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술이다.
“오대산 산적두목”의 주유천하(酒遊天下)
초대석/ 시인, 수필가 용강 권녕하
이 글은 전부 사실이다. 등장인물이 실존인물인 까닭에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글을 읽다보면 그가 누군지 알 만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 글을 쓴다는 것을 그에게 사전에 알리고 동의나 허락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럴 필요 없다. 그의 술로 인한 에피소드는 전설적이기 때문이다. 전설은 저작권이 없다.
1. 죽지 않고 살아 오다
밤 10시경, 강원도 ‘연곡’에서 전화가 왔다. 서울에서 “점심 먹고 출발”한다는 사람이 “아직도 안 왔다”며, “혹시 서울에 있느냐?” 는 전화다. 가슴이 덜컥 내려안는다. 전화기 속에서도 한 숨소리가 난다. 강릉행 고속버스를 그것도 막차를 탔다고 쳐도, 이미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서울에서 점심 먹고 출발한 사람이 소식불통이 돼버렸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 그의 부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까만 다이얼 전화기 앞을 지키며, 속절없이 전화 오기를 기다리는 일 뿐이다. 결국 그날 밤을 넘긴다. 사람이 사라졌으니 비상사태가 발생한 격인데, 그의 부인이 하는 말은 “며칠 지나면 오겠죠.” 하며 체념 상태다. 이런 일이 이미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그렇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째 소식이 없자, 그의 부인은 결국 강릉경찰서에 실종신고를 냈다. 이후, TV에서 교통사고 뉴-스만 나와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속만 태우는 상황이 됐다. “그 사람에게 왜 술을 먹였느냐”면서, 생략한 듯 말이 끊어지는 짧은 사이에 “너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소리 없는 질타가 전해온다. 전화 벨이 울릴 때마다 찝찔한 기분이 영 개운치가 않더니, 한동안, 불이 날 것 같던 시외전화도 잠잠해지고, 조금씩 조금씩 망각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6개월 정도 지난 뒤에 갑자기 집에 나타났다. 꼴은 영락없는 거지꼴을 해가지고, 어깨에 늘~ 메고 다니던 카메라 가방은 여전히 어깨에 걸려 있었지만 빈 가방이고, 한 쪽 팔은 깁스를 한 채, 얼굴은 불콰하게 술이 취한 얼굴을 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기가 막히게, 천연덕스런 표정을 하고 마당에 들어서더라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 온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술에 취해 산길을 휘적휘적 걸어가는 그를 보고 간첩으로 오인한 산림감시원이 신고를 했다. 출동한 경찰의 불심검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증명할 신분증도 없고 -술 취해 잃어버리고- 묻는 말에 횡설수설하자, 그를 곱게 모시고 갔다. 이리저리 실려가다가 결국 간 곳이 바로 ‘삼청교육대’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정말 간첩(?)처럼 보이는 털보를 붙잡고 보니, 간첩은 아니지만 영락없는 “부랑자” 꼬락서니여서, “삼청교육대”로 보냈고, 그 곳에서 자신의 신분을 증명 -정신이 들어서- 한 다음 풀려났는데…, 그 날짜가 붙잡혀 간지 3일만이란다. 그럼, 5개월 27일간 어디서 뭐하며 지새다 6개월이나 지난 다음에야 집엘 찾아왔을까? 그 말을 전해들은 필자는 “왜 풀어줬대? 한 일 년쯤 가둬놓지”였다. 억하심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주변 사람들 속 썩이는 사람은 “콩밥”좀 먹어봐야 정신 차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꼭 콩밥이 아니라도 “특공훈련”, “해병대 신병교육” 훈련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생각인데…, 아니면, ‘또, 그런다’는 추측인데, 그만 그 추측이 적중하는 일이 일어나고야 만다.
다음 얘기를 하기 전에, 그에 대해 보충설명을 해야 된다. 그의 용모는 검은 수염이 얼굴을 다 덮을 정도로 털보다. 수염이 보통 수준을 넘다보니, 그를 아는 주변에선 그를 “오대산 산적”이라고 부른다. 왜, “오대산 산적”이냐 하면, 그의 집이 “오대산 소금강” 국립공원 들어가는 입구, 즉 ‘연곡’였기 때문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 뒤에 “두목”이라는 글자가 따라 붙었다. 글 좀(?) 쓴다고, 소금강 입구 연곡에 “허균사상연구소”라는 간판을 떡 하니 달아놓고, 오가는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다보니, “두목”으로 지위가 상승(?)한 것 같다.
