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 신화 이야기(28)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28)

 

 

남태우 교수

디오니소스는 한 손에는 술의 신을 상징하는 지팡이와 다른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디오니소스의 술은 쾌락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디오니소스의 술은 무수한 생명이 뒤섞여 있는 카오스의 웅덩이를 상징한다. 디오니소스는 군중들을 향하여 자신을 ‘바쿠스(Bucchus)’로 소개하였다. ‘바쿠스’는 씨앗의 싹을 뜻한다. 씨앗은 땅속에 묻혔다가 제 몸을 썩히고, 싹을 내고, 자라고, 열매를 맺고, 열매가 다시 대지에 들어 제 몸을 썩히며 또다시 싹을 낸다. 이것은 생성과 소멸의 영원한 반복의 이치와 긍정과 창조를 의미한다.

사티로스극(Satyr play)은 디오니소스를 찬미하는 주신 찬가에서 시작되어 비극과 동시에 발달한 짧은 연극이다. 기원전 6세기 말 아테네에서 열린 디오니소스 대축제 때 처음 시작되었다. 사티로스는 얼굴은 사람의 모습이지만, 머리에 작은 뿔이 있고, 하반신은 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화 속 인물이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시종으로서 디오니소스 숭배를 상징하는 지팡이나 술잔을 든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사티로스극은 디오니소스를 찬미하는 주신 찬가에서 시작되어 비극과 동시에 발달한 짧은 연극이다. 기원전 6세기말 아테네에서 열린 디오니소스 대축제 때 처음 시작되었다.

 

형식에 있어서는 비극과 유사하지만, 소재에 있어서는 전설 가운데 그로테스크한 부분을 택하거나 또는 전설을 그로테스크하게 취급하는 드라마를 말한다. 디오니소스의 양아버지인 실레노스(Silenus)가 겁쟁이에다 음탕하고 포도주를 좋아하는 11명의 사티로스로 이루어진 합창단을 이끌고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의 대사와 제스처는 흔히 음란했다고들 하며, 이들은 또한 ‘시킨니스’라고 하는 격렬한 춤을 추었다고 한다.

 

고전기에는 비극 4부작의 제4부를 이루고 있었지만, 후기에 가서는 비극 경연 전체를 통하여 단 한 편만이 공연되었다고 한다. 플리우스의 프라티나스가 ‘사티로스극’을 창안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 말은 그가 처음으로 ‘사티로스극’을 디오니소스 제전에 소개했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3대 비극작가들은 모두 ‘사티로스극’을 썼는데, 오늘날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사티로스극’은 에우리피데스의 <퀴클롭스> 뿐이다.

 

디오니소스를 표현할 때 거의 대부분이 머리에 포도 넝쿨을 쓰고 있는 것으로 상징한다. 이유는 그는 술의 신이며, 사람들에게 포도 제배법과 포도주 담그는 법을 가르치며 동시에 자기의 신앙을 전파한다. 디오니소스가 헤라 여신 때문에 미쳐서 돌아다닐 때 제우스와 헤라의 어머니인 레아가 디오니소스의 병을 치유해 주고, 디오니소스의 축제 때 행해질 종교 의식을 전수해 주었다. 그때는 새끼 사슴의 가죽옷을 입어야 하기에 디오니소스의 옷은 사슴털 가죽옷이다. 성인이 된 디오니소스의 손에는 삿갓 모양의 손잡이가 달리고 덩굴장식이 화려한 튀르소스(thyrsos)라는 지팡이가 들려져 있다.

 

황소, 뱀, 담쟁이넝쿨과 와인은 주신 디오니소스의 특징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 상징이며, 디오니소스는 사티로스(satyrs), 켄타우로스(centaurs) 및 실레니(Sileni)와 깊은 상관성이 있다. 그는 종종 표범을 탄 모습, 표범 가죽을 걸친 모습 또는 퓨마(panther)가 끄는 4륜 마차를 탄 모습으로 보여주고, 그리고 또한 그가 소지한 튀르소스(thyrsus)로 인식된다. 그 외에도 그의 분신으로 포도덩굴과 거친 불모지, 독성이 있는 담쟁이 넝쿨, 무화과도 그의 신성성을 상징한다. 지팡이 꼭대기에 솔방울을 단 그의 튀르소스는 대지의 여신 키벨레(Cybele)와 연결된다.

