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음주문화

조성기(한국주류산업협회 연구본부장/경제학 박사)

 

인도에 얼마 전 한국의 소주가 수출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그 큰 시장에 한국 술이 들어간다는 소식에 한국의 주류업계는 인도대륙이 과연 지속적인 공략대상일까를 궁금해 하고 있다. 인도의 음주문화는 단순히 음주문화 자체의 연구를 넘어 한국주류의 새 시장 개척 가능성 여부에 대한 궁금증에서도 연구대상이 된다.

그 더운 나라에서 무슨 술을 마실 수 있을까? 과연 얼마나 그들은 마시고 있을까? 음주량과 음주문화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왜 그런가? 신비로운 나라로 여겨지는 인도의 음주문화에 대해 정리하는 것은 다양한 의미가 있다.

 

◈현대화와 인도인의 음주

 

모든 문화는 주류소비를 선호하거나 배타적이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 소위 신의 나라라고 하는 인도는 어떠할까?

어느 나라든지 이슬람교도나 금욕적인 기독교도들은 음주를 금지한다. 영어권이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사람들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과 술 취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즉 이중적이다.

유태인들이나 이탈리아 사람들은 과음에 대해 비난한다. 우리나라나 프랑스, 일본 등은 지나치게 허용 적이며, 만취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인도의 음주문화를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인도에 없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주론 자와 허용론 자가 공존하는 곳이 인도다.

1947년 독립 이후 인도는 사회,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많이 변했다. 음주문화도 변했다. 독립 후 페이비언 사회주의가 도입되었고 마르크스식 사회주의가 주축이 되었다. 정부는 온정주의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국가개발 5개년의 계획, 산업화와 농업발전이 이루어졌다. 1970년대에는 식량생산량이 3배나 뛰어 자급자족 수준이 되었다. 산업 인프라도 다원화 되었다. 이에 내부갈등이 불거졌다.

인도사회는 매우 다양한 집단이나 관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계급변화에 유동성이 늘어가자 하층 카스트의 사람들은 상층 카스트의 규범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즉, 카스트 간의 동질화가 점진적으로 진전됨에 따라 도시거주 불가촉천민들의 현대화 현상이 나타났다. 서구식 생활양식이 보급되었고 상품구입과 소비증대가 있었다.

그들의 근본적인 문화유산은 흔들려 버린 것은 아니지만 인도사회의 갈등과 변화는 알코올, 마약 등의 사용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농업발전 지역에서는 술을 마실 수 있으므로 마리화나나 아편을 덜 사용하였다. 가정에서 술을 제조하고, 상업용 주류업체도 생겼다. 독한 증류주가 생산되자 새로운 소비자층을 만들어 졌다. 예전에 술을 안 마시던 도시민들이 유혹의 대상이 되었다. 소득수준이 증가는 술 소비량의 증가로 나타났다.

술은 1940년대 이래 변화의 가장 중심인자가 되었다. 그 현상은 1970년 이후에 더욱 더 두드러졌다. 인도의 전체 알코올 생산량 중에 마시는 술의 비중이 1950년대에는 2.1% 정도였다. 1980년대 말이 되자 42.1%까지 올라갔다. 이때 인도의 국민의회 파는 지지 세력을 잃기 시작했다. 인도의 정치변화가 술소비량의 증가와 무슨 관계일까? 인도의 음주문화는 정치와의 상관성도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1960년대 중반에 인도 연방정부에서는 알코올 정책을 검토했다. 인도헌법에 ‘주정부는 국민의 영양 상태와 생활수준, 공중보건의 향상을 중요시해야 한다. 주정부에서는 의학적인 목적을 예외로 건강을 유해하게 하는 술과 약물들의 소비를 금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는 문구가 그 때 들어갔다. 술 소비가 늘어났다는 증거다.

