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함께 인류애가 가득한 축제를 벌이자
박정근(작가, 칼럼니스트, 시인, 문학박사)

살다보면 어려운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마을에 힘든 일이나 기쁜 일이 생기면 주민들이 함께 모여서 고통이나 기쁨을 기꺼이 나누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술이다. 술은 각자의 개별자적 의식을 무너뜨리고 통합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신기한 음식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권을 지키려고 자기만의 영역을 지키기에 급급하다가도 술을 거나하게 마시면 이웃 모두가 한 형제라고 느껴진다.
사실 우주의 셀 수도 없는 행성 중에서 지구촌에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은 서로 한 형제라고 여겨도 무방하지 않는가. 지구촌에 닥치고 있는 크고 작은 재앙은 인간들에게 소아적 개별주의에서 벗어나 대아적 통합주의에 대해 눈을 뜨게 한다.
특히 현대사회는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매우 약화되어 극단적인 가족주의나 개별주의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외부의 적의 침입에 대해 마을 공동체가 결집하여 대처했던 원시공동체적 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같은 마을에서 서로 왕래가 빈번하여 남의 집의 숟가락 숫자까지 알고 있던 공동체적 사고가 아쉬운 것이다.
요즘 세계평화를 해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이웃나라의 국민을 마구 살상하고 있는 푸틴은 인류의 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다. 그는 무고한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살상하고 일부 지역을 점령한 후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키고 있다. 권력자의 눈에는 자국의 이익만 보이고 인류애의 가치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군인이 아닌 일반 시민, 노인, 어린아이, 여성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것은 국제법상으로 전범행위로 간주된다. 권력자들의 사악한 행위를 목격하면서 도연명과 같은 평화주의자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도연명은 <잡시(雜詩)>에서 모든 인간은 한 형제라는 인류애에 대한 인식을 밝히고 있다. 근대 이후로 극대화된 가족주의와 개별주의가 파괴해버린 공동체적 가치를 이 시에서 강조하고자 한다. 가족이나 출생지나 나라 등의 인위적 조직에 소속되어 조직 밖의 존재에 대해 배타심을 가지는 것은 매우 소아적 인식이라는 의미라고 본다.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서로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한 몸이 아니겠는가. 개별자적 존재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느 정도의 경쟁이 필수적이겠지만 그렇다고 서로 적대시하는 것은 전체적 생태계를 위기를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이다.
도연명은 개별화된 인간들을 공동체로 만드는데 술을 활용하고자 한다. 자신의 기쁜 일을 아닌 이웃들과 함께 모여 축하하고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한 잔의 술을 함께 나누고 나면 격의가 없어지고 오랜 형제자매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그리고 축제를 미루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흔히 우리는 현재의 순간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이라고 표현한다. 행복은 과거나 미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지금만 존재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도연명의 시는 공동체의 축제를 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 이런 시로 노래하고자 한다.
落地爲兄弟, 세상에 태어나면 모두 형제가 되나니
何必骨肉親. 어찌 꼭 혈육만 친할 수 있으리
得歡當作樂, 기쁜 일이 생기면 당연히 즐겨야 하기에
斗酒聚比鄰. 한 말 술을 빚어 이웃들을 초대해야 하리라
盛年不重來, 한창 때는 두 번 오지 않고
一日難再晨. 새벽 또한 하루에 두 번 오지 않으니라
이 시는 도연명의 인류애를 강조하고 있으며 세계주의적 관점을 보여준다. 특히 파시즘적 행태가 일어나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온 세계가 물가고와 반인간주의적 살상을 목격하고 있는 지금 도연명의 사상이 매우 절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국가와 인종을 떠나 지구촌의 일원으로 함께 협력하지 않으면 기후위기로 인한 재앙을 면할 수도 없다. 이 가을에는 곳곳에 축제를 만들고 함께 술을 마시며 유한한 인생을 즐기는 여유를 배워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