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는 지혜

술을 마시는 지혜

 

박정근(문학박사, 시인, 작가, 대진대교수역임)

박정근 교수

음주행위를 통해서 항상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 아마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손사래를 치는 사람도 있으리라. 술은 인간이 발명한 최고의 음식이라고 주장해도 어느 누구가 쉽게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 발명했다기보다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고 보아야 하리라, 그래서 고대 희랍신화는 포도주를 만든 디오니소스를 신격화시켰으리라.

 

하지만 술이 독이 되어 모임의 분위기를 깨고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술꾼들이 음주를 통해 기분이 좋아지고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지 못한다. 그들은 소통이 아닌 불통의 모습을 연출하여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찡그리게 한다. 자기중심적인 술꾼들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입장을 좁히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결국 술자리에서 불통의 대화를 하는 자들은 자신만의 주장을 고집하고 핏대를 올리며 상대방을 비난하는데 골몰한다.

술에 대한 상반된 모습이 도연명의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는 <음주 飮酒>에서 음주의 긍정적 효과가 부재한 모습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들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상반되어 어울리지 못한다. 우리는 흔히 술자리에서 두 가지 부류를 발견할 수 있다.

한 그룹은 술에 푹 빠져 취해있고 다른 그룹은 술자리에 끼어있지만 술을 멀리하고 멀뚱멀뚱 자신의 생각에만 골똘하게 빠져있다. 필자는 항상 전자 그룹에 속해있는 편이다.

어쩌면 술을 절제하며 멀리하는 자들은 이성을 고집한 나머지 좀처럼 술에 취하지 않으리라. 그들은 술에 취해 대화의 논리성을 잃어버린 자들을 경멸하기도 한다.

 

有客常同止, 언제나 함께 지내는 자들이 있었으나

取舍邈異境. 살아가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네

一士常獨醉, 한 선비는 항상 혼자 취해있고

一夫終年醒. 다른 자는 연중 내내 깨어있었지

醒醉還相笑, 깨어있는 자나 취한 자는 서로 비웃을 뿐

發言各不領. 각자의 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네

 

이 시에서 도연명의 시귀가 수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두 그룹간의 간극은 어쩌면 요즘 벌어지는 한국사회의 갈등과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다.

진보와 보수로 양분화가 되어있는 정치계나 양극화되어 있는 경제계, 동서로 나뉘어 무분별한 지역감정에 휘둘리는 국민들이 도연명의 시적 재현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 술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묘사하고 있지만 사실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전반적인 모습을 비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도연명이 그런 소통의 문제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얼굴을 붉히며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지고 논쟁을 한다고 해도 비판에 몰입한 나머지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기 쉽다.

술자리에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진실을 밝히는데 그리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 수 있다. 그저 논쟁은 상처뿐이 영광이 되고 설혹 이긴다고 해도 상대방을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히려 이기려고 안간 힘을 쓰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닫게 하는 동기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어차피 언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면 함께 술을 마시며 마음의 문을 열려고 시도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도연명은 술을 멀리 한 채 고고한 척 거리를 두고 있는 자가 표면적으로 좀 논리적으로 앞서 있다고 평가한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 있겠으나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양자 간의 소통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술에 취한 자는 그저 술을 마시는 시간을 즐기려는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도연명은 그의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規規一何愚, 고지식한 것이 지나쳐 어리석어

兀傲差若穎. 도도한 자가 조금 나아 보이는지라

寄言酣中客, 도취한 사람에게 말을 건네고 보니

日沒燭當秉. 해가 졌으니 촛불 밝히고 즐겨야 하리라

 

술자리에서 이러니저러니 따져야 소용없으니 차라리 술이나 마시며 취해보 자는 것이다. 시의 문맥으로 본다면 도연명은 후자의 편에 서있는 것이 분명하다. 논리나 실리를 떠나서 갑론을박한답시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논쟁은 무익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글로 나름의 주장을 할 때는 최대한 논리를 내세우지만 일단 술자리에 앉으면 가급적 논쟁은 삼간다. 술자리에서 논쟁하는 친구들이 언쟁을 하다가 싸움으로 번져 분위기를 망치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연명이 시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술자리에서 이성과 감성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후자가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술꾼들이여, 술자리에서 도연명처럼 덕담을 나누며 기분 좋게 술에 취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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