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배를 들어라! 치킨런!

여러모로 성숙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3집. ‘치킨런’ ‘요정은 간다’, ‘나의 노래’ 등이 수록되어있다.

音酒동행

 

축배를 들어라! 치킨런!

 

 

문 경 훈 교사(지혜학교)

 

어제 나는 기타를 팔았다. 기타를 잡은 지 10여 년, 별 볼 일 없는 실력은 둘째 치고 고가의 기타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fender사의 텔레캐스터였다.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이 뷰캐넌을 좋아해서 언젠가 그처럼 52텔레를 연주하겠다는 꿈을 키웠었다.

비록 삶에 치여 연습을 많이 하진 못 했지만 집에 있는 기타는 그 존재만으로 내가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또 앞으로 음악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었다. 한때는 길에서 기타를 연주하다 죽고 싶다고 수 없이 말하고 다녔는데….

 

돈 보다는 개밥그릇 속에 별이 더 아름다운 것이니 내가 가난을 택하고 가난 속에서도 밥보다는 낭만을 택할 것이라 믿었었다. 그러나 얼마나 헛된 믿음이었던가, 마주친 생활고 앞에서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된 건 결국 밥이 아니라 기타였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1집. ‘절룩거리네’와 ‘스끼다시 내 인생’, ‘행운아’등이 수록 돼있으며 2000년대 국내 100대 명반 중 39위에 올라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2010년 11월 6일 뇌출혈로 37세의 나이에 타석에서 내려온 고 이진원은 한 달에 100만원도 겨우 벌던 가난한 인디 가수였다. 그저 직업으로 가수가 하고 싶다는 조촐한 소원을 가졌던 그는 끝내 역전만루홈런을 치지 못 했지만 생전에 좋은 음악을 많이 남겼다. 현실적이고 솔직했던 그의 음악은 뚱뚱하고 가난한 한 인디 가수의 일기장을 보는 듯이 아팠고 당시 우리 사회엔 그 아픔에 공감하는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아쉽지만 그간의 음악 생활을 끝내는 마음으로 직접 제작한 첫 번째 앨범 <Infield Fly>의 타이틀 ‘절룩거리네’는 절룩거리며 세상을 걷는 청춘의 자화상이었다. “내 발모가지 분지르고 월드컵 코리아, 내 손모가지 잘라내고 박찬호 20승, 세상도 나를 원치 않아. 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 미친 게 아니라면” 내 발모가지, 손모가지가 부러져도 세상은 잘만 굴러가는 세상은 야속하게도 나를 원치 않고, 그보다 더 슬픈 건 세상이 왜 나를 원하겠냐며 체념하는 나 자신이다.

 

‘절룩거리네’가 솔직하면 상대적으로 완곡한 어법을 쓰고 있다면 같은 앨범의 수록곡 ‘스끼다시 내 인생’은 더욱 직설적이고 거칠게 자조 섞인 비판을 토해낸다. “똑똑하던 반장놈은 서울대를 나온 오입쟁이가 되었고”, “예쁘던 내 짝꿍은 돈에 팔려 대머리 아저씨랑 결혼을 했다고 하더군” 이처럼 냉소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결국 스스로도 ‘사시미’가 되고 싶은 한 낙오자의 넋두리일 뿐이다.


여러모로 성숙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3집. ‘치킨런’ ‘요정은 간다’, ‘나의 노래’ 등이 수록되어있다.

자신도 예상하지 못 한 1집의 성공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계속 음악활동을 이어가게끔 만들었다. 아쉽게도 그 이후 낸 앨범들은 1집 만큼의 성공을 거두진 못 했지만 그는 인디가수로써 음반을 직접제작하고 판매하는 방법을 통해 가수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했고 실행했다.

3집 <goodbye aluminium>은 현실을 받아들인 가수의 슬픈 자기고백이었다. ‘치킨런’ 치킨 배달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 무명 가수의 이야기로 “내 인생의 영토는 여기까지, 주공 1단지 그대의 치킨런”이라고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영원히 난 잊혀질 거야, 아무도 날 몰라봤으면 해”, “난 부끄러워 키작고 배 나온 닭 배달 아저씨”와 같이 당당하지 못 하고 부끄러운 낙오자의 비애를 보여준다. 2절의 “어제 나는 기타를 팔았어, 처음 샀던 기타를 아빠가 부실 때도 슬펐지만 울지는 않았어 어제처럼”는 개인적으로 꼽는 이 노래의 백미다. 가수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타를 파는 그 심정은, 비록 가수는 아니지만 나도 팔아보니 몇 배는 더 공감가는 대목이다.

 

이 노래가 더욱 슬픈 건 희망이나 세상에 대한 저항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그냥 찌그러져 있겠다는 서글픈 현실 순응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 순응은 열 두 번째 트랙인 ‘요정은 간다’로 처절하게 이어진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사는 건 아냐, 다 때려치고 어디론가 숨어버리고만 싶어. 아무리 버둥거려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 그 알량했던 자존심을 버릴 때가 온건가 봐” 곡의 시작부터 이어지는 자기 성찰은 내 얘기같이 현실적이어서 아프고 또 섬뜩하다.

 

그러나 그가 항상 체념이나 수용만 노래한 것은 아니다. “죽는 날까지 살겠어, 어렵지 않아. 난 자신 있어”라며 밝은 목소리로 외치는 1집의 ‘행운아’나 “덤벼라 건방진 세상아…나에겐 나의 노래가 있다 내가 당당해지는 무기”, “남들도 다 똑같아 이렇게 사는 거야 그렇게 배워왔어 속아왔던거지”라며 세상에 대한 저항으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3집의 ‘나의 노래’ 그리고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3.5집의 ‘축배’까지. 그의 음악 세계는 솔직한 좌절과 절망이 그리고 또 어떤 날은 저항과 희망이 공존하는 절룩거리는 청춘의 일기장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제의 나는 기타를 팔았지만 내일의 나는 모른다. 내 인생이라고 쨍하고 볕들 날이 왜 없을까. 이미 사고 싶은 다음 악기를 마음속으로 찜해두었고 그걸 희망이자 살아가는 이유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좋아,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어 오늘은 위로를 받아야겠어” 그 때 까지는 ‘축배’의 노래 가사처럼 위로를 좀 받아야겠다. 그리고 언젠가 올 그날에 축배를 들 것이다.

“축배를 들어라. 오늘을 위해서 내일을 향해서 축배를 들어라. 축배를 들어라. 오늘을 위해서 내일을 향해서 축배를 들어라”

 

◇ 필자 문경훈

▴1990년 출생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졸업▴한국전통주연구소 가양주반 수료

▴한국가양주연구소 전통주소믈리에 자격 취득 ▴한국가양주연구소 명인반 수료▴(현) 지혜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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