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술병』
우린 그저 나그네일 뿐
육정균 (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시인/부동산학박사)
새해벽두이다. 올 겨울은 펑펑 흰 눈이 오며 혹한이 몰아치는 겨울다운 겨울이 아닌, 겨울비가 며칠씩 오는 봄 같은 겨울이다. 새해를 맞아 주말 가족 모임으로 저녁을 먹고 아파트 입구까지 오니,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손자가 물었다. “할아버지! ‘謹賀新年’이 뭐예요?” “응,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새해인사란다” 아파트 입구에 서 있는 모자상(母子像)에 연말부터 점멸경관등과 함께 걸린 ‘근하신년(謹賀新年)’이란 문구를 본 것이었다. 아이에게 ‘謹賀新年’이 ‘삼갈 근, 하례할 하, 새 신, 해 년’이고, 그래서 “삼가 새해를 축복하옵니다. 새해의 복을 비는 인사란다” 하고,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어 대충 둘러댄 말인데, 인간만이 모두에게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무언가 희망과 축복을 이야기하는 연초라서 미래시대의 변화가 역시 화두이다. 가장 압축적인 단어들은 인공지능(AI)과 로봇이다. 새로운 인류의 출현도 관심사다. 기존에 혈연을 중심으로 한 인류 외에 인간의 세포를 의학적으로 활용하여 탄생시키는 복제인간(複製人間)과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활용한 인조인간(人造人間), 인간이 우주로 그 활동범위를 넓힐 때 드디어 보편적으로 만나게 될 외계인간(外界人間)의 출현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변화를 수용할 제도, 사회질서, 문화의 형성과 발전도 빠르게 진전될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시대에도 여전히 기존의 인간, 즉 인류가 지구상의 절대 강자일까? 인간이 절대자인 하느님을 제치고, 우주를 지배할 수는 없어도 인간이 인간 스스로 만든 인조인간, 복제인간 등 가짜인간보다는 우월해서 결국, 그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란 저마다의 감성과 사랑으로 나 아닌, 타인, 사회, 국가, 지구, 우주까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즉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 삶, 인생도 처음엔 원칙적이고 서툴다. 글을 쓸 때도 초기엔 그저 아름답게, 예쁘게만 쓰려고 했다. 시작법, 소설작법의 원칙으로, 원근법에 따라 철저히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처럼 원칙대로 잘 쓰려고만 했다. 그러나 무언가? 허전했다. 무언가? 팥소 없는 찐빵, 무엇이 빠진 듯했다. 정신? 무언가 진정성이 담긴 마음이 빠져 있었다. 그럼 무슨 정신을 넣지? 동양 사람이니 ‘동양정신?’으로서는 어떤 마음을 넣지? 측은지심(惻隱之心), 맹자의 사단설(四端說) 가운데서〈공손추편(公孫丑篇)〉에 있는 말이 와 닿았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맹자는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은 사람에게 본래 있는 것이라며 성선설(性善說)을 입증하고 있다.
그래도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마음은 없을까? 노모를 지극 정성으로 사랑하는 가난한 형제가 있었다. 험난한 삶을 살던 형이 살인을 저질렀다. 교도소로 면회 간 아우에게 형이 말했다. “아우야….” “네, 형” “난 아무리 노력해도 가망 없는 불효자로구나 그래도 너만은 어머니께 효도하고 잘해야 한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부처나 예수 같은 성인이 말씀하여도 살인자가 말하여도 진리이다. 우주 만물을 보다 큰 시야와 사랑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우주론적(宇宙論的) 우주심(宇宙心)이 지향하는 시정신(詩精神)이다. 하느님의 마음 즉 우주심은 누가 말해도 진리인 마음이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약어 AI),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 활동을 모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인공지능이라 한다. 인공지능은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고, 인공지능이 감정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simulate), 감정을 인식하고 도와주게 하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본성을 창조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제 마치 인터넷이 그랬던 것처럼 인공지능은 경제, 사회, 문화를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의 소통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 문화 자체가 바뀐다. 모든 산업 부문에도 인공지능이 연결되어 산업의 지형을 바꿀 것이다. 반면에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고용에 커다란 충격을 줄 것이다. AI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뛰어넘는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하늘 아래 지구상에서는 기존의 인간이 이 세상을 소유하고, 절대적 지배권을 여전히 행사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 역시 자연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고,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태어난 모든 생명체처럼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자연에서 모든 것을 잠시 빌려 쓰다가 떠나가는 우린 그저 나그네일 뿐이다.
그런데 하물며, 하찮은 권력도 잠시 동안 손에 들린 칼일 뿐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 되겠는가? 언젠가 술을 즐겨 마시는 AI인간들이 소폭에 취했어도 한탄하지 않도록 인간본성을 찾았으면 좋겠다.
[경력]
육정균: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아름다운 귀향」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학교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