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54)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54)

 

 

Dionysos의 사모곡, 하데스 하강

 

남태우 교수

그리스 신화에는 저승의 강이 5개가 존재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첫째, ‘비통의 강 아케론(Acheron)’은 죽은 자는 저승의 뱃사공 카론(Charon)의 배에 타고 강을 건너는데, 죽은 자들이 자신의 죽음을 비통히 여겨 울며 건너기 때문에 ‘비통의 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아케론’을 건너는 자는 뱃사공 카론에게 뱃삯을 주어야 했으므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망자의 시신에 동전을 넣어주는 관습이 이때부터 생긴 것이다. 망자의 노자돈의 풍습은 우리에게도 지금까지 전해온 관습이다.

 

둘째, ‘시름의 강 코퀴토스(Cocytos)’로서 이 강을 건널 때는 강물에 자신의 과거의 모습이 비치기 때문에 시름에 젖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비탄의 강’, ‘통곡의 강’, ‘깊고 검은 시름의 강’이라고도 한다. 셋째는 ‘불길의 강 플레게톤(Phlegethon)’인데 보통의 물이 흐르는 강이 아니라 불물길이 흐르는 강이다. 용솟음치는 불물길의 폭포가 분노로 이글거린다. 죽은 자의 영혼은 이곳에서 불태워져 정화된다. 넷째, ‘망각의 강 레테(Lethe)’인데 플레게톤(Phlegethon)에서 불로써 정화된 영혼은 레테 강물을 마시고 자신의 모든 과거를 잊게 된다. 그리하여 ‘망각의 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레테는 분쟁과 불화의 여신 에리스(Eris)의 딸이다. 죽은 망령은 지상에서의 기억을 이 물을 마심으로써 다 망각하게 된다. 영혼이 새 육체 속에 들어가 다시 태어날 때 이 강물을 마시고 이승의 기억을 모두 잊는다.

‘스틱스’를 건너고 나면, 죽은 망령은 지상에서의 기억을 모조리 지워 버리도록 ‘레테’의 물을 마시도록 강요당한다. 그래서 망각의 강이다. 환생을 주장하는 철학자들은 죽음의 영혼이 고결한 생활을 다시 한 번 시도하기 위해서 눈물의 골짜기(현세)로 되돌아오기 전에 역시 이 강물을 마신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영어의 ‘러셀(lethal, 치명적인)’과 ‘러싸직(lethargic, 혼수상태의)’은 사촌 형제간처럼 보이는 단어인데, 두 단어는 그리스어인 ‘레테(lethe, 망각의 강)’에서 유래된 것이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신화의 요점을, ‘완벽한 망각은 죽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레티움(Lethum, 죽음)’과 ‘레셀리스(lethalis, 치명적인)’라는 말을 새로 만들어 냈다. 우리들이 쓰고 있는 ‘lethal’이라는 말은 후자에서 나온 것이며, 1583년경에 처음으로 ‘lethal sin’, 즉, ‘용서받을 수 없는 죄(대죄)’라는 문구로 쓰여졌다. 이 말은 17세기 초에 이르러 문화적인 의미로 ‘치명적’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영화 <러셀 웨폰(Lethal Weapon)>에서 사용된 치명적이라는 의미의 ‘러셀’의 어휘도 여기에서 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증오의 강 스틱스(Styx)’로 명계를 아홉 번 휘감고 있는 강이다. 하데스의 궁전으로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강이다. 이 강은 다른 강과는 달리 신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만약 스틱스에 대고 한 맹세를 어길 경우, 그 신은 스틱스가 품고 있는 ‘타르타로스(Tartaru, 무한의 지옥)’로 빨려 들어가 갇힌다고 한다. 스틱스(Styx)는 혐오스럽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화로는 테티스 여신이 자신의 아들 아킬레우스를 불사의 몸으로 만들려고 스틱스 강에 담갔는데 손으로 잡고 있던 발 뒷꿈치가 약점이 되어 죽게 된 사건이 있다. 그래서 ‘아킬레스건(Achilles Tendon)’이라는 말이 생겨 난 것이다. 스틱스 강은 맹세를 할 때도 사용한다. 스틱스 강을 두고 한 약속은 신이라고 해서 꼭 지켜야한다. 물론 그 약속을 어긴 신은 없다. 디오니소스의 어머니인 세멜레와 제우스와의 약속도 그렇다.

