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와의 와인 한잔

『빈 술병』

괴테와의 와인 한잔

육정균(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시인/부동산학박사)

 

코로나 속에서도 하얀 목련에 이어 벚꽃이 만발하는 봄이 오긴 왔다. T.S. 엘리엇이「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지만, 죽은 땅에서 새로이 라일락을 피워내듯 모두들 절망을 뛰어넘어 희망을 싹틔울 수 있으리라. 한숨 쉬어지는 절망 속에서도 성용(星龍), 청용(靑龍), 황용(黃龍)이 아니어도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서 우리를 희망의 나라로 인도해줄 용은 없을까? 그래서 중용(中庸)을 생각해 본다. 중용(中庸, mean)은 도덕이론에 있어 과(過) 또는 부족(不足)이 없는 행위의 준칙이다. 중국의 자사(子思)와, 그리스의 플라톤(Platon)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 의해 주장되었다. 자사는 그의 저서《중용》을 통하여 인간행위의 이상적 기준으로 중용의 원리를 체계화하여 중국과 한국에 널리 영향을 미쳤다.

그에 의하면 중(中)이란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이 꼭 알맞은 것을 말하며, 용(庸)은 언제나 변함이 없이 바른 것을 말한다. 즉, 중용이란 덮어놓고 중간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행위의 가장 참되고 불변하는 원리인 것이다. 플라톤은 인간행위의 준칙으로 절제·용기·지혜·정의의 4덕(德)을 말하고 있는데, 이 덕은 균형과 조화라는 중용의 사상 위에 세워진 것이다. 중용은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중심 개념으로 인간은 누구나 충동과 욕망이 있는데 그대로 인간생활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되며, 부족과 과도(過度)의 중용으로 조정되어야 한다고 했다. 도덕적인 덕은 이 중용이 어느 정도로 실현되는가에 따라 생겨나며, 이때의 중용은, 행동이 양 극단 사이의 중간을 취하는 것이되 수량적인 중간치가 아니라 최선성(最善性)의 위치에 서는 것을 말한다. 최근 우리 사회가 인간 모두의 충동과 욕망 그대로 인간생활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부족과 과도(過度)의 중용으로 현명하게 조정되어 왔는지 의문이다.

중용의 미덕을 잘 실천하고 학문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독일의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이다. 괴테는 그리스·로마의 고대와 동양의 유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눈을 뜨게 하고, 남과 북, 그리고 동과 서를 중개한 위대한 유럽인이었다. 그는 독일의 본질을 명백히 통찰한 식자이며 최대의 교육자이기도 했다. 또 그는 언제나 양극단의 중간에서 중용의 미덕을 발견했다.

또한, 독일은 맥주, 프랑스는 와인이라는 등식을 떠올리게 되지만 독일을 대표하는 인물 괴테는 철저한 와인 애호가였다. 맥주를 가끔 마시긴 했지만 평소에 그가 즐긴 주종은 와인이었다. 그의 와인 예찬은 특히 유명하다. “나쁜 와인을 마시면서 살기에 인생은 너무도 짧구나.” 괴테는 어머니의 난산으로 태어난 직후 핏기도 없어 생존하기도 힘들었다. 그때 따뜻한 와인으로 몸을 씻긴 뒤 어린 아기는 살아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괴테는 젊어서부터 와인을 즐겨 마셨다. 사실 그의 피 속에는 와인 유전자가 흐르고 있었다. 괴테의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게오르그 괴테는 원래 프랑스인이었다. 리용에서 양복 재단사로 일하던 중 신교도라는 이유로 추방당해 프랑크푸르트에 오게 되면서 국적을 독일로 바꿨다. 그가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재단사로 일하기 위해서는 동업조합에 가입했어야 했는데, 이를 위해 독일인 재단사인 미망인과 재혼을 하였다. 첫 번째 부인과는 사별한 처지였고, 두 번째 독일부인은 지참금으로 여관까지 갖고 들어왔다. 괴테의 할아버지가 프랑크푸르트에 와서 재단사로서 활동을 했지만 그가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포도주 거래를 통해서였다. ‘목장길(Zum Weidenhof)’이란 이름의 여관에 달린 와인가게의 성업 덕분이었다.

그의 아들이자 괴테의 아버지는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도 평생 일정한 직업 없이 괴테의 교육에 신경을 쓰면서 보낼 수 있었고, 손자인 괴테가 수십 년 동안 생활에 큰 고통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와인 덕분이었다. 괴테의 아버지는 프랑크푸르트 인근에 포도 농장을 소유하면서 종종 아들을 데리고 가서 이를 돌보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의 생가 지하실에는 원래 거대한 와인 저장고가 있었으며 각 지역에서 구입한 고급 빈티지 와인이 가득했다. 그런가 하면 괴테의 외할아버지 요한 볼프강 텍스토어는 훗날 프랑크푸르트에서 최고위 행정가 직위까지 올랐던 사람이지만 원래는 와인 사업을 하던 와인 전문가였다. 괴테의 피 속에는 친가나 외가 모두 와인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괴테의 모티브와 열정이 독일어로 ‘2W’라고 말하는 것은 이들로부터 나왔다. 그 하나는 여성적인 것(독일어로 Weiblich)이고 또 다른 하나는 와인(독일어로 Wein)이었다.

이 두 가지 W가 모티브가 되어 결국 위대한 작품(독일어로 Werk)으로 귀결되어 ‘3W’로 완성되었다. 매일 1~2병의 와인을 마셨다는 괴테는 훗날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와인에 취해) 열정을 다 소진시켜버릴 때, 내게서 그 열정은 언제나 종이 위에 머물러 있었지.”(Andere schlafen ihren Rausch aus, bei mir steht er auf dem Papier!) 여행을 좋아한 작가답게 유럽대륙의 와인을 두루 즐겼으며, 와인은 그의 작품의 동력이 되었다. 1832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하던 날에도 그가 마지막으로 주문한 것은 물과 와인 한잔이었다. 와인을 세 모금으로 나눠 마신 뒤 영원한 잠 속에 빠져든 괴테의 생과 사를 함께한 와인, 꽃매화의 붉은 입술은 진정한 그의 반려자가 아니었을까?

때론 용기를 냄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중용이다. 용기가 없으면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절제하지 못하면 남들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4월의 아름다운 중용(中庸)을 위해서 괴테와의 와인 한잔에 취해 벚꽃이 만개한 윤중로를 터벅터벅 걷고 싶다.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학교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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