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이강주

6代를 이어온 전통 가양주

‘전주이강주’는 300년 전부터 내려온 조선시대 3대 명주 중 하나다. 전통소주에 배(梨)와 생강(薑)이 들어간다고 해서 이강주(梨薑酒)로 부른다. 선조시대 때부터 상류사회에서 즐겨 마시던 고급 약소주로, 옛 문헌 곳곳에도 이 술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다. 특히, 고종 때 한미통상조약 체결 당시 국가대표 술로 동참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강주는 쌀과 보리를 원료로 발효시켜 증류한 뒤 배와 생강, 울금, 계피 등의 향약재를 넣은 다음 벌꿀을 첨가해 후숙시킨 리큐르다. 알코올도수 25도와 19도가 있다. 생강과 계피는 건위(健胃) 효과가 있고, 배는 술 마신 후 갈증을 없애주며 청량한 맛을 준다. 울금은 술에 취하면 혈압이 높아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등의 후유증을 보완해준다. 무엇보다 전주이강주는 약소주의 장점인 뒤끝이 깨끗하고 과음해도 부담 없는 술이다.
전주이강주 조정형(趙鼎衡?69) 대표는 어머니가 그를 낳을 때 술 빚는 가마솥이 땅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태몽을 꾼 덕에 이름에 ‘솟 정(鼎)’자가 들어 있다고 했다. 그것이 운명인지 조 대표는 대학에서 양조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국내 굴지의 양조회사인 목포 삼학소주에 입사하면서 술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러다 ‘애주가들의 기호에만 맞추는 술이 과연 좋은 술인가?’ 하는 의문 하나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조상 대대로 이어온 가양주가 진정한 우리술이라는 생각을 했고, 곧 민속주 연구에 매진했다.
1980년대 초, 회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국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있는 대로 민속주에 대한 문헌자료를 수집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민속주가 있는 곳을 샅샅이 뒤졌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던 중 자연 결근은 잦아졌고 가산도 탕진했다.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지 조사를 토대로 수십 차례 술을 빚어도 실패를 되풀이했을 땐 정말 죽고만 싶었다. 더구나 주변에선 “미친 짓 그만 두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묘한 오기가 생겼다. 어느 날 홀로 제주도로 건너가 그때까지 채집한 민속주 200여 가지를 직접 빚었다. 그간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다시 찾아야 할 우리술’과 ‘우리 땅에서 익은 우리술’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때맞춰 정부에서 우리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것 찾기’ 일환으로 민속주를 발굴해 조사하게 됐고, 그 덕분에 이강주로 1988년엔 무형문화재 지정을, 96년엔 명인(名人) 칭호를 받았다. 외길인생의 그가 기특했던지 한 출판사에선 ‘그 집에는 술이 있다’는 제목으로 책을 냈고, 그 내용으로 KBS에선 대형 드라마를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다.
6대를 이어온 전통 가양주인 이강주의 면허를 획득해 회사를 설립할 때까지도 주변의 반응은 냉담했다. 기술과 경영은 별개라는 게 가장 큰 이유. 그래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내 갈 길’을 고집했다. 그리곤 지금의 이강주는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이강주를 만드는 방법은 먼저 백미 5.3㎏과 누룩 2㎏, 물 8ℓ를 깨끗한 항아리에 넣어 밑술을 잡는다. 3일 후 보리쌀 10.6㎏, 누룩 1.5㎏, 물 16ℓ를 밑술과 합해 덧술한다. 덧술한 지 4일이 지나면 숙성되는데 이때의 주도는 15도 약주다. 숙성된 약주로 소주를 내린다. 소주를 내릴 땐 소줏고리를 사용한다. 그 방법은 한 솥에 숙성 약주 한 말을 넣고 4회 정도 물갈이를 하면서 35도 소주를 받는다. 이 토종 소주 18ℓ(한 말)에 배 5개, 생강 20g, 울금 7.5g, 계피 3.75g을 넣고 꿀을 가미해 이강주를 만든다. 이강주는 주도(酒度)가 높아 오래 두어도 안전하며, 오히려 오래 갈수록 맛과 향이 좋아진다.
이강주는 예전엔 약소주였지만 현재는 리큐르로 분류한다. 조선 중엽에는 평양 감홍로, 전라 이강주와 죽력고를 최고로 쳤다. 맛은 달콤하고 매콤한데 건위와 피로회복, 간장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의 술은 취하면 정신도 같이 취하지만 이강주는 울금의 약효가 좋아 취해도 정신이 맑아지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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