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경 녀(도로교통공단 제주지부장)
도무지 밝아지지 않는 길눈 덕에, 예외 없이 헤매며 다리품을 있는 대로 팔고 돌아오던 전철 안에서 한 무리의 여고생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쉼 없는 재잘거림과 높고 맑은 웃음소리…. 그들이 거침없이 내뿜는 싱싱한 발랄함에 동화되어 제 미간에 자글자글 몰려 있던 피로와 짜증이 환하게 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누군가 좀 조용히 하라고 나무랐으나 여학생들은 그런 꾸중마저 키들거리는 웃음으로 화답하여, 후덥지근 끈끈하던 오후의 전철 안에 싱그러운 젊음과 생기를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예쁜 그들을 넋 놓고 바라보는 사이, 전철은 플랫폼을 떠나 터널로 머리를 들이밀고 저의 기억도 시간의 터널을 따라 과거로… 과거로… 뒷걸음칩니다.
오늘은 그냥… 옛날 얘기 하나 할게요.
여고 2학년, 저는 우연한 기회에 교지 편집을 맡게 되었습니다.
원래 교지는 문예반이 만들고 있었는데, 문예반도 아닌 제게 느닷없이- 참고삼아 말씀드리면 저는 수예 반이었습니다.
교지편집을 해 보지 않겠느냐는 국어선생님의 권유는 말이 권유지 사실상 거의 명령이나 다름없었지요.
교내 백일장에서 같잖은 시 한 편 끄적여 낸 것이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으로, 장원도 아니고 차하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상 하나 받은 것이 제 화려한(?) 경력의 전부였건만, 어쨌거나 낙점(落點)을 무르왔다는 흐뭇한 우쭐거림으로 저는 그 명령에 못 이기는 척 순종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편집반 생활은, 그 사소하고 철없었던 동기와는 달리 그 이후 제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결정지어 버렸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편집반 식구는, 늘 까치집을 이고 다니시던 선생님과 제 단짝 친구 그리고 나머지 다섯은 1학년들이었습니다.
책이 뭔지, 편집이 뭔지 개코도 쥐뿔도 모르면서 발등에 불이던 예비고사는 나 몰라라, 계단 끄트머리 구차하고 좁아터진 편집반을 무슨 대단한 신문사 데스크나 되는 것처럼 하루에도 수십 번, 쥐 풀방구리 드나들 듯했습니다.
바로 그 구석방 외진 곳에서 금세라도 멎어 버릴 듯 숨을 헐떡이며 위태위태 돌아가던 폐기처분 직전의 고물전축 속에서 흐느끼는 제니스 조프린과 멜라니 사프카에게 매료되었고, 비발디의 四季를 어렴풋이나마 구별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리고 편집반을 우리만큼이나 들락거리시던 몇 분 국어선생님들을 위해서는 진로소주와 오징어채와 고추장을, 먹성 좋은 어린 후배들과 우리를 위해서는 삼양라면과 신 김치를 참고서 대신 책가방에 담아 날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을 갓 졸업한 총각 수학선생님이 새로 오셨습니다. 듣건대, 이미 피앙세까지 있는(무늬만 싱글) 이었지만 단아한 용모의 수학선생님 인기는 그야말로 짱이었습니다.
저 역시 가지런한 하얀 이를 드러내며 개구쟁이마냥 웃는 해사한 모습의 수학선생님이 싫지는 않았으나 다른 아이들이 떼로 몰려 좋아하는 선생님을 떠밀리듯 부화뇌동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고, 그보다는 그 선생님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별로’라고 그랬습니다. 약혼녀가 있다면 선생님의 마음은 약혼녀에게 몽땅 기울어 있을 터인 즉, 짝사랑은 전 싫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지금에사 하는 창피한 고백이지만, 국어점수를 반으로 나눠야 대충 수학점수가 될까 말까 한 저의 치명적인 결함이 알량한 자존심에 깔짝거렸던 것이 아마도 가장 큰 이유였을 테지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무슨 이야기 끝이었는지 장난기가 발동한 저와 친구는 한 가지 내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기의 내용은, 각자 한 선생님을 지목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유혹(?)하여
방학 전에 그 선생님과 따로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었는데, 둘이 머리를 맞대고 고심 끝에 친구가 택한 선생님은 당시 신혼의 달콤함에 푹 젖어 있던 편집반 선생님이었고, 저는 바로 그 약혼녀가 있는 수학선생님이었습니다.
제가 그 수학선생님을 택한 이유는 아마도 모종의 오기와 모험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친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수학선생님의 주의를 끌어 보는 것, 그리고 이미 한 여인을 사랑하고 있는 남자는, 다른 여인의 사랑을 어찌 받아들일까…. 하는 조금은 고난도(?)의 문제에 부딪쳐 보고 싶다는 깜찍한 발상이었던 것이죠.
제가 생각해낼 수 있는 유혹의 방법은 결국 편지밖에 없었는데 당장 그날부터 저는 밤을 새워 가며 제 생애 첫 러브레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To be continued.
…Let me s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