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전통酒 유한회사 ‘귀리귀인’ 李在云 회장 全孝淑 대표
‘1894 동학혁명’,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 정읍의 특산물
귀리로 빚은 대한민국 첫 번째 증류식 소주 ‘귀리귀인’
쌀이나 보리처럼 귀한 식재료도 아닌 들 보리 ‘귀리’가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특히 전북 정읍은 더 그렇다. 정읍의 특산물 가운데 하나가 귀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다이어트를 하는데 귀리가 효과적이고, 특히 당뇨병 환자의 식재료로 귀리가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귀리가 귀한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명나라 때에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이 펴낸 약학서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귀리’(oat)는 들 보리라고 했다. 제비와 참새가 잘 먹기 때문에 연맥(燕麥), 작맥(雀麥)이라고 했으며, 또 광맥(穬麥), 이맥(耳麥)이라며 열매는 식용되거나 알코올, 과자의 원료, 가축의 사료로 쓰인다고 했다.
원산지가 중앙아시아 아르메니아로 추정되고 있는 귀리가 우리나라에 전파된 것은 고려 때 몽고병사들이 말의 양식으로 가져온 것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가 가끔 먹는 오트밀이 귀리다. 귀리는 낱알은 작지만 많은 영양소를 가지고 있다. 이 영양소의 총점은 9.99점으로 완벽한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다. 특히 곡류임에도 불구하고 고단백 식품이여서 많은 영양학자들이 꼭 먹어야 할 음식으로 권장하고 있는 데, 단백질 함량이 일반 쌀의 2배, 식이섬유는 현미의 2배에 이르는 저 열량 고단백 곡류다. 특히 귀리는 2002년 <타임지>가 ‘슈퍼푸드 10’에 선정 해서 더욱 각광 받기 시작했다.
귀리는 동맥경화 예방, 심장병, 당뇨병, 위장병 등에 좋고, 단백질, 지질(脂質)의 함량이 높고 단백질의 아미노산 조성도 쌀과 비슷하여 곡류 가운데서는 영양가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최근에는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가 높은 곡물이다.
귀리는 추위에는 약하나 냉습한 기후나 척박한 토양에 대한 적응성은 강해 전북 정읍 지방은 국내 최초 식용귀리 생산지이자 국내 최대 귀리 생산지이기도 하다.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運動, 고종 31년 1894)의 발상지 정읍에서 귀리로 술을 빚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은 지난 해 가을 우리 술 대축제 때였다.
‘귀리로 술을 빚는다?’ ‘술이 잘될까?’ ‘술 맛은 어떨까?’ 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 기자가 의구심을 갖고 이를 풀지 않는다면 기자가 아니다. 그래서 정읍으로 달려갔다.
귀리로 술을 빚는 ‘귀리귀인’ 양조장은 정읍시 고부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큰 규모의 양조장도 역사가 덕지덕지 쌓여 스토리텔링이 넘쳐나는 양조장은 아니지만 이재운(李在云,68) 회장이 품고 있는 야망과 전봉준(全琫準)장군의 5대손 전효숙(全孝淑, 66세) 대표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나라 전통주산업에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 회장의 사회적 활동의 DNA가 정읍지역 도시 개발에도 적극적
기자는 귀리에 대한 풍부한 지식도 없이 수년간 귀리를 군것질로 섭취해 오고 있다. 귀리를 깨끗이 세척하여 건조한 후 프라이팬에 바삭할 때까지 볶아서 과자 대신 한 움큼씩 먹는다. 고소함이 입맛에 맞아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술박람회서 귀리술을 만나게 되었다. 박람회장에서 맛보이는 술을 가지고 평가하기란 전통주 소믈레에나 가능할까. 재료가 독특하여 묻기를 몇 번인가 하고 찾아보기로 했다.
이재운 회장을 양조장이 아닌 정읍역 앞에 위치한 리본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사무실에 만났다. 이 회장은 인터뷰 장소가 양조장은 마땅치 않아서라고 했지만 은근슬쩍 이 회장이 하고 있는 사업을 자랑하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이 회장은 부친이 교사였다고 했다. 9남매 중 다섯 번째로 태어난 이 회장은 중․고등학교를 전주에서 다녔다고 한다. 다른 형제처럼 대학에 진학하려고 했으나 부친이 형제 중 누군가는 가업을 이어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에 고향인 고부에서 농사를 지었다.
전답이 꽤 많은 집안의 농사를 짓는 한편 사회 활동으로 4H(세계적인 청소년 민간단체로 Head, Heart, Hand, Health)로 우리나라에서는 1947년에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각각 지, 덕, 노, 체로 번역해 사용하고 있는 단체로 농업구조와 농촌의 생활을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열심히 활동을 하다 보니 4H 회장도 역임했다고 한다.
이 회장의 이런 사회적 활동의 DNA는 정읍지역 도시 개발에도 적극적이어서 리본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장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도시재생인란 인구의 감소, 사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와 등으로 인하여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 강화’, ‘새로운 기능 도입․창출’ 등을 통해 경제․사회․물리․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한 정책이다.
인구 10만여 명의 정읍을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이 회장은 직접 협동조합을 운영하면서 식당 및 카페, 마을 숙박사업, 공영주차장 위탁운영 사업 등도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귀리귀인’과 딱 어울리는 안주는 무엇일까? 이 회장이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
이재운 회장은 공부를 계속하지 못한 한도 있고, 실제 생활에서 필요한 부분도 많아 늦깎이 대학생으로 현재 전북대 조리학과 2학년생이라고 했다.
