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인 갑쏘~~
임재철 칼럼니스트
올 해는 무던히도 더웠다. 엄청난 더위에 열대야가 끝없이 이어졌고, 폭염경보도 수없이 발령되었다. 열대 우림의 폭우와 장마도 요란했다. 필자의 인생 역시 신체적 정신적 노후도 있겠지만 이런 폭염은 처음인 듯하다. 온 세상이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염천에 찜통 더위였지만 그래도 세월은 흘러 가을이 오는가 보다. 가을은 바람으로부터 온다더니 선선해지는 바람결이다.
그러니까 계절의 절기 앞에 그 무덥고 유난했던 여름의 열대야도 생명력을 잃고 살며시 뒷걸음치면서 가을이 설렁설렁 오고 있다. 너무 뜨거워 밤낮을 버티기 힘들게 했던 폭염도, 폭우도, 매미 울음도 꼬리를 슬며시 내리고, 얼마 전 통화한 고향 친구 표현대로 “아따 인자 가을이 올랑 갑다”. 필자가 자주 걷는 모 대학 캠퍼스의 나무도 조금씩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계절 따라 변하는 자연은 늘 신비롭게 다가온다.
이제부터는 알맞은 금빛 햇살과 바람으로 들판의 곡식들이 잘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역시 궤도를 지켜야 하듯 자연이 주는 신비함에 늘 감사해야겠다. 조금 있으면 누런 빛깔 가을이 눈을 멀게 할 것이고 그 찬란한 가을이 깊어 갈 것이며, 가을의 뒷모습이 보일 때면 겨울이 꿈틀대고 만나는 추위와 하양이 삶을 숙연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가도 ‘삶과 술’ 칼럼에서 말한 적이 있지만 필자는 언제부터 인가, 말하자면 국화를 마당에 직접 키우시고 너무 좋아하셨던 선자(先慈)를 떠나보내고 난 후부터 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쓸쓸한 계절이 가을이 되어 버렸다. 모란이 질 때 슬픔에 잠겼던 시인처럼 국화가 피고 지는 가을이 매년 그렇게 느껴지며 늘 차갑고 허황해지는 시간인 거다. 그러나 가을이 오면 오는 대로, 머물면 머무는 대로, 가면 가는 만큼 뚜벅뚜벅 걸어가는 나그네일 뿐.
우리가 각기 다른 삶의 무게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지만, 무엇보다 기후변화, 기후위기는 우리의 삶 속으로 성큼 들어와 온 지구촌을 휘젓고 있다. 뜨겁게 달궈진 지구는 전 세계 각 곳에서 기상 이변을 발생시키며 우리에게 경고장을 거세게 던지고 있다. 가장 추운 시베리아에서는 폭염으로 인해 산불이 발생하고, 중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에서는 폭염과 폭우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이재민이 발생해 수조 원의 경제 손실이 발생했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는 섭씨 46도를 기록해 창틀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는 일이 발생했고 인도 서북부는 기온이 56도까지 상승했다.
지구 온난화로 우리의 한반도도 사상 초유의 뜨거운 더위 속에서 여름을 보내야 했고,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향후 10년간 올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왔다. 여행가 한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기후위기 양상은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는 바 우선 기상 이변으로 인해 다양한 관광 상품의 보고인 빙하가 녹아 내리고 만년설이 사라졌으며, 호수와 초원이 사라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5천년 된 캐나다의 북극 만년설 2곳이 완전히 사라졌고, 몽골은 기후변화로 지난 수년간 1천여 개의 호수와 8백여개의 강이 사라졌다고 한다. 특히 빠른 속도로 줄고 있는 북극 빙하의 감소는 먼 미래,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얼음이 없는 북극 상황은 충격적인 지구 위기다. 가령 이상 기후가 지속된다면 여행분야를 넘어 단순히 꽃이 덜 피고, 열매가 덜 맺히고, 잡초가 달라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현재화된 기후위기는 지구의 건강뿐만 아니라 인류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여하튼 이곳저곳에서 처참한 얼굴로 ‘기후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는 지구는 모든 인류에게 ‘기후변화 대응’ 일상화를 물으며 온몸으로 심각하게 외치고 있지만, 들판의 벼들은 벌써 벼 이삭을 드러내 자태를 보이고 있고, 감과 밤, 사과, 배, 호박 등 오곡백과가 익어가고 있다. 기후온난화로 계절의 경계를 잃고 헤매며 수시로 굽이굽이 피어났던 코스모스를 보고 때를 모른다며 투덜거렸지만 무색하게 또 한들거린다. 그러면서 항상 변화로 가득 찬 인생을 보는 것도 같다는 생각이다.
구름이 걷힌 높은 하늘과 마주하니 릴케나 칼릴 지브란의 시구도 떠오르지만 이 순간을 살며 길을 가는 나그네는 홀연히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중국 윈난의 가을 길을 흘러가는 대로 떠돌고 싶음은 물론 티베트고원을 달리는 칭장열차를 타고 드넓은 자연의 위대함을 느껴보고 싶기도 하고, 중국의 제일 아름답고 남은 생에 꼭 달려봐야 한다(此生必驾). 도로인 G318국도(川藏线)을 달리면서 자연에 순응하며 순리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풍정을 헤아리며 가슴 시리게 젖어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