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술 정책이 있는가?

주류산업과 정책 이야기(29)

우리에게 술 정책이 있는가?

정책우선순위와 방향성이 없는 정책은 지지받지 못한다②

조성기 경제학박사 (趙聖基, Surnggie Cho)

PhD. of Economics. MPH.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회장

원주한살림, 이사장

살림농산, 대표이사

아우르연구소, 대표연구원

알코올정책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과거 술 소매 의제면허 발행할 때도 소규모업체들의 생계가 중점이었다. 당시 ‘유명배우가 편의점을 운영해서 그랬어요.’하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그 결과 지금도 주류취급전문점이 없다. “특수상황이 아닌 경우 주류정책과 알코올 정책 중 상위 정책이 무엇이어야 하는 지를 오래전 고민했었어야 했다”는 논의가 항상 지적된다. 불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몇 가지 사례들을 보자. 우선 청소년 음주 문제다. 여성가족부의 조사 자료를 보면 청소년들의 술 문제가 지금 매우 위중하다. 조사대상은 주류 구매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이었다. 32.2%가 ‘배달음식 주문’을 통해 술을 마셨다. 상당수(68.2%)는 ‘배달음식 주문할 때 성인 여부를 확인받지 않았다’고 했다. 주류배달에 위험요소가 있음을 국세청이 등한시 했다는 평가가 가능해진다.

배달앱으로 술을 주문할 때 성인인증을 하니까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청소년들 중 일부는 성인인 지인의 휴대폰으로 인증을 하고 술을 수령했다. 대행업체가 배달하고 플랫폼 이용 자영업자는 주문자 신원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미성년자 대상 주류접근성 규제를 검토하긴 했지만 위험의 가능성을 잘못 평가했다. 국세청과 기획재정부의 실수가 되었다. 이미 규제는 풀렸다. 풀린 규제를 되돌리기는 어렵다. 이용자의 편의성, 일자리 창출, 영세업체들의 경기부양 등의 이슈가 알코올정책에 우선한 결과다. 사안별로 논의할 때 정답이 없다. 민생도 중요하니 그렇다. 기준이 없으니 책임을 논할 수도 없다.

“과연 미리 상위 정책비전이 있고 그 기준에 의거 정책을 논하는 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을까?” 정책피라미드가 정립되어 있었다면 정책실패 여부도 판단이 가능하고 발생할 문제를 미리 예방 할 수 있었을 수 있다.

GS25 규제샌드박스 무인주류자판기

◇ 이스라엘은 술 대신 사주는 어른 구속한다.

인공지능 주류자동판매기 사례를 보자. 산업부가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유흥음식업장 및 유·무인 편의점, 마트에서 자판기운영이 가능하도록 했다. 국세청은 즉시 고시개정을 했고 유흥음식업장 내 주류 자동판매기 운영을 전면 허용했다. 유ㆍ무인 편의점과 마트 내 자판기 운영은 청소년 음주문제 때문에 금지되어 있었다.

규제 샌드박스는 혁신적 아이디어 기술을 실현하도록 하는 좋은 제도다. 그 좋은 규제완화가 아이들 건강에 문제를 낳을 가능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규제특례위원회가 문제를 인지했다. 문제가능성을 지적하자 국세청이 제시한 매장 내 설치, CCTV 설치 및 현장관리자 지정 등 운영ㆍ관리 조건을 추가해 승인했다. 기술의 신이 역시 알코올정책의 신을 이긴 사례다.

온라인 배달규제 완화에서 문제가 생겼듯이 엄정한 관리가 잘 안되고 대리구매 등의 문제가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일을 무시한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술 대신 사주는 어른을 구속한다. 그 정도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기술, 부가가치, 사업이 중요하다는 사고 앞에 사실 대안은 없다. “그런 문제까지 생각해서 기술혁신을 저지하라고?”라고 주장하면 답변이 어렵다. 이 사례 역시 술 문제를 우선시 하는 원칙이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다.

문제는 시각차이다. 알코올정책 지지자들이 본다면 “왜 하필 문제발생의 소지가 있는 규제를 완화하려고 했는가?”였다. “왜 하필 술을 편하게 팔고 마시도록 하는 기계를 개발하는가?” 하는 반문이기도 하다. “청소년과 과음 자들에게 구매와 음용이 불편하도록 하는 기술은 생각지도 않잖아!”하는 하소연이다. 보건복지부나 보건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청소년 음주와 관련된 기술 자체를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좋은 기술은 술을 취급하는 기계 말고도 쓸 곳이 무수하다. 어찌 되었든 ‘원칙’을 미리 논의해서 정하자는 것이다. “판매비용 절감, 이용자의 효용증대 등 생산성향상에 초점을 둘 것인가? 국민건강에 중점을 둘것인가? 행정관료들이 그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하고 묻는 것이다.

다시 지적할 일은 “그러한 사실들을 미리 판단해서 문제를 해소하거나 공감대를 구축할 생각을 과연 상위 관리부처에서 했을까?” 하는 질문이다. 술이 우리국민의 삶과 별 관계가 없는 중요하지 않은 재화라고 보았다면 안 해도 된다. 그게 아니라면 그 정책은 본질적 과제를 논의하고 미리 결정하고 후속과제를 다루었어야 했다.

