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조네스 여전사들의 유방

전쟁을 좋아하는 신 아레스가 역시 호전적인 히폴리테가 여왕으로서 위엄을 갖도록 하기 위해 선물로 주었던 허리띠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17)

아마조네스 여전사들의 유방

 

‘아마존의 신화’가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700년께다. ‘아마존의 신화’는 그리스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그리스어로 아마존은 ‘가슴이 하나밖에 없다’는 뜻이다. 왜 아마존의 여성은 가슴이 하나뿐일까. 아마존의 여성인 아마조네스는 활을 쏘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가슴 한 쪽을 도려내는 의식을 치렀다는 것이다.

신화가 되기 이전부터 아마존은 전설로서 그리스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호메로우스나 헤로도토스 같은 고대 그리스 작가들의 상상력과 합쳐지면서 근사한 신화로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아마조네스’는 가차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그들에게 남자란 종족 번식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당한 사내아이들이 많았다. ‘아마조네스’는 초승달 문양의 방패를 들고 다녔다. 그들이 달 모양의 방패를 들고 다닌 것은 달이 여성을 상징하기 때문이었다.

또 그들은 창으로 싸우지 않았다. 창은 남근을 상징하는 남성들의 무기였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양날이 달린 도끼를 들고 다녔다. 이렇게 강한 여성을 만들어낸 것은 남성들이었다. 무시무시한 여성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남자가 필요했고, 그래서 남성은 헤라클레스나 테세우스·아킬레스 같은 영웅이 돼야 했다.

그리스 신화와 전설 가운데는 아마조노마키(Amazonomachy)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 그리스어는 여전사들로 구성된 아마존(Amazons) 족에서 유래한 말로서, 그리스 남자들로 구성된 전사들과 침략한 아마존 족 간에 벌어진 전투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싸움 잘하는 아마존 족의 침략을 남자전사들이 나서서 격퇴시킴으로써 그리스를 지켰다는 내용을 주제로 삼고 있다. 말하자면 성 대결적인 전투에서 남자들이 승리하고 남자의 자존심을 지켰으며, 그 후 그리스 역사는 남자들이 주역을 담당하여 문화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조네스(Amazoness)’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전쟁의 신 아레스(Ares)의 후손인 호전적인 여전사 부족을 ‘아마조네스’라고 불렀다. 그 단수형이 ‘아마존(Amazon)’이다. ‘아마존’이라는 이름은 활을 쏘기 위해 여전사들의 한쪽 가슴을 잘랐던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옛날 그리스어는 앞에 ‘a, an, am’ 등이 오면 ‘없다’는 뜻이 된다. 이 해석은 기원전 1세기 시칠리아 출신의 역사학자 디오도로스(Diodorus Siculus)가 그의 책 <역사총서(Bibliotheca historica)>에 기록한 다음 표현에서 비롯된다.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전쟁에 쓸모없도록 팔다리를 잘랐다. 계집아이는 오른쪽 가슴을 불로 지져서 나중에 가슴이 솟아올라 불편하지 않게 했다. 이 때문에 이 종족은 ‘아마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조노마키(Amazonomachies)

역사적으로 ‘아마존’들은 ‘아마조노마키(Amazonomachies)’, 즉 그리스인들의 전쟁을 치룬 아름다운 여성들로 묘사되어 있다. 헤로도토스가 부른 이름은 ‘남자를 죽이는 자’란 뜻의 ‘안드로크토네스(Androktones)’며, 스키타이어로는 ‘오이오르파타(Oiorpata)’라고 한다. ‘아마존’의 전사들은 초승달 형의 방패와 활, 창을 가지고 싸우고 기마술에 능했다고 하는데, 여자만으로 이루어진 부족이었기 때문에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 종종 이웃 부족의 남성들과 정을 통해서 아기를 낳았다.

그런데 아기가 사내아이라면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고, 오로지 여자아이들만 길렀다. 그나마 여자아이도 어릴 때 오른쪽 유방을 잘라내서 키웠다고 한다. 그 외에도 남자로만 이루어진 부족인 가르가리안(Gargarean)과 1년에 한 번 결합했단 이야기도 있다. 그 이유는 활과 창을 쓰는데 오른쪽 유방이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니 얼마나 전투적인 여전사들인지 알 수 있다.

