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⑫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 신화 이야기⑫

 

“명분은 도덕적으로 마땅히 지켜야 하는 도리이며, 실리는 이로써 얻는 실제적인 이익입니다.” “명분과 실리,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대가 내 말을 따른다면 마땅히 지켜야 하는 도리도 지키는 셈이 되고, 일손을 얻게 되니 실제적인 이익도 보는 셈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구하려면, 무한지옥인 타르타로스에 내려가야 하는데, 저는 어떻게 내려가야 하는지 모릅니다. 세상 이치를 주관하시는 여신께서는, 한 수 가르쳐 주시는 김에 좀 더 가르쳐 주십시오.” “타르타로스는 대지의 뱃속에 있습니다. 대지이자 대지의 여신이 누구입니까?” 바로 그대의 할머니 여신 가이아입니다. 무한지옥 타르타로스는 바로 가이아 여신의 뱃속에 있습니다. 가이아 여신이라면 거기에 이르는 길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우스는 할머니 가이아 여신에게 달려갔다. 가이아 여신은 무한지옥으로 내려가는 길을 설명했다. “깊기로 소문난 캄페 골짜기를 아느냐? 그 골짜기에는 아래로 파인 동굴이 있다. 무한지옥은 그 캄페 골짜기에서 모루가 아흐레 동안 떨어질 만한 깊이에 있다.”

모루가 무엇인가? 대장장이들이 쓰는 망치받이다. 대장장이들은 불에 달군 쇠붙이를 이 모루에다 얹어 놓고 망치로 두들겨 모양을 만든다. 이 모루, 즉 망치받이는 무쇠 덩어리여서 매우 무겁다. 이 무거운 모루가 아흐레 동안이나 계속해서 떨어져야 무한지옥에 이른다고 하니, 얼마나 깊은 곳에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제우스는 가이아가 시키는 대로 외눈박이 거인 3형제와 백수 거인 3형제를 구해 내어 올림포스 산으로 돌아왔다. 저 무한지옥에서 이승으로 올라오는 데는, 얼마나 걸렸을까? 모루가 아흐레 동안 떨어져야 닿을 만큼 깊은 곳이었으니, 아마 몇 달을 올라와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대가 어디인가? 신들이 놀던 신화의 세상이 아닌가? 신화는 이런 것을 수학적으로 셈하지 않는다. 셈할 필요도 없다. 티탄에 속하는 외눈박이 거인과 백수 거인은 자유자재로 하늘을 난다. 제우스 또한 공간 이동이 자유롭다. 만화의 세계가 그렇듯이, 신화의 세계에서는 안 되는 일이 없다.

올림포스의 지배자 제우스는, 이들을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불로초, 불사약과 다를 것이 없는 신들의 음식, 암브로시아와 넥타르가 넉넉하게 차려졌다. 무한지옥에서 올라온 거인들은,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배불리 먹고 힘을 차렸다. 세상의 이치를 두루 헤아리는, 테미스 여신이 그 자리에서 말했다.

“나는 이치를 주관하는 여신입니다. 이제부터 티탄들에게 맞서 싸울 방책을 일러 드리지요. 이 전쟁에서 이기자면 제우스 형제들에게는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손재간이 좋은 외눈박이 거인 3형제는 제우스 형제들에게 무기를 만들어 드리세요. 티탄을 물리치면, 앞으로는 제우스 형제들이 이 세상을 다스려야 합니다. 나중 났으나 먼저 자라 맏이가 된 제우스신은 장차 신들의 왕이 되어, 이 높디높은 올림포스 산에서 이 세계를 다스리게 주신이 되는 것입니다.

포세이돈이여, 그대는 3형제 중 중간입니다. 그대가 중간에 있는 까닭을 알겠지요? 올림포스는 하늘의 궁전이니 마땅히 맏이인 제우스가 다스려야 합니다. 저승은 땅 밑에 있으니 마땅히 막내인 하데스가 다스려야 합니다. 그 중간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바다입니다. 포세이돈, 그대는 바다를 다스리세요. 이것은 내가 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 이제 손재간 좋은, 티탄인 외눈박이 거인 3형제는 이들에게 무기를 만들어 드리되, 싸울 때도 쓸 수 있고 전쟁 뒤에도 쓸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 드리세요.”

외눈박이 3형제는 이렇게 해서 제우스 형제들에게, 무기를 만들어 주게 된다. 신들의 새로운 왕인 제우스는 ‘광명’이라는 뜻이다. 외눈박이 3형제는 제우스에게, 던지기만 하면 이 세상에 태우지 못할 것이 없는 ‘불벼락’을 만들어 주었다. 제우스는 바로 이 ‘불벼락’으로 올림포스는 물론이고, 인간 세상까지 다스리게 된다. 벼락은 제우스의 무기인 셈이다. 신에 반하는 행위 모두는 이 ‘불벼락’으로 심판을 받는다.