“과연 언제쯤이면 술과 관련한 정책 비전과 방향에 대해 생각하고 정책을 처리할 수 있게 될 것인가?” 한나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하지 않고 일상의 일을 처리해 가면 잘못을 저지르게 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알코올정책에 국한해 볼 때 한 가지 더 논의해 보자. 알코올 정책에 두 가지 정책노선이 있다. 둘 중 어떤 노선에서 우리나라의 정책의 틀을 잡아야 할 것인가? 알코올 정책을 선택할 때에도 먼저 그 노선에 대해 공감대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도 미리 보건당국과 보건학자, 시민 등의 토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보건당국은 외관상 포괄적 폐해축소론적 기각을 택하고 있고 실제 정책에서는 통제적 입장을 표하고 있어 그러하다. 우리나라의 음주문화와 음주문제의 수준, 그 심각성 여부에 대해 공감대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정책적 선택이 가능해진다. 한쪽에서는 심각하다 하고, 한쪽에서는 “괜찮아요.”한다.

두 모델은 절주모델과 폐해축소(harm reduction)모델이다. 절주모델(abstianence model)은 엄격한 통제모델이다. 일단 술을 못 마시는 노선을 택한 후 다른 정책의 내용을 그에 맞춰 결정한다. 미국이 대체로 이 모델을 따른다. 그래서 밤 10시가 되면 문을 연 술집을 찾아 보기 힘들다. 공원에서도 누런 봉지에 술을 담은 이들이 보여도 겉으로 술병이 안 보인다. 마시면 큰 벌금이다.

주류도매업체를 하나 늘리려할 때 ‘음주운전반대엄마모임’에서 격렬히 시위한다. 이 지역의 도매업체가 옆 지역에서 술을 팔지 못한다. 절주모델은 국민건강개선을 술 정책 결정의 최우선과제로 에 놓는 정책이다. 산업의 부가가치 창출이나 음주자의 편의성을 역행하는 정책에 초점을 둔다. “불편해도 당신의 건강을 위해 따르세요.”라고 한다.

미국을 따라 통제모델을 당장 선택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음주문화와 술에 대한 의식구조를 보고 논의해서 결정을 하자는 것이다. 외국은 생각을 하고 토의를 거쳐 결정한 정책방향이 확인된다. 대충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술관련 정책결정을 하지 않는다. 술이 특별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술은 TV나 핸드폰, 전화기, 자동차 등과 같은 일반적 재화가 아니라 아주 ‘특별한 물질’(Thomas Babor, et al., Alcohol, No ordinary commodity research and public policy second edition. Oxford, 2010.)이라고 본다. 술은 다른 재화와 달리 특별한 정책의 대상이 되고 있다.

두 번째 정책은 술 자체나 술 마시는 일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술을 마신 후 문제가 발생한 것이 문제여서 문제를 줄이는 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폐해축소론이다. 영국, 유럽대륙, 호주, 뉴질랜드, 일본, 중국 등 국가들이 주로 이 방책에 동의한다. 이들은 술 마신 사람 이외에 친구나 가족을 관리하는 데에도 신경을 쓴다.

술 마시는 영업시간을 줄이거나 주취자의 폭행을 벌하기 전에 술 문제에 대한 교육이나 술집의 탁자를 부드러운 소재로 만들도록 규제한다. 심지어 술에 취해 폭력을 쓸 유리잔을 플라스틱 잔으로 바꿔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 둘 중 어느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맞을까? 아마 술에 친숙한 음주문화 상황을 볼 때 ‘절주모델 보다는 폐해 최소화 정책모델’에 동조하기 경향이 크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동의가 이뤄져야 하고 구체적인 대책은 한국적이어야 할 것이다.

알코올통제정책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유연한 폐해축소정책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알코올정책을 우선할 경우 정부의 결정은 아주 달라진다. 알코올정책이 앞단에 서 있다면 술 산업을 통해 부가가치를 늘리거나 일자리를 늘리자는 방향의 정책은 쉽게 동의되지 않거나 추진 방향과 내용이 크게 바뀔 공산이 크다. 술산업 살리기 정책은 전통주와 지역농업을 살려낼 경우에 국한 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 주류산업은 대기업 위주로 구조화되어있다. 친경제적 주류정책은 대부분 대기업 살리기로 결과가 나타날 공산이 매우 큰 일이다.

과연 정채당국에서 주류정책에 방점을 찍을 것인지 알코올정책을 우선적으로 선택한 후 다른 정책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고, 특별히 지원할 정책은 별도로 다루는 것이 필수적 보완책이 된다.