그리스 신화속에서 아마존의 여전사들은 여러차례 등장하고 또 그리스의 신들과도 교류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 델포이의 신탁을 통해서 에우리스테우스(Eurystheus)로부터 12가지의 어려운 고난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Hippolyta)의 허리띠를 빼앗아 왔다. 이 허리띠는 전쟁을 좋아하는 신 아레스가 역시 호전적인 히폴리테가 여왕으로서 위엄을 갖도록 하기 위해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또 역시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길에 여섯 가지의 어려운 고난을 헤쳐나가야 했던 테세우스도 히폴리테의 동생 또는 딸이라고 하는 안티오페(Antiope)를 약탈했다고 전해온다.

이 때문에 트로이 전쟁에서 아마존 부족은 그때의 원한으로 그리스 편이 아닌 트로이의 편에서 싸웠다. 이를 또 그리스의 영웅인 아킬레우스가 물리쳤다. 그 때 아킬레우스는 아마존의 여왕인 펜테질레아(Penthesilea)를 죽였는데, 죽음 뒤의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운 나머지 슬픔을 금치 못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그리스인인 테르시테스(Thersites)가 이를 비웃고는 아킬레우스가 죽은 사람을 사랑했노라고 소문을 퍼뜨리자 아킬레우스는 그를 죽이고 만다. 이 이야기를 갖고 근세의 독일 극작가인 베른트 하인리히 빌헬름 폰 클라이스트(Bernd Heinrich Wilhelm von Kleist, 1777~ 1811)는 희극 <펜테질레아(Penthesilea)>를 썼다.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은 신화에서 착안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6세기경, 스페인의 탐험가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Puerto Francisco de Orellana)가 그 강 근처에 이르렀을 때 원주민들의 무리 중에 전사 차림의 여자가 섞여 있는 걸 보고는 신화 속의 여전사를 떠올리고 강 이름을 ‘아마존’이라고 붙였다. 사실은 그 탐험가가 본 건 남자들인데, 머리가 길고 옷차림이 이상해서 성별이 구분되지 않아 착각한 거라는 말도 있다.

그리스의 아마존은 신화일지 모르지만 ‘아마조네스’는 실제로 존재했다고 한다. 1994년, 카자흐스탄의 고고학자들은 그 증거를 찾아냈다. 그들은 고대의 고분 ‘컬콘’을 발굴했는데 이것은 약 2,000년 전 러시아의 초원지대를 떠돌던 유목민의 무덤이었다. ‘컬콘’의 무덤을 발굴하던 중 한 소녀의 무덤이 발견됐다. 소녀의 무덤에서는 칼과 화살이 들어 있는 화살 통이 나왔다. 또 소녀의 목에는 화살촉으로 만든 부적이 걸려 있었다. 이것은 무덤의 주인이 전사였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동안 여전사의 무덤이 10여구나 더 발굴되었다. 그들의 무덤에서는 한결같이 몽둥이·나무토막·쇳덩어리 등 전사의 소지품들이 들어 있었다.

‘아마조네스’는 그리스나 러시아 유목민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영국은 ‘아마조네스’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기 60년, 켈트족의 후손인 영국 이케니족의 국왕이 세상을 떠난다. 뒤를 이어 그의 아내 보아디케아(Boadicea) 왕비가 왕위를 이어받게 된다. 그러면서 20년간 그들의 영토를 지배해온 로마인들과 사이의 평화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당시 캐두스라는 이름의 로마 집정관은 보아디케아에게 돌아갈 토지와 재물을 모두 가로채고 만다. 그것은 협정위반이었다. 이것도 부족했던지 그는 로마군에게 명령해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아디케아 왕비의 옷을 벗긴 다음 매질을 가했다. 명색이 이케니족의 여왕이었던 그에게 수모를 가했던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나이 어린 공주들까지 때리고 겁탈했다. 그러고는 재물을 빼앗아 떠나버렸다. 이후 보아디케아(Boadicea)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다.

