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33)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33)

 

 

아코에테스(Acoetes)의 긴 이야기가 끝나자, 펜테우스 왕은 여전히 성질을 낸 채로 고함을 질렀다. “너의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지겹게 들은 것은, 이야기를 듣다보면 혹 화가 좀 가라앉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내가 공연히 시간을 허비했구나. 여봐라. 이 자를 끌고 가서 고문 맛을 보인 연후에 스틱스의 어둠 속에 처박아 버리거라.” 리디아 사람 아코에테스는 노예 무사들 손에 끌려 나가 튼튼한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왕의 명에 따라 옥사쟁이들이 그를 고문하고 죽이는 데 필요한 연장인 불칼같은 것을 준비하고 있는데, 감옥 문이 저절로 열리고, 옥사쟁이들 아니면 아무도 풀 수 없는 수갑과 족쇄가 저절로 풀려나갔다. 아코에테스는 어떤 옥사쟁이의 저항도 받지 않고 그곳에서 사라졌다. 이러한 기적이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이 에키온의 아들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에 대한 박해의 손길을 늦추려 하지 않았다.

 

그는 부하들을 보내는 대신, 몸소 키타이론 산으로 갔다. 신성한 축제 마당으로 선택된 이 산에서는 신도들의 노랫소리와 외마디 고함소리가 하늘땅을 울리고 있었다. 광란의 디오니소스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펜테우스는 자신의 어머니와 이모에게 찢겨 죽는다. 나팔수가 청동 나팔로 부는 공격신호 나팔이 전장에 나가 있는 혈기방장한 군마의 힘살을 부풀리듯이, 하늘과 땅을 울리는 디오니소스 신도들의 노랫소리, 고함소리는 펜테우스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이 산 중턱에는 수목이 울창한 주위와는 달리, 나무가 없는, 그래서 멀리서 보아도 눈에 잘 띄는 공터가 있었다. 펜테우스는 산 밑에서, 비신도 특유의 불경스러운 눈으로 축제가 벌어지는 이 공터를 올려다보았다. 맨 먼저 이 펜테우스를 알아보고 미친 듯이 달려 내려와 지팡이를 휘두른 사람은 바로 이 펜테우스의 어머니였다. 펜테우스의 어머니는 지팡이로 아들을 두들기면서 외쳤다. “애들아, 너희 둘 다 이리 와서 나를 도와다오. 이 멧돼지, 우리 밭을 들쑤셔놓은 이 커다란 멧돼지를 창으로 찔러 죽여야겠다.”

노파의 말이 떨어지자 열광해 있던 무리가 쏜살같이 이 기겁을 하고 서 있는 펜테우스 왕 쪽으로 돌진해 왔다. 글자 그대로 기겁을 한 왕은 말투를 바꾸어, 그러니까 아주 부드러운 어조로 자기 팔자를 한탄하고, 어머니 앞에서 자기에게 잘못한 것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어머니의 지팡이에 맞아 이미 머리가 터진 그는 두 이모를 향하여 애원했다. “아우토노에(Autonoe) 이모님, 저를 도와주세요. 악타이온(Actaeon)의 혼령을 생각해서라도 부디 이성을 되찾으시고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디오니소스를 믿지 않은 펜테우스는 제 어미와 이모에게 이렇게 찢겨 죽는다. 그러나 악타이온이라는 이름도 아무 소용없었다. 펜테우스가 이렇게 비는데도 아우토노에(Autonoe)는 이 펜테우스의 오른팔을 잘라버렸고, 또 한 이모인 이노(Ino)는 그의 왼팔을 잘라버렸다. 이제는 팔을 벌리고 애원할 수도 없게 된 펜테우스는 팔을 벌리는 대신 어머니에게 팔이 잘린 자리를 보여주며 호소했다. “어머니, 보세요. 아들이 이 꼴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 전해지고 있다.

 

이 꼴을 본 그의 어머니 아가베(Agave)는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머리채가 휘날리도록 머리를 뒤로 젖혔다가는 자기 머리로 아들의 머리를 받아 버렸다. 펜테우스의 머리는 산산이 부서져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피 묻은 손으로 그 머리의 조각을 주워들고 아가베가 외쳤다. “보아라, 우리가 이겼다. 내가 승리했다!” 무리가 몰려와 눈 깜짝할 사이에 펜테우스 왕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버렸다. 가을바람이, 늦서리를 견디며 간신히 가지에 매달려 있던 잎을 떨어뜨리는 듯한 형국이었다. 이 무서운 사건이 있고 나서 테베 여자들은 무리지어 이 새로운 의식을 받아들였고, 앞 다투어 제단에 향을 피워 이 신을 섬겼다. 이로 인한 다툼이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희곡 <바카이(Bakchai)>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