 

◈인도의 음주역사

 

인도사 속에서 술에 대한 입장은 힌두이즘, 이슬람, 영국 지배 등을 고루 검토해야 알 수 있다. 힌두교에서는 항상 금주의 입장을 취했다. 불교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 입장은 종교설화 ‘뿌라나(Puranas)’와 ‘경전(Suturas)’들에 적혀 있다. ‘뿌라나’에서는 우주의 창조와 파괴, 신들과 성인들의 계보, 인도인의 시조와 왕조들의 역사 등의 내용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금주의 입장이라고 해서 술의 역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도신화에서 술이 신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적혀있다. 인도에서 술과 물은 근원이 같았다. 소마(Soma)와 수라(Sura)는 기원전 2000년경의 인도고대사에 등장하는 음료다. 우리는 우리의 ‘술’과 발음이 비슷한 ‘수라’가 인도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소마’를 마시면 행복이 오고, 깨어나며, 평온하게 되며, 자극되었다고 한다. 소마의 원료는 버섯이었는데, 아주 매우 비쌌다고 한다. ‘수라’는 쌀, 당밀, 꽃 등으로 생산한 강한 발효주였다. 주로 크샤트리아 계급의 전사들이 전투 중 마셨다. 인도인들은 고대로부터 술을 마시고 취했던 것이다.

인도의 서사시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에도 음주에 대한 기록이 있다. 라마야나에서 음주는 흑백 또는 선악으로 가르는 기준으로 묘사되고 있다. 나쁜 사람들은 술과 고기를 먹고, 좋은 사람들은 금욕적인 채식주의자들로 묘사된다. ‘마하바라타’는 북쪽의 땅을 놓고 싸우는 이야기이다. 취중에 일으킨 전쟁으로 왕조가 붕괴된다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만취는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인식을 인도고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베다 이후의 시대에도 ‘수라’는 전사계급에게 허용되었다. 술은 통치자들이나 궁정 속의 신하들의 전유물이었다. 기원전 9세기에서 4세기에 해당하는 슈트라(Sutra)시대에는 특별한 손님에게 독한 알코올음료를 대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술은 고대에 일반적 음료가 아니라 의식의 대상이었다. 음주가 법적으로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취한다는 자체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금주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브라만들에게는 금주, 크샤트리아, 바이시아, 수드라와 같은 다른 카스트들에게는 술이 허용되었다.

불교는 승려들과 사원에서 금주를 계율로 하였다. 기원전 185년에 아쇼까왕은 불교를 확장시켰고, 금주가 기본적인 교리 중 하나가 되었다. 이미 그 시대가 되면 술의 사회문제 중 하나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유추해 볼 수 있다.

8세기에서 12세기까지는 힌두교의 시대였다. 정통 베다의 관점과 그 이후에 발흥한 불교와 자이나교 등이 조화를 이루는 시기였다. 종교적 종합화 시대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인도사회의 상당한 부분에서 술 소비가 일반화된다. 당시 인도의 가정에서 술을 만들었는데 주로 알코올 농도가 낮은 맥주였다. 그 시대의 이야기책 수크란티사라(Sukrantisara)에는 발효기술이 자세히 적혀있다. 전사 집단의 음주는 물론 축제시 여성음주도 허용되었다. 인도에서 음주는 처음에는 특정집단의 전유물이었다가 일반인들에게 점차 확대되어 간 것이다.

그 후 인도에 이슬람교국가가 설립되었다. 인도에 정착하여 제국을 건설한 종족은 무굴족이었다. 무굴 인도에서는 페르시아어가 궁중의 문자로 사용되었고, 엘리트들의 언어였다. 술에 대한 무굴왕조의 입장은 매우 엄격했지만 차츰 와인은 허용하게 되었다. 코란에서 금주를 지지했지만 인도에 오자 현실은 어느 정도 달라졌다. 그렇지만 이슬람교와 힌두교도들은 일반적으로 금주를 선호하는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영국의 지배와 인도의 독립

 

