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사람들이 술 마시는 법(1)

숭의전.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에 고려의 태조 등을 제향하던 사당

 

임진강 사람들이 술 마시는 법(1)

 

박용수(연천양조 대표)

 

 

임진강과 숭의전

 

박용수

2022년 임진강은 여름 내내 집중호우로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100년 만에 내린 물폭탄 같은 폭우가 북쪽 임진강 유역에 퍼 부어 내렸고 휴전선 아래의 연천과 파주 지역의 임진강 가에 사는 사람들은 군남댐 상황에 새가슴 같은 마음을 조리며 촉각을 세워야 했다. 그러다 사람들은 물이 불어나 수위가 올라가고 범람할 위험이 생기면 경고 방송과 재난 문자를 받고 긴급히 대피하였고, 다시 수위가 내려가면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그 지루하기만 한 긴 장마의 여름을 힘겹게 보냈다.

 

필자는 2017년에 평화누리길 11코스의 딱 중간에 위치한 임진교의 북쪽에 위치한 미산면 우정리로 귀촌하였고, 연천특산물인 율무를 사용하여 전통술을 빚는 작은 양조장 창업을 통해 인생2막을 시작하였다. 양조장 앞 율무밭 건너 임진교 아래로 아침마다 임진강의 물안개를 보면서 이른 아침에 마시는 한잔의 커피향은 서울 생활을 잊게 하기에 충분하였고 임진강 풍경은 중년이 넘은 내 삶의 운치를 한층 더 해 준다. 양조장 앞으로 흐르는 임진강은 그 아름다운 풍경에도 불구하고 올 여름 쏟아지는 폭우에 혹시나 강둑이 무너지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조아리게 하는 강이기도 한다.

 

연천양조장에서 출발하여 평화누리길의 북쪽으로 가면 왕징면 무등리를 지나 선곡리가 있고, 거기에는 올 여름 내내 임진강 사람들을 애타게 했던 군남댐이 있다. 그리고 다시 양조장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주상절리에 붙어 자라난 가을 단풍을 한 폭의 산수화 같이 품은 임진적벽이 나오고,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당포성을 지나 동이대교를 지나고, 금새 한탄강의 물줄기와 만나는 도감포의 합수머리를 거쳐 마포대교와 삼화교가 나온다. 삼화교에서 조금 내려가면 아미리 잠두봉이 나오고, 그 아래로 임진강 절벽 아래 자리잡은 숭의전이 들어 앉아 있다.

 

지금부터 600여년전인 1392년 고려에서 조선으로 한 시대의 왕조가 바뀌면서 새로 들어선 조선은 개성에 있는 고려 궁궐의 정전에 있는 고려종묘를 폐하고 이씨왕조의 종묘를 모시다가 한양으로 천도 후 이씨왕조의 종묘를 옮겨 갔다. 고려말은 홍건족과 왜국의 침입과 권문세가의 폭정에 몹시나 혼란하였기에 새로 들어선 조선은 건국 당시 민심을 수습하고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고려를 계승한다고 표방하였다. 또한 유학을 숭상하는 신진사대부들의 건국이념에 따라 전조인 고려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고려의 왕들과 공신들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지은 사당을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숭의전이다.

숭의전 대제 봉행 모습-촬영 박용수

조선 태조 이성계는 즉위하여 개성에 있는 고려종묘를 폐하고 이씨의 종묘를 새로 세웠는데, 민심수습과 전조의 예우차원에서 폐망한 고려의 종묘를 세우고 고려 태조를 포함한 8왕의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가, 문종 때에 정몽주 등 16공신을 함께 제사를 지내게 하고, 왕씨 후손들로 하여금 이것을 관리하게 하였다.

조선후기 영·정조 시대에는 여러 명의 관리를 임명하고 건물도 중건하는 등 정성을 기울였고, 일제강점기까지도 조선총독부가 이를 계승하여 왔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전각이 소실되어 제사가 중단되었는데, 1971년에 숭의전이 있던 자리가 사적 제223호 연천 숭의전지(漣川 崇義殿址)로 지정이 되고, 1973년에 와서 왕씨 후손들의 노력으로 정전을 복구하고, 그 후로 배신청과 이안청, 삼문 등을 차례로 복원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크고 작은 여러 제사들의 제례를 알아보려면 그 제례에 쓰이는 홀기(笏記)를 살펴보게 된다. 홀기는 집회나 제례 등 의식에서 그 진행 순서를 적어 낭독하는 의례문서이다. 숭의전의 고려종묘제례와 조선의 종묘제례에 사용되는 홀기를 기준으로 두 종묘의 제례를 비교하여 보면, 이것은 서로 같은 듯 하면서도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숭의전 대제 봉행 모습-촬영 박용수