 

하데스(Hades)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죽은 자의 신이며, 지하의 왕국, 즉 티탄 신족 등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괴물 및 죽은 인간의 망령들이 갇혀 있다고 여겨지는 ‘저승’의 지배자다. 하데스라는 이름은 엄밀한 의미에서 저승의 신 자체를 말하고 장소를 뜻하지는 않는다. 하데스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아들로 제우스, 포세이돈, 헤라, 헤스티아(Hestia), 데메테르(Deméte)와는 형제간이다. 하데스의 아내는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이다.

하데스의 이름은 불길한 징조로 생각되어, 그를 별명으로 부르는 일이 많았다. 하데스는 곡식을 여물게 하여 부(富)를 가져다준다고 믿어졌기 때문에, 플루툰(Pluton, 부유한 자)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리었다. 이밖에 에우플레우스(좋은 충고자), 크리메노스(유명한 자), 폴리데그몬(많은 손님을 맞는 자), 피라르테스(문을 닫는 자), 스티게로스(가증스러운 자), 제우스 카락토니오스(지하나라의 제우스) 등의 이름으로 불리었다. 특히 제우스 카락토니오스라는 명칭에서 지하의 왕국에서 하데스의 지배력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준다.

하데스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잡아먹힌다. 제우스에 의해 아버지 뱃속에서 다시 살아나온 하데스는 제우스 편에 서서 크로노스와 티탄을 상대로 싸운다. 이때 그는 퀴클롭스(Cyclopes, 이마 한복판에는 눈이 하나밖에 없다)에게서 황금투구 ‘퀴네에(Kynee, 은둔모)’를 무기로 받는다. 이 투구를 쓰면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황금투구는 아테나 여신이 즐겨 빌려 썼다. 또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자를 때에도 빌려 썼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도 제우스의 전갈을 비밀리에 전할 때 이 투구를 빌리곤 했다. 티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크로노스의 세 아들이 제비뽑기를 했을 때 제일 큰 형인 하데스는 지하세계를 맡게 되었다.

 

하데스는 자신의 지하 궁전에서 조용히 지내기를 좋아하였다. 여간해서 지상에 나오거나 올림포스에 올라가지 않았다. 그가 지하세계 밖으로 나들이한 것은 꼭 두 번이다. 한 번은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를 납치하기 위해 뉘시온(Nysion) 평원에 나타난 것이 첫 번째며, 두 번 째는 헤라클레스의 공격을 받은 포세이돈(Poseidon)의 쌍둥이 아들 페리클뤼메노스(Periklymenos)와 넬레우스(Neleus)를 도우러 퓔로스로 왔을 때이다. 이 전투에서 하데스는 헤라클레스의 화살에 어깨를 맞아 부상당한다. 하데스는 올림포스로 가서 신들의 의사인 파이에온(Paieon)에게 상처를 치료 받았다.

하데스는 무서운 표정으로 가혹하고 냉정한 신이며, 자신이 지배하는 왕국의 규칙을 엄격하고 평등하게 적용시켰으며, 결코 사악하고 부정을 저지르는 악마적인 신은 아니다. 하데스의 집은 죽은 망령들이 머무는 곳이며, 지상에서 죄를 지은 자들이 벌을 받는 곳이었지만, 그렇다고 감옥은 절대 아니었다. 이곳에서 죽은 자들은 생전의 모습과 비슷한 망령이 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심장이 멎어 피가 흐르지 않고 감각이 상실되었으며, 또 지상으로의 귀환이 허용되지 않았다. 실체가 없는 푸르스름한 그림자처럼 되어, 평소에는 생전과 같이 여러 가지 활동을 기계적으로 한다. 망령들이 사는 ‘아스포데로스가 피어나는 들’은 어디나 똑같이 어둡고, 그들의 생활에는 사회성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

