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君子가 酒道 연마할 땐 술을 敵으로 대하다 점차 벗으로 삼아

 

예부터 君子가 酒道 연마할 땐 술을 敵으로 대하다 점차 벗으로 삼아

 

물고기는 물과 싸우지 않고 주객은 술과 싸우지 않는다

 


술 마시는 일이란

가깝게는 자신을 돕고

멀게는 天下를 이롭게 해

 

술자리가 시작됐다면

병은 天이요 잔은 地이고,

술은 天이며 안주는 地라

 

술 마시게 하는 계절이다. 술을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보다 낳은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이 되거나 해가 될 수 있다. 20여년 전 도서출판 동방인에서 초운(草雲) 김승호(金承鎬)씨의 <물고기는 물과 싸우지 않고 주객은 술과 싸우지 않는다〉는 주옥같은 책을 펴낸 적이 있다. 이 책은 이후 절판돼 편집자도 필사본을 구해 읽었는데, 그 내용이 현대를 살아가는 주당이라면 읽어 볼만해 이 지면에 요약본을 게재한다.

우선, 저자는 인간이 짐승과 세 가지 다른 점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두뇌’로, 이것으로 생각한다. 둘째는 ‘손’으로, 이것으로 물건을 다룬다. 셋째는 ‘상대’로, 이것으로 언어를 구사한다. 이것들로 인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컬어지지만 저자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술이다. 인간은 술을 마실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희랍 신화에 보면 제우스를 비롯한 여러 신(神)들이 올림포스산에서 술을 마신 것으로 돼 있다. 이 당시의 술은 신들만의 전유물이었으나 나중에는 인간들도 마실 수 있도록 허용했다. 술은 문화와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Dionysos)’가 보급했다고 했다.

배고파서 음식을 먹는 일은 짐승이나 벌레도 하는 일이지만 술만은 오직 인간만이 마신다. 인간의 뇌에는 술을 받아들이기 위한 수용제도 있다. 술이란 당초 인간이 만들어질 때부터 마시게 돼 있었던 것이다.

술은 처음에는 하늘에 바치기 위해 있었던 물질이다. 그 후 점점 인간의 정신이 발전해 가면서 신에 버금가는 정신을 소유하게 되자, 신들의 일상품인 술마저도 인간이 마시게 된 것이다. 어린 아이가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이유는 아직 정신이 미숙하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도 정신 상태가 허약하거나 인격이 부족한 상태에서 술을 마시면 탈을 일으킨다. 술이란 분명 위험하고 어려운 것이다. 불도 위험하지만 이를 잘 사용하면서 문명을 꽃피웠다. 술도 이 같이 조심스럽게 잘 다루면 인간의 격이 높아지고 문화와 정신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은 문화를 일으키고 문화는 다시 인간의 정신을 북돋듯이, 인간의 정신이 훌륭할수록 술을 잘 마시는 게 가능하고 또 술로 인해 정신은 더욱 강하고 성숙해진다. 요즘 사람들은 옛 사람들보다 분명 문화적인 면에선 크게 앞서 있지만 오히려 극기 정신은 뒤떨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술과 관련된 아름다운 얘기보다 술로 인해 패가망신했다는 말이 더 많이 들린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잘못해서 화재를 일으켜놓고 불을 원망해선 안 되는 것처럼, 술을 잘못 마시고서 술을 원망해선 안 된다.

술은 불처럼 위험하지만 사람에게, 특히 정신 건강에 절대 필요한 존재다. 어떤 사람은 술이 몸에 나쁘다는 이유로 안 마신다. 물론 술은 지나치게 마시면 몹시 해롭다. 그러나 적당히 바르게 마시면 이보다 정신 건강에 좋은 것은 없다. 술이 정신에 미치는 작용은 실로 엄청나다. 그러기에 술을 올바로 마시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공자 역시 술 마시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말했지만 인류역사상 수많은 위인들은 모두 술을 좋아했고 술을 잘 이겨 왔다.