 

카드모스(Kadmos)의 추방은 디오니소스의 탄생에 관한 또 하나의 신화를 반영한 것이다. 라코니아(Lakonia)의 브라지아이인들이 주장했던 바에 따르면, 세멜레는 정상적으로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세멜레가 이 아이는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의혹에 사로잡힌 카드모스가 세멜레와 디오니소스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버렸다는 것이다. 상자는 브라지아이로 떠내려갔다. 이 동안에 세멜레는 죽었으나, 디오니소스는 미쳐서 방랑하다가 마침 그곳에 들른 숙모인 이노에게 구출되어 근처에 있는 동굴에서 자란 것으로 기술된다.

 

낮에도 방탕, 도락과 같은 일들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디오니소스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이분법적인 정의에 의하면 어두움에 속하게 될 디오니소스적 가치는 사실, 빛으로 대변되는 아폴론의 가치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빛이 있기에 어두움이 있다. 여기에서 펜테우스의 죄는 하나의 질서만을 고집하는 오만함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바라본다. 또한 보는 것을 세상의 질서 속에 맞춰 모양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펜테우스는 낮에도 그가 경멸하는 성질의 것들이 있다는 사실과 밤의 혼란 속에서도 나름의 미덕과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이런 그의 태도는 그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신념의 상대를 윽박지르는 위험한 태도는 그가 교만한 자이며 세상을 지혜롭게 바라보지 못 하는 사람이라는 증거이다.

 

바다와 관련된 디오니소스의 또 다른 이야기가 <호메로스풍 찬가(Homeric Hymns)> 제7장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찬가>에 나온다. 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스(Ilias)> <14편 325>에 따르면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났다. 헤시오도스(Hesiodos) 역시 <신들의 계보(Theogonia)> <940-942>에서 세멜레를 디오니소스의 어머니로 전하고 있다.

이름의 어원은 ‘디오스(Διός, 제우스의 소유격)+뉘소스(νυσος-학자에 따라 서는 σνυσος를 뒷뿌리로 잡기도 한다)’이다. 그러나 뉘소스가 어디에서 왔는지 확실치가 않다.

디오니소스의 유래 장소에 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일치된 의견은 없다. 미케네 문명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테베에서 숭배된 신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일반적으로 디오니소스는 에게 해 연안의 고대 그리스의 여러 부족들 사이에서 일찍부터 새로운 계절의 활력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숭배된 것으로 보이며, 기원전 8세기를 전후로 고대 그리스 신화가 틀이 잡히면서 널리 알려지고, 디오니소스를 둘러싼 여러 가지 신화가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디오니소스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는 오늘날 주로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바카이>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디오니소스는 풍요의 신으로 원래는 12신의 자리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화덕의 여신 헤스티아에게 12신의 자리를 물려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녀는 처녀 신으로 지낼 것을 맹세하고 하로를 지키며 올림포스를 떠나지 않았다. 거처에만 머물러 있으니 신화 속ㅇ에서 다룰만한 소재로 환영받지 못했다. 세상을 마음껏 돌아다니는 헤르메스와는 정반대여서 헤르메스는 바깥일, 헤스티아는 안살림의 상징으로 칭해지기도 한다. 헤스티아가 관장하는 불과 화로는 헤파이스토스가 지닌 불과 달리 가정과 공동체의 화목을 상징하는 추상적인 의미이다. 제우스는 안살림을 살뜰하게 챙기는 누이를 존중하여 인간의 가정과 모든 신전에 화덕을 준비케 하여 숭배 받도록 했다.

 

트로이 전쟁으로 신들이 편을 갈라 치열하게 싸우며 분주했을 때도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혼자 남아 불을 지키고 있던 불의 여신이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도 그녀를 좋아했고, 태양의 신 아폴론도 그녀를 좋아했지만, 그녀는 그들과 삶이 얽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끝내 혼자였다. 아폴론의 지성으로도, 포세이돈의 감성으로도 유혹할 수 없는 어떤 것이 그녀 속에 있었나 본다.

그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불이다. 불은 마음의 심지일 것이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꽃에 시선을 두고 시선을 안으로, 내면으로 거둬들이는 시간, 그 시간이 그녀의 자존감이 생기는 시간일 것이다. 그리스의 헤스티아에 비하면 고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베스타는 국가행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신으로 등장한다. 덕분에 마땅한 에피소드가 없음에도 베스타의 이름이 들어간 오페라가 한 편 남아있다. 로마 시대의 베스타 신전을 무대로 하는 스폰티니의 <베스타의 여사제(1807)>이 바로 그것이다.