영혼의 안내자인 헤르메스를 따라 지하 세계로 들어가면, 입구에 무서운 머리가 3개이고 꼬리는 뱀 모양이며, 목둘레에 살아 움직이는 여러 마리의 뱀 머리가 달려 있는 케르베로스(Kerberos)가 지키고 있어서 다시 지상에 나올 수 없게 되어 있다. 뱃삯으로 1오보로스를 지불하면 늙은 뱃사공인 카론이 스틱스강을 건네다준다. 강을 건너면 미노스(Minos), 라다만티스(Radamanthys), 아이아코스(Aiacos) 세 재판관이 기다린다. 그러나 이들의 판결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대부분의 경우는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죽은 자의 대부분은 아르카디아의 정원에 피어있는 망각의 꽃 아스포데로스(Aspoderos)의 들에 그대로 머무르게 되고, 생전에 특별한 공덕이 없는 한 지복(至福)의 들이라 불리는 엘리시온(Elysion, 제우스의 특별한 대우를 받은 영웅이 이 세상에서의 생이 끝난 후 안락한 불사의 생활을 보내는 곳)에는 들여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킬레우스(Achilleus)조차 엘리시온의 들어가는 영예를 누리지 못했다고 한다. 오디세우스가 저승을 여행했을 때, 아스포데로스 들에서 아킬레우스를 만났는데, 아킬레우스의 망령은 오디세우스에게 죽은 자의 왕보다 비록 한 치의 땅도 없는 노예인 편이 더 좋다고 말했다. 헤라클레스는 올림포스에 맞아들여져 신들의 대열에 낄 정도의 영웅이었으나, 그의 망령 역시 엘리시온에는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가 지하세계 하데스를 가게 된 이유는 7달 동안 수태인 채로 있었던 어머니 세멜레 때문이었다. Dionysos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어머니 세멜레를 올림포스 산정으로 올려놓기 위해서 하데스로 하강한다. 지하세계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하던 디오니소스는 바닥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레르네(Lurnae) 호수 근처에서 하데스로 가는 길을 찾아낸다.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디오니소스는 프로쉼노스(Prosymnos 또는 Polymnus)라는 이름의 청년에게 레르네 호수로 가는 길을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청년은 길을 가르쳐 주는 대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자기와 육체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지하여행을 마치고 지상으로 돌아온 디오니소스는 그 사이에 프로쉼노스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막대기 하나를 남근 모양으로 깎아서 그의 무덤에 꽂아서 상징적 성행위를 완수한다.

 

이렇듯 디오니소스는 신격화 직전에 어머니를 찾아 저승으로 내려간다. 자신의 영광에 어머니를 동참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되찾은 디오니소스는 어머니와 함께 올림포스로 올라가 신들의 반열에 든다. 그 즈음 아리아드네는 낙소스 섬에서 잠든 사이에 연인 테세우스가 떠나 버려 버림받은 상태에 놓여 있었는데, 디오니소스가 지나가다가 그녀를 보고 반해서 그녀를 데리고 올림포스로 가서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황금관을 선물한다. 그 왕관은 훗날 별자리가 되었고, 디오니소스는 아리아드네와의 사이에서 암펠로스(Ampelos, 포도밭), 스타퓔로스(Staphylos, 포도나무), 오이노피온(Oinipion, 술 마시는 사람)의 세 아들을 낳았다.

아테네에서는 매 해 디오니소스를 기리기 위한 ‘디오니시아 대제전(Great Dionysia)’라고 불리는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이 축제에는 정교하게 꾸민 행진이 행해지는데, 디오니소스 조각상과 함께 성스러운 남근(신의 남성적 생식력의 상징)의 복제품을 들고 행진한다. 디오니소스 교에 입문하는 입문자들이 치르는 신비의식에는 과장된 크기로 만든 디오니소스 신의 모형 음경을 덮은 베일을 벗겨내는 충격적 행사가 포함된다. 서기 79년 베스비우스(Vesuvius) 화산 폭발로 파묻혀 버린 폼페이 근처의 유명한 ‘신비의식의 마을(Villa of the Mysteries)’에는 다양한 디오니소스교 입문의식들의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올림포스 산 꼭대기의 신들과는 대조적으로 정서적 온기를 제공하는 디오니소스 신비교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전역에 걸쳐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로마 원로원이 기원전 186년에 바카날리아(Bacchanalia) 제전을 금지시켰으나, 술의 신을 모시는 제전은 기독교도래 이전까지 계속되었다.