술이란 무엇이고 또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다음의 글들을 이해한 후 연말 회식에 참석한다면 보다 질 좋은 주석(酒席)이 될 듯하다.

 

멀고먼 옛날 천지의 시초에는

음식과 약만 있었고 술은 아직 없었다.

술은 신들의 세계에서만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세계에는 실질(實質)은 있었으나

문화(文化)가 없었고 생활은 야(野)하고 단조로웠다.

후에 성인이 나서 인간의 생활을 널리 살펴보고

먹고사는 일이 뭍짐승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여

이를 가엾게 여겨 술을 만들어 내놓았고,

다시 그 마시는 법을 일일이 정(定)하였다.

 

대저 성인(聖人)이 술 마시는 법을 만들 때

천지자연의 법칙에 준거하여 만든 까닭에

군자가 이 법도(法度)에 따라 술을 마심으로서

덕을 크게 성취할 수 있다.

혹자는 말하기를 술은 인간에 이롭지 않다,

정신을 흐리게 하고 몸은 상하게 한다고….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술을 마심으로써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은

그 속에 맑음이 있는 것이고,

몸이 피곤해지는 것은

그 속에 굳건함이 있는 것이다.

술에는 대체로 세 가지 큰 덕이 있다.

그 하나는 일으키는 것이고, 둘은 새롭게 하는 것이고,

셋은 통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가 널리 학문을 깨쳤어도

주도를 통하여서만 문화와 큰 덕을 비로소 완성할 수 있다.

술의 자유자재함과 그 격식은

성인의 도덕이 넓음과 엄격함에 비교될 수 있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이 천지의 본질을 체득하였어도

그것의 활용의 이치를 깨우치지 못하는 것은

술의 도리를 얻지 못한 까닭이다.

군자의 학문이 뿌리를 얻는 것이라면

주도는 가지를 얻는 것이 된다.

뿌리만 있고, 가지가 없다면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모든 성인이 술을 즐겨하였으며

술에서 천지의 대용(大用)을 살펴 볼 수 있었다.

공자도 말하기를 술 마시고 취하지 않았을 때와 같이

행동하기 어렵다 하였으며,

시경에도 술 마시는 법도를 얘기하였다.

술 마시는 일은 지극히 어려우나 차차 익혀나가면

마침내 성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릇 주법의 광대함은 일언으로 다 말할 수 없으나

대체로 취한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을 으뜸으로 삼고

그 법도를 다음으로 여긴다.

취한 마음에서 도인의 정을 알 수 있으며

그 법도에서 군자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인이 처음으로 주법을 배울 때는

반드시 그 마음 일어나는 것을 경계하고

오만한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

술을 마심에 있어

처음부터 선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온갖 마심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술에서 마음을 상하게 되고

큰 덕을 잃게 되는 것이다.

속인의 마음에 일어나는 취마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화나는 것이요,

둘째는 슬퍼지는 것이요,

셋째는 생각에 조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우선 세 가지 마심이 없다면 더불어 함께 술을 마셔도 좋다.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술의 세 가지 마를 제압하고

그것을 벗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군자라야 가능하다.

예로부터 군자가 주도를 연마하는 데는

술을 적으로 하는 데서 시작하여 점차 벗으로 삼은 것이지만

술을 상대로 싸움에 있어 강하기만 한즉 몸을 상하고,

유하기만 한즉 마음을 상한다.

그런 까닭에 강과 유를 조화하여

그 묘를 얻지 못하면 주도에 통달할 수 없다.

군자가 주도를 익혀 그 묘를 얻는 것은

또한 문무의 도리와도 합치하는 것이어서

작은 것부터 정성을 익혀

차차 그 변화에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술이란 얼마나 소중하고 다행한 것인가.

옛 성인의 깊은 뜻에 감복할 뿐이다.

