ‘포털’이 크고 강한 신문을 대표한다고 본다. 포털에 게재된 신문기사의 위력, 그리고 그에 따른 댓글에 따른 여론 조작과 더불어 가짜뉴스가 봇물을 이루고 또한 사회 공론화를 이끌고 있는 것을 보면 신문 제작자는 물론이거니와 독자들의 각성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희망 있는 신문을 키우고, 광고로 표현되는 자본의 유혹을 거부하며 공정한 보도, 깊이 있는 보도를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하는 신문을 알아주고 선택해주는 것이 독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신문을 제작하는 사람들 역시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지구촌에서 통용될 뿐만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멋진 신문, 수준 있는 신문을 만들어 내야 한다.
정보화된 독자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한 미래사회에서 신문은 발행부수나 독자수가 그렇게 많을 수는 없겠지만 여론형성을 비롯 사회의 진솔한 커뮤니케이션과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의 구심적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