오르페우스교(Orphicism)는 디오니소스의 광적인 열광과 아폴론의 절제 사이의 중재자로

오르페우스교의 모자이크

시인 오르페우스를 지목하였는데, 표면상 정반대로 보이는 대립된 신들의 통합이다. 엄격한 개인의 윤리의식 강화, 내세에 대한 준비, 감성과 지성의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이러한 오르페우스교의 교리는 많은 부분이 기독교 교리와 흡사하다. 따라서 기독교 초기 예술가들이 죽었다가 부활한 예수의 현현을 묘사하기 위해 흔히 오르페우스의 모습이나, 심지어는 디오니소스의 모습을 활용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4종의 신적 광기:예언적 광기제의적 광기시적 광기사랑의 광기

 

알코올의 최대의 축복은 ‘광기(狂氣, insanity)’에 의하여 나타난다. 그러나 그 ‘광기’란 신의 증여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라면! 이라고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Phaidros)> 편에서 고한다. 여기에서 ‘예언적 광기는 아폴론(Apollon)에게서’, 비의적(秘儀的), 즉 ‘제의적(祭儀的) 광기는 디오니소스에게서’, ‘시적 광기(furor poeticus)는 무사(Mousa)에게서’, 최고의 광기인 ‘사랑의 광기(Aphrodite)는 에로스(eros)’에서 왔다고 말한다. 특히 고모뻘인 여신 레아는 디오니소스에게 광기를 치료해 주고 그녀의 종교상의 의식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는 디오니소스적 제의의 기원이 된 다. 이것들을 신의 선물로 주어지는 좋은 것들 가운데 가장 큰 축복이 되는 것들이라고 하였다. 플라톤의 대화록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신에게서 오는 광기(mania ek theou)가 사람에게서 유래하는 예지(sophrosyne par anthropon)보다 더 훌륭한 것이라고 피력하였다.

 

4종의 신적 광기는 합리주의의 원조인 소크라테스, 플라톤이 동시에 비이성적 충동이면서 정화적(淨化的)인 디오니소스의 제의(祭儀)를 내적으로 수용함으로서 새로운 신화 내지 종교적 세계관을 확립하였음을 함축하고 있다. 플라톤이 말한 신성한 광기를 그리스어로는 ‘엔투시아스모스(enthusiasmos)’, 즉 ‘신(theos)이 들어왔다(en)’, 즉 ‘입신’의 상태라는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네 가지 광기는 각 광기를 주관하는 신이 자신의 마음에 들거나 자격을 갖춘 인간에게 특별히 베푸는 일종의 ‘신들림’으로 여겨졌다.

네 가지 광기는 각 광기를 주관하는 신이 자신의 마음에 들거나 자격을 갖춘 인간에게 특별히 베푸는 일종의 신들림으로 여겨졌다. 광적(또는 예언적) 신들림은 거의 언제나 아폴론과 짝지어졌으며, 아폴론 신전에서 제도화되어 나타났다. 고대에 제도적으로 예언을 행한 신탁소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델포이의 아폴론 신탁소가 가장 유명했다.

예언적 신들림을 가장 자세하고 극적으로 설명한 글은 고대 로마의 시인ㆍ철학자이자 세네카의 조카, 루카누스(Marcus Annaeus Lucanus, 39-65 CE)의 <파르살리아(Pharsalia)>다. 네로 암살을 음모한 피소 일파에 가담하였다가 발각되어 사형을 받자 자작의 시를 읊으면서 26세의 나이로 자살하였다. 사가(史家) 수에토니우스에 의하면, 네로가 그의 시재(詩才)를 질투하여 많은 방해를 가했기 때문에 모반에 가담했다 한다. 작품은 서사시 <파르살리아(내란기)> 이외는 전해져 있지 않다. <일리아카> <네로 찬사> <메데아> <오르페우스> <사투르날리아> <카타크토니아> 기타는 전부 없어지고, 제명만 전해지고 있다. 그의 시풍은 당시의 폐풍을 단적으로 구현하고, 현학적(衒學的)이며 끈질긴 과장이 심하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내전을 벌이던 무렵, 로마의 장군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Appius Claudius)가 전쟁의 결과를 알기 위해 델포이 신탁을 찾았다. 신탁소는 수세기 동안 방치되어 있었기에 아폴론의 여사제 페모노이는 신들인 상태가 되기를 꺼렸다. 아피우스가 고집을 피우며 협박하자 마지못해 시늉을 하기는 했지만, 신들리지 않은 티가 역력했다. 결국 감금된 상태에서 페모노이는 신을 받아들였다. 루카누스의 글은 직접 관찰한 것이 아니라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를 받아 적은 것일 테지만 매우 생생하다.

<다음호 계속>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