 

디오니소스에 관한 유래가 많이 있다. 고대 그리스에는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종교가 있었다. 오르페우스교(Orphism, Orphicism)와 깊은 관련을 가진 이것은 주로 부녀자들이 살아 있는 산짐승이나 가축, 혹은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고 일종의 광란에 빠진 상태에서 이 제물들을 산채로 뜯어먹고 그 피를 마셨다고 한다. 그리스의 비이성적인 면을 보여주는 ‘디오니소스교’는 현대에 와서 고대 그리스의 연구가 지속됨에 따라 실체가 점점 드러나고 있다.

 

디오니소스 찬가의 단장/ 니체

 

내가 잠든 것을 화내지 말라./ 나는 피곤했을 뿐, 죽지 않았다./ 내 목소리가 고약했지만/ 그것은 코고는 소리, 푸푸거리는 숨결 소리,/ 피곤한 사람의 노랫소리./ 죽음의 환영도 아닌 것,/ 무덤의 유혹도 아닌 것.

비바람 머금은 구름은 아직 거세지만 빛나며/ 고요히 그리고 무겁게/ 짜라투스트라의 풍요인 태양이/ 이미 들판 위에 걸려 있다.

높은 곳이 버릇이 되어/ 높은 곳을 나는 바라지 않네./ 나는 눈을 치켜들지 않는다./ 나는 굽어보는 사람,/ 축복을 내리는 사람,/ 축복하는 사람은 내려다본다….

그런 야심을 펴기엔/ 이 땅은 너무 좁지 않을까./ 모든 것을 나는 주어 버렸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아무 것도 나에게는 남지 않았다.

그대, 위대한 희망 이외는!

무슨 일이냐. 바다가 함몰하는가./아니, 나의 대지가 자라난다!/ 새로운 불길이 땅을 밀어 올린다!

 

에트루리아(Etruria)의 해적들이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으로 변한 디오니소스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있는 것을 키오스 또는 이카리아 곶에서 발견했다. 해적들은 그를 유괴하여, 몸값을 받기 위해 잡아 둘 것인지 아니면 노예로 팔 것인지를 상의하면서 그의 고향이라는 낙소스(Naxos)에 데려가기로 했다. 키잡이인 아코이테스(Acoetes) 만이 그것에 반대했으나, 아무도 그의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낙소스를 향해 배를 몰고 있을 때 선원들은 다른 방향으로 가자고 명령했다.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바람이 멎으면서 포도넝굴이 배를 덮었다. 노와 돛대에도 포도넝굴이 감기고 소년의 머리 위에 포도송이가 열렸다. 그리고 야수가 출현하여 그의 발밑에서 장난을 쳤다. 선원들이 발광하여 바다에 뛰어들자 그들은 돌고래와 물고기로 변했다. 아코이테스도 두려워했으나 디오니소스가 그를 안심시키며 낙소스 섬을 향해 항해하라고 명했다.

 

후에 아코이테스(Acoetes)는 디오니소스의 충실한 부하가 되고 또 그 신관이 되었다.(일설에 의하면, 펜테우스가 투옥시킨 것은 디오니소스가 아니라 그였다고 한다). 디오니소스가 테세우스 한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를 구출하여 그녀와 결혼한 것은 낙소스 섬에서였다. 그가 신부에게 준 관은 하늘에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다. 그리스에는 테베 이외에도 디오니소스를 신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지방 및 도시가 몇 군데 더 있었다. 보이오티아(Boeotia)의 오르코메노스(Orchomenos)에서는 미니아스 왕의 딸들이 디오니소스와 광란적인 춤에 가담하기를 거절했다. 이 때문에 디오니소스는 그녀들을 미치게 하고 그녀들의 딸 한 사람을 찢어 죽였다.

 

또 그녀들의 일부를 박쥐로 변신시키기도 했다. 아르고스에서도 프로이토스(Proitos) 왕의 딸들은 마이나데스들에 가담하기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그녀들도 발광시켜 자신을 암소라 믿고 자기 자식들을 잡아먹으면서 산 속을 헤매게 하였다. 멜람푸스(Melampus)가 그녀들의 광기를 고쳤으나, 이때 그가 요구한 엄청난 보수, 즉 왕국의 3분의 1을 왕이 주려 하지 않자, 아르고스의 다른 여자들을 발광하게 만들었다. 아르고스의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페르세우스(Perseus)는 디오니소스와 싸워 그를 따르던 하리아에(바다의 여자들)들 다수를 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은 화해하여, 아르고스인들은 디오니소스의 아내 아리아드네를 그들의 도시에 묻게 했다.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음주문화칼럼니스트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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