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록담의 복원전통주스토리텔링 115번 째 이야기
효주(酵酒)의 특징 및 술 빚는 요령
20여 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가양주와 밀주 단속으로 가정에서의 술빚기가 여의치 않던 시절 술 공부를 하겠다고, 군청과 면사무소를 찾아 동리 이장을 비롯한 생활개선회, 새마을부녀회 등의 단체장들의 명단을 입수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술빚는 집을 수소문하고 다니다가, 고흥지방에 이르러 백일주 빚는 정 씨 가문을 찾게 되었다. 어렵게 사정을 하여 백일주 빚는 과정을 사진에 담고, 술빚는 방법과 유래, 특징들에 대한 취재를 마치고 돌아왔었다.
당시 필자는 어느 지방, 어느 집을 막론하고, 술이라면 당시 물불을 안 가리고 다니던 때여서 새벽이고 한밤중이고 시간이 나는 대로 쫓아다녔는데, 전라도 장성의 황룡면에 소위 ‘고수’로 알려진 고 기우경 옹을 만나게 되었다. 고 기우경 옹에게서 술빚는 법에 대한 기초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다. 공부가 끝날 무렵 당신의 제자 가운데 “신희창이라는 젊은 친구가 술빚는 법을 배우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양조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를 찾아가면 “한 가지 술빚는 법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라면서, 그 술에 대해서는 함구할 뿐, 기어코 가르쳐주질 않았다. 그리하여 고흥에 산다는 신희창 씨의 연락을 몇 차례 시도하였는데, 결국 성사가 되질 않았다.
어느 날은 연락처가 바뀌었다는 전화음성의 통보를 받고, 신희창씨와의 면담을 이루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쉬움으로 남았었다. 신희창씨가 배워서 준비 중이라는 술이 ‘효주’였기 때문이다.
기우경 옹으로부터 소개받았던 또 한 사람이 전라도 영광의 강하주를 빚는 고 조희자 여사였다. 고 조희자 여사의 강하주는 보성의 강하주의 뿌리라고 할 수 있으며, 도화자여사가 이 비법을 전수받아 도 지정 무형문화재로 활동하면서 예의 보성 강하주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미 <명가명주>를 비롯하여 <한국의 전통민속주> 등에 수록되어 그 정체와 비법을 알렸었다.
그런데 지난 2013년 8월 하순경 완주에 들렸다가, 완주군청의 최수웅 씨로부터 귀한 자료집을 한 권 건네받게 되었는데, 그 책이 <규중세화>이다. <규중세화>는 <규합총서>와 그 성격이 유사한 것으로, 21가지의 ‘주방문’을 비롯하여 ‘음식 만드는 법’과 ‘규중칠우’라고 하여 규방의 부인네들이 익혀야 할 덕목을 문방사우에 빗대어 열거하여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규중세화>에 수록된 주품 가운데 필자의 눈에 가장 먼저 띄는 주품명이 바로 ‘효주’이다. ‘효주’는 별법과 함께 두 가지 방문이 수록되어 있고, 이외에도 ‘이퇴백 효주’를 비롯하여 ‘이적선효주’도 등장한다. 각각의 주방문이 유사하면서도 약간씩 다른데 다 같이 소주 주방문이라는 사실에서 주목할 만하다.
‘효주’는 전라도지방에서 ‘소주’ 또는 ‘백주’를 가리키는 말로, 경상도지방에서 ‘아라킬’ 또는 ‘아랑주’라고 부르는 것과 비교되는 표현이다. 어떤 의미에서 소주를 ‘효주’라고 부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규중세화>에 수록된 주방문은 다른 문헌의 ‘노주’, ‘노주이두방’, ‘노주 다출방’ ‘소주 많이 나는 법’ 등과 유사하면서도 차이가 난다.
<규중세화>의 ‘효주’는 <산림경제>를 비롯하여 <증보산림경제>, <농정회요> 임원십육지. <해동농서> 등 한문기록의 문헌에 수록된 ‘노주이두방’이라는 주품의 주방문과 가장 유사하다.
무엇보다 밑술 빚는 방법에서 재료의 배합 비율이 다를 뿐 술을 빚는 과정은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효주’가 ‘노주이두방’과 다른 차이점은 덧술을 빚는 방법인데, 다른 문헌의 노주이두방이나 소주다출방에 비해 쌀의 양이 25% 밖에 안 되고 물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물론, 노주이두방에서 밑술에 사용되는 물의 양이 ‘효주’보다 많은 것을 감안하면 두 방문에 사용되는 물의 양은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는데, 덧술의 쌀 양이 다른 문헌의 25% 밖에 안 된다는 것은, 주질에서의 차이를 뜻하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둘 수도 있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과거 전라도지방에서 쌀을 부피로 계량할 때, 1말의 양이 20kg으로 서울지방의 8kg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고 하는 사실로서, 이러한 사실을 감안한다면, ‘노주이두방’에 나타나는 덧술의 쌀 2말과 동일한 분량으로 판단된다.
