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면 생각하는 사람
박정근(문학박사, 소설가, 극작가, 시인, 황야문학 주간)
오랜만에 종각역 앞 문화공간온에서 고향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정확하게 말해서 일 년 선배지만 나이 칠십이 되다보니 이제 친구라는 의미가 더 다가온다. 그와 필자는 동네에서 도시 고등학교로 진학하느라고 일찍 고향을 떠났었다. 방학 때마다 돌아와 그의 골방에서 술을 조금씩 마시며 문학청년의 꿈을 위해서 노닥거리곤 했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몰래 술을 마시면서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매우 짜릿한 느낌을 주었다.
그는 서울에 있는 한양공고에 진학을 했고 필자는 익산남성고에 진학하여 실업고와 인문고라는 약간 다른 길을 걸어갔다. 부모님이 넉넉하지 못한 살림 때문에 빨리 취업을 하라고 공고에 보냈다.
하지만 그는 기술을 연마하는 것에는 취미가 없어 학교 문학 모임에서 시를 써서 여기저기 응모하여 상을 받곤 했다. 필자도 부친의 사업이 어려워져 집안이 기울어갔지만 대학에 진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입시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방학 때 그를 만나면 문학창작은 꿈도 꾸지 못했다. 단지 그가 뱉어내는 시적 언어를 들으며 묘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아직 술과 담배를 몰래 즐기는 성년 의식을 소화하지 못했던 필자는 미성숙한 범생에 불과하였다. 공부보다 시와 사춘기 호기심을 즐겼던 친구를 모방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필자는 청소년의 금지선을 넘어가 에덴의 사과를 성큼 먹는 그의 모습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소주를 조금씩 마셨던 필자에 비해서 그는 소주를 한 컵씩 단숨에 들이켰고 담배 연기로 동그란 도넛과 이런저런 모양을 만들어내며 자랑하곤 했다. 대학에 진학한 후 바쁜 생활에 그를 잊고 살았지만 술을 마실 때마다 그의 사춘기 객기들이 생각나서 미소를 짓자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고향친구를 오십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문예지를 운영하고 있는 필자는 문창과를 졸업하고 지속적으로 시를 쓰고 있는 친구가 함께 협력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것은 단지 원고를 주고받는 현실적인 관계만은 아니다. 수십 년 전의 문청 시절을 다시 현재로 소환해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싶은 욕망이 가슴에서 피어오르고 있다고 보아야 하리라. 그는 대학 시절 장학금을 받으며 문학 공부를 했으나 대학의 통폐합으로 장학금을 못 받게 되어 어려움을 겪었노라고 토로했다.
그는 경제적인 문제로 대학을 다닐 수 없어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절망에 빠져 줄기차게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농사일이 지겨워 술을 마시고 논두렁에 빠져 뻗어버렸다고 한다. 아무도 물이 흐르는 논두렁에 엎어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귀가를 하지 않는 그를 찾아 나선 동생이 발견하여 리어카로 실어 올 수밖에 없었다. 술에 취해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옷을 벗기고 살펴보니 온몸에 거머리가 들어 붙어 있어 온 식구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거머리를 떼어낸 상처부위에서 피가 흘렀고 술을 과하게 마신 벌을 넘치고 받았다고 씁쓸하게 고백하는 그의 무용담을 들으며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술을 마시게 했던 것일까. 단지 술이 좋아서 마셨던 것은 아니다. 그가 열망하는 문학을 대학에서 전공하고 싶은 꿈이 좌절되면서 심적 고통을 견디다 못해 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낭만적인 기질의 그는 더 이상 농사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무작정 상경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다. 우선 작은 자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것은 바로 조그만 리어카 좌판에서 과일을 파는 일이었다. 청과시장에서 질이 좋은 과일을 사다가 시장에 오는 주부들에게 소매로 파는 일이다.
하지만 정직하게 장사를 해서 돈을 번다는 것은 뜬구름을 잡는 것과 같았다. 과일 장사를 잘하는 장삿꾼은 앞에는 좋은 과일을 놓고 뒤에는 싸구려 과일을 끼워 파는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등록금을 벌어야 하는 친구는 양심을 따질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씩 돈과 양심 사이에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마음을 보게 되었다. 문학이란 양심을 저버리며 할 수 있는 실용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인간성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 아닐 수 없다. 돈을 벌면서 멀리했던 소주를 가게에서 한 병 사들고 자취방에 돌아왔다.
시인인 그는 양심과 현실을 분리하여 마음대로 붙였다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술은 절망할 때도 상처를 치유하는 망각의 약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정신적 깨우침의 각성제가 될 수도 있다. 과일을 팔아서 등록금을 벌 수 없다면 다른 일에 도전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한 정신을 갖추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