꿔바로우(锅包肉)단상

꿔바로우(锅包肉)단상

 

임재철 칼럼니스트

 

 

해가 바뀐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달력은 3월 중순을 넘어가고 있으니 진정 봄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지만 그 만물은 변할 수밖에 없다. 태어나 자라고, 늙고 병들며, 결국 소멸한다. 하늘에 별들도 그러하다. 우리는 대개 이 같은 변화를 잊고 산다.

내가 유한하고 사라질 것임을 상기하려 애쓰지 않는다. 꽃을 가꾸듯 사랑을 키워내지 못하는 까닭일 거다.

 

우린 머리를 비워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 빈 하늘은 무한이 넓다. 빈 잔이라야 물을 담고 빈 가슴이래야 욕심이 아니게 자신을 안을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빈 마음이 좋다는 거다. 마음이 비워지지 않아서 산다는 일이 한없이 고달픈 것이다. 비어야만 아름답다. 텅 빈 그 마음이라야 인생의 수고로운 짐을 벗는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꿔바로우(锅包肉)’에 바이주(白酒)를 먹고 싶다. 봄이 되니 더 당기는 것을 느낀다. 이곳저곳 맛집이 수두룩하지만, 필자가 주로 찾는 곳은 이수역 뒷골목 ‘항방양육관’이다.

그리고 중국음식 중 손꼽는 대표 메뉴는 꿔바로우와 토마토 계란볶음이다. 탕수육과 비슷한 찹쌀로 만든 꿔바로우는 그 자체로 맛있고, 토마토계란볶음은 가성비가 좋아 그렇다.

그래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월 필자의 다나(다동나그네)모임은 그 곳에서 한다. 평소 중국음식을 좋아하는 필자를 비롯, 함께하는 일행들도 마음에 들어 하는 곳이다. 꿔바로우도 좋지만 깔끔하고 정갈한 양고기 등 요리가 좋아서 달마다 모임 뿐만 아니라 자주 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식당의 맛이 강력하단 증거다.

특히 여주인이 직접 요리해서 해 올리는 꿔바로우는 한결같이 기본 이상의 맛을 선사한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단 말이 딱 들어맞는 비주얼과 맛이다. 적당히 익어 감칠맛이 한껏 올라온 꿔바로우와 지삼선(가지와 감자볶음요리)는 바이주를 적시는 일품 안주다. 중국의 동북 헤이룽장 성 친절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궈바로우는 청나라말 헤이룽장(黑龍江) 하얼빈(哈爾濱)을 시작으로 중국 동북부지역에서 탄생한 요리로 알려지고 있다. 처음엔 러시아인의 입맛을 위해서 남은 돼지고기에 반죽을 입혀 튀겨 먹게 된 것이 시초라 하며, 시대가 더 발전하고 흐르게 되면서 조금 더 두툼한 고기를 바삭하게 튀겨내 그 위에 다양한 소스나 달달함을 추가하게 됐다고 한다. 20세기 들어 동북의 꿔바로우가 홍콩이나 상하이 등 중국의 중심으로 건너가 자리를 잡았고 그 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다른 나라로 유입돼 오늘에 이른 것이다.

 

말하자면 중국 본토요리가 인기를 끌면서 우리 주변에도 서민들이 찾는 음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예컨대 음식점이 밀집한 건국대입구·서울대입구·대림동 차이나타운 등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 먹을 수 있다. 이들 지역은 주말이면 인파로 북적인다.

서울 한복판에서 중국 교포 업주들이 현지 맛을 내세우고 가격을 낮추면서 이제 꿔바로우는 쉽게 즐겨 먹을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정통 중화요리가 고급 내지 이색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버리고 대중 요리로서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인기 메뉴는 마라탕, 마라샹궈, 꿔바로우, 지삼선, 양꼬치 및 바이주 등이다. 필자 역시 이런 음식에 곁들인 쯔란(孜然), 산초, 고수(香菜)등의 강한 향을 좋아하고 이 가운데 최애 음식은 고수다. 즉 고수탕, 건두부 고수말이, 고수나물무침 등의 고수가 듬뿍 담긴 음식을 선호한다.

어디에서나 우리가 맛 좋은 친절한 맛집을 만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가령 우리가 인생을 경험할 때마다 소주 한잔에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던 음식은 무엇일까.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로서는 나이가 들어도, 맛집을 다녀도, 먹방을 즐겨 봐도, 여전히 ‘꿔바로우’라는 생각이다. 어렸을 때 자장면과 함께 먹었던 탕수육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물론 엄마표 ‘그리움’이 담긴 음식을 제외하고….

보기만 해도 스르르 침이 고이고 후루룩 한 입 넣으면 놀라게 되는 음식이 꿔바로우라는 사실은 맛이 순하고 달달하니 혀에 착 감기기 때문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어릴 적 탕수육 정서에 견주어 시간이 멈춘 듯 한 느낌이 들기에 그런 것 같다. 한편으론 이제는 미학적이란 생각까지 든다. 이래서 이수역이나 꿔바로우가 있는 곳을 또다시 들려야 할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

만물은 물 흐르듯 태어나고, 자라나서 또 사라진다. 자연은 이렇게 늘 말해주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마음의 행복이다. 때때로 맛있는 꿔바로우 한입을 찾는 것처럼 우리가 좋은 일만을 기억하며 지낼 수 있는 시간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상념이다. 다시 말해 꿔바로우를 앞에 두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일상이었으면 좋겠다. 평범한 삶속에서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놀라워하고, 더 많이 정이 흐르고, 더 건강하게, 더 오래, 더 아름답게 인간미 물씬 풍기는 나날들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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