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민에 대한 진통제로 술을 마신 도연명

박정근 칼럼

번민에 대한 진통제로 술을 마신 도연명

박정근(문학박사, 윌더니스 문학 발행인, 작가, 시인)

 

박정근 교수

도연명이 살았던 시대는 동진의 말기와 송나라의 초기라서 난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난이 일어나면 우선 정상적인 교통과 통신이 두절되어 친구들과 소통이 끊어지곤 했다. 시인이 처한 환경은 전운이 감도는 불확실성의 세계였다. 그래서 멀리 떨어져있는 친지와 친구를 생각하는 순간 온갖 근심과 걱정으로 괴로워했다.

시인은〈멈추어선 구름〉이란 시에서 이러한 불확실성의 세계에 대해 암울하게 노래한다. “구름이 어둑하게 멈추어 버리고/ 봄비는 부슬부슬 내리네/ 세상이 모두 어두워지고/ 평평한 길은 꽉 막혀버렸구나.” 이 시는 심상치 않은 세상에 대한 시인의 암울한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이런 처지는 오늘날 코로나로 인해 꼼짝없이 집안에 붙잡혀 있는 현대인들의 심정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은 답답한 심정을 달래고 싶다. 그는 멀리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동쪽 창가에 기대어 밖을 내다본다. 아마 그가 바라보는 쪽은 친구가 있는 지방이리라. 친구가 보고 싶지만 난리가 나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마음은 있지만 실행할 수 없으니 가슴이 답답해온다. 도연경은 자신의 복잡한 심정을 위로하고 싶다. 그는 잔을 들어 봄 막걸리를 마시기로 한다. 술을 마시면 마치 친구가 바로 옆에 있는 듯 한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런 심정을〈멈추어선 구름〉에서 노래하고 있다. 술이란 시공간의 경계선을 뛰어넘어서 시인과 친구를 연결해줄 수 있는 귀중한 고리 역할을 멋지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동쪽 창가에 기대고

봄 막걸리를 홀로 마시네.

그리운 벗은 멀리 있어 아득하니

무심히 서서 머리만 긁적이네.

도연명은 항상 이상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자신을 연마하고자 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장 효과적인 수련의 방법은 역시 고전을 읽는 삶이다. 하지만 답답한 현실은 청운의 꿈을 펼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 학문을 하는 것은 글을 읽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지 않은가. 깨우침으로 그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모순을 개혁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이 학자의 의무이기에 모순된 세상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고 번민하게 한다.

왜냐하면 현실을 그가 꿈꾸는 이상처럼 변혁하기에는 너무 많은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도연명은 매우 솔직한 시인이다. 그는 결코 자신을 자화자찬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한계와 약점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음주행위를 미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개혁하지 못하고 은둔하여 술이나 마시는데 골몰하는 자신을 나무란다. 현실 속으로 뛰어 들어가 투쟁하지 못하고 술에 취하여 숨어버리는 회피적이고 게으른 삶의 태도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그는 진취적이지 못한 자신을 “무궁화”라는 시 속에서 고백하고자 한다.

아아, 이 못난 사람아,

고리타분한 성품을 타고나서

흘러간 세월 벌써 지나갔어도

학업은 옛날 그대로구나.

세월의 빠름에 비해서 시인은 정체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깨닫고 있다. 게다가 문제는 그걸 해결하려고 현실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적당히 술에 취해 망각해버리는 타성에 젖어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삶의 태도로는 결코 바람직한 삶을 살아갈 수 없지 않은가. 술의 애찬가인 시인이 도취적 삶을 자책하다니 매우 아이러닉한 느낌이 드는 대목이다. 술에 취해 시를 쓰고 낭송하는 것을 즐기던 도연명이 술의 부정적 효과를 탓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무궁화”의 후반부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쉬지 않고 학문에 정진해야 하건만

매일 술에 취해야 편안해다니

이걸 생각하는 나는

몹시 슬프고도 괴로워라

결국 도연명은 술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학자로서 삶을 바르게 살아가려고 하는 절제성과 현실의 번민을 피하기 위해 술로 마셔야 하는 도취성의 공존에서 모순을 인식한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삶의 모순을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가 살아있는 한 유학의 연마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고 끊임이 없는 현실적 문제에 대한 번민을 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리라. 도연명이 수많은 술에 관한 시를 쓴 것도 삶의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연유에서 비롯된다. 필자는 도연명의 시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삶의 모순에 빠져 번민하는 필자의 모습을 거의 매일 발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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