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자장가와 지리산 달

사랑과 평화 1집 <한동안 뜸했었지> 한국 펑크의 시조이자 전설. 미8군 기타리스트 출신 최이철의 기타와 김명곤의 건반 등 연주자들의 탄탄한 실력이 밑받침되어 탄생한 수작이다.

音酒동행

어머님의 자장가와 지리산 달

문 경 훈 교사(지혜학교)

 

‘For sale : baby shoes, never worn(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신지 않았음)’, 믿거나 말거나 누군가 헤밍웨이에게 6단어로 사람을 울릴 수 있는 소설을 써보라 하자 지었다는 글이다.

대문호란 칭호가 아깝지 않게 저 단순한 글에서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진다. 그런데 여섯 단어는커녕 한 단어로 사람을 울려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엄마…’라고 하겠다. 엄마를 떠올리며 눈물짓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군대에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입술 깨물지 않았을 남자들이 과연 있을까. 민망하게도 난 자타가 공인하는 불효자에 속해서 그렇다지만 그 어떤 효자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식의 마음은 엄마의 사랑 발끝에도 미칠 수 없다.

그래서 ‘엄마’의 이야기는 그 어떤 주제보다도 보편적이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고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2009년의 영화 <애자>에서는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딸을 키워냈지만 이제 불치병에 죽어가며 괴로워하던 엄마가 많은 관객들의 눈물을 훔치게 했고,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응답하라 시리즈 중 하나인 <응답하라 1988>에서는 역시 남편과 사별한 후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억척스럽게 두 자식을 키우던 선우엄마가 속칭 눈물벨을 담당했다.

2019년, 국민엄마 김혜자는 <눈이 부시게>라는 작품을 통해 그 해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했다. 척박했던 1970년대 한 쪽 다리를 잃게 된 어린 아들을 홀로 키우며 강해져야 했던 엄마의 심정을 세상 그 어떤 자식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드라마 막바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엄마의 사랑은 도저히 말로 형용할 수 없다. 한편 2016년 tvn에서 방영됐던 노희경 작가의 <디어마이프렌즈>는 개중에서도 보는 내내 한 회도 빠짐없이 눈물을 흘리게 했던 최고의 드라마였다. 작중 박완(고현정)이 엄마의 암 소식을 들은 후, 화장실에서 스스로의 뺨을 후려쳐가며 내뱉은 독백은 너무나 공감돼서 끔찍했고 가슴에 처절하게 박혔다.

‘엄마의 암 소식을 처음으로 전해 들으며 나는 그때 분명히 내 이기심을 보았다 암 걸린 엄마 걱정은 나중이고 난 이제 어떻게 사나…. 난 오직 내 걱정뿐이었다. 그러니까 장난희 딸 나 박완은, 그러니까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화제를 잠시 가요 쪽으로 돌려볼까. 우리가 듣는 가요 속에도 ‘엄마’를 주제로 사랑받아온 노래가 많았다. 태진아의 ‘사모곡’, 나훈아의 ‘홍시’같은 가슴 절절한 트롯이나, 번안곡이지만 노랫말과 송창식의 구성진 목소리가 절묘하게 어울리는 ‘어머니(cara mamma)’같은 포크, 역시 김광석의 리메이크로 훨씬 더 유명한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도 사실은 엄마에 관한 노래였다던데 그렇게 생각하면 확실히 이 노래가 조금 다르게 들린다.

90년대 인기를 끌었던 한스밴드의 ‘어머니의 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다시 생각해도 그 시절 노래들은 가사가 좋았다. 아주 조금 결이 다르지만 김창완의 ‘어머니와 고등어’는 어떨까.

아니면 페퍼톤스의 ‘도시락’은? 두 노래 다 어머니와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을 주제로 하고 있다.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고등어와 아침에 구워질 고등어의 냄새,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 한 공기를 상상하면 엄마의 사랑을 누구나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가사가 좀 비극적이긴 하지만 엄청난 고음으로 유명한 그룹 ‘활’의 보컬 김명기가 부른 ‘소년의 꿈’같은 노래도 나쁘지 않다.