외눈박이 3형제가 포세이돈에게 만들어 준 것은 ‘트라이아나(Triaina)’, 또는 ‘트라이던트(Trident)’라는 삼지창의 무기다. ‘tri-’는 ‘셋’이라는 뜻이며 ‘-dent’는 ‘이빨’이라는 뜻이다. ‘트라이던트’는 이빨이 3개 달린 창, 말하자면 음식 먹을 때 쓰는 포크와 비슷한 ‘삼지창’이다. 삼지창이 주는 의미만큼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신이다.

그러나 여느 ‘삼지창’과는 다르다. 이 ‘삼지창’만 있으면 구름과 비와 바람을 마음대로 부를 수 있다. 파도를 일으키는 것도 바로 이 포세이돈의 ‘삼지창’이다. 포세이돈은 어디를 가든 늘 이 ‘삼지창’을 가지고 다닌다.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오늘날의 우리나라 풍어 굿판을 유심히 보라. 그리스의 무당이 아닌 한국의 무당인데도 ‘삼지창’을 하나 들고 있다.

막내이자 장차 저승의 신이 될 하데스를 위해 외눈박이 거인들이 만들어 준 것은 ‘퀴네에(Kynee)’라는 투구다. 이것은 여느 투구와는 다르다. 누구든 이 투구를 쓰기만 하면 살아 있는 것들의 눈에는 그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 하데스의 이름은 ‘Haides’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이 말은 ‘보이지 않는 자’ 또는 ‘보이지 않게 하는 자’라는 뜻이다. 저승의 신 하데스는 늘 이 투구를 쓰고 다니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세상을 떠나는 영혼도 이 투구를 쓰고 떠나기 때문에 죽음도 영혼도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큰 싸움을 말할 때 잘 쓰이는 말 중에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한판 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과 땅의 운명이 걸린 한판 싸움이라는 뜻이다. 티탄들과 올림포스 신들의 싸움을 표현하는데 이 ‘건곤일척’이라는 말보다 더 잘 어울리는 말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 건곤일척의 한판 싸움은 의외로 간단하게 끝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차피 이 싸움은 제우스의 손을 들어 줌으로써 세대교체를 기정사실화하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올림포스를 공격하기 위해 오르튀스산을 내려오는 티탄들에게 연거푸 불벼락을 던졌다. 티탄들은 산꼭대기로 잠시 몸을 피했다. 그러나 이때, 그 산 위의 하늘에는 백수 거인 3형제가,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팔과 손이 100개씩 달려 있는 백수 거인 3형제가 바윗덩어리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으니, 대체 몇 개나 들고 기다리고 있었겠는가? 백수 거인들은 산꼭대기로 몸을 피한 티탄들에게, 바윗덩어리를 떨어뜨렸다. 우박처럼 떨어진 바윗덩어리는 티탄 무리를 산 채로 묻어 버렸다.

곧 저승의 신이 될 하데스가 바윗덩어리를 치우고 이들을 꺼냈다. 하데스는 곧 주석 사슬로 이들을 묶어, 지옥의 한 모퉁이인 무한지옥 타르타로스에 가두어 버렸다. 제우스는 이렇게 가두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아우 포세이돈을 불러 저승의 방비를 단단히 하라고 일렀다. 포세이돈은 강을 끌어들여 저승 주위를 흐르게 했다. 죽어서 저승 가는 것을 강 건너는 일에다 견주는 것은 고대인들이 저승 주위로 강이 흐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티탄과의 싸움은 이렇게 의외로 싱겁게 끝난다. 올림포스 신들과 티탄 신들의 싸움을 ‘Titanomachia’라고 하는데, 이는 ‘티탄들과의 싸움’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제우스가 아버지 크로노스로 하여금 형제들을 토하게 하고부터 ‘티타노마키아’가 끝나기까지는 아주 기가긴 세월이 흘렀다. 바야흐로 올림포스 산에는 신들이 들끓었고, 산 아래 마을에는 사람들이 들끓었다.

유명한 퀴클롭스는 <오디세이아>에 등장한 포세이돈의 아들 폴리페모스(Polyphemos)이다. 퀴클롭스들의 비사회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오디세우스 일행을 잡아먹다 오디세우스의 책략에 낚여 결국 실패하지만, 승리에 도취해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도망가는 오디세우스에게 저주를 내린다.