2.마카! 거지꼴을 해 가지고
6개월간이나 사라져버리고도 천연덕스럽던 그 표정. 그 몹쓸 기억이 “스토리텔링”으로 떠돌아다닐 때 쯤, 불쑥 전화가 왔다. “나, 서울 가는데…, 그냥 가기 미안하니까…, 속초 새벽시장에 가서…, 갓 잡아 올린, 오징어 한 박스, 갖고 간다” 하고는 끊어졌다. 놀란 가슴에 그의 집으로 전화를 하니, 이미 먹통이다. 벌써 서울로 출발한 것이다. 설마! 오더라도 오후 정도 오겠지. 그럼, 가볍게 반주 한 잔 먹인 다음 보내야지…. 했는데, 오전 9시가 막 지난 시간! 사무실에 막 출근한 그 시간에! 그가 사무실로 들이닥치는 것 아닌가! 꼭, 같이 있다가 출근한 꼴이다. 그나저나 택시 트렁크에서 ‘냉동 오징어’ 나무상자를 꺼내는데, 어이쿠! 강원도 택시다. 강원도 강릉택시를 콜택시로 연곡으로 불러들여, 거기서부터 출발해 속초로 가서, 오징어 싣고 오는 길이란다. “나, 약속 지킨다. 오징어, 싱싱한 오징어 갖다 준다고 했잖아” 얼어붙은 그 오징어 몇 마리를 궤짝에서 잡아 뜯어 들고, 새벽부터, 굶은 채 서울까지 끌려(?) 온 강원도 택시기사 밥 먹인다는 구실로, 아침부터 막걸리 해장이 시작됐다. 그런 다음 약간의 여비를 마련하여 서둘러 쥐어주고 보냈다.
그런데, 그 택시기사의 태도가 한층 가관이다. 마치 그를 상전처럼 굽실대며(?) 모신다. “강릉에선…, 유명인사래요” 그래선지,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연3일, 사무실로 다시 찾아오는 강원도택시. 3일간 그를 싣고, 서울거리를 헤집고 다니며, 똑같이 밥 먹고, 잠 자고…. “택시…, 연료는 있어요?” 너무 궁금해서 물었다. “제 돈으로 채워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부인에게 고자질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밀어내듯, 떼 내듯, 보냈던 그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또 불쑥 찾아왔다. “강릉 갈 차비”가 필요하단다. “이번엔 꼭 집에 갈꺼지? 터미날까지 바래다줄까?” 그런 다음 부인에게 전화로 연결해 줬다. ‘분명히! 출발시켰다’는 것을 확인하는 인증절차였다. 그 정도로 철저하게 단속했음에도, 강릉으로 안 간 것은 물론이고, 소설 같고, 드라마 같은 기상천외한 사건이 그날부터 시작된다. 이 사건은 강원도 ‘안흥’에 살고 있는 그의 또 다른 친구가 빙긋빙긋 웃어가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필자에게 증언(?)한 사실이다. “지가, 김삿갓인가? 마카, 거지꼴을 해가지고” 하면서.
그는 떠밀려 나듯, 그렇게 서울을 떠날 위인이 애초 아니다. 그를 아끼는(?) 또 한사람이 경기도 부천에 살고 있었는데, 그날 그 둘이 의기투합(?)한다. 올 것이 왔다. 사무실에서 밀어내듯 출발시킨 그가 부천에 살고 있는 물건(?)을 불러낸 것이다. 그 물건도, 12월 말, 펑펑 눈 맞고 육교 위에 엎디어 있는 걸인에게 ‘무스탕 가죽코트’ 훌렁 벗어주고 집에 갔다는 위인인데, 그 가죽코트로 말하자면, 남편에게 선물하려고 파출부 일을 했다나? 음식점 일을 거들었대나? 이렇게 뒷감당 안 돼는 위인들이니, 대낮부터 잘~ 만났다. 술타령이나 벌일 줄 알았는데…, 그 둘이 한꺼번에 몽땅 사라져버린 것이다! 땅에서 종적을 감춘 것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지구를 떠나거라~”처럼.
