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唯酒無量 不及亂’이라 했다


김원하의 취중진담

공자는 ‘唯酒無量 不及亂’이라 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면 취직하기가 힘든 회사가 있다. 입사 시험에서 주량(酒量)이 어느 정도냐고 묻는 면접관에게 소주 1병정도 라고 한다면 모르긴 해도 입사가 어려울 것이다. 주류회사 영업직 사원을 뽑는데 소주 1병 주량으로는 영업직을 감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는 양을 우리는 흔히 ‘주량’이라는 척도로 재단하려 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주량(酒量)은 마시고 견딜 정도의 술의 분량을 말한다. 영어로 주량을 ‘drinking capacity’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주량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는 말은 아닌듯하다. 물론 독일이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당신의 주량은 어느 정도냐?”고 묻지도 않고, 술을 마실 줄 알면 그냥 좀 마신다고 한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주석에서는 처음 만난 상대방에게도 서슴없이 주량을 묻는다. 대답에서 주량은 소주를 기준할 때가 많다. 요즘 젊은 층에서는 자기가 선호하는 술을 기준할 때가 있지만 대부분 주량을 소주병으로 계량화 한다.

그런데 주당들 사회에서는 다 아는 이야기지만 자신의 주량이 소주 반병이라고 하는 사람이 진짜로 소주 반병만 마시고 더는 못 마신다고 손 사례 치는 것을 보았는가. 술이란 한 잔 두잔 마시다 보면 몇 잔을 마셨는지 몇 병을 마셨는지 모를 때가 일쑤다.

‘법화경’(法華經)에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그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마침내는 술이 사람을 삼킨다.”고 한 것으로 보아 선각자들도 지난 친 음주는 자신의 신체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해가 되고 있음을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논어 향당편(鄕黨篇)에 공자의 음주 모습이 실려 있다. ‘유주무량 불급난(唯酒無量 不及亂)’ 이라 했다. 즉, 술은 일정한 분량을 정해 두지 않고, 기분이 좋은 정도에서 그친다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량’은 ‘유주무량’에서 따온 말은 아닐까.

인터넷에 떠 있는 글이다. “근래 3번 면접 봤는데, 3번 다 ‘주량이 얼마냐’는 질문이 빠진 적이 없다.”고 하면서 “술을 잘 못 마신다”고 하자 면접관은 “나는 회식 때, 술 안 마시는 사람을 보면 꼴도 보기 싫더라”고 하더란다. 주류 회사도 아니면서 주량이 센 사람을 뽑으려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술이란 곧 자신을 대변하는 잣대이자, 사회생활의 바탕이요, 대인관계에 윤활유 역할이 강한 물질이 된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술에 취해 관공서에서 행패를 부리는 일이 어제 오늘일이 아니고, 술에 만취해 묻지 마 살인을 저지르는 일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또 음주운전으로 상대차량의 가정을 파탄에 빠트리는 일도 꽤나 자주 일어나고 있다.

현 정부가 적폐청산을 과제로 삼고 있는데 이런 음주운전을 적폐로 몰아 뿌리를 뽑는다면 어떨까.

How much do you usually drink?라고 외국인 친구가 묻걸랑 “다른 사람하고 기분 맞춰줄 정도까지”

美 보건당국은 두 시간 동안 남성은 현재 소주 도수를 기준으로 한 병 반 정도 여성은 한 병 정동의 수치를 초과하는 것을 과음(binge drinking)으로 보고 있다.

주석에서 이 수치를 맞추기는 힘들다. 술이란 그 날의 컨디션, 분위기가 좌우한다. 몸 상태가 나쁘면 잔 머리라도 써서 슬그머니 주석을 빠져나오는 길이 최선책이다.

정조 임금은 성균관 제술시험에 합격한 유생들과 함께한 주연(酒宴)에서 각자 양껏 마시라며 시경(詩經)의 구절을 인용했다. “흐뭇한 술자리 밤에 벌어졌으니 취하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하리라(厭厭夜飮 不醉無歸)”라고 했다지만 요즘 그랬다간 빈축을 받기 십상이다.

최근에는 주머니 사정들이 좋지 않아서인지 술 판매도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2차 3차로 이어지던 술자리도 1차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몸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어딘지 씁쓸한 느낌이 든다. 언제쯤이나 흥청망청 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걱정말아 채근담에 ‘꽃은 반쯤 핀 것이 좋고(半開), 술도 반만 취한 것(半醉)이 좋다.’고 하지 않았는가. 꽃이 활짝 펴 버리면 질 날도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수줍은 듯 살짝 고개를 내민 꽃봉오리가 아름답지 않던가. 술 역시 얼큰할 정도로 마시며 흥얼흥얼 콧노래라도 부르며 대문을 들어서는 가장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겠는가.
<본지 발행인>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