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우울한 풍정

지난 10월24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항공 ‘A380 한반도 일주 비행 항공기’에서 승객들이 한라산 백록담을 바라보고 있다.

삶과술 칼럼

코로나 시대의 우울한 풍정

임재철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울의 명동 거리-다양한 길거리 음식과 쇼핑센터가 들어서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곳이다. 이를테면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가 우리말보다 많이 들리던 거리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한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즉, 거리의 건물에는 공실이 생겨 임대딱지가 붙었고 길거리 음식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명동의 충격적인 근황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뭐니 뭐니 해도 국내·외 각 항공사들. 전 세계로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항공사들이 노선 운항을 80% 이상 줄였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몰린 국내·외 각 항공사들은 직원의 무급휴직과 임금 삭감, 반납 등 비용 절감을 통해 최대한 버티는 전략을 취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이러한 고강도 자구책에도 경영이 끝없이 악화되자 항공사들은 급기야 구조조정을 하거나 다른 사업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한산한 국제선 공항 카운터

중국 항공사들은 코로나19가 한창 심각했던 지난 2월 운항 차질로 370억 위안(6조 3천억 원)의 매출 하락과 100억 위안(1조 7천억 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중국에서 사실상 코로나19와의 전쟁 승리를 선포하면서 확산 공포로 급감했던 중국 국내선 항공기 운항이 대부분 정상화되었다. 그렇지만 항공편 운항이 많이 늘어나는 데 비해 여객 수요가 낮아 각 메이저 항공사들은 가격을 대폭 낮추는 작전을 취하고 있다. 예컨대 준야오항공은 평일 상하이에서 쓰촨 성 청두까지 3시간 30분 거리의 편도 항공권을 단돈 140위안(2만 4천 원)에 판매하는 등 중국 항공사들의 항공권 가격 인하 전쟁이 한창 치열하다는 소식이다.

홍콩 최대 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도 코로나19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승객 수가 전보다 50% 급감하자 캐세이퍼시픽은 전 임직원에게 3주 무급 휴가를 실시하는 자구책을 강구하는 한편, 2018년부터 재정난을 겪어온 홍콩 3위 항공사 홍콩 항공도 그 여파를 비껴가지 못해 항공편 운항을 대폭 줄이고 급기야 직원 400명을 감원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이러한 자구책에도 경영난이 계속해서 악화되자 캐세이퍼시픽 항공은 급기야 홍콩국제공항 인근 지역에 기내식을 배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른바 공항 지역에서 일하면서 도시락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기내식을 맛볼 수 있는 테이크아웃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퇴직한 보잉 747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쇼핑몰 이용자들이 항공사 마일리지를 이용해 온라인 쇼핑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령 애플 맥북은 22만 2,530마일리지에 구매할 수 있는 식이다.

태국의 대표 항공사인 타이항공도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전체 직원의 30%가량인 6천명 이상이 해고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자 본사는 본격적인 부업에 나서고 있다.

지난9월부터 타이 항공은 비행기 좌석으로 꾸며진 특별한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항공기 기내식을 만들었던 셰프가 직접 요리를 만들어 제공하는 영업을 시작해 이곳에서 고객들은 객실 승무원의 서비스를 받으며, 비즈니스 석과 이코노미 석으로 분리된 구역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타이 항공은 본사 건물 앞 등 5곳에 튀김 기구까지 완비해 시민들에게 튀김 도넛을 판매하고 있고, 또 일부 부유층을 겨냥한 기내식 배달 서비스까지 제공해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싱가포르 항공은 지난9월말 장거리용 대형 여객기인 에어버스 A380을 임시 식당으로 꾸며 일등석과 비즈니스 석에서 제공되는 기내식과 같은 음식을 즐기며 모니터를 통해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기내식을 자택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일본 전일본공수(ANA)는 지난 8월 하와이 노선에 투입하는 A380을 타고 알로하셔츠를 입은 승무원들과 일본 열도를 도는 상품을 기획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정원의 150배가 넘는 사람들이 신청해 추첨으로 탑승객을 선정해 비행했다.

지속되는 코로나 여파로 이들 항공사들은 항공권 인하 전략뿐만 아니라 음식 배달, 레스토랑 오픈 등 기타 사업을 병행하면서 수익 창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국내 항공업계는 어떨까.

지난 9월 24일과 25일 오전 11시 인천국제공항을 이륙, 강릉~김해~제주 상공을 한 바퀴 돈 뒤 오후 1시20분 인천공항에 착륙하는, 말하자면 아시아나항공의 A380 여객기를 이용해 진행하는 ‘목적지 없는 비행(flight to nowhere)’ 상품이 선보였다. 비즈니스스위트 30만원, 비즈니스 석 25만원으로 요금이 만만치 않았지만 예약 당일 탑승권이 모두 팔렸다.

아시아나가 이 상품을 내놓았던 것은 코로나로 운항을 못해 세워두고 있는 항공기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A380은 ‘하늘 위의 호텔’로 불리지만 거대한 덩치 탓에 국내선에는 투입하지 않는 기종이다.

올 들어 일본과 미국 유럽 등 주요 취항노선은 코로나로 운항이 대폭 감소했다. 거기에다 항공안전법에 따르면 조종사가 특정 기종 자격을 유지하려면 90일 안에 3회 이상 이착륙을 해야 한다는 룰이 있어 아시아나는 어차피 빈 채로 띄워야 할 여객기를 이 같은 체험 상품으로 활용한 셈이다. 뜨거운 반응에 아시아나는 2차로 지난달 31일, 이번 달 1일에도 출발하는 상품도 선보였다

이 상품은 쉽게 이용하기 힘든 비즈니스 석을 타고 해외여행 기분이라도 내려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더욱 난항인 저비용항공사(LCC)들도 비슷한 상품을 잇달아 선보였다. 제주항공은 지난9월 23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한반도를 한 바퀴 도는 상품을 내놨다. 에어부산 역시 김해공항과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상품을 마련하여 기내식으로는 실제 승무원들이 먹는 크루밀을 제공하고, 항공일지를 작성할 때 사용하는 로그북 등 다양한 기념품도 주었다.

그런가하면 항공사들의 잇단 상품과 때를 같이해 하나투어는 인천공항 근처 특급호텔1박을 포함하는 패키지 상품을 내놓았다. 대기 예약만 준비한 물량의 4배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세계여행업계가 입은 피해는 약 3200억 달러(약 38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 또한 올해 초부터 7월까지 관광분야 피해액이 5조9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중 여행업의 피해액만 4조463억 원인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여행업계는 줄 폐업으로 이어졌고 일제히 적자로 돌아섰다. 즉, 여행산업은 ‘올 스톱’된 상황이다. 여행사들은 겨우 간판을 유지하고 있고 직원들은 이미 무급휴직에 들어간 상태다. 말하자면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지금처럼 해외여행 자체가 전면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현재로선 언제 회복될지 전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코로나 시대의 관광산업 전반에 걸친 우울한 풍경과 풍정이다. 항공여행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히 악화된 항공여행업계 상황은 세계적 재앙이라 하겠다.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한 국내외 항공여행업계, 그리고 여행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사태가 정상화되어 자유롭게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여행할 날이 새삼스럽게 그리운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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