이것들이! “휴거됐나?”, “물에 빠져 죽었나?”, “사고 당했나?”, “김상옥, 최은희처럼 납치라도 됐나?” 별별 생각에 잠도 못자고 끙끙거리며 속만 태운다. 그의 부인한테서, 강원도 전화기 불 난 것처럼 오는 것은 이미 각오했다. “왔어요?” 전화를 받았어도 꼭 먼저 물어 본다. “………” 대답 없으면, 아직 안 간 거다. 필자는 늘 죄인이 된 심정이다. 이것들 나타나기만 해라! 내, 그냥 두나 보자! 쥐어박아 버릴 테다! 이 악물고 다짐 해 봤자 소용없지만.
3. 걸어서 연곡까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단다. 정상인(?)처럼, “동부버스터미날”에서 조우(?)해서, 쐬주나 한 잔 걸치면서, 지나간 얘기도 하고, 그럴 생각으로 만났는데, 할 말은 많고 시간이 모자라, 고속버스를 놓쳤다는 게다. “빌어먹을! 이왕 버스 놓친 거, 술이나 한 잔 더 하면서~, 내일 가자!”로 합의를 봤고, “강원도 오대산, 물 맑고 산 좋고, 공기 좋고 그래서 술맛도 좋고 인심도 좋고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뭣도 좋고…” 이러다가, 후천개벽이라도 할 아이디어처럼 “같이 가자!”로 발전했다. 그것도 “걸어서 가자!” 였다.
“첫 날은 어데서 잤어?”, “양수리 강변에서 …, 낚시꾼 옆에 앉아, 술 마시다가 잤지”, “둘이서? 아니 낚시꾼까지~ 셋이서?”, “잠은 무슨 잠, 밤 새 술 마셨지”, “그러다 병 나고 사고 당하고~ 죽으면 어떡해?”, “…….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지”. 이 인간하고 말하려면 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자연’이 끼어든다. 강원도를 사랑하고 청정 숲과 맑은 물을 사랑하고 스키장 건설을 반대하고 동강 댐을 반대하고 강원랜드를 반대하고 등등 강원도를 건드리는 모든 행위를 ‘자연훼손’으로 간주한다. 자연훼손 반대 수준이 ‘환경보호’ 차원이 절대 아니다. 사랑하는 여자, 애인을 누가 건드리기나 한 것처럼 펄펄 뛴다. “강원도에 나무 한 그루 안 심은 것들이~ 청정자연 강원도를 즐기기나 하지, 망가뜨리고 있다” 는 그 인간의 철학은 자연 특히 강원도의 자연이 거의 신적인 존재와 필적한다. 아! 그러고 보니, 평소에도 걸어 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도로가 뚫리면 다 망가진다”고 하며, 나중엔 거의 병적일 정도로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때 그 병이 다시 도졌는지도 모르겠다.
“둘째 날은 어디까지 갔어?”, “지평까지”, “빨리 갔네?”, “연곡까지… 일주일이면 간다! 중간에 쉬었다 가도, 일주일 걸리고”, “모텔?”, “안흥!”, “안흥 찐빵?”, “안흥에 아는 사람 있지”, “그 사람, 전화번호나 연락처 말해 봐!” 필경 또 사라질 터이니 얼른 받아 적어놔야 한다.
“셋째날은~ 안흥에서 잠 잣겠네?”, “며칠 쉬었지”, “며칠씩이나?”, “그 친구가 붙잡아서” 안흥에 불쑥 나타나서리, 사람은 하나 따라붙었는데, 둘 다 거지꼴을 해가지고, 그래서 몸부터 씻고 “오늘은 쉬었다 가라”고 했을 것이다. 술, 밥 먹이면 자고, 일어나면 또 술, 밥 찾고. 이래가지고는 또 쫒겨날 행색이 뻔하다.
