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토트넘 전용구장에서 바라본 펍(pub)에 대한 단상

『빈 술병』

영국 토트넘 전용구장에서 바라본 펍(pub)에 대한 단상

 

육정균 (시인/부동산학박사)

 

시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짧은 일정의 영국 여행이 있었다. 런던에 숙소를 정하고 전철, 버스, 열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오소독스(orthodox)한 여행이었다. 도시계획과 부동산 전문가로서의 필자에겐 실핏줄같이 연결되어 엄청난 굉음을 내면서 달리는 오래된 영국의 전철과 외곽 철도망이 가장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손흥민의 홈구장인 토트넘전용구장에 가선 축구장 하나가 거대한 사람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동시에 박진감 넘치는 축구경기를 많은 관중들이 관람하며 환호하고,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펍(pub), 관람석, 상점 등 다중복합시설이 들어찬 멀티산업의 메카라는 사실에 놀랐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영국 Pub에서 스텔라 맥주 한잔의 추억!

그럼에도 나에겐 영국 펍에 대한 기억이 너무 진하다. “펍을 가보지 않고는 영국을 다녀왔다고 말할 수 없다”하는 말이 있는데, 조금이라도 펍을 경험하고 즐긴 나는 영국을 다녀왔나 보다.

영국인들에게 펍은 “네 집도 내 집도 아닌 제3의 공간, 즉 서드 플레이스(Third Place)”라고 한다. 한국인들은 주로 저녁이 돼야 펍을 찾지만, 영국인들은 오전부터 펍에서 모인다. 영국 펍은 보통 오전 10시쯤 열어서 저녁 10~11시경 문을 닫는다. 어떤 펍은 8시에 문을 여는 곳도 있는데, 영국에서 하루 동안 가장 문이 오래 열려 있는 곳이 펍이다.

영국인에게 펍이란 카페, 패밀리 레스토랑, 소개팅 장소, 웨딩 리셉션장, 술 한 잔 하는 한국의 주막 또는 선술집 역활까지 생활과 전통과 문화가 녹아든 활력의 공간이라고 느껴졌다. 특히 축구경기가 있는 날엔 거리의 청소부 등 막일하는 사람들부터 동네 사람들이 오후부터 몰려들어 인기 폭발이다. 펍의 대형 스크린에서 축구를 보며 서로 내편 네편 나뉘어 응원가도 부르고 내기도 하며, 대형 화면에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가 나오거나 자기 편의 골이 터지면 환호한다. 한국처럼 이념 갈등 없이 한없이 자유로운 영국인들이 마냥 부러웠다.

영국 Pub의 맥주와 예쁜 사이다, 여유로운 정적이 감도는 자유로운 시간

영국에서 펍은 맛집의 역할도 한다. 점심을 즐기는 장소이며, 일요일이나 생일과 같이 특별한 날에는 가족과 함께 선데이 로스트 디너를 먹는다. 로스트 디너는 돼지고기, 소고기, 치킨, 그리고 양고기를 오픈에 오래 구워 야채와 감자를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펍에서는 다양한 음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술도 즐길 수 있다. 에일, 스타우트 등 종류별로 다양하게 마련된 맥주와 위스키, 증류주 등이 있고, 다양한 술과 음료를 섞은 칵테일도 있다. 또한, 영국의 사이다는 알코올이 가미된 한국의 막걸리와 같은 술로 펍마다 지역마다 다양한 종류가 있다. 나는 편한 노점이 딸린 Pub과 호텔의 Pub에서 영국의 자유와 스텔라 맥주를 마셨다.

펍은 공연장이기 되기도 한다. 비틀즈가 공연한 장소로 유명한 리버플의 ‘더 캐번 클럽(The Cavern Club)’부터 한국예능 ‘비긴어게인’에서 이소라가 문 리버를 불렀던 골웨이의 ‘티그 코일리(Tig Coili)’까지, 세계 유명 뮤지션들의 공연이 종종 열리곤 한다.

또한, 펍은 커뮤니티의 역할도 한다. 영국의 펍에서는 전통적으로 매주 금요일 펍 퀴즈가 열린다. 특히,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등은 유니버시티 챌린지가 열릴 정도로 열띤 학구열로 퀴즈를 푼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퍽 한쪽에 있는 보드에서 예약을 하면, 인당 1파운드(한화 1,500원)의 참가비를 내고 그룹별 퀴즈에 도전하게 된다. 퀴즈 마스터가 생활지식, 음악, 시사 등 다양한 주제별로 퀴즈를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영국의 펍문화 중 ‘펍쿠롤(pub-crawl)’이라는 것이 있다. 한 펍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지 않고, 4~5개의 펍을 다니면서 한잔씩 즐기는 펍문화인데, 결국 네 번째 다섯 번째 펍은 술이 많이 취해서 기어간다(crawl)고 해서 나왔다. 하루 밤에 다양한 펍을 다니며 술을 마시는 이 문화를 활용한 ‘펍쿠롤 투어’상품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자유롭고 감성적인 펍문화는 출국하기 전부터 꼭 체험하고 싶었던 문화였지만, 일정상 두 군데밖에 접하지 못해 다음 여행에서는 더 많은 펍을 즐겨보고 싶다.

그러나 호텔 펍에서 토트넘의 경기를 보며 일행들과 스텔라 수제 맥주와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렀을 때, 한국의 이태원에서 총소리가 났다는 보도를 접했다. 무슨 일일까? 해외에서 접한 불길한 소식에 불안이 컸는데, 핼러윈(Halloween)데이 이태원 축제를 나왔던 사람들이 누군가 일시에 떠밀어서 158명 정도가 압사를 당했다는 뉴스를 일행에게서 들었다.

영국에서도 핼러윈데이 전부터 호텔 식당과 로비에 해골, 호박, 거미 등 핼러윈 축제의 상징물들이 차려졌고, 핼러윈데이에는 영국의 젊은이들도 펍에서 처녀 총각들이 짝을 지어 데이트를 하고 거리로, 전철로, 왁자지껄 뛰쳐나와 말 그대로 난리도 아니었다. 영국도 곳곳마다 밤늦게까지 많은 인파가 몰려다녔지만 사소한 사망사고 1건 없이 떠들썩하게 광란의 핼러윈 축제는 지나갔다. 귀국 후 접한 이태원의 핼러윈 축제는 말 그대로 비극이었다. 여기저기 촛불집회가 열린 가운데, 밤늦은 10시 반경에 15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떼 죽임을 당한 원인은 무엇일까? 향후 더 이상 원인 모를 억울한 집단 죽임을 당하지 않는 안전한 한국사회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누가 왜 이런 참극을 벌였는가?”하는 사고의 정확한 원인과 가해자, 동조자 등을 철저히 수사하여 엄정한 죄값을 물어야 한국의 안전한 펍문화, 축제들도 활짝 꽃피지 않을까?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 「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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