그는 영국 남부의 부족들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이 입은 상처를 보여주었고 딸들이 당한 모욕과 로마인들이 협정을 어떻게 어겼는지를 낱낱이 알렸다. 그러면서 그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 특히 여자들을 선동해 로마에 맞서 싸울 군대를 결성한다. 군대를 결집한 보아디케아는 로마의 이민자들과 로마의 퇴역 군인들이 주로 살고 있는 도시를 공격했다. 그들의 전투는 신속하고 잔혹했다. 이케니족의 군인, 특히 여성들은 피에 굶주린 살인마들이었다. 불과 며칠 만에 보아디케아의 병력은 수천 명에서 수십만 명으로 불어났다. 그들은 대담하게 런던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고 로마군에게 여성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었다. 보아디케아의 앙갚음은 극에 달해 마침내 로마 여성을 표적으로 삼아 그들을 괴롭힌다. 그러면서 점차 그들의 목표가 켈트족 해방에서 로마인의 씨를 말리는 것으로 변질돼 갔고, 적에게 천벌을 내리는 성전으로 자신들의 전쟁을 규정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같은 동족인 켈트족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사살해 버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로마는 군사를 보내 진압에 나선다. 승승장구하던 보아디케아의 군사들은 진압군에 의해 참담한 최후를 맞는다. 마지막 전투에서 그들은 무려 8만 명의 병사를 잃었다. 그러나 로마인 사망자는 400명도 되지 않았다. 전쟁에서 진 보아디케아는 널브러진 전우의 시체를 보고 그 자리에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해 버린다. 비록 그의 인생은 여기서 끝났지만 영국의 여왕으로서 그의 전설은 그 때부터 시작된 셈이었다. 그는 당당히 영국의 아마조네스로 등극한 것이었다.

1542년 여름, 에스파니아의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망망대해 배 위에서 그들의 무료함을 달래준 것은 책이었다. 당시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있었는데 제목이 <아마디 데 가울라>였다. 몬탈보라는 작가가 쓴 이 책은 ‘아마조네스’의 군대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는 어느 기사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이 책을 흥미 있게 읽은 에스파니아인들이 신대륙에 도착한 후, 우연히 그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에스파니아인들은 자신들이 본 소설의 이야기와 흡사하다고 느꼈고, 그들은 남미 대륙이 바로 여전사들의 땅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들이 남미 대륙에서 전해들은 여전사들은 머리를 길게 땋아 내렸고 키가 크며 아주 건장하고 활과 화살을 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여전사들이 강둑을 따라 길게 늘어서서 이방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는 것인데 배 위에서 읽은 아마조네스 군대 이야기로 머릿속이 꽉 차 있던 에스파니아 사람들은 바로 강의 이름을 ‘아마존’이라고 짓게 된다.

과연 그들은 여전사였을까. 인디언 남성들은 가슴에 털도 없고 머리도 길러 땋아 내렸다. 따라서 인디언 중 여전사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당시 탐험가들은 여전사를 만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누가 먼저 ‘아마조네스’의 부대를 만날 것인가가 최대의 목표였다. 아마존을 찾는 데 번번이 실패한 탐험가들은 고국에 돌아와 아깝게 놓쳤다는 말만 되뇔 뿐이었다.

당시 탐험가들 입을 통해 흘러나온 ‘아마조네스’에 대한 이야기들은 무수했다. 그 중 가장 황당한 것이 1540년께 한 탐험가가 여전사의 부족을 찾아냈다는 소문이었다. 그가 찾은 여전사의 부족은 사라진 이스라엘 10대 부족 중 하나로, 그곳 여전사들은 히브리어도 배우고 종교도 되찾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 선교사를 보내 달라는 여전사의 부탁이 있었다고 했다. 이 말이 퍼지자 네덜란드계 유대인들이 여전사 동족을 위한 모금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그러나 선교사를 싣고 남미 대륙을 향해 배가 출발하기 직전,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당시 아마존을 발견하려는 탐험가들의 열망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탐험가들의 아마존에 대한 열기가 캘리포니아라는 지명 탄생에도 한몫 했다. 1542년 에스파니아 탐험대가 멕시코 해안을 따라 북상중이었다. 일행이 탄 배가 지금의 샌디에이고만에 해당하는 곳에 다다른 것은 9월 28일이었다. 급한 보고가 올라왔는데 육지에 여전사들이 잠복중이라는 것이었다. 이 보고를 전해들은 선장 후안 로드리게스 카브릴로(Juan Rodríguez Cabrillo)는 자신이 읽은 소설을 떠올렸다.