안흥을 나와서(쫒겨난 다음) 접어든 길이 “태기산”이란다. 이 산만 넘으면 “오대산 진고개”로 난 길이 방긋 웃으며 반긴다나? 진고개만 넘으면 바로 연곡. 말이 그렇지 오죽 높고 험하면 고개일까. 태백산맥 허리에 겨우 실금처럼 난 고개길을 맨 발로 넘는 격이다. 엉겁결에 -그 인간 팔자나 그 물건 팔자나- 강원도길, 고행(?)길에 따라나선 그 물건, 꼭 연말 여성잡지 별책부록처럼 뒤끝에 붙어 다녀야만 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제와서 어쩔건가. 산적두목 같은 그 인간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태기산을 헉헉대며 넘다말고 “나 여기서 붙잡혀 갔었다”. 간간히 구비구비 산길을 넘나드는 통나무 실은 산판 트럭이, 시커먼 연기 내뿜으며 산길을 오르다말고, 힐끗 힐끗 백밀러로 훔쳐보는데, 또 신고할 것 같더란다. 그래서 해 준 대답이 “붙잡혀 갈만도 했겠다”였고, 또 붙잡혀 가면, “교대생 동기 배출하는거지~”였단다. 이후, 이 두 사람 앞에서 학벌 자랑하다가는 박살난다. 어느 술자리에서 S대 출신이 “K대, Y대도 학교냐?” 하고 말했단다. 그 말의 진의는, 국가 고위직, 사법부, 정계, 재계 모두(대부분) “S대 출신”들이, 끌고 밀고 한다고 비아냥거리는 투로 한 말인데, 이 두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게 화근이다. “난, 교대출신이다!”, “어느… 대요?”, “교육대!” 더 이상은 안 물어봐서 모른다.
4. 마더 테레사 부인
그의 부인한테 전화가 왔다. “또, 뭔 일 있어요?”, “여기 있어요. 근데~ 안 가요”. 벌써 보름째 ‘먹고, 자고, 마시고’ 란다. 소금강 무릉계곡에 올라 ‘율곡 선생’ 흉내도 냈다가, 청옥산 너머 경북으로 갔다가, 낙동강한강 발원지(發源池)를 새롭게 발견한다고 휘~젖다가, 적멸보궁 길로 타 넘어 속초를 갔다 왔다, 태백산 산등성이를 빨치산처럼 들쑤시고 다니다 와서는 또, 마시고, 자고, 먹고를 반복한단다.
그의 부인도 대단한 사람이다. 아니, 위대한 분이다. 고향이 경기도 수원인데, 펜팔로 만났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펜팔 하면 뭔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는 남녀간에 제법 낭만스럽기 조차 했던 ‘연애편지’였다. 대중가요 노래책 혹은 대중잡지, 학생잡지 뒤쪽에 나이와 성별, 주소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 맘에 드는 ‘이름’, ‘지역’, ‘나이’ 등을 골라 -고를때부터 벌써 찌릿찌릿한 느낌으로- 어른들 몰래 편지를 보냈다. 답장이라도 오는 날에는, 너무 흥분돼,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에 헉헉거리던 기억. 잊기 힘든 추억인데, 그 인간은 그 과정을 정말 실천했다.
낮 선 곳에 사는 남녀간에 편지와 사진을 주고받고, 한 글자 한 구절 마음을 주고받던 소녀가 그의 부인이 되더니, 헌신봉사에 현모양처에 ‘마더 테레사’ 역할까지 한다. 그걸 그 인간이 알아나 주면 괜찮을 텐데, 제 마누라 소식 물으면, 싱겁고 덤덤하다. “잘 있다. 집 잘 지킨다”. “전화가 올 때마다… 내가 미안할 정도다. 잘 좀 해드려라”, “나두, 미안하지” 이게 끝이다. 하여간 연곡에서 ‘엄마’ 같은 마누라 옆에 있다니 됐고, 더 이상 자세히 알려고 할 필요도 없고, 알아도 소용없다. 알 수도 없지만.
그 인간과 그 물건이 거기 퍼질러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했는데, 그날 저녁 또 전화가 왔다. 강원도 전화는 조용하다가도 한 번 오기 시작하면 폭우처럼 쏟아진다. 꼭 강원도 산골짝 날씨를 닮았다. “좀 전에… 떠났어요”. 서울 갔으니, 기다리던지, 피하던지, 알아서 잘 대처하라는 전화다. 에고~ 마중 나갈 형편은 아니니, 난 집에나 갈 밖에. 그런데 이것들이 오질 않는다. 기다리는 것도 한 두번이고 하루 이틀이지, 조바심도 나고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일손도 제대로 안 잡힌다.
