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서 눈물이 날 때면 와인을…

임재철 칼럼니스트

 

지난 6월 친한 친구 두 명을 떠나보냈다.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어머니가 떠났을 때의 심정만큼은 아니었지만 상실감이 너무 컸고, 이젠 정말 각자도생 하며 뿔뿔이 흩어지는 나이가 되가는가 싶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는 생각과 이제는 정말 각자 알아서 살아가야 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뒤섞였다. 누구나 늙고, 언젠가는 홀로 남겨지고, 또 떠나야 하지만, 그렇기에 인생은 혼자인 것 같다.

 

한 친구는 방송사의 영상기자였고 한 친구는 신문기자였다. 그들 가족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슬퍼했고, 그 후 간간히 꿈에서 조우해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이고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여러 선후배와 지인들을 떠나보내 보았지만 요즘처럼 새삼 눈물로 다가오는 걸 보면 여러 의미의 시절인 것 같다.

항상 곁에 머물 줄 알았건만 이제 눈물만 남았다는 생각이다. 늘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인생길이며, 이미 먼 저곳으로 간 이름들은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참으로 서글픈 마음이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해도 가슴이 아프다. 세월이 갈수록 그리움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여름을 보내며 그런 저런 느낌을 적어 보는 필자이지만, 말하자면 때로는 혈육보다 더 진한 느낌이 드는 친구와 주위 사람들이 있는 거구나, 싶은 거 말이다. 강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며 우리의 인연과 만남들이 너무도 소중하고, 나이가 어리든 나이 많든 우리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같이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 유독 공감이 되는 시기이다. 시간은 흐르고 친구들이 떠나가고 가슴은 텅 비어 간다.

그립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 친구들이 떠나고 필자 역시 그 길을 바라보지만, 우리는 다 동등하게 나약하고 늙어가는 인간이고, 살아가며 서로의 사연에 깊이 개입하지는 않을지라도 언제든 일상을 기꺼이 위로할 수 있으며, 그 위로가 사랑의 마음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느낀다.

 

가을이 스며드는 지금 귀뚜라미가 벌써 도심을 적신다. 고단한 하루의 스트레스를 여린 울음으로 달래 준다. 그래서인지 왜 울어야 맘이 편해지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듯하다.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이럴 땐 나그네의 마음은 바빠진다. 시간이 계속될 것만 같은 낮에는 느끼지 못했던 회한과 아쉬움이 스밀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지난여름이 어떠했든 지금은 가을이다. 허나 가을은 짧다. 한창 무르익다가 불꽃을 이루는가 싶으면 순식간에 낙엽으로 흩어지고 마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또 세속에 시달린 마음을 좀 실어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카푸치노 한 잔에 마음의 헛헛함은 달랠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래서 와인 한 병을 찾아 들었다.

 

벌써 수십 년 전이 되어버린 사회 초년병 시절, 한 선배에게 끌려가 가격도 모르고 물처럼 마시다가 의식을 잃어버린 그 와인 말이다. 한잔을 기울이며 당시를 회상해 보니 말단 직원의 피로감을 달래주기 위해 사준 선배의 깊은 마음도 외면한 채 무슨 목축임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기억이 든다. 또 얼마나 한심 했을까 싶다. 그리고 중년이 되어 중국에 출장 갔을 때 중국 관리들과 저녁을 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와인을 박스로 놓고 마시는 걸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여하튼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부터 인류에게 와인은 최고의 음료이자 술이었다. 물이 적은 나라에서는 와인을 음료 대용으로 마시기도 했고, 축제와 잔치가 있는 곳에는 항상 와인이 있었다. 기독교가 유럽에 전파되면서 와인은 예배에 사용되는 거룩한 음료가 됐다.

