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슬로시티? 전주 술로시티!

전주 슬로시티? 전주 술로시티!

 

콩 두 개와 술 두 개

 

콩나물 국밥과 모주
전주에 가면 콩 두 개와 술 두 개를 해야 한다. 콩 두 개는 콩나물국밥과 콩나물 비빔밥이다. 물론 다른 먹을거리들도 지천이다. 피순대, 백반, 한정식, 떡갈비 그리고 이제는 헤아릴 수도 없는 수많은 길거리 음식들이 있다. 하지만 콩 두 개 술 두 개는 전주 음식 문화의 고전적 컨셉이자 콘텐츠다.

콩나물국밥은 전주 남부시장이 그 발원지라 할 수 있다. 남문은 전주의 4대문으로 동서북문이 모두 사라졌지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성문이다. 남문 일대에는 남부시장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성문을 오가는 사람들에 의해 장이 열린 것이다. 장터에는 장터에 맞는 음식이 있다. 분주한 장마당에서 후다닥 밥 한술 뜰 수 있는 음식이 국밥이다. 더군다나 지난밤의 숙취까지 말끔하게 해소할 수 있는 콩나물국밥은 남부시장의 가장 핫한 아이템이 되었을 것이다.

콩나물국밥이 있는데 어찌 탁배기 한잔이 없을 수 있겠는가? 콩나물국밥 한 그릇과 탁배기 한 잔으로 장은 더욱 활력이 넘친다.

알뜰한 주모는 장꾼들이 남기고간 탁배기를 모아서 대추, 계피 등을 넣고 모주를 끓인다. 송이 눈이 오는 날 추운 장바닥에서 김 오르는 모주 한 그릇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위안이자 휴식이다. 프랑스의 뱅쇼도 이렇게 탄생한 음식일 것이다. 좌판에서 마시다만 포도주를 모아 계피 등을 넣고 끓여낸 것이 그 시초가 되었을 것이다.

콩나물국밥은 이내 남부시장을 벗어나서 전주동문거리에 군집화를 이룬다. 동문거리는 전주부성 4대문 가운데 동문이 있었던 거리로 전주한옥마을과 바로 붙어있다.

그 거리에 왱이집, 다래, 두레박, 풍전, 동문원 등이 각각 그 식당마다의 비법을 가지고 손님들을 맞고 있다. 거기에는 물론 함께 마실 수 있는 그 집만의 맛좋은 모주가 곁들여진다.

콩나물국밥집 가운데 현대옥 등은 프랜차이즈화 하여 전주는 물론 전국으로 진출하기도 하였다. 원래 현대옥은 전주남부시장에 있는 소박하고 작은 곳이다. 지금은 안계시지만 10여 년 전 그곳의 주인할매는 손님들 앞에서 바로 국밥을 말아줬다. 국밥 뚝배기를 손님들 면상에 한그릇씩 안기고 그 면전에서 마늘을 식칼 옆면으로 쳐댔다. 국밥을 먹다보면 마늘 파편이 날아와 이마를 때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국물 좀 더달라고 하면 맛이 엷어진다고 함부로 국물도 더 주지 않았다.

 

전주 한옥마을 슬로시티?

풍남문2010년 전주 한옥마을은 슬로시티로 지정을 받았다. 2015년 슬로시티 재지정을 놓고 전주가 다시 선정될 수 있을지 전주시 관계자들이 근심 많은 것 같다. 상업시설이 2010년에 비해 3배 이상 늘었고 5백만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면서 더 이상 느림의 가치가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꼭 슬로시티 재지정이 아니더라도 한옥마을의 상업화로 많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옥마을이 가진 소담하고 아름다운 풍경들이 없어지고 이제는 단지 한옥으로 된 상점만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분간 전주 관광객 5백만 시대는 계속되리라 본다. 왜냐하면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전주를 찾는 사람들은 음식 때문에 다시 오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러나 5백만이 오는 그 번잡한 도시에서 조용히 한옥 거리를 걷을 수 있는 소담하고 아름다운 느림의 가치를 함께 채울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놓아야 한다. 양손에 가득 들고서 또 다른 것을 쥐려는 것은 욕심이다.

