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도매업 쇼케이스 때문에 嘆息한다
김원하의 취중진담
TV화면에 배추밭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장면이 나온다. 배추밭에 선 농민은 배추 값이 폭락해서 출하 해봐야 인건비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탄식(嘆息) 한다. 탄식 하는 소리가 TV화면을 뚫고 나올 만큼 깊다.
지난 해 가을 기후 탓으로 배추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한 때 배추 한 포기가 만 원 대까지 치솟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런 금배추를 보고 농민들이 올해 너도나도 배추를 심는 바람에 배추 값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쳐나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과거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나면 막걸리공장이 생겨났다는 말이 있다. 술장사가 잘돼 막걸리 공장 하나면 큰돈을 벌수 있었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막걸리 공장을 낸 결과는 많은 기존 공장들까지 도산하는 결과를 빚었다.
요즘 주류업계가 이 모양이다.
술 제조사들이 공장을 확장하여 생산량을 늘리고, 수입주류가 물밀듯이 들어오고, 술집에서도 맥주를 만들어 팔수 있게 하는 등 그야말로 술이 넘쳐난다. 공급이 넘쳐나면 시장은 혼탁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경재논리다. 주류 시장에 불법 거래와 리베이트가 판을 치니 국세 당국이 칼을 빼든 모양이다.
주류시장이 어려워진 것은 단순히 공급만 증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술을 유통시키는 도매업체가 지나치게 많은 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소주, 맥주, 양주 등을 취급하는 종합주류도매업은 인구 5만 명당 한 개꼴로 허가를 내주고 있지만, 일부 도서 지방이나 특수 지역은 상주인구가 5만 명도 안 되는데도 도매장이 두서너 개나 되는 지역도 있다.
특히 신규로 도매업 면허를 받은 사람은 기존 업체의 거래처를 뺏을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하기 위해 각종 선물 공세를 하기 마련이다. 이런 연유에서 생겨난 것이 술을 저장해 놓고 팔 수 있는 쇼케이스 같은 것을 무상으로 증정하는 것이다.
기존 도매장도 거래처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메이커의 일부 협조를 받아 쇼케이스외에 다른 것도 얹어서 주다보니 세무처리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변태 세무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일부 도매업자들은 변태경리를 합법적으로 처리해야 된다는 단순논리로 국세당국에 건의하기에 이르렀고 당국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1997년 9월1일 주세법 사무처리 규정을 개정하여 도매업자가 소비처인 주점이나 식당 등에 내구성소비재인 냉장고, 쇼케이스 같은 것을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결과는 참담해졌다. 소비처인 식당 등에서는 쇼케이스 외에 TV, 냉장고, 에어컨, 제빙기 같은 값나가는 것도 요구하고 일부업소는 간판까지 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도매업계의 하소연이다. 뿐만 아니다. 신규로 오픈하는 호프집에서 조차 몇 천만 원까지 무담보로 대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도매업자들은 이 같은 과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나친 내구성소비재 공급으로 이익이 대폭 감소돼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못하는 업체들까지 속출하고 있다고 말한다.
주류 시장에서 불법적인 무자료 주류공급을 근절하고 보다 투명한 주류시장 조성을 위해서는 97년 9월에 개정한 사무처리 규정을 원상태로 환원하고, 도매업 신규허가 면허 상한선인 인구 5만 명당을 7~8만 명으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의 근거로는 최근 들어 술집들이 급감하고 있고, 국민들의 술 소비도 다양해져서 소주, 맥주, 국산 양주 같은 술 소비가 예전만 못하다는데 기인하고 있다. 왜냐하면 막걸리나 수입주류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 결정적 원인으로 풀이된다.
또 도매업자가 발생시킬 수 있는 유통마진도 종전처럼 개선되어야 한다. 도매업자가 일반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소주, 맥주의 마진폭은 2~3% 수준이고 유흥주점에 공급하는 양주는 30% 내외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현상 때문에 일부이긴 하지만 유흥주점은 마트 같은데서 매입 자료가 없는 양주를 구입하여 손님들에게 판매한다. 그 만큼 이익이 많이 남고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무자료주류 공급이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80년대까지 실시했던 법정마진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건전한 주류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70년대만 해도 돈 버는 사업이라는 소리를 듣던 주류도매업은 이제 옛말이 된지 오래인데도 아직까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지 착각하는 공정거래위원회나 규제개혁위원회는 주류업계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또 국세당국 역시 주류업계에 단속의 칼을 빼기에 앞서 새겨 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