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자 다 품고 싶구나!

문재인 대통령과 리커창(가운데) 중국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2월 24일(현지 시각) 중국 쓰촨성 청두 두보(杜甫) 초당에서 한·중·일 협력체제 출범 20주년 기념물 제막식을 하고 있다. 두보 초당은 당나라 시인 두보가 한동안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차동영의 唐詩 시리즈 ② 詩聖 杜甫

세상에 없는자 다 품고 싶구나!

‘어쩜 저렇게 지지리도 가난할까?’

 

두보는 너무나도 굶주린 끝에 친구가 보낸 돼지고기를 먹다 급체해서 죽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굶주림은 곧 두보의 인생을 설명해주는 단어로 인식 될 정도다.

2016. 10. 29. 제1차에서부터 시작해서 20차에 걸친 촛불집회가 열려 현직 통령이 하야하고 구속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러한 촛불집회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정치 지도자 등 소위 사회지도층이 아니라 바로 민중의 힘이 근원이었다. 즉, 위로부터의 혁명이 아니라 밑에서부터의 혁명이었다. 흔히 말하는 힘없고 빽없는 민초들의 항거인 것이다. 이제는 영웅이나 위대한 지도자가 나와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21세기는 바로 민중의 시대이다.

두보는 당나라 시대에 제왕도 아니요, 영웅호걸도 아니요, 그렇다고 유명한 장수도 아니요 한낱 필부에 지나지 않는 평범한 백성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촛불혁명은 대중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면, 그 당시 두보는 한 개인으로서 다시 말해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한낱 민초로서 백성들의 참담한 상황을 참지 못하여 위정자들을 향하여 절규하였다. 마치 광야에서 홀로 울부짖듯이… 그 스산한 땅에 혼자 버려져 있는 이가 바로 시인 두보이다.

어느 날 두보가 고관대작의 곳간에 가보니 쥐가 사람을 봐도 도망도 가지 않고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본즉 너무 먹어 살이 뒤룩뒤룩 쪄서 도망을 못 가는 것이었다. 민초들은 먹을 것을 못 먹어 피골이 상접한 채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고관대작들 곳간에서는 쌀이 넘쳐 썩다 못해 그곳은 쥐들의 천국이었다. “귀족들의 집에는 술과 고기 썩는 냄새 진동하는데, 길에는 얼어 죽은 사람의 뼈가 뒹군다”(朱門酒肉臭, 路有凍死骨)는 바로 그들에 대한 원망의 축약이다. 두보는 ‘위정자들이여! 이제는 곳간의 쌀을 풀어 제발 민초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절규 섞인 메시지를 담고자 시 형식을 빌려 울분을 토한 것이다.

두보! 그는 과연 누구인가? 1400년 전 사람을 지금 새삼스럽게 언급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금의 현실에서 아주 먼 옛날 사람과 그의 시를 얘기하는 것이 무의미가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두보를 흔히 시선(詩仙) 이백과 비유하여 시성(詩聖)이라고도 부른다. 이백은 현실에서 살면서 이상향인 신선세계를 추구하지만, 두보는 현실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한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현실의 백성과 같이 하루하루를 어렵게 헤쳐 나가는 보통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데도 그를 1400년이 지나도록 추앙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자기가 처해있는 현실을 직시해 보면 두보의 시 세계가 고난과 역경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아심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 의문을 풀어보고자 두보의 위대성을 먼저 짚어보고, 현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해서 펜을 들게 되었다.

제1장에 나오는 “초가집이 가을바람에 날려가는구나”(茅屋为秋风所破歌)에서 “어찌하면 천만 칸이나 되는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그런 커다란 집을 지어 천하의 못사는 사람들을 다 품고 싶구나. 비록 내 초가집은 비바람에 날려 없어질지언정…”이라고 읊는다. 이 대목에서 나는 두보가 품고 있는 민중적인 위대성을 발견하고 밤새 눈시울을 적셨다. 비록 초가집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머물 수 있는 거처가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인데… 그러한 집마저도 오늘 밤 당장 비바람에 날아가 잠을 이룰 곳도 마땅치가 않은데, 어떻게 자신보다 백성들을 더 생각한단 말인가? 어떤 이는 이런 두보를 일컬어 ‘정의가 없는 경제구조로 고통 받는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시로 묘사한 민중시인’이라고까지 한다.

또 가족을 데리러 봉선현(奉先縣, 지금의 산시 성 蒲城)에 갔는데, “문에 들어서니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고, 어린 자식은 이미 굶어서 죽었다네(入門聞號咷, 幼子饑已卒)” 하며, “내 심히 부끄럽도다. 사람의 아비가 되어 먹을 것이 없어서 어린 것을 굶어 죽게 만들다니…”라며 통곡한다.

