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러하듯
임재철 칼럼니스트
세상이 뭐라 한들 녹음 짙어 가는 계절의 상달 5월이 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연초록빛이다. 2022년 한국의 봄은 어떤 이에게는 잔인한 계절이 되었고, 어떤 이에게는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봄날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굴곡진 계절은 지나가고 여름 햇살을 보게 된다. 세상이 아무리 요란해도 자연은 본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하는가 보다. 그러면서 삶이 힘들어도 이런 계절의 시간에게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5월, 참 좋은 계절이다. 신록도 좋고 지천으로 만개한 꽃들도 화사하기 그지없다. 5월에 태어나 다시 5월에 천상에 오른 수필가 피천득은 ‘오월’이란 시에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고 노래했다. 시인 노천명은 ‘푸른 오월’에서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은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라고 시를 썼다.
그러나 지금 우리 주변은 소란스럽고 불안하기 그지없다. 시작도 하기 전 첫 단추부터 잡음이 계속 나왔던 많은 요직 인사들로 인해 완성되지 않은 내각과 함께 그냥 초호화 취임식으로 출발한 새로운 정부를 비롯, 거기에 떼를 지어 맹종하는 어리석은 다수가 서툴게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얘기할 필요 없이 신선함이 1도 없고 상식적으로 봐서 내로남불에 헛발질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즉 총체적으로 위기의식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탐관오리의 가려진 치부가 드러나 국민적 실망감을 안겨주었던 이들의 인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줄줄이 파기된 공약 등 현 우리 경제의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심히 의문시된다. 전 분야에 직격탄을 맞은 시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다. 코로나 후유증에 우크라이나 사태, 그리고 전 세계를 덮치고 있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 금리 인상, 안 오르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물가상승 속도가 가파르다. 즉 소비자 물가가 10년 만에 4% 넘게 오르고 있다. 고유가에다 수입 농축산물 가격 급등으로 체감 물가는 무려 30% 이상 올랐다. 첩첩산중인 불안정한 정국에 모두 숨이 차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 즉 일용할 양식과 희망이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과 장래의 희망으로 삶을 살아간다. 때문에 우리의 의사를 대변해야 할 새 리더들의 부패와 부도덕이 이미 노출돼 추진 동력이 급격히 상실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나아가 해결 방안을 제시하거나 합리적인 대안 세력이 되지 못할까 하는 의문이다. 그 결과로 우리의 삶과 별 상관도 없는 일로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싸움만 하다가 끝날 버릴까바 벼라별 생각이 다 든다.
앞선 많은 정부에서도 여러 국정과제들을 요란하게 내세웠지만, 미사여구에 그치면서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 그러니까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바깥세상 돌아가는 것과는 무관하게 그들만의 식으로 살아가야 했던 허망한 시절이 많았던 거다. 경제가 망가져도 정치적 이익과 기득권 보호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런 모습이 전혀 바뀌지 않고 그대로 답습된다면 국민에겐 희망이 없어지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 암울 해진다.
세상에 절대 공짜는 없다. 그렇듯 우리는 지금까지 정권의 횡포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아왔다. 그래서 자기 의견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의사를 대변할 권한을 가진 나라에서 살아왔고 그로 인해 영혼 없이 너덜난 것도 우리 국민이었다. 한마디로 한심하고 어지러웠다는 표현이 맞다 하겠다. 국민은 그런 리더십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 제대로 된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된다. 포퓰리즘 남발이 일시적으로 당근이 될 수 있지만, 훗날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국민이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정부를 꿈꾼다. 과거로가 아니라 미래로 가는 우리의 일상과 평화, 희망에 대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신경 써야 할 정부, 그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정부의 힘과 이에 의존하는 사회 경제적 파이가 크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 하는 대목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된 나라 중 산업화와 민주화에 가장 성공한 나라로 한국이 꼽힌다. 다소 평가가 식기는 했지만 한국을 부러워하고 배우려는 나라들이 여전히 많다. 빈약한 자원과 좁은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을 무대로 우리 기업과 개인이 흘린 피와 땀의 양이 절대 적지 않다. 하물며 최근에는 지구촌으로 확산하는 한류 열풍의 파급력이 대단하다.
하지만 실제 우리 내부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아직도 미흡한 점이 허다하다. 동시에 OECD 국가 중 불평등과 양극화가 가장 심한 나라 중의 하나가 대한민국이다. 또한 보편적 상식이나 원칙에서 보면 글로벌 스탠더드와 다른 것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정치권 혹은 관료 사회가 그렇다는 지적이 충격을 토로하게 한다. 이러한 지적에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무엇을 고쳐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존재감이나 희미한 정책 방향 등 모두 흐릿하다는 평이 크지만, 새 정부는 자유와 인권, 공정과 실용을 유난히 강조하며 출발했다. 더불어 용산시대와 대통령실 축소 등 정부 조직 슬림화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했다. 그렇지만 새 정부가 당면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대내외 상황이 절대 녹록치 않아 보인다.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는 물론 IMF 위기에 거의 버금가는 위기감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게다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게 없는데다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궁금한 게 많다. 그도 그럴 것이 21세기 이 첨단정보화 시대에 대통령 집무실 등과 관련 무속(巫俗)과 관련된 어이없는 주장들이 이어지고 있고, 무슨 도사라는 사람의 신기에 의지해 업무를 추진한다는 등 상식이나 합리적인 이성, 더욱이 공정이나 실용과도 거리가 먼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세간의 소문이 파다하기에 말이다. 그보다 더 큰 악재는 언론마저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절벽이 되어 편승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나 더. 문제는 실용적인 정책 추진을 방해하는 철옹성 기득권층을 비롯 현실의 벽이 높고 두텁다는 사실이다. 국내의 비실용적 요소나 잔재들이 워낙 뿌리가 깊고 고질적이라 하루아침에 바꾸기 힘들다는 것이다. 만약 이와 타협하고 적당히 버무려 넘어가면 또 후퇴하고 성장 동력은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최고 권력자가 모순 없는 실용적 사고와 행동을 몸소 공정하게 실천하는 것이 우선이다.
한편 새 정부를 꾸려갈 사람들은 법을 이야기하고 공정과 정의를 논하기에는 이미 아니, 어쩌면 그들 또한 대다수 국민의 마음을 떠나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정권을 원하지도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더 늦기 전에 당장 시급한 것이 민간 경제주체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회복의 불씨를 살리는 것이다. 그것이 민생이고 경제다. 또 그들이 천명하고 강조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피폐한 서민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가 가장 큰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맑은 정치를 시작하는 것이고, 평탄한 삶의 일용할 양식과 희망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새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신속하게 행동에 옮겨야 한다. 지금 이념이나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쳐 국익을 팽개치는 행위는 절대 금물이다.
신록이 아름다운 시절, 꽃과 나무는 나대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혼미하고 아프다. 이 또한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찰나이리라. 저마다 부모를 존경하고 후세대들의 사랑을 떠올리는 ‘가정의 달’ 5월에 당신의 오월은 어떤가요? ‘나는’ 늘 그러하다. 그리고 말없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