한편 ‘별법’의 효주 주방문은 ‘본방’의 주방문과는 전혀 다른, 밑술과 덧술 모두 멥쌀고두밥으로 하고, 밑술에 한 차례 사용되는 물의 양도 쌀 양과 동량인 1말이다. 또한 ‘노주이두방’이나 ‘소주다출방’에서와 같이 덧술에는 물이 사용되지 않는데, 술빚는 방법이 매우 간단하면서도 주질은 매우 뛰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효주’를 두고 주질에 대해 논할 수는 없다는 판단과 함께. 어떤 문헌의 주방문이던지 과거 한 집안의 가양주로서 그 비법을 지켜왔을 것이고, 나름 주질 향상에 주의를 기울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다면, 다른 주품과의 비교는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효주’를 통해 깨닫게 된 중요한 사실은 그 이름마저도 잊혀질법 했던 ‘효주’가 <규중세화>라는 문헌 기록을 통해서 이 땅에 뿌리를 박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방문 말미에 언급하였듯 ‘효주’는 여름철 소주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름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있다.
◈ 효주 <규중세화>-하절주법–
◇ 술 재료 ▴밑술:찹쌀 1되, 멥쌀 1되, 정한 누룩 3되, 끓는 물 1말 1되
▴덧술:멥쌀 10되(쌀 되던 되), 물 3말
◇ 술 빚는 법▴밑술 ①찹쌀 1되, 멥쌀 1되를 섞어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물기를 뺀 뒤,) 작말한다.②쌀 되던 되로 물 1말 1되를 계량하여 솥에 붓고 끓여 (쌀가루에 합하고, 주걱으로 고루 개어 범벅을 쑨 다음, 넓은 그릇에 퍼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③범벅에 깨끗한 누룩 3되를 섞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④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발효시킨 후, (술밑을 차게 식혀)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덧술①쌀 되던 되로 멥쌀 10되(5되)를 계량하여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서 물기를 뺀 뒤) 시루에 안쳐 고두밥을 짓는다.②고두밥이 익었으면, 퍼내고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③고두밥에 물 3말과 밑술을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④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7~8일간 발효시킨다.
▴소주 증류 ①솥에 불을 지피고, 물 1사발을 붓고 끓이다가, 술 1사발을 붓고 끓인다.② 술 2사발을 솥에 붓고 저어준 뒤, 끓으면 다시 술 4사발을 붓는 방법으로 술을 다 안친다.③솥에 소줏고리를 얹고, 소주고리 위에 냉각수 그릇을 얹고, 솥과 소주고리, 소주고리와 냉각수 그릇의 틈새를 소줏번을 붙여 막는다.④냉각수 그릇에 찬물을 채우고, 소주고리 귀때 밑에 수기를 받쳐 놓고, 불을 알맞게 조절하여 소주를 받되, 첫술 1컵 정도는 버린다.⑤냉각수 그릇의 물이 따뜻하면 즉시 퍼내고 다시 찬물을 갈아 주길, 3차례 하면 그 맛이 너무 맵고, 4차례 하면 맛이 맞다.
<효주> 백미 한 되 점미 한 되 작말하여 쌀 되던 되로 물 말 한 되를 끓여 식거든 정한 누룩 서되 섞어 뒀다가, 가라 앉혀서 그 되로 쌀 열 되 백세 하여 찌되 대령하여 물 서 말로 그 밑 섞어 칠팔일 만에 고으되, 세물은 너무 맵고 네물은 마자니 하절주법이라.
◈효주(별법) <규중세화>
◇ 술 재료▴밑술:멥쌀 1말, 섭누룩 2되 5홉, 끓여 식힌 물 1말
▴덧술:멥쌀 1말
◇ 술 빚는 법▴밑술 ①물 1말을 솥에 붓고 끓여 넓은 그릇에 퍼서 차게 식기를 기다렸다가, 섭누룩 2되 5홉을 풀어 물 누룩을 만들어 하룻밤 재워 놓는다.②멥쌀 1말을 백세하여 물에 담가 하룻밤 불렸다가, 이튼날 다시 씻어 헹궈서) 물기를 빼 놓는다.③불린 쌀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고, 익었으면 퍼내어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④식은 고두밥에 물 누룩을 섞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⑤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3일간 발효시킨 후, (술밑을 차게 식혀)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덧술①밑술 빚는 날 멥쌀 1말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하룻밤 불렸다가, 이튿날 다시 씻어 헹궈서) 물기를 빼 놓는다.②불린 쌀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고, 익었으면 퍼내어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③고두밥에 밑술을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7~8일간) 발효시킨다.
<효주(별법)> 방문 말미에 “끓인 물 한말에 섭누룩 두되 다솝 푸러 하되, 밤 지내거든 걸러 백미 한말 백세 하여 익게 쪄 채와 그 물에 버무려 넣었다가 사흘에 맛 보아 가며 물 부어 쓰라. 누룩 넣을 때 또 백미 한말 한가지로 담갔다가 이튿날 쪄 넣으라.”고 하여 별도의 주방문을 싣고 있다.
박록담은
* 현재 : 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 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