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싯잎을 머금은 옥순가 ‘마주소곡주’에선 백제의 향기가 난다

모싯잎을 머금은 소곡주 옥순가 양조장 高鍾萬 · 成仁淑 대표

소곡주 빚는 玉順家양조장 高鍾萬·成仁淑 대표

 

모싯잎을 머금은 옥순가

‘마주소곡주’에선 백제의 향기가 난다

 

 

충남 서천에 가면 소곡주(素麯酒)가 풍년이다. 서천군 관내서만 72개 양조장에서 소곡주를 생산한다. 한 군내에서 동일주류를 생산 하는 양조장이 이렇게 많다 보니 주당들의 입장에서 보면 천국이 따로 없을 듯싶다. 맛이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너도나도 주명 앞뒤에 ‘소곡주’란 이름을 넣어서 출시한다. 경상북도 안동에도 8개 양조장들이 안동소주로 출시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소곡주는 1500여 년 전 백제의 향기를 고스란히 담은 술이다. 이 때문에 한산 소곡주는 국내 전통주 가운데서도 역사가 가장 오래된 술로 유명하다. 문헌에 따르면 소곡주는 백제 인이 즐겨 마시던 술이며 특히 백제가 멸망 했을 때 소복을 입고 이 술을 마셨다고 해서 ‘소곡주’란 이름이 붙었다는 유래가 전해내려 오기도 한다.

양조장 취재의 필수는 술맛부터 보는 것. 소라 같은 해산물과도 썩 잘 어울릴 수 있는 마주(약주) 16%.

역사가 오래된 술이다 보니 공정도 ‘시간’과 ‘노력’이 몇 배로 요구된다. 보통 가을 추수가 끝나면 햇곡식으로 술을 빚어 2~3일 숙성시켜 마시는 탁주 등 다른 전통주와 달리 한산 소곡주는 술을 빚는 시간 외에도 100여 일의 숙성기간이 필요하다.

멥쌀과 찹쌀, 누룩 외에 들국화, 메주콩, 생강, 홍고추, 모싯잎 등 다양한 부재료들을 이용해 빚은 소곡주는 숙성기간을 통해 특유의 향과 감칠맛을 낸다. 기타 아스파담 같은 조미성분이 전혀 첨가되지 않아 맛이 더욱 깔끔하고 진한 맛을 자랑한다. 모든 재료들은 자가 생산된 농산물이거나 전량 지역 농가에서 구입해서 사용한다.

술잔을 채우면 금빛 빛깔에 먼저 취하고 그 향기에 한 번 더 취하고 그 맛에 완전히 취해버리는 술이 소곡주다.

호남지방에서 한성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들이 한산에 들러 소곡주를 마시다가 과거 보러 가는 것도 잊고 눌러 앉아 소곡주만 마시다가 돌아갔다는 이야기, 술이 잘 익었는지 젓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다 취해버린 며느리, 술에 취해 잡힌 도둑 등 그래서 소곡주는 ‘앉은뱅이 술’이란 별명이 붙었다.

때문에 주당들은 소곡주를 만나면 그 명성에 체면불구하고 한 잔을 청한다. 그 맛이 궁금해서다. 소곡주는 주당들을 설레게 하는 술 가운데 으뜸으로 꼽는 술이다.

고종만 대표는 술 빚는 데는 첫째도 둘째도 정성이 들어가야 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시로 술 익는 과정을 체크해야 한다.

옥순가는 모싯잎 달인 물로 소곡주를 빚는다

서천으로 소곡주를 만나러 가는 취재길. 때는 봄이다. 그 것도 초봄이다. 농촌에서 맞는 초봄은 생기가 돈다.

이맘 때 농촌 길을 달리다 보면 어렸을 적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주전부리가 부족하던 시절 논둑이나 밭둑에서 캐먹던 멧부리도 생각나고, 자운영(紫雲英)이 핀 논둑길을 걷던 추억도 그립다. 하늘에는 종다리이가 노래도 했는데….

옥순가 양조장

서해안고속도로 서천IC를 빠져나와 서천군 시초면 시초동로에 위치한 ‘옥순가양조장(대표 高鍾萬, 成仁淑)’을 찾는 길은 한적한 농촌길이다. 여타 농촌 길에서 보이는 펜션이나 가든 같은 식당도 비닐하우스도 눈에 잘 띠지 않는다. 그래서 좋다. 농촌이 농촌다워서다.

옥순가양조장은 길가에 있었다. 크지 않은 양조장이지만 간판부터가 이색적이다. 영어로 된 간판이다.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영어간판은 옥순가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고은비(딸) 씨 아이디어란다.

이유인즉, “영어가 눈에 잘 띠지 않는 농촌에 영어 간판이 있으면 ‘뭐지’하며 관심을 갖게 될 것 같아서…”

옥순가(玉順家)는 가족회사다. 고종만, 성인숙 부부가 공동대표이고 딸 고은비 씨가 마케팅을 맡고 있다.

옥순가는 高 대표의 어머니 김옥순 여사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란다. 고 대표의 고모한테 어머니가 술 빚는 것을 배웠고, 고 대표는 어머니로부터 술 빚기를 전수 받았다고 했다.