 

사티로스(Satyros)는 술의 신 바커스(Bacchus)를 따르는 주색을 좋아하는 숲의 신들이다.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신으로 염소같이 생겼다. 코는 납작하고 머리칼은 뻣뻣하며 뿔이 있고, 염소의 귀와 꼬리가 달렸으며 발굽이 있다. 주색을 좋아하며, 보통 음흉하고 교활하게 묘사되며, 숲속에서 요정을 쫓아다니거나 인간에게 장난을 치며 소란을 부린다. 마르시아스와 실레노스는 사티로스에 속한다. 아테네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디오니소스 대축제에서는 비극이 끝난 다음에 사티로스극, 예를 들면, 에우리피데스의〈퀴클롭스(Cyclops)〉가 공연되었다. 거기에서 합창단은 사티로스의 모습을 모방하여 옷을 입었다.

 

그리스의 조각가 프락시텔레스는 사티로스를 동물적인 부분들은 흔적으로만 갖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나타냄으로써 새로운 예술적 유형을 창조했다. 헬레니즘 시대의 예술가들은 그러한 개념을 발전시켜 순전히 인간적인 것으로부터의 도피로서 반수(半獸)의 대상들을 익살스럽거나 강력하게 재현했다. 거기에서 합창단은 사티로스의 모습을 모방하여 옷을 입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Satyr’는 ‘호색가 또는 남자성욕 항진증 환자’라는 뜻도 된다. ‘Satyr play’는 고대 그리스에서 비극 다음에 상연한 어릿광대 놀음인 ‘사티로스극(劇)”을 뜻한다.

 

Dancing Satyr, Athenian red-figure psykter C5th BC. SATYR WITH WINESKIN

실레니(Sileni)는 반인반마의 괴물로 두 다리로 걸었으나 발에는 말굽이 있었다. 어떤 때는 말의 귀를 갖고 있는 때도 있으나 항상 말총을 달고 있었다. 신화는 없지만 그리스의 항아리에 자주 그려져 있다. 로마 신화에서 술의 신 ‘바쿠스(Bacchus)’와 함께 등장하는 반인반수 ‘실레니(Sileni)’이다.

Satyros, Centaurs, Sileni

포도는 대지에서 자라 대지에서 생명을 마감하는데, 포도주 또한 인간의 생명의 탄생에서부터 마감까지 함께한 생명수 역할을 한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포도송이가 달린 포도나무가 디오니소스를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지만 그리스인에게 그는 나무 전체의 신이기도 했다. 거의 모든 그리스인들이 ‘나무의 디오니소스’에게 희생제물을 바쳤다고 한다.

그의 신상(神像)은 종종 반듯한 몸뚱이에 불과한 경우가 있는데, 팔도 없이 망토를 걸치고서 머리를 나타내는 턱수염 달린 가면을 쓰고 머리나 몸통에서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가 뻗어 나온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디오니소스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어른이 된 디오니소스는 포도주 만드는 법을 터득해 동료들과 만취해서 즐긴다. 그러나 헤라가 디오니소스를 미치게 만들었다. 미친 디오니소스는 이집트와 시리아를 쏘다녔는데,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따라다녔다(디오니소스 추종자들은 마이나데스(Mainades)라고 불리는데, 그들 중에는 나귀를 탄 늙은 실레노스(Silenos), 그를 길러준 요정들, 반인반마인 사튀로스(Satyros), 왕성한 생식력의 소유자인 프리아포스(Priapos) 등이 있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무아지경에 빠진다. 디오니소스는 표범을 타고 손에는 튀르소스(Thyrsos)라는 홀(笏, 송악으로 장식, 끝에는 솔방울이 달려있다)을 들고 있었다. 가난하고 억압당한 사람들의 디오니소스 숭배 열기는 대단했다. 황소를 신으로 여기며 잡아먹던 의식이 디오니소스 숭배의 첫 의식으로 도입. 들판에 황소를 풀어놓고 소리 지르면서 쫓아다니다가 잡아서 고기를 날로 먹는다(신과 동화됨). 이러한 비합리적 행동을 통해 디오니소스 추종자들은 도취감과 열광을 만끽한다.

 

기원전 440년 1월에 열린 아테네에서의 주신제 ‘디오니시아(Dionysia)’와 레나에아 축제(Lenaia festival)는 디오니소스에게 헌정된 것이다. 초기 그에게 경배 드리는 디오니소스의 비의는 오르페우스교와 비교할 수 있으며 또한 연결된다. 고대에 존재하였던 혼합주의적 종교 운동 중 하나인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에 영향을 미쳤다. 고대 그리스에는 오르페우스를 교조로 모시는 오르페우스(Orpheus)는 디오니소스교의 창안자로 전해진다.