그때부터 딱 한 달 만에, 그 인간을 용산역 광장에서 맞닥뜨린다. 놀란 눈에 마치 이티(ET)처럼, 손가락으로 서로를 찔러보면서, 조우(?)한다. “그동안 어디 있었어?”, “용산역”, “ 역전 앞…! 광장에서?”, “응, 밥도 주고, 술은 얻어 먹고”, 아래 위를 살피다가 “카메라 가방은 여전하군?”, “카메라는 없다”, “왜? 술 바꿔 먹었구나!”, “무거워서 안 갖고 다닌다”, “그럼 빈~ 가방만 메고 다녀?”, “허전해서”. 세상 천지 이런 기인(奇人)을 처음 본다며, 일행이 번듯한 한식집으로 모셨(?)는데, 그 인간에게서 풍기는 냄새 때문에 코를 싸쥐고 ‘스스로 철수’해버린다. 그에게는 번듯한 음식점이 오히려 불편하다.
연곡에서 서울까지 또 걸어왔단다. 둘이서. 부천 사는 그 물건과 함께. 서울 간다고, 고속버스 차비, 마누라한테 받아서, 홀랑 술 사 마시고, 산짐승처럼 태백산맥 등줄기를 넘나들다가, 또 차비 달래서, 술 사먹기도 한 두번, 이번엔 진짜 서울가기로 결심하고 나왔는데, 그 인간 하는 말, “서울까지 배웅” 왔단다. 걸어서. 그리고 결국 혼자 떨어졌는데, 용산역에서 맞닥뜨린 것이다. 아! 머리 아파! 내 팔자야.
5. 똑같은 놈들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과 다시 만나려고 애를 써도 잘 안 만나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별스런 노력 없이도 길거리에서 곧 잘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 필자가 그랬다. 그런 특질을 ‘팔자’로 돌리면 그만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고 하는데, ‘술’은 아주 좋은 촉매제다. 다만, 서로를 찾고 끌리고 하는 상황하고는 별개지만. 전자는 대인관계 정도이고 후자는 ‘똑같은 놈들’일 때 성립된다. 이런 현상을 필자는 “동질(同質)에 대한 그리움”으로 해석한다.
이 과정에서 ‘술’은 그 동질성을 시급하게 확인하기 위한 ‘괜찮은 도구’일 뿐이다. ‘도구’를 ‘목적’으로 착각하거나 하여, 음주를 자주하면 습관이 된다. 나쁜 습관은 자신의 건강도 문제가 되겠지만 주변 사람도 힘들어진다. 더욱이 과음하는 것도 버릇이 된다. 이 행위를 주변에서 받아주면 더 심해진다. 냉정하다는 소릴 듣더라도 즉각, 배척해야 한다. 서로를 위하는 길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퍼 올려도 마르지 않는 깊은 우물처럼 ‘둘 사이에 주고받는 생각과 철학과 사상과 종교와 정념과 감성’이, 이 세상 율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 예를 들면, 자정을 넘기고 새벽닭이 울어도 아직 더 퍼 올릴 우물물과 두레박이 건재하다면, 예외로 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인연과 사건이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는 아니니까.
10여년 소식이 없던 그 인간의 행적이 최근 드러났다. 그래서 또 만났다. “한 잔 해야지?”, “술…, 끊었다”, “왜?”, “죽고 싶으면 알아서…”. 의사 말이, 무섭긴 무섭나보다. 아울러, 강원도까지 걸어서 왕복했던 그 물건(?)은 이미 이승 사람이 아니다. 그 친구를 먼저 보낸 슬픔에 ‘과음의 나날’이 지속됐고, 몸을 상하는 됐다는 것이다. 동질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컷고 잃은 슬픔이 그리 컷 길래, 평생 즐기던 ‘술’에 몸을 상했을까. 그리하여 -시간이 많이 남아서- 엄마 같은 마누라와 단 둘이, 깨(?) 밭을 일구며 살고 있단다. “정말, 한 잔도 안 된대?”, “약속했다!” 이 인간이 이런 인간이다. 약속이라면~, “말 안 하겠다고 약속해서 여태 말 안했지만…, ‘청송보호감호소’에 있었다”, “어디?…!”. 5개월 27일간의 미스터리가 와그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래~, 산적은 산적이고 술은 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