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정사계 ‘春’으로 대통령상 받는 李漢相 대표
전통주 시장에서 가장 ‘핫’한 술로 자리 잡은 풍정사계 ‘春’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이 있다. 2015년 설을 맞아 화양(和釀)양조장이 출시한 ‘풍정사계(楓井四季)’가 그랬다. 풍정사계란 주명부터가 남달랐다. 마치 비발디-‘사계’처럼 그 술속의 춘·하·추·동 사계절의 환상적인 술들이 마음을 빼앗아 갈 것만 같았다.
풍정사계 가운데 춘(春)이 일품이었다. 색깔부터가 남달랐고, 맛 향이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좋았다.
그동안 풍정사계의 춘은 각종 주류품평행사에서 상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청와대 국빈만찬주에 오르더니 드디어 올해 ‘2021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박록담 소장(전통주연구소)은 춘의 수상소식을 접하고 나서 “‘풍정사계’는 이제 우리네 술 시장에서 가장 ‘핫’한 술로 자리 잡은 것 같아 무엇보다 기쁘고, 코로나로 인한 고통과 두려움, 상실감으로 피로해진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자신감으로 새 출발을 다짐할 수 있도록 동고동락(同苦同樂)의 태평주(太平酒)로 자리매김 되기를 기대한다.”고 축하 했다.
화양은 지난해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하는 ‘2020년 찾아가는 양조장’과 2020 대한민국 우수문화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화양양조장은 삶과술 214호(2017. 1월)에 소개 한바 있지만 이번 대통령상 수상을 계기로 그 동안 화양의 발전된 모습을 담기 위해 취잿길에 나섰다.
‘春’ 인공 첨가물 가미하지 않고 100일 이상 숙성시켜
며칠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대지가 목말라했었는데 일기예보에서는 비 소식이 나온다. 청원 땅에 다다를 즈음 빗줄기가 시작되었다. 기상정보가 틀리지만은 않은 것 같다.
초행길은 아니지만 화양(대표 李漢相, 67)이 위치하고 있는 청주시 청원군 내수읍 풍정1길은 전형적인 목가적 풍경이 정겹다.
상당산성을 시작으로 인경산, 구녀산, 좌구산(657.7m)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에워싼 이곳은 마냥 평화로운 마을이다.
이 대표가 상호를 ‘화양(和釀)’이라고 지은 것은『고사촬요, 어숙권 지음』의 ‘내국향온법’에 나오는 ‘조화양지(調和釀之)’를 줄여서 지은 것이고, ‘화양(和釀)’은 찹쌀과 직접 디딘 누룩(향온곡)을 끓여 식힌 물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조화롭게 섞어 빚는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화양이 추구하는 술은 그 맛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로운 술”이라면서 “조화로운 술이 향기롭고 부드러운 술맛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주명을 풍정사계(楓井四季)라고 한 것은 예부터 물맛 좋은 단풍나무 우물(싣우물)이 있는 마을이란 데서 착안 한 것이란다.
여기에 풍정의 자연을 정성껏 술독에 담아 맛과 향이 다른 네 가지 술에 春(약주), 夏(과하주), 秋(탁주), 冬(증류식소주)으로 사계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런 풍류는 이 대표가 국문과를 나온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특히 풍정사계 춘하추동은 국내산 쌀과 직접 디딘 전통 누룩 향온곡(香醞麯:녹두로 만든 누룩)으로 빚어 어떠한 인공 첨가물도 가미되지 않은 상태에서 100일 이상 숙성시켜 출하시키고 있어 술 맛이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고 깔끔한 맛과 향을 지녔고, 어떤 술이든 숙취가 없고 뒤끝이 깨끗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약주는 숨김없이 투명한 술이다
화양주조가 제공한 자료를 참고하여 풍정사계의 주종을 살펴보면 사계절의 술들이 제각기 특징을 지니고 있다.
◇ 春(약주):멥쌀, 찹쌀, 향온곡으로 빚은 15% 약주다. 500㎖에 32,000 원.
