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귀밝이술』한잔

『빈 술병』

희망찬『귀밝이술』한잔

육 정 균 (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시인/부동산학박사)

 

설이 지나고 정월 대보름이 지나고 나니, 해도 길어져 아침 7시쯤이면 먼동이 터서 훤한 세상을 볼 수 있다. 약간 어슴푸레한 미명 아래 출근하는 차 속에서 대보름달이 약간 취기를 머금고 기울며, 아침 태양의 새 희망에 밀려 옅은 산을 느릿느릿 넘어가고 있음을 본다.

대보름은 한 해의 첫 보름이자 보름달이 뜨는 날로 음력 1월 15일에 지내는 우리나라의 명절이다. 한자어로는 ‘상원(上元)’이라고 한다. 상원이란 중원(中元:음력 7월 15일, 백중날)과 하원(下元:음력 10월 15일)에 대칭이 되는 말로서 이것들은 다 도교적인 명칭이다. 이날은 우리 세시풍속에서는 가장 중요한 날로 설날만큼 비중이 크다. 1월 1일은 1년이 시작하는 날로서 당연히 의의를 지녀왔지만, 달의 움직임을 표준으로 삼는 음력을 사용하는 사회에서는 첫 보름달이 뜨는 대보름날이 보다 더 중요한 뜻을 가져온 듯하다.

벌써 봄은 다가오고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에서는 보름달이 가지는 뜻이 아주 강하였다. 정월대보름이 우선 그렇고, 다음의 큰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추석도 보름날이다. 이렇듯 달을 표준으로 하는 상원이나 추석은 중국에서도 물론 고대 이래의 중요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당송대(唐宋代) 이래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에서의 추석은 한식·단오·중구(重九:9월 9일)보다 규모가 훨씬 작았던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가위(嘉俳) 기록 이래로 중국과는 달리 보름달의 비중이 훨씬 컸던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대보름날의 뜻을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우리 문화의 상징적인 면에서 보면, 그것은 달-여신-대지의 음성원리(陰性原理) 또는 풍요원리를 기본으로 하였던 것이라 하겠다. 태양이 양(陽)이며 남성으로 인격화되는 데 대해서 달은 음(陰)이며 여성으로 인격화된다. 그래서 달의 상징구조는 여성·출산력·물·식물들과 연결된다. 그리고 여신은 대지와 결합되며,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의 출산력을 가진다.

한편, 대보름날에는 절식으로서 약밥·오곡밥, 묵은 나물과 복쌈·부럼·『귀밝이술』등을 먹는다. 이 중『귀밝이술』(耳明酒)은 “이 술을 마심으로써 귀가 밝아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풍속에 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 식전에 소주나 청주를 차게 해서 마시는데, 이를『귀밝이술』이라고 한다.〈경도잡지〉‘상원조(上元條)’에 “소주 한 잔을 마시어 귀를 밝게 한다.” 하였고,〈열양세시기〉에는 “이 날 새벽에 술 한 잔 마시는 것을 명이주(明耳酒)라고 한다.” 하였으며, 〈동국세시기〉에서는 “청주 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하였다. 이밖에도 이명주(耳明酒), 치롱주(癡聾酒), 총이주(聰耳酒)라 하여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귀밝이술』은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데우지 않은 찬 술을 마시면 정신이 나고, 그 해 귓병이 생기지 않으며, 귀가 더 밝아진다.”, “한 해 동안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고 해서 생겨 난 풍속이다.『귀밝이술』은 정월 설날에 마시는 도소주와 같이 영춘(迎春)의 의미와 1년 동안의 제화소복(除禍招福)의 뜻을 함께 담고 있다. 때문에 추석절의 ‘신도주’와 설날의 정조차례에 쓸 제주는, 가을에 첫 수확한 양질의 미곡을 따로 마련하여 두었다가 정성껏 술을 빚어 차례나 잔치, 제사가 있을 때 사용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귀밝이술』은 술을 빚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정월 설날 아침 차례 상에 올리는 맑은 술(청주)이면 되고, 이날 사용하고 남은 술은 정월 대보름날 사용하면 『귀밝이술』이 된다.

『귀밝이술』의 현대적 의미는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 한 해를 새로 맞이하여 정월 대보름날쯤이면 연초에 세웠던 1년 동안의 계획이 보다 구체적으로 세워졌을 때이다. 따라서 이날 아침 공복에 찬술을 한 잔 정도 마시면 신진대사가 매우 원활해지고 두뇌 회전에도 좋다. 물론 이날 하루에 그치기 때문에 건강에도 하등의 지장이 없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농경 중심의 사회였던 우리 습속에 정월 대보름날이면 가정과 부락, 면, 읍 단위마다 각종 행사가 많아진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데, 이때 귀가 밝아야 농사에 유익한 각종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또한 친교를 잘 해 두어야 농번기나 일손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귀를 밝게 해주는 『귀밝이술』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올해는 대한민국의 국운이 달린 4.15 총선이 있다.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인 경제가 특히 어렵다. 총선 출마자들에게 “상심한 국민들의 참 소리를 잘 듣고,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반드시 좋은 정치를 행하라”고 『귀밝이술』이라도 한잔 권해야 할 즈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보름 [上元]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귀밝이술 [耳明酒] (한국의 전통명주 1:다시 쓰는 주방문, 박록담) 등 참조

[경력]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아름다운 귀향」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학교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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