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45)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45)

 

 

헤라클레스와 황소

 

남태우 교수

그래서 암소를 만든 다이달로스에게 미노타우로스가 살 집을 지으라고 명령했다. 다이달로스는 미궁(labyrinth)이라고 불리는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만들었다. 이곳은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곳이다. 미노스는 아테네에 매년 소년과 소녀를 각각 7명씩 바치라고 명령했다. 이들은 바로 괴물 황소 먹이가 되었다. 신의 분노가 부른 한 여자의 욕정이 안은 괴물은 매년 14명의 어린 소년과 소녀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라비린토스가 ‘미궁(迷宮)’의 기원이다. 귓속, 즉 내이(內耳)는 미로처럼 복잡하다. 의학용어로는 ‘라비린스(labyrinth)’라 부른다. 그런데 여기에 신화 속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반인반수로 잘 알려진 미노타우루스가 갇힌 곳이 바로 라비린스다. 이처럼 ‘미궁’은 한번 들어가면 나오는 길을 쉽게 찾을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곳을 뜻한다. 밖으로 나오는 길을 좀처럼 찾을 수 없다는 데에서 비유적인 의미가 생겨났다. 바로 사건이나 문제 따위가 얽혀서 쉽게 해결하지 못하게 된 상태를 일러 ‘미궁에 빠졌다’ ‘미궁 속을 헤매다’라고 하는 것이다.

 

(미로)

마침 헤라클레스가 존속 살해죄로 신들에게 벌을 받았을 때, 이 괴물 황소를 잡는 것이 일곱 번째 난행으로 받았던 과업이었다. 헤라클레스로 하여금 사로잡아 오도록 명을 받았던 문제의 황소였다. 이렇게 무서운 황소를 헤라클레스는 사로잡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서둘러서 크레타 섬으로 향했다. 그는 섬에 도착하자 우선 미노스 왕을 찾아갔다. 미쳐서 날뛰는 황소이긴 했지만 생김새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어쨌든 미노스 왕의 소유였으므로 황소를 잡을 수 있도록 허락을 받기 위해서였다. 헤라클레스는 미노스 왕에게 가서 말했다.

 

“왕이시여, 나는 에우리스테우스 왕의 명령으로 미쳐서 날뛰는 황소를 잡으러 왔소. 그 전에 왕께서 그 황소를 잡아가도 될지 허락을 받으러 온 것이오.”

 

그러자 미노스 왕은 한마디 군말도 없이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했다. 불감청이면 고소원이었다. 사실 아주 멋지고 고귀하게 생긴 그 황소를 내놓기란 한편으로는 아까웠고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미노스 왕은 그 황소를 싫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애지중지 했지만, 나중에 그의 아내와의 수간한 사실을 알게 되었던 미노스 왕은 그때부터 이 황소를 원수로 여겼지만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 차에 헤라클레스의 등장은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오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미노스 왕은 할 수만 있다면 그 난폭한 황소를 잡는 일을 돕고 싶어 했다. 그런데 달리 도울 일이 없었다.

왕의 허락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크레타의 황소(Minotauros)’를 찾아 나섰다. 그 황소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온 마을이 폐허로 변하고 있는 곳에는 여지없이 그 황소가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황소를 발견하자 헤라클레스는 아주 튼튼한 그물을 만들어서 어깨에 메고는 황소를 추격했다. 그러자 기척을 느낀 황소는 뒤돌아서더니 헤라클레스를 향해 돌진했다. 흠칫 놀란 헤라클레스는 일단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그러자 무섭게 돌진하던 황소는 허탕을 치면서 코로 불을 뿜어냈다. 불길은 순식간에 커다란 바위를 까맣게 만들어 버렸다. 수차례의 생포 싸움으로 그 소를 지치게 하였다. 힘이 장사인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생포당하고 만다.

(The Minotaur(1885)/ George F. Watts) (헤라클레스의 황소 생포)

다이달로스 미궁

플리니우스(Plinius)는 고대의 4대 미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이집트 미궁이다. 헤로도토스와 스트라보의 서술에 의하면 아르시노에 고대의 유적지 즉 크로코딜로폴리스(Crocodilopolis)의 맞은편, 모에리스 호수 동쪽에 이집트의 미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집트 학자들에 따르면 미궁이라는 단어는 ‘호수 입구에 있는 사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곳은 건물 전체가 하나의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12개의 저택과 지하 1,500개, 지상 1,500개 등 모두 3,000개에 달하는 방이 있었다. 지붕은 전체가 돌로 만들어졌고, 벽은 조각 작품으로 장식되었으며, 한쪽 면에는 약 74m 높이의 피라미드가 서 있었다고 한다.

 

이집트의 미궁 형태의 건축물 상상도

헤로도토스는 위층의 방들은 직접 둘러보았으나 지하의 방들은 구경할 수 없었다. 그가 전해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지하에는 미궁을 건축하도록 한 왕들의 무덤과 신성한 악어들의 무덤이 있었다고 기술하였다. 또 다른 고대 연구의 권위자들 가운데에는 그 미궁이 고대 이집트 주(州) 대표들의 모임이나 정치적 모임을 위한 장소로 건축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그보다는 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더 크다. 미로를 건축한 것은 기원전 1842~1797년 이집트를 통치한 12대 왕조의 아메넴헤트(Amenemhet) 3세였다.