 

전주 술로시티!!!

술로시티전주는 술을 마시러 관광객들이 오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도시이다. 그 술의 정점에 전주막걸리와 전주가맥이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전주막걸리는 막걸리만 시키면 한정식에 버금가는 안주가 한상차림으로 거하게 나온다. 10여 년 전 필자가 전주전통술박물관에 근무할 무렵 기자를 모시고 막걸리집에 갔다. 당시 막걸리 한주전자에 만원이었는데 한상 가득 나오는 안주에 기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엇보다도 돈을 안 쓰기로 유명한 기자가 술값 만원을 흔쾌하게 냈다.

가맥이란 가게맥주의 줄임말이다. 걍 가게에서 하이트나 카스를 파는 것이다. 그런 가맥집이 수백 군데가 성업 중이다.

전주가맥은 무엇보다 가격이 싸다. 병맥주 한 병에 2천원내외이다. 그리고 가맥에 곁들여 먹는 안주가 또한 괜찮다. 마구 두들긴 황태는 입안에서 구름처럼 흩어진다. 황태를 찍어먹는 가맥장 또한 그 가맥집만의 비법이자 매출을 움직이는 주요 동력원이다. 거기에 고무신 만하게 나오는 계란말이는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을 만큼 맛나고 양도 많다.

전주 술의 지형도를 살펴보면 막걸리는 주로 삼천동과 평화동 그리고 서신동에 포진해 있다. 가맥집은 전주의 전 지역에 비교적 고르게 포진해 있다.

그런데 최근 주목할 만한 곳이 있다. 바로 전주동문사거리이다.

전주동문거리는 조선시대부터 도심이 자리한 유서 깊은 곳이다. 일제시대 때에는 산림조합 등의 관공서가 있었으며, 1970년대 말까지 전주 최대의 번화가였다. 80년대 들어서 구도심의 몰락으로 한물이 갔지만 한옥마을의 번성과 함께 다시 뜨고 있는 지역이다.

이곳은 전주 술로시티의 핵심 지역이다. 양조장의 전방산업인 주점이 번성하고 있고 여기에 가맥집과 막걸리집도 어우러져 있다. 또한 후방산업인 콩나물국밥집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최대의 양조장 밀집지역이다. 불과 2백미터 안에 양조장이 3군데 자리하고 있다.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 만든 한옥마을양조장 그리고 본인이 맥주를 만드는 동문거리양조장, 전주모주협동조합이 만든 모주양조장이 자리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술꾼들의 성지인 술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술을 교육하는 술교육관도 존재한다.

술을 컨텐츠로하는 이렇게 강위력한 거리 그리고 도시는 우리나라 어디를 둘러봐도 없다.

 

전주여! 전주한옥마을의 관광객 5백만 시대를 당분간 즐겨라. 평생가지 않는다. 다른 곳은 경기불황으로 대다수의 서민들이 힘들어하는데 한옥마을의 활성화는 분명 전주의 축복이다.

언젠가 관광객이 줄어드는 추세가 보이면 지자체는 막대한 예산을 관광객 유치에 쓸 것이다. 그럼에도 정점을 찍은 방문객은 현저하게 줄어드는 날이 분명히 온다. 그때 전주에 콩 두 개와 술 두 개가 남아 있음을 알 것이다.

마치 연어가 모천을 떠나 성장하며 망망대해로 나가지만 결국 다시 저 살냄새 풍기는 모천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정유재란 무렵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작살이 났다. 그러나 이순신은 12척으로 열배가 넘는 일본군을 물리쳤다. 전주의 고전적 문화와 음식은 바로 이순신이 건재한 조선수군과 같은 존재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 글쓴이 유 상 우는

전라북도 막걸리 해설사 1호. 혹은 전라북도 酒당의 도당 위원장 쯤 된다. 한옥마을 인근의 동문거리에서 양조장과 술집(시)을 겸업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전북의 막걸리 발전을 위해 막걸리해설사를 양성하려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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