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이 나이에 未者 취급을 받다니
까까머리 철없던 시절 빨리 자라서 극장도 마음대로 가고, 어른들처럼 술 담배도 마음대로 할 수 있기를 바랐다. ‘미성년 입장가’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영화도 선생님이 인솔해서 단체로 가는 영화가 아니면 극장에서 순회 선생님들에 잘못 걸리면 정학처분을 받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유명하다는 아이들 가수나 트롯가수 이름은 몰라도 당시 김승호, 허장강, 김진규, 도금봉, 황해, 최무룡 등의 배우 이름과 당시의 활략상은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의 청소년들도 자라서 노인이 되었을 때 지금의 우리처럼 당시의 배우들을 들먹이겠지.
어린 나이 때는 하루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었던 생각. 어쩌다 어른이 돼선 한 살이라도 젊게 보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겠지만 이런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세상 살다 보면 어이없을 때가 더러 있다.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할 때는 말이 나오지 않는 법이다.
3월 중순경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신촌 어느 식당에서 후배와 저녁을 먹게 되었다. 후배라고 해도 머리가 허옇게 센 60대 초로의 나이다.
안주거리를 시켜놓고, 소주 한 병을 시켰더니 종업원이 신분증을 제시하란다. 필자는 물론 그 후배 신분증도 확인하고서야 소주를 가져왔다.
우리는 순간 “코로나19 때문인가. 갑작스레 웬 신분증?”하며 서로를 쳐다보다가 훅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가 미자(未成年者를 줄여서 未者라고 함) 취급 받은 것 아냐”하며 웃었다. 이 나이에 미성년자 취급을 받은 것이 미성년처럼 젊게 보여서일까?
이유 인즉 이랬다. 식당 사장이 미성년자인줄 모르고 술을 팔았다가 영업정지를 당하고 나서 첫 출근한 알바 생에게 술을 시킨 손님은 무조건 손님들 신분증을 확인하라는 엄명을 내렸다고 했다. 하필 그런 날 그 식당에 들렀다가 미자 취급을 당한 것이다.
알바생이야 사장 지시에 따랐으니까 뭐랄 것 없고, 사장은 한번 혼이 났고, 젊은 층이 많이 오는 식당이니까 불문곡절(不問曲折)하고 신분증을 확인하고 술을 내 놓으라고 한 것이다.
그 알바 생이 조금만 융통성이 있었으면 그런 촌극은 없었겠지만 우린 순 식간에 미자취급을 받은 것이 싫지는 않았다.
각종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의 보호·구제를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1997년 7월 1일부터 시행)이 청소년보호법(靑少年保護法)이다.
이 법에서는 만 19세가 되는 해에 도달하지 못한 청소년에게 술·담배를 판매를 했을 경우 또는 유해한 업소에 출입도 못하도록 하고 있다.
술·담배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19세)를 비롯, 미국(21세), 영국(18세), 멕시코(18세), 일본(20세), 유럽은 나라마다 14-16세 등으로 달리 적용한다.
미국과 영국 등 몇몇 국가에서는 술을 판매한 업주와 함께 미성년자에게도 법적인 책임을 묻고 있어 우리와 다르다. 미국은 만 21세 미만인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경우 벌금 또는 금고형에 처하고, 영국은 18세 미만의 경우 벌금을 부과한다. 일본의 경우는 행위자인 20세 미만의 미성년자 대신 보호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고 있다.
요즘 청소년들은 과거에 비해 몸집이 좋아져 어른들과 구별이 안가는 경우도 많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청소년보호법을 악용하는 청소년들도 꽤 있는 모양이다.
주점에서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을 때 위조한 신분증을 보여주고 술을 마신 후 자기가 청소년임을 알리고 술값을 안내겠다고 주인을 협박하거나 경찰에 알려 주인이 처벌받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이 경우 술집 주인은 보통 1개월 영업정지를 당하지만 술을 마신 청소년은 처벌을 받지 않는다.
담배도 그렇다. 미성년자에게 판매했을 때는 처벌을 받지만 막상 청소년이 피우면 처벌 받는다는 규정은 없다. 어떤 지역에서는 학생들 담배심부름 해주고 용돈을 버는 노인네들도 등장하고 있다니….
지난 4·15 총선부터 투표 연령이 18세로 낮춰졌다. 18세는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성인과 다르지 않다고 판단하여 법을 바꾼 모양이다. 청소년보호법에서 보는 미성년자와는 상충된다.
청소년보호법이 처음 제정할 때와 지금의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차제에 청소년보호법을 손질하여 현실에 맞는 행정이 이루어져할 때가 됐다고 본다.
<삶과술>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