 

둘째, 크레타 미궁(Cretan labyrinth)이다. 이집트인의 설계에 따라 다이달로스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크레타의 미궁은 미노타우로스 신화에 등장해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로 존재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초기의 저술가들은 이 미궁이 크노소스 부근에 있었다는 기록을 남겼고, 또 미궁의 모습이 동전의 그림 도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의 발굴조사과정에서는 왕궁의 건설계획이 있었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런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클로디언 같은 후기 저술가들은 미궁의 위치를 고르티나 근처로 보고 있지만, 그 근처에 있는 몇 개의 복잡한 통로와 방들은 실제로 고대의 채석장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셋째, 렘노스(Lemnos) 미궁이다. 건축법이 이집트 미궁과 비슷하며 150개의 기둥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미궁이다. 클루시움(Clusium)에 있는 포르세나 왕의 무덤 지하에 많은 방들이 매우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미노스 왕은 미노타우로스를 아무도 모르는 곳 라비린토스(labyrinth)에 가두게 하고, 먹을 것은 주게 했다. 라비린토스, 그 미궁은 한 번 들어가면 미로에서 헤매다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 안에서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지로운 미로였다. 그러나 괴물은 영웅의 손에 퇴치되게 마련이어서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Theseus)가 나타나 황소 괴물을 죽이고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막았다.

 

지혜의 영웅 테세우스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국가적 영웅이었으며,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와 함께 그리스 최고 영웅으로 뽑히곤 한다. 헤라클레스가 힘의 영웅이라면 테세우스는 지혜의 영웅이다. 신화이야기에서 테세우스도 크레타의 황소뿐만 아니라 라비린토스의 식인 괴물 황소도 퇴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크레타의 황소를 퇴치하도록 명령을 받은 테세우스는 용감하게 괴물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테세우스는 마라톤 평원에서 괴물 황소와 맞닥뜨렸다. 많은 사람을 잡아먹었던 황소는 코로 불을 내뿜으며 테세우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괴물 황소는 테세우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힘뿐만 아니라 지략까지 갖춘 테세우스는 황소를 교묘하게 흥분시키고 유인하여, 쉽게 잡아 죽일 수 있었다. 메데이아(Medeia)는 테세우스를 황소에게 죽게 만들 생각이었으나, 테세우스는 거뜬하게 황소를 잡아다가 아테나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아테나이의 왕 아이게우스(Aegeus) 신탁

그리스의 도시 국가 중 하나인 아테나이의 왕 아이게우스(Aegeus)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나라의 힘은 나날이 늘어 갔고, 백성의 살림살이는 나날이 넉넉해져 갔다. 그런데 그런 아이게우스 왕에게도 남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슬하에 아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게우스는 장차 아들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인지, 아니면 팔자에 아예 아들이 없는 것인지 그게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의 신전으로 가서 신탁을 한 번 받아 보고자 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신들이 인간의 팔자를 주관한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무신(巫神) 아폴론의 신전에 가서 그 신전을 지키는 여 사제에게 물으면 그 뜻을 미리 아는 것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여사제의 예언, 즉 여사제가 전하는 아폴론 신의 뜻은 두루 뭉수리 한 것으로 이름 나있다.

 

아이게우스가 아폴론 신전에서 받은 신의 뜻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우두머리여, 네 나라 아테나이에 이르기까지는 통가죽 부대의 발을 풀지 말라.” 통가죽 부대의 발이란 무엇인가? 그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양의 통가죽을 포도주 부대로 이용했다. 통가죽 부대를 술통이나 술 주전자로 이용한 것이다. 따라서 통가죽 부대의 발은 술 주전자의 주둥이를 조심하라는 말, 결국은 술을 조심 하라는 말이다.

아이게우스는 아폴론 신전이 있는 델포이에서 아테나이로 돌아가는 길에 트로이젠이라는 나라를 방문했다. 트로이젠의 왕인 피테우스는 당시 그리스에서 현명한 왕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던 사람이다. 아이게우스는 트로이젠에 이르기까지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트로이젠에서는 왕이 하도 간곡하게 권하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게우스는 왕이 권하는 대로 포도주를 받아 마시고는 인사불성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잠에서 깬 아이게우스 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트로이젠의 공주 아이트라가 알몸이 된 채 곁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플루타르코스 저 유명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는 이 대목에 이르러 다음과 같이 절묘하게 쓰고 있다. “공주가 피테우스 왕의 설득에 못 이겨 손님의 잠자리로 들어갔는지, 아니면 공주가 손님이 취한 것을 알고 스스로 찾아들어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라고…. 플루타르코스의 묘사가 절묘하다. 누구의 의사로 동침이 이루어졌는지 따지는 것 같지만, 그는 이로써 손님과 공주의 동침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논법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중에 남의 나라 공주와 동침한 것을 안 아이게우스는 서둘러 그 나라를 떠났다. 떠나기 직전, 그는 방 앞의 ‘섬돌’을 번쩍 들어 옮기고는 섬돌 있던 자리에다 칼 한 자루와 가죽신 한 켤레를 놓은 뒤 그 위에다 다시 섬돌을 놓았다. 섬돌이란 방 앞에 놓인, 층계 노릇을 하는 긴 돌을 말한다. 힘센 장사가 아니고는 그런 섬돌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없다. 아이게우스는 섬돌을 제 자리에 놓은 뒤 공주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들이 태어나거든, 그리고 그 아들이 제 아버지가 누군지 궁금해 하거든 내게로 떠나보내세요. 내가 섬돌 밑에다 신표(信標)가 될 만한 것을 감추어 두었으니, 제 힘으로 그 섬돌을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 자라면 보내세요.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보내세요.” 신표가 무엇인가? 바로 칼과 가죽신이다. 놀랍지 않은가? 여기에서도 가죽신은 신분증명서 노릇을 할 모양이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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