인도에서 술문화가 바꾼 것은 영국의 식민통치 시대였다. 식민지 정부는 인도에 주류업체를 설립했다. 인도국민의회는 정부가 술을 통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영국은 ‘인도절제위원회’를 1905년에 설치하고 주세를 부과했다. 표면적으로는 가격 때문에 음주를 꺼리도록 하자는 것이었지만 식민통치의 재원이 조달된 것이었다. 독립 이후에도 주세정책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인도내의 여러 세력이 독립투쟁에 참여했다. 인도국민의회는 금주를 지지하였다. 금주 운동은 20세기 초 해외 교육을 받은 지도자들이 지지했다. 그들은 서구의 절주나 금주 활동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낮은 카스트은사람들는 음주가 허용된 계급이었고, 여성은 자유를 찾는 투쟁과 무관한 사람들이었었지만 지도층에 의해 계획적으로 금주 및 독립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이전에 인도에서는 절주운동이 없었다. 절주운동이 독립 투쟁의 한 부분으로서 역할을 했다. 그 결과 금주를 헌법에 구체화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인도는 1차 세계대전에 독립을 담보하기 위해 참전하였다. 전쟁은 많은 인도인들을 술 마시게 했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는 병사들이 음주습관도 가지고 돌아오게 된 것이다. 군인 특별상점에서 현역병사에게나 은퇴한 병사에게 정부보조가격으로 술을 팔았고, 지금도 그러한 관습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음주규범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인도행정청(Indian Civil Service)’에 취직한 서구식 교육받은 상층 카스트의 인도인들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 쯤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이 때 알코올은 통치자들과 동일시되는 신분의 상징으로 둔갑했다. 베다시대에 궁정에서 사용되는 술이 이제 지배자들과 그들과 교류하는 사람들의 상징물로 변해버린 것이다. 영국지배의 상징인 행정청의 관리들,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 영국에 유학한 왕족들 등 인도인들은 전시 중에나 여가를 즐기는 시간에 술을 마시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때에 인도군은 아시아나 유럽에서 전쟁을 했다. 거기에서 인도병사들은 알코올을 많이 접했고 습관적으로 음주를 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이 인도인들의 음주문화를 완전히 바꾼 것이다. 그러던 중 1935년에 지방자치가 허용되었다.

그런데도 정치적인 대화가 계속 진행되었고, 국회는 연방의 모든 주에서 금주를 입법하였다. 독립 후 인도에서는 헌법에 금주조항을 설치하도록 시도하였다. 알코올에 대한 정책은 지방정부의 일로 되었고 각 주정부가 자신들의 법을 만들었다. 인도국민의회는 독립이후 즉시 연방과 각 지방에서 집권을 했다. 이제 연방과 주정부는 술 문제에 대해서도 갈등이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헌법의 다른 데서 발생했다. 1951년까지 뭄바이 정부와 마드라스 정부는 금주조항을 채택했다. 그런데 다른 주 의회에서도 알코올의 생산이나 소비가 별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법제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연방정부의 생각과 달리 일부 주를 제외하고는 실제로 금주조항을 법으로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인도인의 음주 모습, 음주문화

 

우리나라와 달리 인도는 알코올을 사회적 대화나 식사자리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다. 종교에서나 의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인도에는 음주를 하는 정해진 형태나 방식, 음주에 대한 태도 등이 없다. 즉 대체로 받아들여지는 음주규범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인도사회는 문화적 패턴과 이데올로기적 패턴이 다중 적이다.

유일하게 음주패턴이 정형화 되어 보이는 곳은 원주민 거주지다. 전체 인구의 8.8%정도인 원주민들은 북동지방, 북중부지방, 남부의 도서지방에 흩어져 살고 있다. 원주민들은 알코올을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로 생각하고 신에게 바쳐져야 한다고 여긴다. 본도족(Bondo)과 무리아족(Muria)의 사람들은 술을 대지의 우유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음주는 의무이자 기쁨이다.

