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모르다 명절 때 처음 입에 댄다
지금 우리 사회는 주폭(酒暴)자들 때문에 병들고 있다. 술 먹고 행패를 부리는 단계를 지나 어린 아동이나 여성을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인까지 저지르는 사건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아이가 몹쓸 인간에 짓발피고 목숨까지 빼앗기는 현실에 울화가 치민다. 우리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이런 인간 말종자들이 평소에는 선한 이웃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사건을 저지른 자들 대부분이 술김에 그랬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러다 보니 술 먹는 것이 괜히 눈치가 보일 때도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우리 사회에 주폭자들이 생겨난 것은 군대나 법조계에서 불기 시작한 폭탄주가 문제요 통행금지 시간이 있을 때 빨리빨리 술을 먹는 습관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펴는 주당들도 있다. 밤은 짧고 12시까지는 귀가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며 급히 술을 마시게 된 것이 그렇다는 것. 이 주장이 맞든 틀리든 이제 우리 사회에서 올바른 음주문화를 펼쳐야 한다는 공론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술도 음식이다. 어린아이가 젖을 떼고 음식을 먹을 때는 이유식이란 단계를 거친다. 마찬가지로 술을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조심스럽게 어른들이 술을 가르쳐야 한다. 신체적으로 술을 먹을 수 없거나 병약자가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술을 먹고 있으니까 청소년기에 무조건 술 먹는다고 야단만 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음주문화를 가르치는 것이 상책이다.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특히 추석 때는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의 술자리 혹은 차례 후의 음복주(飮福酒)를 나눠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기회에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술 예절을 가르치는 기회로 삼으면 좋지 않을까.
음복의 의미는 단순히 가족 친지간의 우애를 다지는 것이 아니라 조상의 혼이 머물다간 음식을 먹음으로써 복을 받는 절차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 때문에 설이나 추석 또는 제사를 지내고 나서 음복주를 먹는 것은 중요한 의례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우리나라 청소년위원회가 청소년 음주실태를 조사하고 분석한 바에 따르면 청소년이 처음 술을 마시는 계기는 ‘방과 후 친구들과 놀다가’가 30%로 가장 많았고 ‘명절이나 제사 때 어른들이 권해서’가 18.5%로 두 번째로 많다고 한다.
이런 것이 현실이고 보면 이왕 음복주를 먹을 때 “어른이 주는 술은 마셔도 돼”라든가 “명절이니까 한잔해도 괜찮아” 등으로 자녀들에게 무조건 술을 먹도록 할 것이 아니라 술이 어떤 음식이라는 것쯤은 말하고 주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일부에선 술을 처음 입에 댄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나중에 장성해서 술에 의존적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지만 뒷골목에서 배우는 것 보다는 났지 않을까?
문제는 현재의 부모 가운데 제대로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익힌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중국의 ‘전국책(戰國策)이란 고서에 의하면 옛날 황제의 딸 의적이 술을 만들어 우왕에게 드렸더니 우왕이 그 감칠맛에 놀라 앞으로 이 술 때문에 나라를 망칠 자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술을 끊고, 그 의적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 큼 술은 중독성을 내포하고 있다. 술을 처음 배울 때 올바르게 배워야 어른이 되어서도 올바른 음주형태를 유지 할 수 있다.
술은 역사가 깊다. 어떤 의식이나 행사, 생활 속에 즐겨 마시고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다. 술이 없는 사회는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죽어서도 술은 필요하다. 특히 차례나 제사를 지낼 때 술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조상님과 교신할 수 있는 음식이 술이기 때문이다.
옛날 과거 급제를 해서 관리로 임명할 때, 임명 전에 술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 성품과 행동을 보기 위해서였다. 술 취하면 그 본성과 언행, 행실, 평소의 몸가짐 마음가짐 등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주도를 모르는 경박한 사람은 여기에서 실격을 하게 된다. 그래서 ‘술로 예를 이룬다(酒以成禮-禮記)’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때문에 술은 곧 인격이다.
주폭자도 근절하고 사회악인 성범죄자를 줄이는 길은 청소년 시절 풋술을 어떻게 배웠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자녀들에게 술을 무조건 금하기보다는 술 마시는 주도를 가르치는 것이 현명하고 필요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