“늦은 나이에 학교를 다니기가 쉽진 않지만 열심히 공부를 하다 보니 나이도 잊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귀리로 빚은 술과 어떤 안주가 잘 맞는지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양조장을 시작하기 전 건설사업도 했고, 과학 기자재 납품도 하는 등 여러 사업과 사회 활동을 하다 보니 술을 마실 수 있는 기회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술을 마실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술과 매칭이 잘되는 안주가 따로 있더란 것, 그래서 귀리와는 어떤 안주가 잘 어울릴 것인가를 공부하고 싶어서 조리학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귀리귀인’이 상호이면서 주명(酒名)인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느냐는 질문에 “귀한 사람이 먹는 귀한 술”라는 뜻이라고 했다. 이 회장이 작명했다는 ‘귀리귀인’은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도 좋아 주명으로 사용하기엔 딱 인 것 같다.
이 회장은 지역 특산물인 귀리로 술을 만들겠다고 2020년 12월 10일 양조장을 설립했다. 그러나 특별히 술 빚는 공부를 하지 않은 탓에 실패를 밥 먹듯 했다고 한다.
“술 빚는 것 생각 보다 어렵더라고요, 더욱이 귀리로 처음 술을 담가보니 발효가 잘 안되고 발효가 되어도 술 맛이 안 나오고 그랬습니다. 3년여 세월이 흐르다 보니 어느 정도 술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귀리로 막걸리를 만들어 판매하다 보니 유통기간이 짧아 증류주로 전환했다”고 이 회장은 말했다.
국내에서 귀리로 술을 빚어 생산하는 것이 처음이라 2021년 12월에는 전통주 제조방법 및 상표등록 특허등록(제 10-234606호)도 받아 두었다.
귀리귀인의 양조장은 공장 짓는 설계부터 설비까지 이 회장이 직접 설계도 하고 설비도 했다고 한다. 현재 병입은 수작업으로 하고 있지만 곧 자동화시설로 바꿀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다른 양조장에서는 비중 있게 다루는 증자(고두밥 찜)설비가 단출하다. 양조장에서 가장 힘든 작업이 고두밥을 찌고 이를 식히는 과정인데 이를 생략하고도 술을 빚는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우리 양조장에는 별도의 찐 쌀을 식히지 않고 증자기에서 바로 발효 탱크로 보내 술을 생산한다”며 이양주 형태로 술을 빚는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공장의 규모가 크지 않아도 발효, 증류, 숙성시설을 골고루 배치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귀리귀인의 숙성 방법은 독특하다. 상압식으로 증류한 소주에 오크 칩을 사용한 숙성 방법으로 숙성시킨다. 오크통에 숙성시키지 않고도 단 기간 내에 10년 20년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술맛과 똑 같은 술맛을 내고 있다.
현재 귀리귀인이 출하하고 있는 술에는 동학혁명을 기리기 위해 동학혁명이 일어났던 1894년을 상징하는 라벨이 부착되어 있다.
▴동학농민혁명주 증류식소주 ‘1894 동학’ 375㎖, 19%: 8,000원▴동학농민혁명주 증류식소주‘1894 혁명Mild’, 500㎖ 40%:32,000원.▴‘1894 혁명, 1894 고부세트’:70,000원 ▴동학농민혁명주 증류식소주 ‘1894 고부’ 500㎖ 25%:20,000원▴동학농민혁명주 증류식소주 ‘1894 혁명’ 500㎖ 45%: 50,000원 등이다.
술맛이야 각자가 다르게 느끼겠지만 25도짜리 고부는 12년 묵은 양주보다 맛과 향이 좋다는 평을 받는다고 했다.
동학농민혁명이 그랬듯이 귀리귀인이 전통주업계의 횃불이 되기를
이 회장은 “문헌 상 중세 시대에 북유럽 지역에서는 귀리가 주요 곡물로 재배되었고, 귀리로 만든 빵과 술이 일상적으로 소비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귀리술은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만든 술이 최초가 아닌가 여겨집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건강에 좋은 귀리로 만든 술이니까 귀리술은 우리 몸에도 좋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귀리는 지금껏 쌀 귀리보다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기 위한 재배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쌀 귀리의 재배를 늘여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회장이 직접 짓는 귀리 농장은 약 4천여 평에 달하는데 귀리는 보리처럼 귀리를 수확하고 나서는 바로 벼를 심을 수 있어 2모작이 가능한 곡물이라고 했다.
현재 정읍지역은 쌀농사를 짓고 나서 놀리는 땅이 많아서 이 회장은 이웃에게 귀리 재배를
권유하고 있다고 했다. 정읍지역의 귀리도 산업화와 함께 잊혀진 식품이 되었지만, 최근 건강식품으로서의 인기를 얻고 있어 귀리가 귀한 대접을 받고 있어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귀리의 상당수가 미국이나 호주 등으로부터 수입된 귀리인데 정읍에서 생산되는 ‘정읍귀리’는 가격은 비싸더라도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귀리귀인이 애주가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 쌀 귀리의 가치는 상승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귀리는 강한 기후 조건에서 재배하기 쉽고, 식량으로 사용되는 곡물인 밀에 비해 더 저렴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귀리귀인’은 동학농민혁명의 인간의 존엄성 존중과 사회적 평등 정신을 이어받아 어둑한 세상 누구나 위로받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지역대표 전통주다.
동학농민혁명이 그랬듯이 ‘동학농민혁명 전통酒’가 국내 전통주 업계의 횃불이 되어 불타오른다면 한국산 전통주가 세계 주류시장에서 올림픽경기에서 10연패를 달성한 한국의 양궁처럼 되지 않을까.
글․ 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