▴2017 우리술품평회 약주·청주 부문 대상 ▴2017 11월 한미 정상회담(트럼프 방한) 청와대 만찬주▴‘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회식 리셉션 만찬주▴2019 한-벨기에 정상회담(필립 국왕 방한) 청와대 만찬주▴2021 우리술품평회 대통령상. 춘은 감미로운 술이다. 설기로 밑술한 법주로 발효 후 저온 숙성한 백일주다.
잘 숙성된 누룩의 향과 특유의 배꽃, 메밀꽃, 어린 사과향이 올라온다. 춘의 특색이다.
이 대표는 춘은 “쌀로 빚은 술이기 때문에 한정식 등 밥이 들어간 음식과 잘 어울린다”며 “진달래 활짝 폈을 때 할미꽃, 제비꽃 초대해서 같이 마시고 싶은 술”이라면서 맛이 숨김이 없이 투명한 술이라고 했다.
◇ 夏(過夏酒):멥쌀, 찹쌀, 향온곡으로 빚은 18% 약주다. 500㎖에 38,000 원.
과하주는 발효주와 소주의 단점을 보완한 술 빚기로 세계 유일의 제조법이다. 법주 발효 중 증류주를 첨가하여 저온숙성 시킨 술이다.
과하주는 상온에서 여름을 넘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조상의 지혜가 담긴 술로 약주의 달콤함과 소주의 씁쓸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고도주를 즐기시는 분들과 고도주에 다가가기 힘든 분들 모두에게 추천할만한 술이다.
산미와 단맛의 무게감이 있으므로 고기, 생선회와 어울리는 술이다. “찬 샘에 담가 놓은 맑은 술을 정자에 앉아 매미소리를 들으며 마시고 싶은 술” 이라고 평해도 좋겠다.
◇ 秋(탁주):멥쌀, 찹쌀, 향온곡으로 빚은 12% 탁주다. 500㎖에 18,000 원.
설기로 밑술한 탁주다. 발효 후 옹기에서 100일 저온 숙성된 술로 숙취가 없고 뒤끝이 깨끗하다.
특유의 꽃향이 있으며 쓴맛과 단맛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아 조화롭다. 부드럽고 감미로워 저도주를 선호하는 주당들이 좋아할만한 술이다.
“누렇게 익은 벼를 베다 논두렁에 앉아 추수의 기쁨을 함께하며 마시는 술”이다. 옛날 같았으면 지나는 길손 있으면 -“여보시오 목이나 축이고 가시죠”
◇ 冬(증류식 소주):멥쌀, 찹쌀, 향온곡으로 빚은 ▴25%▴42% 소주다. 375㎖에 25%는 25,000 원 42%는 42,000 원.
▴2016 우리술품평회 증류식소주 부문 최우수상▴2018 우리술 주안상 대회 대상을 수상했다.
설기로 밑술한 법주를 증류 후 1년 이상 장기 숙성시킨 술로 마치 아침 이슬 같은 술이다. 맑은 술에서 약간의 누룩 향이 올라온다. 이 맛은 희석식 소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술맛이다. 42%의 고도주가 부드럽고 깨끗하게 느껴진다. 이 대표는 “인생의 쓴 맛을 아시는 분을 위한 술”이라고 한다.
그냥 마셔도 좋지만 칵테일에도 제격이다. 도미찜, 고기요리, 진한 양념의 생선요리 등과 마신다면 금상첨화.
이 대표는 풍정사계 춘, 하, 추는 생주이므로 필히 냉장 보관했다가 마시는 것이 좋다고 했다. 유통기한은 냉장보관 시 2개월이다.
이 대표 한국 최고의 술 빚다
한 남자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등불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마침 같은 골목을 지나가던 사람이 유심히 살펴보니 등불을 든 사람은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사람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이 등불이 왜 필요할지 의아했기에 붙잡아 물어봤다.
“저기요, 앞을 못 보는데 등불이 왜 필요합니까?”
그러자 그는 등불을 자기 얼굴에 가까이 대며 말했다.
“저에게는 등불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저를 보고 부딪히지 않고 잘 피해 갈 수 있잖습니까?” 탈무드에 나오는 배려에 대한 이야기다.
