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酒동행
꽃잠, 꽃잠 프로젝트
문 경 훈 교사(지혜학교)
살다보면 예기치 못 한 만남에 반가울 때가 더러 있다. 길을 가다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날 때라던 지, 꼭 가봐야하지 하고 점 찍어 놨던 가게를 까맣게 잊고 지내다 어느 날 우연히 들른 동네에서 그 가게를 만날 때라던 지 아니면 이제 막 알아가는 사람이 알고보니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똑같이 좋아하고 심지어 서로 몰랐을 뿐 알고보니 같은 콘서트 장에 있었을 때 같이 말이다.
그런 만남이 지난 4월 말 아이들과 함께 3박 4일 동안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오랜만에 나에게도 찾아왔다. 힘든 여정 뒤에 도착한 숙소의 맞은편에 익숙한 글자가 보였다. ‘별무리 민박’ 그리고 ‘지리산옛술도가’. 이럴 수가, 내가 묵은 숙소의 맞은 편은 양조장이었다. 그것도 ‘꽃잠’ 막걸리의 지리산옛술도가…! 거짓말같지만 그 날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오면서 내내 혼성듀오 ‘꽃잠 프로젝트’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왔었기 때문에 절묘한 인연에 소름까지 돋았다.
꽃잠 막걸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혼성듀오 꽃잠프로젝트는 2015년 정규 1집 ‘look inside’를 세상에 발표한 인디밴드다. 소소하지만 아름다운 노랫말과 멜로디, 보컬 김이지의 큰 기교 없이도
사랑스러운 보컬이 어우러진 앨범은 비록 크게 히트하진 않았지만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개인적으론 타이틀곡인 ‘Home’을 좋아하는데 누구에게나 있을 어린 시절 시골집의 한가하고 따듯한 정취를 포근하게 그려낸 곡이다. 과장 좀 보태서 강아지가 하품하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한가하고 포근했던 어머니 산 지리산에서 이 노래를 떠올리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하여간 처음 꽃잠을 접한 후로 내가 얼마나 그 맛을 그리워했던가. 꽃잠 막걸리는 의외로 파는 곳이 적을뿐더러 1L에 달하는 용량 탓에 혼자 사는 자취인에겐 온라인 구매도 쉬이 망설여졌기 때문에 그간은 어디 마실 기회 없나 입맛만 다셔왔다. 알코올도수 6%의 꽃잠 막걸리는 분명 힙하고 인기 있는 술이지만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술이다.
심지어 누군가는 잘 못 만든 술이라고까지 평한다. 한 번에 술을 만들어내는 단양주가 분명 쉬운 술은 아니고 꽃잠은 단양주로 술맛이 일정치 않고 분명 들쭉날쭉한 편이다. 탄산이 너무 과할 때도, 신맛이 지나칠 때도, 혹은 되려 밍숭맹숭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 일정하지 못함이, 남들이 다 비슷한 길을 갈 때 혼자 평범함을 거부한 거칠고 투박함이 꽃잠의 매력을 배로 만들어준다. 같이 전통주를 공부하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J 푸드스타일리스트님은 꽃잠을 이렇게 평했다.
“꽃잠은 한여름 아무 생각 없이 벌컥벌컥 들이키기 제일 좋은 술이다.”
나 역시 이 말에 백번 동감한다. 꽃잠과 비슷한 유의 탁주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중 아직까지 꽃잠만큼의 기쁨을 준 술은 없었다.
내가 꽃잠을 처음 마신 곳은 서울의 전통주점 ‘윤주당’이었다. 윤주당은 지금은 두 말할 것도 없는 전통주의 성지고 최고의 인기주점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화려한 전통주 라인업과 주모님의 손맛, 정성, 입담은 윤주당이 왜 그토록 사랑받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내가 윤주당을 처음 갔을 때는 이제 사람들에게 이름이 점점 알려지고 있을 때였다.
벼르고 벼르다 혼자 찾아간 그 곳에서 이상헌 탁주도, 백수환동주도, 해월도, 봇뜰도 전부 처음 마셨다. 그리고 몇 번 더 이어진 발걸음에 이제는 윤주당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친구 Y군, J 푸드스타일리스트님, 윤주모님까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 인연이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이제는 너무 먼 곳으로 내려와 한 번 찾아가기도 어려워졌지만 SNS로 소식은 꾸준히 접하고 있다. 전통주 보급과 교육에 힘쓰고 있고 남산의 밤이라는 단 호박 탁주로 큰 인기도 끌고 있는 윤주당, 그리움과 동시에 꾸준한 응원을 보내고 있다.
아, 그리고 그 날 지리산에서 난 결국 꽃잠을 마시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학생들을 인솔하고 갔으니 당연하긴 한데…. 이실직고하자면 애들 재우고 한 잔 마실까란 생각이 들긴 했다. 마지막 날이었다면 한 병 사서 집에 가서 마셨을 텐데 하필 다음 날도 일정이 있었다. 반가운 만남은 허무하게도 안타까운 이별로 끝이 났다. 뭐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이참에 지리산을 한 번 더 갈까, 아니면 서울로 올라가면 제일 먼저 윤주당을 들를까, 이도 저도 아니면 택배로 받아서 친한 친구랑 나눠마실까라고 행복한 마음의 사치를 부릴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진짜 꽃잠 언제 먹지….?
◇ 필자 문경훈
▴1990년 출생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졸업▴한국전통주연구소 가양주반 수료
▴한국가양주연구소 전통주소믈리에 자격 취득 ▴한국가양주연구소 명인반 수료▴(현) 지혜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