또한 원주민들은 술이 마술로부터 풀어주는 해독제로 생각한다. 알코올이 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주고, 적을 공격하기도 하고 질병을 막아주기도 한다. 술은 권위이자 신성한 것이다. 중부지방 비샤까파트남 (Vishakapatnam)의 콘다도라 사람들(Kodadoras)에게 술은 협상, 결혼의례 등 중요한 일에 필요한 것이다. 코야족 사람들(Koryas)도 결혼식에서 팜열매 술인 토디(toddy)로 축복을 한다. 이혼, 재혼, 죽음, 갈등해소, 각종 회의 등에서 술을 마신다.

술은 분쟁을 해결하고, 우정을 다시 살리는 일을 했다. 이는 첸추족, 야나디스 프라단족, 곤드족, 빌족, 오라온족 등의 원주민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도에서도 술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중요한 구실을 했다. 원주민들에게 습관성 음주벽이 있었다는 정보도 있다. 첸츄족의 사내가 술을 탐닉하다가 술이 없어지자 딸을 팔아서 마셨다는 것이다.

원주민 집단은 불법 증류주도 마셔왔다. 맥주나 와인은 알코올 농도가 3-5% 정도다. 그런데 북동부 지방에서는 70% 증류주를 만들어 마신다. 마다야 지방이나 오릿사 사람들은 6-10%정도의 술을 마신다. 인도인들의 술은 단백질, 칼슘, 비타민, 철분 등의 함유량이 제법 높다.

의식으로서의 음주는 힌두교의 종파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탄트라(Tantric) 종파에서 관능적 탐닉행위 때 음주한다. 샥티(Shakti) 종파는 여신들에게 술을 바치고, 의식집행 자들도 마신다. 이들 힌두교도들은 술이 무당들에게 필요한 물질을 주고 삶을 통제해 준다고 믿는다. 그들은 술을 신부나 의식 집행자들의 의식수준을 변화시키도록 하는 물질로 이해하였다.

독립 이후 인도에서는 알코올음료의 법적 인정 폭이 점점 커져왔다. 그래도 ‘인도의 음주문화는 이런 것이다’라고 일반화 하기에는 적은 지역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므로 인도에서 술이 일반화되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1970년대 중반에 음주인구가 많이 늘어났다. 1980년대 이후 인도의 서부와 남부지방인 마하라스트라, 고아, 께랄라, 카르나타카에서 통제가 느슨해지자 바(Bar)나 팝(Pub)이 생겨났다. 인도인들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아지역에는 알코올과 마약이 공공연히 거래된다. 유럽인들이 선호하는 곳도 몇 군데 있다고 한다. 인도에 술집이 전국적으로 일반화된 것은 아니지만 음주규범이 변화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인도인의 음주패턴

 

인도인들의 음주패턴은 인도문화의 복잡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음주문화가 없다고도 하고, 있다고도 한다. 금주가 헌법에 있지만 지방에 가면 없는 곳이 많다. 힌두교도 중 금주하는 사람들과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뉜다. 그 이유는 인도인들은 사는 지역, 지방과 도시의 여부, 사회경제적 지위의 차이, 종교적 신념의 차이 등에 따라 모두 음주패턴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의 음주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별 격차는 크다. 남자 대학생은 21.7%, 여대생은 2.6%가 술을 마신다. 물론 그 수는 늘고 있다. 청소년기를 벗어나면 음주자도 대폭 는다. 기숙사 여부, 출신지역, 사용 언어, 종교, 카스트, 가족구조, 1인당 소득 수준 등도 음주량에 차이를 주는 요인들이다.

힌두교도들도 음주에 허용 적으로 변하고 있다. 자이나교, 불교, 이슬람교 등과는 다른 양상이다. 친구, 친척, 경기, 소득, 술집 접근성, 지역의 음주행태 등이 음주량을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반 대중 보다 산업노동자, 농업자, 원주민들의 술 소비가 많다. 또한 지역마다 선호하는 술도 다르다. 가정에서 만든 도수가 낮은 술은 원주민들이나 아샘지방 사람들이 선호하고 있다.

도시거주자나 산업노동자들은 위스키, 브랜디, 기타 제조주 등 증류주를 선호한다. 도시 음주가 서구식으로 변했고, 도농 간 음주유형이 비슷해지고 있다. 술의 생산도 전국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도인의 머릿속에는 아직은 금주가 우선이다.

