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에서 와인 마시기

김준철의 와인교실(8)

 

레스토랑에서 와인 마시기

 

김준철 원장 (김준철와인스쿨)

 

 

주눅 들게 만드는 레스토랑

전망 좋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식사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와인을 주문할까? 레스토랑이란 손님에게 즐거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최우선이다. 와인을 주문하는 간단한 일을 까다롭게 만들어, 복잡한 상황을 연출하는 격식이나 절차는 손님에게 부담을 줄뿐이다. 좋은 레스토랑이란 훈련된 웨이터의 도움으로, 모든 사람이 즐거운 마음으로 와인과 요리를 주문하고, 그 맛을 분위기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테이블 매너

오늘날 테이블 매너는 산업혁명 이후에 신흥 부유층이 귀족사회를 본보기로 삼아 테이블 세팅을 비롯하여 올바른 매너와 행동양식을 익히는 데 열중한 데서 나온 것이지만, 한편, 몰락해 가는 귀족들이 “우리는 너희들과 근본이 달라.”라는 생각에서 복잡한 상황을 연출한 데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현대의 테이블 매너는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왕조 때 완성된 것으로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다.

매너를 지키자는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자는 것이니까, 아무리 엄한 예법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실례가 된다. 매너는 때와 장소에 따라서 그 기준이 바뀌는 것이라서 기본적인 상식선에서 상대에게 실례가 안 되는 범위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면 되는 것이다.

와인 주문

레스토랑에서 첫 번째로 지켜야 할 것은 왼쪽에 있는 빵 접시가 내 것이고, 오른쪽에 있는 물 잔과 와인 잔이 내 것이라는 점만 알면 된다. 만약 잘못하여 왼쪽에 있는 잔을 잡는다면 도미노 현상으로 대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사자성어로 ‘좌빵우술’이라고 기억하면 된다. 와인을 주문할 때도 와인 리스트가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고 생각되면 소믈리에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또 좋아하는 스타일을 이야기하거나 가격위주로 “얼마짜리 범위로 주세요.”해도 잘못 될 것이 없다. 만약 “좋은 와인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라고 말했다가 백만 원짜리 와인을 갖다 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리 와인을 잘 아는 사람이라도 레스토랑의 메뉴도 다 알 수 없으며, 더군다나 수십만 가지가 있는 와인은 더 모른다.

호스트 테이스팅

주문한 와인이 나오면 그 날의 호스트 즉, 와인을 시킨 사람(대개 돈을 낼 사람)이 먼저 맛을 보고 판단하는 것을 ‘호스트 테이스팅(Host tasting)’이라고 한다. 맛을 보는 목적은 이 와인을 손님에게 접대해도 좋은가 살펴보는 것이니까, 번거로우면 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맛에 이상이 있으면 바로 다른 와인으로 바꿔주도록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때는 맛이 다르거나 맛이 없다는 이유가 아니고, 와인이 부패되어 마시기 부적합 경우에만 해당되니까, 소믈리에도 수긍할만한 상태라야 한다.

원래 호스트 테이스팅은 중세 때 서로 적대하던 성주끼리 화해하는 자리에서 상대 성주의 잔에 독약을 타서 독살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주인 측이 이 와인에 독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니까, 그 유래는 썩 좋은 것은 아니다. 그 후 지금까지도 와인의 품질은 코르크를 열기 전에는 알 수 없으니까, 손님을 초대한 호스트가 자기 손님에게 이 와인을 서비스해도 좋은가 알기 위해서 이 관습이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레스토랑에서는 이 문제로 곤란한 상황이 가끔 일어나기도 한다.

따르는 순서

맛이 괜찮다고 생각되면 고개를 끄떡이면 소믈리에는 와인을 따르기 시작한다. 차례를 정한다면, 호스트의 오른쪽 손님부터 와인을 따르는데 여자 손님의 잔을 먼저 채우고 나서 다시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남자 손님의 잔에 따른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아까 맛을 보느라고 조금 따랐던 호스트의 잔을 채우게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빼낸 코르크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지만, 코르크 냄새를 맡아봐야 코르크 냄새만 날 뿐이다. 그것보다는 코르크가 충분히 젖어있는지 확인만 하면 된다. 젖어있지 않은 것은 병을 세워서 보관했다는 증거가 된다. 와인을 세워서 보관하면 코르크가 건조되어 공기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식으로 마시면 안 되나?

식사하면서 와인 좀 마시려는데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와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국제화시대에서는 영어뿐 아니라 와인도 비즈니스맨의 공통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레드와인 글라스에 화이트와인을 따랐다는 이유로 어떤 기업의 파리지점장이 해고됐다든가, 원샷을 해서 비즈니스가 깨졌다든가, 레스토랑에서 요리에 후추나 소금을 좀 넣었더니 주방장이 테이블까지 와서 불만을 토로했다는 등, 이런 것을 테이블매너라고 겁을 주는 책이 시중에 한두 권이 아니다.

그러나 국제화시대에 세련된 매너를 가진 사람이라면, “한국의 전통 음주문화란 이런 것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 나라의 습관을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한다. 다른 나라의 습관을 무시하는 사람은 국제적인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외국에 가서 상담을 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테이블 매너에 대한 기본 상식 정도는 있을 테니까, 여기에 와인 상식만 얹어서 행동하면 무난하다.

와인은 즐거움을 주는 것

이렇게 맛있는 와인과 요리가 나왔고, 계산은 호스트가 할 것이고, 이제는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요리와 함께 와인을 마시고, 와인에 얽힌 이야기를 하면서 웃음을 나누고 즐기는 것이 테이블 매너다. 까다로운 격식이나 절차를 지키느라고 진정 와인과 요리의 맛을 느끼지 못하면 안 된다. 와인은 우리를 즐겁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김준철와인스쿨(원장)필자:▴김준철와인스쿨(원장)▴한국와인협회(회장)▴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프레즈노캠퍼스 와인양조학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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