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술병』
그 이유!
육정균(시인/부동산학박사)
사람은 담배도 끊고, 술도 끊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하나하나 끊어 가다 보면 종국에는 목숨을 끊고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거의 먹지 않는 술 한 잔을 마셔도 요즘엔 전혀 취하질 않고, 어떤 땐 술 한잔 마시지 않았는데도 만취(滿醉)하는 그 이유가 있다.
3.1 운동의 결과 상하이에서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1919. 4. 10.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을 창설했다. 여기에서 국호와 정부 형태, 임시헌법 등을 논의하게 되었는데, 신석우가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라고 제안하여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이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했다. 다음 날인 1919. 4. 11.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이승만을 초대 국무총리로 하여 ‘상하이 임시정부’를 결성했다.
‘상하이 임시정부’와 비슷한 시기인 1919. 4. 23.에 같은 기치를 내걸고 경성부에서 이승만을 집정관총재로 한 ‘한성정부’가 ‘대조선공화국’을 국호로 하여 13도 대표 국민대회의 명의로 선포됐고, 1919. 3. 17. 러시아 프리모리예 지방(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대한국민의회’가 결성됐다.
상기 단체 외에도 1919년에는 고려 임시정부, 신한민국 임시정부, 조선민국 임시정부 등 여러 단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있었다. 그러나 임시정부를 칭하는 세력들이 분산되어 있을수록 항일투쟁이 힘들다는 의견이 모아져서 서로 통합을 계획하게 된다.
참고로 이승만은 고려 임시정부에서는 국무총리로, 신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국방총리로, 조선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집정관총재 겸 국무총리로 추대되어 있었다.
이에 대한국민의회-상하이 임시정부가 먼저 통합을 하기로 했지만 중국과 러시아라는 위치 문제로 좌절되었다.
그러나 대한국민의회의 대다수를 임시의정원에 포함시킨다는 조건으로 결국 통합되었다. 한반도에 있는 한성정부와의 통합 역시 난관이 많았지만 한성정부가 국제 언론에 노출되었다는 점, 국내에서 13도 대표 국민대회를 통해서 결성되었다는 점에서 정통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래서 정통성과 기틀에서는 ‘한성정부’를 따르는 대신에 위치와 국호에서는 ‘상하이 임시정부’를 따르는 것으로 합의안을 완성했고, 1919. 9. 11.에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이동휘를 국무총리로 추대하면서 새롭게 통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결성했다.
예전부터 한반도에서 정부 기능을 해온 것은 조정이나 조선총독부, 미군정 등이 있었으나 한국 정부라고 할 때는 1948. 8. 15.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유일하다. 아래와 같이 현행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주요연혁 | 헌법전문 | 비고 |
제정시행
1948.7.17.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중략)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이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 삼일운동으로 건립 |
전부개정
1962.12.26. 시행 1963.12.17. |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중략)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된 헌법을 이제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 4·19의거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 |
전부개정
1987.10.29. 시행 1988.2.25.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중략)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삽입
5·16혁명 이념삭제 |
반면, 1945. 8. 15. 광복 이후, 38도선 이북에서는 민족주의 계열의 조만식을 위원장으로 하는 평남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으나, 소련의 김일성 지지와 지원으로 평남건준위는 유명무실화되었고, 조만식을 비롯한 민족주의계 인사들은 김일성에 의해 숙청되었다.
- 10. 3. 소비에트 민정청을 설치했으며 1946. 2. 8.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 림시 인민 위원회가 구성되어 사실상 정부의 구실을 하였다. 그리고 무상분배 토지개혁 단행, 국유화 등 개혁을 했고, 이후 공산주의 지배 체제를 확고히 한 뒤에는 수상을 김일성으로 하고 부수상을 박헌영으로 하는 1948. 9. 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요즘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일인 1919. 4. 11.이지 1948. 8. 15.이 절대로 아니라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1987년 개정된 헌법 전문에는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대한민국 임시정부』(1919.9.11.)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하였지, ‘상하이 임시정부’가 정부 수립일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북한은 9월 9일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 및 정권 수립일’로 기념하는데, 이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다. 올해도 군사적 움직임보다는 군중대회나 축하 공연 등 군중 동원 행사를 준비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한산소곡주를 많이 먹어도 전혀 안 취하고, 그 술을 전혀 안 먹었는데도 만취(滿醉)하는 그 이유는 어쩌면 극한 이념 대립으로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기정사실로 하여 역사를 부정하고, 자유 대한민국을 깡그리 부정하며 매일매일 전쟁을 불사하는 이들의 아우성 때문이다.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 「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현) 국토교통부 민원자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