천하에 수많은 음식과 약이 있어도

이보다 귀한 것은 없다.

술이란 왕군이나 서민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나이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마실 수 있으며,

도인과 속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신령한 물건이다.

그런 까닭에 비록 빈천한 자라도

술의 법도를 지키면 함께할 수 있으며,

부귀한 자라도

법도를 지키지 않으면 함께 마실 수 없는 것이다.

술의 법도에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다 들어 있으므로

술자리에서는 빈부귀천을 따로 논하지 않는다.

 

대저 술이란 것은 천의 성품을 가진 까닭에

먼저 그 양기를 제어하고,

연후에 그 기운을 운행케 하여 마음을 일으키고

점차 마음으로 정을 화(和)하는 것이다.

술을 마셔 이미 천지의 정과 화를 이룩하고 나면

그 속에 대도의 묘용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옛사람이 말하기를

술이란 천(天)의 성품을 깨닫는 데서

그 작용에까지 이르게 하니

술은 스승이 된다고 하였으며,

군자가 술을 마시는 절도는 음악에 비유된다고 하였다.

이렇듯 술의 덕 됨이 크건만

그 도에 용달하기란 쉽지가 않은 것이다.

도덕경에 이르기를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안고

충기(?氣)로써 화한다 하였는데

이는 천의 성품이 만물에 함유되고,

그 정(定)으로서 형화(形和)를 이룩한다는 것으로

주의 작용 또한 이와 같다.

술을 마실 때 처음에 그 힘을 제압하는 것은

안으로는 생의 기운이 충분히 성숙할 때를 기다리는 것이고,

밖으로는 그 용(用)을 절(節)하는 것이다.

이로써 군자가 생을 기르고,

천지의 운행과 그 절도를 합할 수 있다.

무릇 술 마시는 큰일은 마음 안의 일도 되고,

마음 밖의 일도 되건만

그 이치는 음양의 법칙을 넘어선 것이 없다.

그런 까닭에 군자가 술 마시는 도리를 깨우치고자 하면

먼저 음양의 작용을 통달하여야 한다.

술을 마심에 있어

아직 술이 술병에 있고 잔에 따라지지 않았을 때는

태주의 상태로서 천의 기운이 운행하지 않은 것이다.

술이 잔에 부어지면 천지가 비로소 열린 것이고,

이것을 들이마신 것은 천의 기운이 만물에 퍼진 것이다.

그러므로 술이란 먼저 잔에 따르고 연후에 마시는 것이다.

술을 따를 때 술병을 기울이는 것은

천의 기운이 아래로 흐르는 것이요,

따라진 잔을 받들어 올리는 것은

땅의 기운을 상승하는 것이다.

천의 기운이 내려오고 땅의 기운이 상승한즉

천지(天地)가 그 기운을 교하는 것이고,

천지가 교한즉 만물은 흥성하게 된다.

술이 갖는 이러한 뜻을 군자는 소중히 하는 까닭에

작인(酌人)이 서로 마주 앉아 술자리가 시작되면

반드시 서로가 빈 잔을 채워주고,

빈 잔을 채우지 않았으면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빈 잔을 먼저 채우고 다른 일에 임하는 것은

만물은 천의 기운을 떠나서는

잠시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며,

채워진 잔 위에 다시 따를 수 없는 것은

천명이 한번 내려진 것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사시(四時)의 운행이 차고 비는 뜻이 있으므로

이것을 본뜬 것이다.

 

대저 술자리가 이미 시작되었으면

술병은 천이요, 술잔은 지이다.

술은 천이며 안주는 지이다.

그러므로 술병으로 술을 따른 후에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고는 다시 잔을 채운 후에 안주를 먹는다.

술잔에 술이 반드시 채워진 연후에 안주를 먹을 수 있는 것도

천이 먼저 존재한 후 만물이 운행한다는 뜻이 있다.