그것은 캘리피아라는 여왕이 지배하는 섬에 사는 여전사들의 이야기로, 여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황금투구와 황금방패를 들고 화살을 쏘는 등 그야말로 대단했다. 카브릴로는 자신의 배가 인접해 있는 샌디에이고만이 섬인 줄 알았고 그래서 그 자리에서 캘리피아의 이름을 따 그곳 이름을 캘리포니아라고 지은 것이다. 신대륙을 중심으로 한 여전사에 대한 소문은 그 후 300년간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약 1600년부터 1904년 사이 오늘날 베냉 지역에 있었던 아프리카의 왕국 다호메이

(Dahomey)에 아마조네스 군단이 창설된 것은 다른 부족에 비해 남자들의 수가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부족한 남자를 대신해 여자들은 무려 100년에 걸쳐 북으로는 마히족, 동으로는 오요족과 맞서 싸웠다. 그러면서 그들은 강해졌고 또한 잔인했다. 다호메이에서 아마조네스가 사라진 것은 1890년대 프랑스가 식민지를 건설하면서부터였다. 프랑스 군대는 다호메이에 진군해 그 어느 식민지 쟁탈전보다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아마조네스와의 피 튀기는 전쟁이었다. 전투를 시작할 당시 아마조네스는 1,200명이었는데 전투가 끝난 후 생존자는 고작 50∼60명이었을 만큼 그들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

아마조네스의 신화는 남성들의 통치 수단으로 만들어진 허구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구석기 시대 사냥꾼으로 활약한 아마조네스가 있었고 세계의 역사 속에서 강하고 용맹스러운 아마조네스가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조네스의 정신은 현대에 와서 다른 차원으로 계승 발전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에 대한 답은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구해야 할 것이다. 아마존 족은 전쟁의 신 아레스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숭배하는 신을 당연히 자신들의 조상인 아레스다. 그리고 이들을 사냥과 전투는 즐겼다고 한다. 대표적인 신화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아마존의 여왕이자 전사인 힙폴리테(Hippolyte)와 헤라클레스의 신화이다. 헤라클레스의 12과업 가운데 아홉 번 째 임무가 바로 아마존 여왕의 허리띠를 가져오는 난행이었다. 미케네 왕 유리스테우스의 딸 아드메테가 이 허리띠는 탐냈기 때문이다. 히폴리테 여왕은 특수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가죽 벨트였고 전쟁의 신 아레스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그녀가 아마존에서 최강의 전사였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다. 히폴리테는 이 벨트를 가슴에 크로스로 매고 칼과 창을 넣을 때 사용했다.

에우리스테우스(Eurystheus)의 딸 아드메테(Admete)는 이 허리띠를 갖고 싶어 했고, 이것을 딸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던 에우리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이것을 가져오는 일을 과업으로 요구했다. 헤라클레스는 친구들을 동원하여 아마존으로 배를 타고 찾아갔다. 헤라클레스가 아마존을 방문하자 남자에게 저항적인 아마존 족은 저항하지 않고 그를 환영했다. 그리고 히폴리테는 헤라클레스와 하룻밤을 지낸 뒤 그에게 허리띠를 선물로 주었다.

평화로운 방법으로 과업을 완수할 것만 같았지만, 헤라가 개입하며 결국 전쟁이 벌어진다. 헤라는 아마존 여자 중의 하나로 나타나 여왕이 납치되었다고 소리를 쳤고, 아마존 여전사들은 헤라클레스를 뒤쫓게 된다. 그러자 헤라클레스는 히폴리테가 자신을 배신한 것으로 판단하고 그녀를 죽여버리고 만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허리띠를 에우리스테우스에게 가져다주고 과업을 완수하게 된다.

둘째는 안티오페와 테세우스의 이야기이다. 아테네 왕 테세우스가 젊을 시절 아마존 족이 사는 해안에 상륙한 적이 있었다. 아마존 여인들을 당당한 영웅 테세우스에게 선물을 주었다. 그 가운데 특히 테세우스의 마음을 사라 잡은 여인이 바로 안티오페였다. 테세우스는 안티오페를 자신의 배로 청했다. 안티오페가 배에 오르자 테세우스는 그녀는 아테네로 데려가서 결혼했다. 아마존족은 이 일을 잊지 않았다. 그들을 테세우스가 안티오페를 납치했다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아마존족이 함대를 이끌고 아테네에 상륙해서 땅을 점령하고 마을을 덮쳤다. 아테네 사람들을 성 안으로 피신했다. 이후 전열을 재정비해서 성문을 열고 공격을 감행했다. 안티오페는 남편과 함께 아테네 편에 싸우다 전사했다. 양측을 결국 협정을 맺고 전투는 끝냈다. 아마존족은 아테네를 떠나 본토로 돌아갔다. 둘 사이에 태어난 테세우스의 아들이 힙폴리토스다. 테세우스의 후처인 파이드라가 사랑해서 파멸로 이끈 비운의 주인공이 바로 힙폴리토스다.

