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몸을 戒盈杯로 만들어라

김원하의 취중진담

자신의 몸을 戒盈杯로 만들어라

 

술 예찬 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술은 백약지장(百藥之長)이다. 그래서 술은 신이 내려주신 최고의 음식”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마신다. 그렇지만 술을 마시다 보면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고 싸움도 한다. 때론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술이 갖고 있는 본질이 처음부터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탈무드>에 술의 기원에 대해 이런 말이 있다.

이 지구상에서 태초의 인간이 포도나무를 심고 있었다. 악마가 다가와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인간이 대답했다. “멋진 식물을 심고 있지, 이 나무에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열매가 열려서 그 즙을 마시면 누구라도 기분이 황홀해질 것이네” 이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긴 악마는 자기도 한몫 끼워달라고 했다. 인간이 흔쾌히 허락했다. 악마는 양과 사자와 원숭이와 돼지를 차례로 끌고 와서 죽인 다음 그 피로 차례차례 거름을 주었다.

그래서 술은 마시기 시작할 때는 양처럼 온순하지만,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지고, 더욱 마시게 되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를 부르다가 더 마시고 나면, 토하고 뒹굴고 형편없는 꼴이 되어 마치 돼지처럼 추해진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악마가 인간을 찾아가기가 너무 바쁠 때는 대신 술을 보낸다”라는 유대인의 격언이 비롯되었다.

평소엔 말 수도 적고, 점잖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고약한 술버릇이 발동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술 몇 잔 들어가면 소위 끝장을 봐야 되고,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시비 걸고, 내가 한 잔 사겠다며 2차 가자고 비싼 술집에 들어가서 퍼마시다가 술값도 내지 않고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괜한 사람에게 술 값 바가지 씌운다. 다음날 만나서 전혀 기억에 없다는 투로 모른 척 한다.

평소엔 소주 한잔 안 사던 사람이 공술 마실 기회가 오면 마치 자신이 술을 사는 양 권커니자커니 하며 술 잔 돌리고 강권한다. 잔칫집 같은데서야 분위기 띄우기 위해서 그렇다 치지만 상갓집에서도 이 버릇이 나와 술판을 벌린다. 술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듯이 많은 양의 술을 마시다 보면 취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 슬퍼해야 할 상갓집이 잔칫집처럼 돼서야 쓰겠는가.

평소에 소심하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사자처럼 돌변하는 이유는 악마가 뿌려 놓은 저주 때문일까.

나쁜 술버릇은 직장생활에서 치명타를 받는다. 술 마시고 울고불고 하는 것쯤이야 애교로 봐줄지 모르지만 윗사람과 동석일 때 술김에 대들거나 시비를 걸면 결과는 뻔 한 것 아니겠는가. 평소 근무 성적이 제아무리 좋아도 직장 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이다. 특히 여성이 동석한 자리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뉴스에 의하면 심야 시간에 동료 여교사에게 “뭐 하세요. 술 한잔하러 오시죠”며 카톡과 문자를 반복해서 보낸 부장교사의 해임은 마땅하다는 판결이 나왔다고 한다.

법원은 술에 취해서 그랬다곤 하지만 교사라는 직분은 “일반 직업인보다 엄격한 품위유지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며 해임처분은 마땅하다고 본 것이다. 술 때문에 직장을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술 몇 잔 들어가면 동네방네 휘저으며 소리 질러대는 사람, 개처럼 아무 데서나 노상 방뇨 하는 사람, 집에 들어와선 자는 사람 모두 깨워 놓고 일장 훈시하는 사람, 지갑에 있는 돈을 모든 식구에게 나눠 주곤 아침에 회수 하는 사람, 술 마시고 취중에 하는 버릇은 이루 다 열거를 할 수 없지만 주당들은 되돌아 봐야 한다.

나는 괜한 사람한테 시비 걸고 행패 부린 적은 없는가. 집안 식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집식구들은 나의 술버릇 때문에 고생은 하지 않는지 등. 있다면 당장 고쳐야 한다.

주당들은 술 마실 핑계를 잘 만든다. 기뻐서, 슬퍼서, 울적해서, 속이 출출해서 등등 무엇이든지 그냥 같다가 붙이면 이유가 된다.

그러나 술 마시되 지나치게 과음은 삼가야 한다. 몸도 망가지고 가정 경제에도 적신호가 오기 때문이다.

화순 출신 조선 후기 실학자 하백원이 ‘가득 참을 경계하는’ 의미를 담아 만든 술잔이 계영배(戒盈杯)다. 이는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잔의 일정한 수위를 넘으면 술이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한다. 만약 잔의 70% 이상을 채우면 액체가 전부 밑으로 흘러나간다.

그러나 계영배로도 여러 잔 마시면 그게 그거다. 술을 마실 때 자신의 주량에서 70%를 넘기지 않는 습관. 즉 자신의 몸을 계영배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본지 발행인>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