디오니소스는 신흥종교의 교주라고 말했지만, 그를 따르는 종교의식은 비밀로 지켜졌기 때문에 실제 디오니소스 비의에서 어떤 의식이 치루어 졌는지 제대로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비의에서 성관계가 중요한 부분으로 치루어 졌다는 것은 알려져 있는데 성은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욕구이지만 문화적으로 가장 억압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그리스나 로마와 같이 강력한 가부장적 문화에서 여성들의 성적 억압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로 디오니소스 축제날은 여성들이 축제에 참석하여 술에 만취하여 그동안 억압되어 있던 무의식을 해방시키고 일상에서 에너지를 쏟아낼 수 있는 날이었다. 그렇지만 내면 속의 억압된 무의식을 해방시키고 일상에서의 삶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축제였다.

 

신성을 획득한 디오니소스는 어머니 세멜레를 되살리기 위해 저승의 신 하데스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디오니소스는 어머니 세멜레를 올림포스 산정으로 올려놓기 위해서 하데스로 하강, 지하세계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하던 디오니소스는 바닥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레르네 호수 근처에서 하데스로 가는 길을 찾아낸다.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디오니소스는 프로쉼노스(Prosymnos 또는 폴륌누스 Polymnus)라는 이름의 청년에게 레르네 호수로 가는 길을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청년은 가장 빠른 길을 가르쳐 주는 대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자기와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돌아오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 디오니소스는 다시 길을 떠나 어머니의 영혼을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지하여행을 마치고 지상으로 돌아온 디오니소스는 그사이에 프로쉼노스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디오니소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화과나무를 남근모양으로 깎아 그의 무덤 위에 세워 마치 성행위를 하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디오니소스가 폴림노스 무덤에서 행한 이 의식은 훗날 디오니소스 제의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한편 고대 레르네 호수에서 밤마다 행해진 비밀스러운 의식이 폴림노스와 관련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테네에서는 매해 디오니소스를 기리기 위한 ‘디오니시아 대제전(Great Dionysia)’이라고 불리는 축제를 벌린다. 이 축제에는 정교하게 꾸민 행진이 행해지는데, 디오니소스 조각상과 함께 성스러운 남근(신의 남성적 생식력의 상징)의 복제품을 들고 행진한다. 디오니소스 교에 입문하는 입문자들이 치르는 신비의식에는 과장된 크기로 만든 디오니소스 신의 모형 음경을 덮은 베일을 벗겨내는 충격적 행사가 포함된다. 79년 ‘베스비우스 화산(Mount Vesuvius)’ 폭발로 파묻혀 버린 폼페이 근처의 유명한 “신비의식의 마을(Villa of the Mysteries)”에는 다양한 디오니소스교 입문의식들의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디오니소스는 황소와 깊게 연관된 부활의 또 다른 신이었다.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 올림피아(Olympia) 찬송에서 헤라를 위한 축제연에 디오니소스는 ‘거친 황소 발 굴림이’ 있는 황소로 초대되었다. 독일의 그리스 신화학자인 월터 버커트(Walter Burkert)는 “Dionysus는 종종 뿔이 있는 황소로 묘사되고, 소아시아 미시아의 도시 키지코스(Cyzicos/Cyzicus)에서는 황소모양(tauromorphic)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인용하였다.

또한 디오니소스는 티틴족에게 황소 송아지로서 그리고 불경한 먹잇감으로 살육당했다. 시종들인 티탄들이 디오니소스를 습격하여 사지(四肢)를 토막 낸 뒤 여러 가지 향초를 넣고 몸뚱이를 삶아서 먹어 치웠다. 그녀의 자매인 미네르바(Minerva)는 그 행동에 가담하긴 했으나 디오니소스의 심장을 빼돌렸다가 유피테르가 돌아오자 그 범죄를 폭로했다. 분노한 유피테르는 티탄들을 살해하고,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그 심장을 안에 넣은 조상(彫像)을 만들고 그를 기리는 신전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그가 어렸을 때, 티탄 족들은 그가 좋아하던 거울과 회향풀을 이용해서 그를 꼬여 냈다. 그리고는 칼로 디오니소스의 몸을 일곱 조각으로 찢었다. 티탄들은 살 조각을 커다란 솥에 집어넣고 끓여 버렸다. 그때 물에 끓이지 않은 것은 심장뿐이었고, 여전히 살아서 뛰던 심장을 아테나 여신이 구해 내서 새로운 디오니소스를 탄생시켰다. 이는 와인과 부활에 관련된 영원한 메시지이다. 베어지고 헐벗은 채 남아 있는 겨울 포도밭 풍경은 이 비극적인 신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모든 게 잘려나간 채 황량한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봄이 되면 디오니소스는 다시 살아나 생명을 이어 간다. 디오니소스, 오시리스, 예수는 이렇게 동일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희생과 부활, 죽음과 새 생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음주문화칼럼니스트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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