셋째는 펜테실레이아와 아킬레우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레스의 딸이자 아마존 종족의 여왕 펜테실레이아가 동맹국 트로이를 구하기 위해 종족을 이끌고 참전했다. 당시 트로이는 헥토르의 전사로 절망에 빠져있던 시기였다. 여왕을 단 열두 명의 여전사와 함께 트로이에 입성했다. 그리고 아킬레우스를 죽이겠다고 맹세했다. 예전에 여왕이 사냥을 하다가 사슴을 향해 던진 창에 동생 힙폴리테가 찔려 죽는 사고가 있었다. 이후 여왕은 항상 괴로워했다. 여왕은 동료 여전사를 이끌고 말을 달려 성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이에 고무된 트로이 군대도 사기충전해서 그리스군을 향해 진격했다. 클로니아, 브레무사, 에우안드라, 테르모도아, 데리오네, 알키비아 등이 펜테실레이아 여왕과 함께 싸운 용감한 아마존 전사들이다. 펜테실레이아는 몰리온과 일곱 명의 영웅들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아킬레우스가 참전하자 여왕도 죽음의 운명에 벗어나지 못했다. 펜테실레이아가 던진 창을 아킬레우스는 방패로 막아냈다. 아킬레우스가 던진 창이 펜테실레이아의 오른쪽 가슴에 박혔다. 아킬레우스는 죽은 여왕의 투구는 벗기고 우아하고 기품있는 용모를 보고 사랑과 슬픔(妨)을 느꼈다.

위의 세 가지 에피소드에 모두 힙폴리테가 등장한다. 제우스나 미노스처럼 힙폴리테는 아마존 족에게는 여왕이나 장수 혹은 훌륭한 여인을 뜻하는 단어였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모든 아마존 족이 좋아하는 이름이거나. 위의 세 가지 에피소드는 아마조네스 족이 호전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헤라클레스, 테세우스가 그들을 방문했을 때 아마조네스족을 결코 이방인을 적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절하게 대접했다.

헤라클레스가 왔을 때 그들을 헤라 여신의 공작에 속아서 자신들의 여왕을 지키기 위해 싸웠을 뿐이었다. 테세우스는 호의는 받고도 아마존 여자는 납치해 갔다. 합의하에 데려갔다고 하더라도 종족의 동의는 얻지 않을 것을 분명한 사실이다. 아마존이 아테네를 침략하지만 헬레네의 납치는 빌미로 트로이를 멸망시킨 그리스의 야만성에 비하면 너무나 점잖을 행위였다. 트로이 전쟁의 참전을 동맹국에 대한 당연한 의무전이었다. 게다가 여왕을 종족의 주력부대는 놔두고 단 열두 명만을 데려왔다. 이것 또한 호전적이라는 평가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유방의 잔혹사가 서양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양에서는 유방의 분비물을 ‘불로장생의 복숭아’·‘흰 눈’·‘산호의 액’이라 부르면서 정력제로 여겼던 적이 있었다. 이것을 먹어 단전에 이르면 능히 비위를 기르는 정신에 이로우며, 그것은 위로 꽃의 연못까지 이르고 아래로 신비의 문에 화답하기 때문에 몸의 온갖 기운이 증강하고 발전된다고 신봉했었다. 특히 “아직 아이를 낳은 적이 없고 가슴에서 젖이 나온 일이 없는 여자라야 제일 이롭다.”고 했을 정도이니, 이것은 또 하나의 유방의 수난사가 아닐 수 없었다.

남태우 교수

남태우 교수:중앙대학교(교수)▸중앙대학교 대학원 문헌정보학과 박사▸2011.07~2013.07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2009.07 한국도서관협회 부회장▸2007.06~2009.06 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2004.01~2006.12 한국정보관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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