단, 가사와 멜로디, 보컬의 절규하듯 내지르는 목소리가 너무 극적이라 호불호가 좀 있을 수 있고 개인적으로도 세련미가 좀 아쉽다. 다분히 개인적이지만 이런 류(?)의 노래라면 사랑과 평화의 ‘어머님의 자장가’가 최고 아닐까 싶다. 비극적이지만 간결하면서도 쉽고 공감되는 가사와 세련된 멜로디, 탄탄한 연주, 그닥 멋을 부리지 않은 창법이 한데 어우러진 명곡이다.

사랑과 평화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익숙지 않겠지만 ‘어머님의 자장가’라는 노래 자체는 몇 년 전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수 권인하 씨가 불러서 재조명받았다. 확실히 젊음은 따라할 수 없는 연륜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난 남들 다 하는 자취를 늦게 시작해서 직장을 잡고 나서야 집을 나왔다. 사실 직장과 집의 거리가 1시간 반 남짓이었으니 맘먹으면 출퇴근 못 할 거리는 아니었지만 20대의 끝 무렵에라도 혼자 살아보고 싶어서 제법 고집을 피웠다.

그래도 느지감치 얻은 외아들을 보내는 엄마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지 내가 집을 떠나는 날 눈물을 훔치시더라. 욕을 잔뜩 들어먹을 각오를 하고 고백하자면 난 외아들이라지만 애교는커녕 살가움이라곤 1도 없는 아들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고사하고 입 밖으로 좋은 말 한번이 제대로 나간 적이 없으니…. 어릴 때부터, 엄마를 왜 이렇게 이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이기지 않으면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았다.

스스로 설정한 부모님과의 분투 속에서 당장 아버지를 이길 수 없으니 비겁하게도 엄마를 이기겠다고 마음먹었던 걸까. 거창한 설명을 떠나서 가장 많은 시간을 붙어 있던 엄마와 자연스레 많이 싸운 것일 수도 있겠다. 원인이 무엇이든 그 싸움은 결국 내가 이기는 것을 넘어 엄마를 아프게 하고 누르는 수준까지 가버렸다. 승리의 대가는 참혹한 후회고, 지금도 예쁘게 나오지 않는 못된 말투뿐이다.

대중교통으로 1시간 반이면 닿을 거리에 혼자 지내면서 난 아마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다. 매 주말이면 집에 가서 시간을 보냈지만 내가 이렇게 약할 줄이야. 매일 밤을 술로 외로움을 달래지 않으면 편히 잘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외로움에 심장이 떨리고 몸서리쳐지는 밤이 오면 애타게 엄마를 불렀다. 전화를 했으면 될 것이지만 약한 모습은 보여주기 싫었다. 나라고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리가 있을까.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엄마 앞에선 그저 강한 아들이고 싶었을 뿐이다.

점점 약해져 갈 우리 엄마가 마음 편히 기대고 의지할 수 있을 만한 강한 아들이 되고 싶었는데, ‘강한 체’하는 못된 아들만 남고 말았다. 본인은 3순위고 자식과 남편이 1순위인 엄마가 지금보다 더 이기적이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속상함이 짜증으로만 나오고 말았다.

작중 녹두전과 지리산달. 남원에서 만들어진 지리산달은 정말 맛있는 술이다. 쨍하고 거친 산미와 부담 없는 단맛. 거칠고 투박한 옛날 막걸리의 매력이 느껴진다.

지난해 여름의 끝자락, 자가용으로도 4시간이 족히 걸리는 지역에 난 새 터를 잡았다. 엄마와는 3시간 정도 더 멀어졌는데 불공평하게도 그리움은 3배가 넘게 커졌다.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다. 본가에서 내려와 혼자 있던 그 밤 마음이 괜스레 헛헛해서 막걸리 한 병과 엄마가 싸준 녹두전을 꺼냈다. 내려오는 날까지 짜증 일색이었던 못된 심보 탓이었을까 냉장고에 넣어놨던 녹두전이 그 새 쉬어버리고 말았다. 근데, 그 쉬어버린 전을 도통 버릴 수가 있나.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는데 그날따라 막걸리 이름은 왜 또 지리산 달인지…. 술상 위에 뜬 달 보며 엄마 생각에 마냥 숨죽여 울었다.

문경훈

▴1990년 출생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졸업▴한국전통주연구소 가양주반 수료

▴한국가양주연구소 전통주소믈리에 자격 취득 ▴한국가양주연구소 명인반 수료▴(현) 지혜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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