그리고 작인은 충기(?氣)의 뜻이 있으므로

천도 되고, 지도 된다.

그러므로 작인이 술을 따를 때는 천이요 받을 때는 지이고,

술을 마실 때는 천이요 안주를 먹을 때는 지이다.

천과 지란 선후의 뜻이 있고, 또한 주종의 뜻이 있으므로

술자리에서 술을 따르는 일은 백사에 우선하는 것이고

안주를 먹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또한 술은 남편에 비유되고 술잔은 부인에 해당되므로,

술잔은 남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장부의 자리에서 한번 잔을 돌리는 것은

소중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뜻이 있으므로 비난할 수는 없다.

단지 그 일을 자주한다는 것은 정이 과하여

음절(音節)이 요동하는 것이다. 군자는 이를 삼간다.

그리고 안주를 먹는 일에 있어서도

첫잔에 안주를 먹는 것은 양기가 아직 숙성하지 않은 까닭에

어린 남자가 여자를 취하지 않는다는 뜻이 있으므로

아름다운 일이라 할 수 있고,

또한 남에게 먼저 안주를 권하는 것도

흥미를 양보한다는 뜻이 있으므로 또한 아름다운 일이다.

무릇 작인의 도는 음양지도이고,

음양의 도는 만물의 도인 까닭에

군자가 도를 깨우치면 천지의 대리(大理)에 통달하게 된다.

혹자는 말하기를 작인의 도가 어찌 음양의 도에 비길 수 있으랴!

음양의 도는 천지만물의 생성지도요,

술은 한낱 흥을 위한 식품인데 어찌 그것에 도가 있으리요?

애석하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을까?

천하에 많은 음식이 있어도 금수와 함께 하지 않는 것은 오직 술뿐이다.

또 술을 마심에 있어

그 작용이 정신에까지 미치는 것이 어찌 단순한 음식이겠는가?

 

대저 술에는 흥도 있으나 그 흥은 금수의 흥이 아니요,

취심도 사람마다 다 같지 않다.

이는 천의 기운이 만물에 다 수용되어 있으나,

그 크기가 다르고 그 작용도 다른 것처럼

술의 작용도 그 변화작용은 무궁하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술의 효용은 잘 알지만 자기 몸에는 잘 맞지 않는다고….

그러나 이 또한 어리석다하지 않을 수 없다.

술이란 사람에 따라 그 마시는 양은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인간의 몸은 술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에서 두려워하고 몸으로 습득하지 않는 까닭에

점차 술을 마시는 것이 두려워진다.

이러한 사람은 마음의 부드러움을 얻기 어려운 즉

착한 벗을 얻을 수 없으며,

양의 성품인 혼란을 두려워하는 것인 즉

변화에 능통할 수 없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술은 양의 성품을 지녔으므로

여인이 마시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그것은 마음의 원인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술을 안 마시는 사람과 더불어 큰일을 논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대체로 어리석은 사람과 허약한 사람은 술 마시는 일을 비난한다.

또한 작은 선에 만족하는 사람도 술을 멀리 피한다.

 

대저 술이란 도인의 흥이요 장부의 벗인 까닭에

속인과 소인은 그것을 싫어한다.

무릇 성인의 도는 천지화육(天地化育)을 돕는데 있고,

화육의 도는 천의 제용(制用)에 있는 바

그 이치와 합하는 작인의 도를 어찌 소홀히 할 것인가?

작인의 도는 군자가 제일 먼저 터득해야 하는 것으로서

책을 읽은 만큼 소중하다.

주라는 것은 속인이 마시면 흥락을 얻고,

무인이 마시면 강락(剛樂)을 얻고,

군자가 마시면 청락(淸樂)을 얻고,

도인이 마시면 선락(仙樂)을 얻는다.

이 같이 신약을 얻으면서 덕을 쌓을 수 있는 것이

술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인생의 종도(宗道)는 덕을 쌓고 즐기는 것인 바

작인 지도는 이에 부합된다.