인도는 나름대로의 알코올 소비패턴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나 일본, 태국 등과는 다른 음주문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술생산이나 음주문화 형성을 민간업자들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생각을 정부 당국자들이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인도는 주류산업의 천국이다. 워낙 방대한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젊은 층과 도시지역에서 증류주를 선호하고, 미국식 바나 영국식 팝을 중심으로 음주가 늘고 있다. 술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가 변화하고 있다. 정부도 세계화 체제에서 과거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다. 인도의 음주문화도 크게 변화할 것이 예상된다.

 

◈급변하고 있는 인도의 음주문화

 

인도에서도 음주문화는 변할 것이다. 음주상황이 늘어나는 것, 음주에 대한 인식, 지식, 신념, 태도, 가족제도, 동료집단, 직장의 분위기 등이 인도인의 음주를 결정지을 것이다. 특히 청소년과 청년층들의 음주가 변할 것이다. 형, 친척, 친구, 동료 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인도도 마찬가지다. 인도에서도 또래압력 모델과 역할모델은 유효하다.

인도에서도 어린이들이 사회화 될 때 가족의 영향이 중요하다. 아버지나 형제의 음주가 어린이에게 중요하다. 가족구성원의 음주나 흡연은 학생의 알코올 음용패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도 청소년들도 축제나 댄스파티에 가기 시작할 때 술을 마신다. 기숙사, 휴게실, 친구의 집 등에서 친구와 사귀게 된다. 직장 분위기도 큰 역할을 한다. 작업의 성격, 동료직원의 압력, 노동조합과 관리자들이 음주를 부추긴다. 더욱이 음주는 인도의 직장인들에게도 피로회복의 상징물이다.

어떤 카스트에 속해있는가의 처지도 음주패턴에 영향을 미친다. 낮은 카스트에게는 과거에 술에 대한 허용수준이 낮았다. 하지만 정부에서 허용 적이 되자 노동자나 낮은 사회집단의 술소비가 늘었다.

 

◈인도의 음주 찬반논쟁

 

음주량이 증가됨에 따라 건강, 범죄, 사회생활의 붕괴, 교통사고의 증가, 과음, 자살 등의 부정적인 통계가 늘었다. 정책결정자들도 예상했던 일이다. 도시의 교육받은 사람들, 지방의 부유층, 중산층들에게서 음주가 늘고, 돗수높은 술 소비가 증가하였다.

인도는 산업화가 진전되었지만 농업부문도 크다. 그리고 아직도 인구 40%가 생계유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농촌지역의 술제조도 여전하다. 영양분의 섭취, 여가와 연회 등 목적으로 4-5%의 술을 만든다.

그렇지만 공장제조 술이 늘었고, 빈곤에서 벗어난 농부 수가 늘자, 술 소비도 늘고 있다. 인도인들의 주량은 국제 보건통계로 잡히는 것보다 2배 쯤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니 수출국들에게 인도시장은 매우 매력적이다.

예를 들어 펀잡주에서는 농업기술, 생산방법, 종 개선, 녹색혁명 등의 발전이 있었다. 펀잡주는 곡창이 되었고 가장 돈 많은 지역이 되었다. 그러자 펀잡주의 전통적인 가치시스템이 붕괴하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술 소비량이 대폭 늘었다.

인도가 과거처럼 절주하는 모습, 엄격한 규범이 있는 모습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는지는 아무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나 국회에서 음주문제를 가지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인도는 그야말로 변화가 무척 빠른 나라이다. 위스키 소비량이 최근 연간 20%가 넘는다는 보도가 있고, 세계 3대 증류주 제조사가 있는 곳이 인도다. 청소년, 여성, 산업노동자 등 고위험 군이 급속히 늘고 있는 인도에서 과연 팽창하는 술 문제를 어떻게 풀지 두고 볼 일이다.

사진 : 1 인도 몸바이의 포도축제에서 포도를 밟고 있는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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