옥순가의 소곡주는 여느 소곡주에 비해 색다르다. 밑술을 담글 때 모싯잎을 달인 물을 사용하고 솔잎과 생강도 넣는다.

덧술 때는 찹쌀 고두밥만을 넣는다. 그러고 나서 100여일 기다려 술을 뜨게 되는데 이렇게 나온 술이 16% ‘마주’ 소곡주(약주)다. 마주란 주명은 ‘마주 앉아 마시다’란 뜻이란다.

마주 16%를 증류하여 41%인 소곡화주를 출시하고 있는데 41%란 도수를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부드럽다. 목넘김도 좋다. 왜일까. 동증류기를 사용해서일까.

모시를 부재료로 술을 담그다 보니 생약주술인데도 유통기간을 길게 잡을 수 있다고 고 대표는 말한다.

깻잎과 모양이 비슷한 모시 잎은 칼슘과 마그네슘, 칼륨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물이다. 칼슘이 우유보다 무려 48배나 많아 뼈와 치아건강,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이 되는 식물이다.

모시 잎에는 플라보노이드 성분과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성분인 루틴 성분이 들어 있어 고혈압, 중풍, 동맥경화, 고지혈증, 노화 등의 성인병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성분이 들어 있는 모싯잎을 달여서 술을 빚고 있으니 옥순가 소곡주가 인기를 끌 수밖에 더 있겠는가. 또한 생주이면서 맛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도 모싯잎 때문은 아닐까.

고종만 대표가 마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양조장 운영의 기본은 정성입니다

고종만 대표는 “양조장 운영의 기본은 정성”이라고 했다.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술을 빚는 과정에 어느 것 하나라도 정성껏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술맛이 나오지 않더라는 것이다.

옛날 어르신들이 술을 담그기 전 부정 타지 말라고 금줄을 치기도 하고 목욕재배하고 나서 술을 담갔는데 이제야 이해가 가더란 것이다.

고 대표는 술 빚는 일과는 거리가 먼 공부를 했다고 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는데 논문으로 택한 것이 장승이었다고 한다.

장승은 나무나 돌로 다듬어 만든 사람 모양의 형상물(形象物)로 마을이나 절의 들머리 또는 고개 등지에 세웠던 일종의 수호신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신령시하여 제사를 지내거나 치성을 드리는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기도 했다.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고은비 씨가 옥순가 내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치성을 드린다는 것은 곧 정성이 들어가야 되는 것이다. 지금 고 대표의 경영철학은 바로 이런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지역언론이기도 한 고 대표에게 서천의 자랑거리를 묻자 서슴없이 “서천의 갯벌은 전북 고창, 전남 신안, 전남 보성·순천과 함께 한국의 갯벌로 지난해 7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을 만큼 자연 친화적인 지역”이라고 했다. ‘소곡주’나 ‘한산 모시’란 답이 나올 줄 기대했는데 역시 지역 언론인 다운 답을 내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고 대표는 현재 양조장이 있는 동네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하던 양조장을 이어 받기 전까지 인천서 살다가 고향으로 귀향했다. 그 만큼 고향 서천 사랑이 크다.

동증류기. 41%의 화주지만 예상외로 부드럽다. 동증류기 탓인가.

욕심 많은 고 대표, 과하주, 막걸리 출하 준비 끝

 

 

 

 

 

 

고 대표는 스스로 술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현재 약주술 마주와 소곡화주(41%)외에 개발하고 있는 술이 과하주(過夏酒)다. 개발중인 과하주 맛을 보니 풍미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맛이 어떠세요. 팔릴 만합니까?”

“언제 출하 하십니까”로 질문에 답을 대신했다. 기자 입장에선 마주 약주술, 소곡화주 보다 훨씬 술맛이 좋다.

일반인들에게 있어 과하주는 잘 안 알려진 술이다. 과하주(過夏酒)는 술 이름 그대로 ‘여름에 빚어 마시는 술’, 또는 ‘여름이 지나도록 맛이 변하지 않는 술’, ‘봄에 빚어 마시면 여름에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약주를 오래 보관하려면 술 빚는 과정에 소주가 첨부된다. 그래서 발효주와 소주의 단점을 보완한 술이 과하주인데 모르긴 해도 이렇게 빚는 술이 세계 유일의 과하주 제조법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하주는 ‘혼양주류’의 하나이기도 한데, 이러한 술 빚기는 누룩과 곡식을 주원료로 술 빚기가 이루어지는 동양권에서도 우리나라만의 유일한 방법으로 알려지고 있다.

옥순가의 과하주는 일반 과하주 보다 약간 도수가 높은데 최근의 트랜드가 반영된 것 같다.

고 대표의 욕심은 계속된다. 마주나 소곡화주는 약간 고가 이다 보니 마니아층이 아니고는 접근하는데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하여 막걸리를 개발 중이라고 했다. 도수는 10도와 13도 두 가지로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약주술인 소곡주는 많이 알려졌지만 같은 방식의 막걸리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술이다. 기대가 된다.

글· 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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