술이란 마음을 순일(純一)하게 하면서도 만물의 정을 다 통하게 한다.

그런 까닭에 고선(古仙)이 말하기를

산중(山中)에 있어도 술로써 벗한 즉

천하(天下)를 안다고 하였으며,

엄정한 성인도 술만은 마음껏 마셨던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비록 학문을 크게 성취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술을 바르게 마실 수 있다면

나는 이 사람을 군자라 말할 것이다.

 

대저 술이란 마음이 바르지 못한 즉 잘 마실 수 없는 것이고,

술을 잘 마시지 못한 즉 정이 편협하다.

정이 편협한 사람은

남을 즐겁게 하지 않고 남을 크게 용납하지도 못한다.

이런 까닭에 군자가 벗을 구(求)함에 있어

술을 마실 줄 모르는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다.

무릇 술을 마신다고 하는 것은

많이 마시는 것을 뜻하지 않고 바르게 마시는 것을 뜻한다.

술을 마시는 정도를 모르는 자가 많이 마신다면

남의 정(情)을 해치게 되며,

적게 마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시경에도 말하기를 술에 이미 취한 사람에게

더욱 권하는 것이 어찌 군자겠느냐 하였고,

또 예로부터 전하는 말에

술을 잘 권하는 것보다는 잘 마시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이것은 모두 술 마시는 덕을 얘기한 것으로,

많이 마시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만일 군자가 작인의 도를 익히고 많이 마신다면

이 얼마나 흥겨운 일인가.

예로부터 수많은 사람이 많이 마시는 일을 흥겨워하였다.

이는 천기가 많이 담김으로써 만물에 감흥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가 작인의 도를 얻고 나서는

술을 많이 마실 수 있도록 양생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것이 군자가 주로써 생(生)을 보존(保存)하고, 천명(天命)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생도 모르는데 어찌 사(死)를 알겠는가 하였는바

생이란 천기의 응화를 말하는 것이고 사란 천기의 귀원이니

술의 취하고 깸에서 생사(生死)의 이치를 알 수 있다.

 

대저 술 마시는 일은

가까이는 자기 자신을 돕고 멀리는 천하를 이익케 한다.

마음이 어질은 즉 술을 잘 마시고, 이로써 사람과 화합할 수 있으니

어찌 천하가 이(利)되지 않으리요.

술로써 하늘의 마음을 알고,

하늘의 마음은 만물의 이치를 아는 것이니

어찌 천하가 利되지 않으리요.

취한 마음에서 도인의 정을 알 수 있고,

도인의 정과 합(合)한즉, 만물은 다 사랑하는 것인즉,

어찌 천하가 利되지 않으리요.

그런 까닭에

인간 사는 곳에 많은 문화가 있어도 주의 문화가 으뜸이고,

세상에 많은 즐거움이 있어도 술 마시는 일보다 즐거운 일은 없다.

역(易)에 말하기를 괴로운 절개는 흉하다 하였는바

술은 인간의 지나친 절개를 풀어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술은 흉을 길하게 하고,

굳은 것은 부드럽게 하고, 죽은 것은 살게 한다.

술의 작용은 항상 변화하고 쉬지 않는다.

삼략(三略)에 이르기를 성인체천(聖人?天)이라 하였는바,

대저 성인은 천행의 건(健)함을 체득하고 있는 것이고,

작인의 도는 그 천건(天健)의 절용(節用)을 수(修)하는 것이니

성인이 그 도를 귀히 여기는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술이란 원래 자유스러운 것이니

그 마심에 있어 어떤 절제가 필요할까?

그저 편히 마시면 좋은 것이다, 라고….

이는 그렇지 않다.

자유스러운 것일수록 담겨져 있지 않다면 해가 얼마나 큰 것인가?

마셔서 마음을 크게 움직이게 하는 것이 절제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혼란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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