갑자기 탈무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등불을 든 남자와 이한상 대표의 경우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말에 의하면 이 대표의 증조부를 비롯, 이 대표에 이르기 까지 술을 마시지 않는 집안이라 했다. 따라서 본인이 술을 마시기 위해 빚는 것이 아니라 ‘술빚는 과정이 하나의 예술 행위’라고 여기기 때문에 술을 빚는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그렇듯 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천직(天職)으로 여겼던 사진관을 그만두고 할머니가 담그셨던 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술은 못하지만 어느 순간 아련하게 할머니가 술을 빚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막상 술을 빚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2006년부터 박록담 소장한테 술 빚는 기본 과정을 공부하고 나서 이른바 술 전문가들을 찾아 나섰다.
2010년 농촌진흥청 발효식품과 ‘주류제조심화과정’을 듣고 농촌진흥청 발효식품 연구회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고 식품연구원 교육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는 술빚는 행위가 곧 예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10년여를 술 공부에 매달리다가 2015년에 들어서서 본격적인 술을 빚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술을 빚으면서 신맛, 단맛, 쓴맛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술을 목표로 해서 처음 빚은 술이 ‘춘’이었다. 춘을 고집한 것은 차례나 제사, 혼례 등 가정의 대소사에는 약주 술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노력이 춘이 올해 대통령상으로 선정된 동기인지 모른다.
이 대표는 올해 대통령상을 받게 된 것은 부인 이혜영 씨의 공이 컸다고 했다.
증류식 소주만 생산하는 제2공장도 준공…연말부터 본격 출시
화양은 현재의 양조장에서 6㎞ 떨어진 곳에 증류식 소주만을 생산하기 위한 제2공장을 준공하고 올 하반기부터 본격 출시에 들어간다. 1천여 평 대지위에 2층으로 건설된 양조장에는 500ℓ 증류기를 비롯해서 숙성실, 체험실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는 20%대와 40%대의 증류식 소주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했다. 소주는 1년 이상 숙성기간을 거쳐 출하를 한다.
풍정사계는 설기로 한 밑술에 찹쌀 고두밥으로 덧술을 추가하는 이양주법으로 술을 빚는다. 증류식 소주는 상압식 동고리로 소주를 내린다. 상압식으로 내려야 장기 숙성에 의해 향도 나고 풍미를 더 할 수 있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국문과를 전공한 이 대표는 영락없는 선생님 타입이다. 사실 그런 말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한 곳에 필이 꽂히면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한다.
그래서 사진관을 그만두고 인생 2막을 술로 여는 데 있어서 원칙은 철저히 지키자고 다짐을 했단다. 술이란 쌀과 누룩, 물의 조화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누룩이 가장 중요해서 나름대로 자체적으로 누룩을 딛고 있다. 주변에서는 입국(粒麴)을 쓰지 힘들게 누룩을 딛느냐고 하지만 우리 술은 누룩으로 빚어왔고 누룩으로 빚어야 세계인이 알아주는 명주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신념에서다.
이 대표는 와인을 아무리 잘 빚어야 유럽와인을 쫒아갈 수 없고 입국으로 아무리 잘 빚어야 사케만 하겠느냐는 생각에서 누룩을 고집한다. 술을 빚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고집은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에술이란 원래 고집에서 태어난다. 고집이 없는 예술에는 혼이 없다. 술에도 빚는 이의 혼이 없으면 살아 있는 술이랄수 없다.
화양양조장 입구에 李漢相, 李慧英 부부의 문패가 걸려 있듯, 부부가 혼신을 다해 빚는 술이 올해로 최고 정점을 찍었다. 이들이 앞으로 쉼 없는 노력을 쏟는다면 세계 주류시장에서도 금메달을 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모아본다.
상당산에 걸려 있던 운해도 거치고 비도 그쳤다. 한 여름이지만 공기가 산뜻하다. 돌아오는 길이 한 결 가볍다. 좋은 술을 만나고 오기 때문이랴.
글·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