조선종묘의 제례는 국조오례의에 근거를 하고 있고, 숭의전의 고려종묘 제례는 고려사 예지를 근거로 국교의 격위를 가지고 있다. 두 종묘제례는 표면적으로는 서로 같거나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우선 의례의 호칭과 배법이 서로 다르고 절차와 명칭에도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배법의 경우 조선종묘가 “홍평신 집홀”하는 것과 다르게 고려종묘에서는 “집홀 면복홍 평신”하며 좀더 복잡한 면을 드러내는 반면, 고려종묘가 초헌, 아헌, 종헌 후 각각 4배를 하는 반면에 조선종묘는 4배를 한번만 하게 한다. 나아가 명칭에서도 조선종묘의 찬례를 고려종묘에서는 알자라고 하는 등 서로 상이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두 종묘의 의례에 대해 전반

적으로 보면 조선종묘는 간편하고 쉽게 되어 있는 반면 고려종묘는 좀 더 복잡하고 엄격하게 되어 있어, 이를 통해 고려의 종묘가 더 원형에 가까울 수 있다는 해석의 여지를 열어 두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제례를 봉행하는 규모나 절차를 보면 양자의 차이는 현저하게 나타난다. 조선의 종묘제례가 제례악과 제례무를 완벽하게 갖추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오전과 오후에 영녕전 제향과 정전 제향으로 나눠 큰 규모를 갖추고 엄중하게 진행하고 있다. 반면에, 필자가 본 2017년 숭의전의 추계 대제는 제례악을 실연할 수 없어 녹음된 것으로 진행하였고, 제례무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었으며 제례에 참여하는 인원이나 관람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조선의 종묘제례와 비교가 안될 만큼 작은 규모였다.

 

북쪽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남한의 임진강은 연천에서 한탄강과 합류하여 파주로 흘러 가 한강과 만나 서해 바다에서 큰 바닷물이 되면서 강으로서 그 소임을 마치게 된다.

남쪽의 임진강 상류에 위치한 연천 숭의전은 중요한 문화재 중 하나로 조선과 고려의 문화가 가로질러지고 뒤섞이기도 하는 교착점이 되기도 한다. 특히나, 현대사로 넘어와서도 여전히 분단의 아픔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임진강과 한탄강이 교차되고 하나되는 연천지역에서 숭의전은 고려와 조선이란 두 시대의 문화, 남과 북이라는 한 영토 두 체제가 마주하고 있는 입체성을 띤 독특한 지역이다. 필자는 이글에서 임진강 강변에 살았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강변을 끼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즐겨 마셨을 술을 통해 그들의 삶과 그 삶 속에 베어있는 술 문화의 결을 따라 가 보고자 한다.

연천의 숭의전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반면에 숭의전의 건립에 대해서는 비교적 썩은소의 슬픈 전설로만 알려지고 있는데 역사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이 전설은 더더욱 애잔할 수 밖에 없다. 조선왕조의 종묘는 환란 후 중건되어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으며, 건물은 사적 제125호로 지정되었고, 종묘제례악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로, 종묘제례는 제56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또한 이 둘은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 걸작에 함께 지정되어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반면에, 고려왕조의 종묘는 나라가 패망한 지 오래되고 또 재미있거나 기억에 남을 만큼 역사적 스토리가 많이 발굴되지 않아서 인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조선 종묘에 비해서는 명맥만 겨우 이어오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기도 하다.

연천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 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피해가 컸던 외침인 거란과 몽고의 침입, 그리고 무신정권의 혼란 속에서도 자주

국가의 위상을 잃지 않았던 고려의 역사와 문화의 흔적이 참으로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이 연천에는 고려마을이 있었고 지금도 고려문화제 행사를 할 정도로 고려시대

의 역사와 흔적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가 이곳 연천으로 이주한 후 연천지역의 향토사와 지역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2018년에 종묘제례에 쓰이는 제주(祭酒)를 연

구하면서 재현과 복원을 하고자 노력을 하던 중에, 이를 알게 된 개성왕씨중앙종친회로부터 숭의전 제례에 봉행할 제주의 제조를 의뢰를 받게 되었다. 이것이 직접적 계기

 

가 되어 본격적으로 문헌을 조사하고 실험을 한 결과 우리가 알고 있는 술과는 또 다른 술로 왕실의 제례를 지내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묘제례에 쓰이는 제주는 오제삼주(五齊三酒)이다. 필자는 이 오제삼주를 복원하게 되면서, 이 술들을 2018년 숭의전 추계대제부터 지금까지 공식 제례주로 사용되고 있

다. 이렇게 숭의전과 인연이 된 필자는 숭의전 주춧돌에서부터 돌담에 낀 이끼까지도 이제는 필자의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되었다.

 

필자 : 박 용 수

▴(현)연천양조 대표이사▴(현)백학아이티 대표▴숭의전고려종묘제주제조자 지정(2021)▴전통주 주예사(2017)▴막걸리학교 수료(2015)▴넷크루즈 전무(소프트웨어 개발)▴S/W특급기술자▴CISA(국제정보시스템감사사)▴동국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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