이런 기막힌 일을 당한 두보다. 그러면서도 두보는 민초들의 아픔을 생각한다. “내 생애가 이처럼 괴로울진대 가난한 백성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플까? 묵묵히 일자리 잃은 무리 생각하고 멀리 수자리 사는 병졸들 떠올리니 걱정은 종남산(終南山)만큼이나 높아, 멀고 깊음을 헤아릴 수가 없구나.”

동관리(潼關吏)에서 두보는 “많은 병사들 생고생시키다가 무모한 전투로 전사하게 만들지 말고 잘 대비하시라”고 하는데서는 병사들 얼굴 속에 비친 불안한 운명이 아팠던 모양이다.

어떻게 내 아들이 굶주려 죽었는데도 남의 자식들을 생각할 수 있을까? 여기에도 두보의 병사들을 사랑하는 심정이 애절히 배어있다.

즉, 위대한 사상이 위대한 시인을 만드는 것이다. 또 반군에 잡혀 온갖 고초를 당하면서도 결국 탈출하여 나라를 다시 일으키고자 황제의 군에 가담한 장면은 현재 상황, 즉 소위 지도층이라 하는 사람들이 본인들이 군대 안간 건 물론이고 자식들까지 군대에 가지 않게 하려는 것과 대비가 되는 대목이다.

두보는 자식을 굶겨 죽이기까지 하는 비참한 생활 속에서 집권자들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과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였고, 두보 자신도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도 각지를 방랑하면서 전란과 부역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보고 들었다.

이 같은 분노와 비통함을 두보는 시의 세계를 빌려 대변하였다. 다시 말하면 두보가 살았던 시기는 당나라 최전성기에서 안사의 난을 계기로 전환기를 맞는, 모순과 부조리와 전란과 기아가 들끓는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에서 곤궁과 기아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아픔과 현실을 가장 절실하게 시로 표현한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민중 시인이었다.

고난에 찬 유랑, 직접 참가한 전쟁, 친한 친구들과 이별, 기아로 인한 자식의 죽음… 인생의 고달픔과 쓴맛을 온몸으로 체험한 두보였기에 그의 시는 현실감 있고 생생하게 다가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두보의 인생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적인 안타까움에 콧등이 시큰해지며, 정해진 각본의 인간 운명처럼 그의 천재적인 시의 완성도에 비해 인생은 ‘어쩜 저렇게 지지리도 가난할까?’라고 짜증까지 나곤 한다.

좋은 시를 짓고자 한다면, 만 권의 책을 읽고(讀萬卷書), 만 리의 길을 떠돌아다니면서(行萬里路) 온갖 풍상을 다 겪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두보의 일생은 당대의 유명한 인사를 다 만나고 온갖 역경을 겪을 만큼 풍부한 경험 그 자체다. 그가 겪은 갖은 고난만큼이나 그의 시에는 삶의 굴곡이 배어 사실적이고 감동적이다.

詩는 하나의 생각을 드러내는 아주 짧은 글에 불과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노래하고,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처럼 열을 식혀주기도 하고, 오늘을 참회하게 하고,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게 한다. 결국 두보는 널리 인간의 심리, 자연의 사실 가운데 그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찾아내어 이를 시로 지어냈다.

예부터 우리의 선인들은 위정자 특히 지방 관리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로서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권하곤 하였다. 덧붙여 나는 시성(詩聖) 두보의 시를 권하고 싶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진정으로 펼치고 싶은 위정자라면 백성의 아픔도 고려할 줄 알아야 진정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백성이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모르고서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현실을 비추어 보자면, 오늘날 우리는 극단적 양극화의 논리에 빠져 있다. 정치적으로 좌익이라 불리는 진보와 수구라 불리는 보수, 그리고 경제적으로 사용자와 피사용자, 사회적으로 갑질이라 불리는 특권의식을 가진 재벌 그룹과 을도 아닌 병·정으로까지 불리며 노예 취급당하는 힘없는 피고용인, 미투의 가해자와 피해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등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곳곳에 만연하는 양극단, 즉 상대방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다르면 무조건 틀렸다고 무시해 버리는 현상에 직면해 있다.

너와 내가 결코 같지 않음의 다양성을 인정해야지만 민중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가 있다.

여기에서 위정자의 나아갈 방향은 민초들을 보고 가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달려있다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두보의 시는 위정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한다. 그래서 두보의 작품이 미래에도 인간들의 가슴에 영원히 길이 남아, 살아가는 이들의 귀감이 될 것을 의심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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