 

플라톤은 와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 중 와인만큼 위대한 가치를 지닌 것은 없다.” 오늘날 와인은 아름다운 색깔과 지역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으로 인해 일반적인 술과 달리 고급스러운 술로 자리 잡고 있다. 와이너리, 포도 품종, 제조 방법, 숙성기간에 따라 병당 1000만원이 넘는 와인도 있지만 1만원 이하로 구매해서 마실 수 있는 와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와인이 있다.

 

아마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종류의 와인을 매일 한 병씩 마신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다 마실 수는 없을 만큼 다양한 와인이 오늘도 새롭게 출시되고 있다. 앞서 중국 와인 얘기를 잠깐 언급했지만, 포도주 하면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 지역을 떠올린다.

최근 중국도 포도주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국가이다. 물론 기후적으로나 지리학상 중국의 포도주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음료에 속한다. 하지만 산동성을 중심으로 중국 특유의 포도주를 생산하기에 이르렀고 높은 도수의 고량주를 마시던 중국인들이 여러 종류의 포도주를 즐기고 있다.

 

이어 잔을 더해가니 직장생활 때 대표적 서비스 회사였던 덕분에 와인 관련 강의를 많이 들었던 기억도 문득 떠오른다. 와인은 포도 이외에는 다른 어느 것도 첨가해서 만들지 않는다는 기억이다.

그리고 하루에 한두 잔씩 마시는 와인은 건강에 매우 좋다는 것도 새록새록 하는데, 최근 들어서는 와인을 지속적으로 마시면 심장병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게 한다고 하여 장수식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대개 식사 때나 취침 전 마신다.

 

무엇보다 와인은 맛있는 음식에 곁들이는 맛있는 와인이 제격인데 필자에게 와 닿는 것 한 가지는 와인을 마시면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감정의 진정작용과 스스로의 긴장도를 크게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를 중심으로 한 또래들에게 좋은 음료이자 술이 아닌가 싶다. 가령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숙면을 위해 한두 잔의 와인을 마셨다고 하니 와인은 건강의 좋은 친구라 여겨진다.

 

시간과 떠나버린 친구들의 그리움이 가슴과 어깨를 짓눌러 와인을 찾아 어쩌면 홀로 호사롭게 한잔 하려다 몇 잔 들어가니 청승맞게 가을 물타기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또한 마음의 헛헛함이 커 문장이 매끄럽지 않은 것도 어쩔 수가 없어 보인다. 필자는 나이가 들면서 삶의 진정성이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문득문득 사로잡히곤 한다. 내 열정의 시작과 끝은 어디였을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면 그 어느 것 하나 분명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저 확실한 사실은 어떻게든 현재까지 버티며 살아왔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날을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리라.

 

그래서 또 일상으로 돌아오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정치 관련 뉴스를 접한다. 멀리하고 싶어도 이에 함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갈수록 난장판이 되고 정치판에는 보편적 사고와 가치관과는 동떨어진 무리만 득실거린다. 요즘 들어 부쩍 민생이니 경제이니 하는 말들은 이제 공허함을 넘어 가증스럽게 까지 들린다.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끊고 싶을 만큼 지겨울 밥벌이, 그것들이 모여 삶을 이루고 사회를 이룬다지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철저히 외면하고 끈질긴 선동과 프레임 씌우기에 이미 대다수 국민이 세뇌되어 있다. 때문에 정권의 ‘무능’이라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은 무척 빠르고 거침없다. 해마다 찾아오고 해마다 떠나가는 가을. 그냥 왔다가 그냥 떠나가는 가을의 뒷모습이 언제부터 인가 너무나 쓸쓸해졌다. 올해도 또 이렇게 떠나보내야 하는 가을이 아쉽다. 이 찬란한 가을에 와인처럼 좋은 떠나버린 친구들을 생각하니 더 서글프다.

누군가 가장 아름다운 춤은 ‘멈춤’이라 했듯, 떠나간 이들이 보고 싶고 그리움이 깊지만 이 가을 세상에서 더디 가고 뚜벅뚜벅 삶의 내공도 더욱 아름다워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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