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데스크칼럼
‘돈쭐내기’가 확산된다면
아주 못되고 흉악한 인간에게 “벼락 맞아 죽을 놈”이라고 한다. 벼락은 공중의 전기와 땅 위의 물체에 흐르는 전기 사이에 방전 작용으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이다. 그야말로 찰나에 나타나는 현상이어서 미처 손 쓸 수도 없다.
이런 벼락을 방지하기 위해 높은 건물에는 피뢰침을 설치하여 자연 재해를 방지한다.
벼락은 몹쓸 죄를 지은 사람이 맞는 것으로 인식돼서 막상 벼락을 맞아 죽으면 쉬쉬하며 장사를 지낸다. 부고도 제대로 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억울하게 죽고도 손가락질 받는 것이 벼락 맞아 죽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끔찍한 벼락을 차용하여 하는 말이 있다. “당장 죽어도 좋으니 돈벼락이라도 맞아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돈 벼락을 맞을까봐 걱정하며 사는 곳도 있다. 바로 은행 금괴보관소. 이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가끔 돈(많은 양의 동전) 벼락을 맞아 다치기도 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데서 일하는 사람들은 헬멧은 물론 신발도 금속제의 튼튼한 걸로 신는다고 한다.
10여 년 전 어느 글에서 김동길 명예교수가 “하나님, 어찌하여, 벼락 맞아 죽을 놈들은 그대로 두십니까”라고 쓴 글을 본적이 있었다. 김 교수는 기독교인으로서 정말 해서는 안 될 말이라면서 악질의 인간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좀 자취를 감추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벼락 맞을 사람을 지칭 한 것은 모르긴 해도 당시 김정일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여겨진다.
돈 벼락 정도는 아니지만 ‘돈쭐내기’를 당하는 사람들이 가끔 언론에 등장해서 조용한 미담이 되고 있다.
‘돈쭐내기’란 말은 요즘 MZ세대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로 돈쭐을 내준다는 건, 누군가 나쁜 짓을 했을 때 벌주는 뜻에서 쓰는 ‘혼쭐내다’란 말을 슬쩍 비틀어 ‘착한 주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착한 기업’ 물건을 일부러 사주는 행위를 말한다. 한 마디로 ‘돈쭐내주기’는, “잘되기를 바라는 대상을 발견하면 잘 되도록 만들고야 마는 요즘 세대의 선함이 연결의 힘을 통해 나타나는 모습”이라는 얘기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마태복음(6:3)에서 나오는 명언이다. 선한 일을 함에 있어 스스로를 드러내고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말라는 의미다.
대부분 선한 일을 한 사람이 선한 일을 자랑삼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한 일을 당한 사람(?)이 세상에 알려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인천의 한 치킨·피자 가게(점주 황진성, 32)가 최근 ‘돈쭐’내기를 당했다. 내용인즉 이렇다.
황진성 씨가 실직 후 7살 딸의 생일을 맞은 한 부모 아빠에게 공짜 피자를 흔쾌히 선물한 사연이 언론 보도로 알려진 이후다.
언론보도 후 이 피자가게에는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전화벨 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다. 황 씨는 지난 주말 배달 애플리케이션으로 피자 주문이 들어왔을 당시를 떠올렸다.
‘7살 딸을 혼자 키우는데 당장 돈이 없다’며 ‘기초생활급여를 받는 20일에 바로 돈을 드리겠다’는 한 부모 아빠의 간절한 메모가 있었다.
이를 본 황 씨는 ‘만나서 카드 결제’로 돼 있던 주문을 전표에 ‘결제 완료’로 바꾸고 서비스로 치즈볼을 함께 넣어 피자를 배달했다.
피자가 담긴 박스에는 ‘부담 갖지 마시고, 또 따님이 피자 먹고 싶다고 하면 연락 주세요’라며 짤막한 메모도 남겼다.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지자 한 지도 애플리케이션 리뷰 란에는 ‘돈쭐’을 예고하는 댓글이 이날 오전 기준 900개 가까이 달렸다.
이런 선행(善行)을 독려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같은 ‘돈쭐’ 사례는 최근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 형편이 어려운 형제에게 공짜 치킨을 준 마포구의 한 식당에 주문이 밀려들면서 가게가 영업을 임시 중단했을 정도였다.
코로나로 울적하고, 대선 정국으로 뒤숭숭한 마당에 이런 미담이 매미의 울음처럼 청량감을 주고 있다.
“MZ세대를 관통하는 단어는 ‘불평등’보다 ‘선함’이에요. 젊은이들이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 겁니다.” 작가 김민섭(38)의 말이다.
‘돈쭐내기’는 치열하고 야비한 경쟁 사회서도 善은 살아있다는 증거일수도 있다. 코로나펜데믹처럼 확산 되었으면 한다.
교통정보신문·삶과술 발행인 ti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