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네가 뭔데….

김원하의 취중진담

황제! 네가 뭔데….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외교다. 잘 마신다는 것이 많이 마신다는 뜻이 아니고 주도를 지키며 상대방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마신다는 뜻이다.

나라를 대표한 외교관이 상주 국가에서 술 마시고 실수를 한다면 이 또한 나라를 망신시키는 일이다. 비단 외교관뿐이겠는가. 상사의 주재원도 그렇고, 여행객도 그렇다.

술을 전혀 하지 않는 나라로 여행 떠나면서 몰래 술가지고 가서 마시다가 망신을 당하는 일도 있을 테고, 술집에서 지나친 음주로 쫓겨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술을 지나치게 마셔서 만취상태가 되면 위아래 보이지 않아 중국의 옛 황제들은 신하들과 술자리를 할 때는 현주(玄酒)부터 하사 했다고 한다. 현주는 맹물이다. 그런데 현주라고 하는 것은 옛날 제사를 지낼 때 술이 귀해서 술 대신 물을 떠 놓고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한 밤중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다 보면 물이 검게 보여 정안수라 하지 않고 현주라고 했다.

술 마시기 전에 물 한 사발을 마시면 그 만큼 덜 취한다. 만취상태에서 황제에게 기어오르는 신하가 있었던 모양이다. 황제의 현명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신하가 술 취해 “황제 네가 뭔데…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를 듣기 전에 아예 술을 덜 마시게 할 요량으로 물을 마시게 했다는데서 이후 물을 내놓지 않고 술부터 권하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일로 여겼다.

우리의 옛 선비들도 술자리에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술을 귀히 여기는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일상화 했다. 술 마시고 몸가짐이 흐트러지는 것을 수치라고 여겼는데 요즘 주석에서 향음주례 어쩌고 하면 꼰대소리나 듣기 딱 좋다.

지방 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었지만 ‘향음주례’는 그 고을 관아의 수령이 주인이 되고, 학덕과 연륜이 높은 이를 큰 손님으로 모시고 그 밖의 유생들도 손님으로 모셔서 이루어진 술잔치다. 향음주례의 목적은 주인과 손님 사이의 예절바른 주연을 베풀기 위한 것이 주 목적이다.

거의 매일이다 시피 술자리에서 불상사가 발생한다. 기분 좋자고 마시는 술자리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우리는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졸부가 생겨나고, 일부 권력기관들의 잘못된 음주문화가 사회로 퍼져나와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졸장부들이 내돈주고 술 먹는데 무슨 참견이냐는 생각, 빨리 취하기 위한 폭탄주 문화가 만연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나쁜 음주문화가 구축되고 있다.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같은 현상은 하루 빨리 걷어내야 한다. 이는 민간인이 하기엔 너무 늦었다. 정부가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면 학교 정규 교육프로그램에라도 넣어야 될 판이다.

최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법원은 술에 취해 기내에서 난동을 부려 비행기 회항을 유발한 한국인 A(48)씨에 대해 지난 7월 3일 “승무원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징역 6개월 형을 선고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또 법원은 여객기 회항 비용과 비행 일정 변경에 따른 승객 숙박비 등 명목으로 17만2천 달러(약 2억 원)를 항공사 측에 지급하라고 A씨에 명령했다고 한다.

검찰 기소장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월 하와이발 인천행 하와이항공 여객기 기내에서 술에 취해 옆자리에 앉은 아이를 괴롭히고, 이를 저지하는 승무원에게 고함을 지르고 달려드는 등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비행기 탑승 전에 위스키를 병째 비운 A씨는 당시 취한 상태였고, 기내에 탑승한 군인들이 그를 제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기장은 긴급 회항을 결정했으며 A씨는 하와이 공항에서 체포됐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도대체 술을 어떻게 배웠기에 그런 소동을 벌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6개월 징역을 살면 직장에선 온전할까? 2억 원이란 돈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닌데 하는 생각, 술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말을 몸소 실천한 사람은 주당(酒黨)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할 당원임에 틀립없다.

요즘 한·일관계가 북풍한설 같지만 최근 일본의 한 보도는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일본 정부가 7월부터 해외 공관에 부임하는 직원 전원을 대상으로 ‘니혼슈(日本酒) 연수’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니혼슈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케(酒)’로 부르는 일본 청주를 뜻하는 말이다. 일본 정부는 외교관들이 사케 중에서도 ‘준마이 다이긴조(純米大吟釀)’를 영어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교육을 시킨다.

모든 외교관들에게 사케 교육을 시켜 내보내는 까닭이 음식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수단이라고는 하지만 교육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음주문화도 교육시킬 것이다. 이런 것은 우리가 놓치지 말고 하루 빨리 배워야 할 것 아닌가.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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