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없이는 친구도 없어라

술이 없이는 친구도 없어라

박 정근(소설가, 극작가, 시인, 윌더니스 문학 발행인)

 

필자의 친구들은 가끔 필자를 ‘막걸리 파’라고 부른다. 그만큼 친구들과 막걸리를 자주 마시며 친교를 한다는 의미이리라. 역시 술은 인간의 선천적 이기주의의 담장을 허물고 우정의 대문을 활짝 열어주는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로나가 판치는 겨울의 춥고 침울한 날씨가 끝나고 봄가을의 화창한 날처럼 보고 싶은 친구와 즐거운 대화를 즐기기 바란다. 게다가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 술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당연히 그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파안대소하는 삶을 회복하기 바란다.

친교의 과정에서 친구를 초대하는 것은 일방적이 되어서는 오래가지 못한다. 누군가 먼저 술을 내면 다음에는 다른 친구가 술을 접대하는 것이 좋으리라. 하지만 교제하는 친구 사이에 불쌍 사나운 꼴이 발생하는 것도 인간 사회이다. 가끔 술자리가 끝나 인색한 친구는 술값을 내야 할 시간이 되면 화장실을 가든가 신발의 끈을 매는 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행태가 빈번해지면 그는 친구들부터 왕따를 당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잔머리를 굴리며 약게 구는 친구들을 절대로 관용하지 않는다. 역시 술자리는 서로 주고받는 관계이어야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도연명도 필자와 같은 심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는〈이주(移居)〉라는 시에서 술로 이웃과 교제하는 정경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는 화창한 날에 산에 올라가서 시를 짓는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친구 집 대문을 지나가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친구의 잔에 술을 따라준다고 노래한다. 이 시의 화자가 친구를 불러내어 술을 마시는 행위에서 어떤 계산이나 불순한 마음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 사이에는 순수한 우정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우정을 나누기 위해 술을 따르는 것이다. 도연명은 이러한 순수한 마음을 시로 노래한다.

春秋多佳日, 봄과 가을에는 화창한 날이 많으니

登高賦新詩. 높은 산에 올라가 새 시를 짓노라

過門更相呼, 대문을 지나가다 친구들이 번갈아 불러내

有酒斟酌之. 가지고 간 술을 서로에게 따라주노라

인간관계에서 꼭 오래 된 친구하고만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다. 종종 이전에 만나본적도 없는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의 만남이 필연적 관계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않는 만남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자신에 대해 소문을 듣고 호의를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더더욱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다고 술병을 들고 온 사람이 있다면 대문을 활짝 열고 집안으로 들이는 것이 인간적 관성이 아닐 수 없다. 도연명은 <음주(飮酒)>라는 시에서 이른 아침부터 술병을 들고 대문을 두드리는 예기치 않은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淸晨聞叩門, 이른 아침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倒裳往自開. 급하게 옷 거꾸로 걸치고 스스로 문을 여네.

問子爲誰與, 그에게 누구냐고 물어보니

田父有好懷. 호의를 품고 찾아온 농부였네

壺漿遠見候, 술병 들고 먼 길을 만나러 와서

疑我與時乖. 시류와 다르다고 나를 나무라네.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요즘 세태는 어떤 만남이 순수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혈안이 되어 관계를 가진다. 정치판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정당이란 같은 가치와 정치관을 가지는 자들이 그들의 공유된 목표를 위해서 만들어지지 않던가.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오랫동안 몸을 담았던 정당을 박차고 나가 반대당에 몸을 담근다. 그리고 자신의 입지를 키우기 위해 이전의 정당을 비난하기 일쑤이다. 참으로 비인간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도연명을 찾아온 사람은 그저 사람이 좋아서 술을 나누고 싶다고 찾아온 자이다. 만약에 시인이 그에게 약속이나 통보도 없이 무작정 찾아왔냐고 반문한다면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리라. 방문자의 의도가 순수하다고 보고 얼른 문을 열어 아침부터 술자리를 만든 도연명은 분명 방문한 농부 못지않게 순수한 마음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코로나로 답답했던 한 해가 가고 있다. 코로나는 지긋지긋하게 마음의 문을 닫으라고 몰아세운다. 대면의 세계는 어디 가고 모두 방콕을 하며 모든 만남을 비대 면으로 대치하고 있다. 그래서 모두 자신의 보신을 위해 혼술, 혼밥을 해야 하는 고독한 삶 속에 갇혀있다. 필자는 언제나 다시 자유롭게 친구와 술을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하며 힘없이 도연명의 시를 읊조린다. 애주가 여러분들도 내년에는 친구들과 호탕하게 술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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