현 정부의 주류정책을 살펴보자. 현 정부를 평가하는 일이 차기 정부들이 어떤 술정책을 펴나가야 하는 것인가에 시금석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정부문건이나 언론보도자료들을 검색해 보면 현 정부가 ‘음주문제의 해결’ 보다는 ‘산업의 가치창출, 이윤, 일자리’ 등을 더 중시하고 정책을 추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정부가 시작할 때 “종량제 ‘문제나’ ‘수제맥주 활성화’ 문제를 다루고, 이어서 ‘통신판매규제완화’나 샌드박스 도입이었다. 펜데믹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변수는 빼고 가시적 사안만을 보면 술정책을 주로 주류산업정책으로 보고 규제완화를 통한 시장 활성화에 주력한 것”이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술 정책의 초점이 뭐지? 알코올 문제에 중점을 두고 다른 정책들을 다룰 것인가? 경제적 편익을 우선시 하고 다른 정책이슈들을 다룰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은 이번 정부에도 역시 없었다. 현안과제인 경제적 이슈를 중심에 두고 다루어 나간 것이다. 영혼(Spirit)이 없는 정책진행이라고 평가하면 과할 수는 있다. 소주, 보드카, 위스키 등의 술은 증류주(Spirit)로 분류되니 그리 쓸 수도 있겠다.

더 자세히 뒤지면 지난 3년간. 정부는 ‘전통주보전, 농산물의 사용촉진, 유통질서 확립, 국민건강, 주류 관련 폐기물의 환경관리 등’다양한 이슈를 다룬다. 다양하고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정부 술 정책에 대해 관련전문가들은 대부분 ‘매우 불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왜 그럴까?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책의 초점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술 정책 전반에 대해 어느 하나 잘 했다는 평가를 찾기 어려웠다. 잣대가 분명하고 정책우선순위가 세워져 있었다면 열심히 일하면 좋은 평가가 나오게 된다. 종량세제 전환이 맥주 품질제고나 국산물애호에 정책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했다면 좋은 평가를 받았을 수 있다. 맥주 막걸리 수요증대를 가져오는 주세인하에 보건학계가 동의할 리 만무다. 뜻하지 않게 해외고급주류 수입까지 늘어나니 주류산업계도 곤혹스러워지고 만다. 형평성 문제에만 초점을 두고 추진하면 그런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지역발전이 전환시대 화두인 시대가 왔다. 그때는 주세 지방세화가 답 중 하나일 수 있다. 술을 지역 중심으로 발전시키자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읽는 술 정책이 아니라 벌어지는 사안별로 대책을 세우니 역시 발전적 정책이 발굴 되지 않는 것이다. 수제맥주 시장이 전체 주류시장의 불과0.05%내외뿐이어서 정책효과가 작아도 맥주품질향상, 소비자효용증대를 단기적으로 달성했고 몇 명의 청년고용을 늘렸으면 되었다는 생각이었다면 더 할 말은 없다. “술 정책은 그리 단편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정책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정책당국자는 술 정책의 맥락과 정책의 철학과 방향성 부재가 낳는 부작용을 잘 파악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정립했을 때의 장점도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전환의 시대에는 “청소년, 여성,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과 국내 농업, 중소기업과 전통주 산업 등 보호, 지역발전 등에 초점을 둔 정책방향이 잘 잡혀있는 가를 잘 검토하고, 무엇보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일이다.

“술 정책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술은 시장 활성화를 통한 성장 중시 정책을 펼 때 알코올문제가 추가되는 참으로 묘한 물질이다. 그러니 술 산업의 진흥을 통해 부가가치를 늘리고 일자리도 만들겠다는 구상은 전근대적인 발상일 수 있다. 주류산업은 이미 성숙산업이고, 사실은 진흥의 대상이 아니라 보전의 대상일 것이다. 정부는 무엇보다 국민이 직감하는 술의 본질적 문제나 정책변화가 낳을 상대적 폐해 문제를 잘 살펴야 한다. 정책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취약 자를 잘 관찰하는 일도 중요하다.

포괄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 뿐 아니라 정책우선순위와 하위정책을 잘 정돈해서 방향을 잡지 않으면 지지를 받기도 어렵고 목표를 달성하기도 어렵다. 술 정책은 국민건강과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섣부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섣부른 변화도 실패의 원인이 된다. 특정부문을 위한 잘못된 결정을 하는 정부라는 비판을 들어서는 안 된다. 국민건강, 산업발전, 환경개선에 고루 도움이 되면서도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판을 짜야한다.

술 문제를 다룰 때 넘어야할 또 하나의 산이 술의 정의 문제이다. 세계보건기구(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의 일급발암물질론, 농식품부의 관계법에 지정한 식품과 지역농업생존론, 전통주 제조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전통문화유지론, 경제부처에서 추구하는 소비자효용과 산업발전론, 국토부가 보는 지역발전론 등 생존과제 등 다양하다.

“술이란 무엇인가?” “과연 이 시대에 정책의 대상이 되어야 할 술 문제는 무엇일까?” 그 정의와 문제들을 모두 정책의 마당에 내놓고 토의하는 노력을 이제라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삶과 술을 생각하고 술과 관련되어 있는 모든 분들의 토론마당을 기대한다. 삶도 술도 풍요로운 가을이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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