폴리페모스가 제우스를 들먹이며 자신들을 죽이지 말고 손님으로 대우 해 줄 것을 요구하는 오디세우스에게 ‘우리는 제우스를 포함한 신들보다 강하기 때문에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지지 않은 이상 제우스가 두려워서 너희들을 살려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면박을 주는 걸 살펴보면, 포세이돈의 아들인 것만 믿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폴리페모스의 오만방자함을 고려하더라도 이 시대에 남아있는 퀴클로페스(Kyklopes)들의 힘 자체는 그들의 조상들인 최초의 퀴클로페스 삼형제들 못지않게 강하긴 강했던 모양이다.

티탄족들과 올림포스 신들과의 ‘티타노마키아(Titanomachia)’ 전쟁은 10년 만에 제우스의 승리로 끝남으로써, 올림포스 신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전쟁에서 진 크로노스를 위시한 티탄들은 땅속 깊은 곳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티탄 가운데 ‘아틀라스(Atlas)’ 만은 제우스로부터 영원히 하늘을 떠받치고 있어야 한다는 무서운 벌을 받게 되었다. 아틀라스는 ‘티타노마키아’전쟁에서 형제 메노이티오스와 함께 티탄 편에 서서 싸웠다. 티탄 전쟁이 끝나고 나서 그는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았다. 그는 세상의 서쪽 끝에 있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티타노마키아에서 패한 티탄들이 대부분 타르타로스(Tartaros)에 갇히고 유독 아틀란스는 제우스가 “두 어깨에 천공(우라노스)을 영구토록 지고 있으라” 명한다.

어느 날 제우스의 아들인 페르세우스가 그를 찾아왔다. 그는 메두사를 죽이고 나서 돌아가는 중이었는데, 그는 아틀라스에게 잠자리를 요청했다. 그러나 아틀라스는 이를 거절했고 화가 난 페르세우스는 그에게 메두사의 머리를 보여주었다. 메두사의 머리를 본 아틀라스는 그대로 돌로 변했고 이것이 아틀라스산맥이라고 한다.

제우스의 다른 아들인 헤라클레스는 12과업을 실행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헤스페리데스의 황금 사과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헤라클레스는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는 독수리를 죽여준 보답으로 황금 사과를 가져오는 법을 전해 듣게 된다. 그렇게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를 찾아가 자신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을 테니 황금 사과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아틀라스는 헤스페리데스의 아버지였기에 황금 사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아틀라스는 다시는 하늘을 떠받치기 싫었는데 헤라클레스는 꾀를 내어 잠시 동안만 대신 하늘을 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아틀라스는 그의 말대로 사과를 내려놓고 다시 하늘을 들었고 그 사이에 헤라클레스는 사과를 가지고 가버린다. 이 이야기는 헤라클레스의 조상인 페르세우스의 신화에서 아틀라스가 돌로 변했다는 이야기와는 모순된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본인이 직접 황금 사과를 지키는 용 라돈을 죽이고 사과를 따온 곳으로 전하고 있다.

새로운 승리자 제우스는 티탄신들을 땅속 깊은 곳인 타르타로스에 가두었다. 이러한 제우스의 처리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긴 가이아는 기간테스(Gigantes, Giants)들을 낳아 제우스에게 복수하려 하였다.

기간테스(Gigantes, Giants)는 ‘가이아의 자식’이란 뜻으로 ‘기가스(Gigas)’의 복수형이다. 영어발음은 ‘자이언츠(Giant)’이다. 크로노스가 천공신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잘랐을 때 흘러나온 피에서 태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불사의 몸은 아니지만 엄청난 거인이다.

 

In the Gigantomachy from a 1st-century AD frieze in the agora of Aphrodisias

올림포스 신들과의 싸움을 ‘기간토마키아(Gigantomachia, 거인들의 싸움)’라고 부른다. 가이아의 후원을 받은 지신(地神)들답게 주로 산과 바위를 무기로 집어 던졌다. 하지만 인간 헤라클레스의 도움을 받는 올림포스 신들의 승리로 끝난다. 제우스가 자신의 아버지인 크로노스와 그의 형제들인 티탄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지배하게 된 세계는 더 이상 카오스, 즉 혼돈의 세계가 아니었다. 하늘과 땅, 강과 바다가 모두 제자리를 잡은 안정된 세계, 즉 코스모스였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 필자 남태우 교수 경력:▴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오픈엑세스포럼회장▴한국 문헌정보학교수협의회장▴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한국도서관협회장▴중앙대학교 명예교수(현재)▴현재 건전한 음주문화 선도자로 활동하고 있음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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