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56)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론은 태양의 신으로 법과 질서를 상징하는 이성적인 존재다. 반면에 디오니소스는 술과 시를 관장하는 신으로 대지의 풍요를 상징한다. 아폴론은 냉철한 균형과 조화를 상징한다. 아폴론적 예술은 단정하고 엄격하며 차분한 형식미를 강조한다.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은 격정과 황홀경을 강조한다. 이렇듯 상호 대척점에서 만나게 된다.
니체는 그리스 조각상의 균형미를 아폴론적 예술의 대표적인 예로, 힘에 넘치는 충동적인 음악과 무용을 디오니소스적 예술의 전형으로 간주했다. 니체는 아폴론적 균형이 지나치면 과도하게 지적인 삶을 동경하게 되고, 디오니소스적 도취가 지나치게 허용되면 타락으로 빠져들기 쉽기 때문에 양자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말했다. 이들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성격유형에 대해 우선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격유형의 2구분
사람들을 인간의 ‘기질(temperament)’과 ‘개성(Character)’에 따라 인간의 ‘성격
(Personality)’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먼 옛날부터 있어 왔다. ‘인간정신의 본성(mentis humanae naturae)’을 찾기에 나선다. 현재 사용되는 의학용어 중 다수는 그리스어로 돼 있다. 이는 그리스 의학이 현대 의학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렇듯 고대 문명의 의료 중 그리스 의학은 현대 의학과 가장 가까운 성격을 가졌다. 원시사회에서 질병을 고치는 일은 무당이나 주술사들이 담당했다. 이는 죄를 지었거나 좋지 않은 행위에 대해 신이 벌을 내린 결과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7세기경부터 질병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연적, 과학적, 논리적으로 파악하려고 애썼다. 이러한 그리스인의 자연철학을 바탕으로 질병이 생기는 이유를 이성적으로 설명하려고 한 최초의 이론이 ‘4체액설(四體液說, Humor theory)’이다. 네 가지 ‘체액(體液)’으로 질병이 생기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2,700여 년 전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첫 번째 원인과 원리, 즉 자연철학에서 만물을 지배하는 우주의 근본 원리 ‘아르케(arche, 근원적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어느 날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Thales, BC.624-546)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왔을 것이다. 도대체 그 근원은 무엇인가…? 탈레스는 이를 단순히 지나가는 하나의 생각으로 여기지 않고 경험과 관찰을 통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논리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동물과 식물을 먹고 산다. 동물과 식물은 ‘물(aqua)’이 있어야 살 수 있다. ‘물’이 없으면 땅이 마르고, 동식물이 말라 결국 땅 위의 모든 것이 죽을 것이다. 즉, ‘물’이 없으면 만물이 소멸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사고를 통해 그는 결국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Water is the principle, or the element, of things. All things are water)’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만물은 ‘물’이라는 물질에서 비롯된다는 ‘유물론적 시각’도 이때부터 시작된 듯싶다.
그러나 그가 왜 ‘물’을 모든 사물의 본질로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실제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단순히 사건들을 관찰하다가 그런 결론에 도달했을 거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만물의 영양소가 ‘물’이라는 사실, 그리고 열이 수분에서 발생하며 수분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에, 또한 만물의 씨앗들이 수분을 가지며, 그 수분의 근원은 ‘물’이라는 사실로부터 탈레스는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탈레스는 주변의 현상들에 관심이 많았고, 모든 사물들에는 공통적인 영원불변하는 연관되는 요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곧 하나의 원리 속에서 규명되며, 하나의 원리는 곧 우주를 구성하는 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탈레스적인 해석이다.
이처럼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했고,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BC.585-525)는 ‘공기’라고 생각했으며, 헤라클리투스(Heraclitus, BC.535-475)는 ‘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BC.490~430)는 이들의 생각에 추가하여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아르케(arche)’를 ‘흙, 공기, 물, 불(earth, air, water, fire)’ 4가지라고 추론하였다. 이 이론을 고대 ‘4원소설’이라고 한다.

인간의 ‘4체액설(四體液說, Humor theory)’은 철학자 엠페도클레스가 처음으로 주장했던 ‘4원소설’에 근원을 두고 있다. ‘4원소설’은 현재 일부분만 남아 있는 엠페도클레스의 시 <자연의 시(Poem on Nature)>에 해설돼 있다.

탈레스 탄생(BC. 625-624) 14년 후인 기원전 610년에 프락시아도스(Ἀναξίμανδρος, BC. 610~546)에게서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 BC.610-546)라는 인물이 탄생한다. 그는 탈레스의 제자인 동시에 그의 철학 파트너로서 생을 함께 한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주장하였는데, 그는 스승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탈레스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면, 어떻게 ‘물’과 정반대인 ‘불’이 생겨날 수 있겠는가?” 즉 탈레스는 불이나 흙과 같은 많은 것들이 물에서 생겨났다는 발생원리를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만물의 근원이 ‘아페이론(Apeiron)’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무한정자’, ‘무규정자’, ‘무한자’라고도 하는데, 성질에 있어서는 ‘무규정’, 분량에 있어서는 ‘무제한’의 성격을 가지는 만물의 근원이자 원리이다. 즉 ‘아페이론(Apeiron)’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무한’이며 늙거나 파괴되지 않는 불멸의 존재이다. 그는 이렇게 자연의 근원을 ‘자연이 아닌 것’에서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탈레스와 대비된다.
세상에 변화가 있다면 자신은 변화하지 않으면서 변화시키는 어떤 것을 그리스인들은 ‘아르케(arche)’라고 하였다. 탈레스는 자연의 물질을 움직이는 어떤 근원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 한, 즉 모든 존재의 ‘아르케’를 찾고자 한 최초의 철학자이다. 소크라테스가 탄생하기 100년도 더 전에 탈레스로부터 시작하여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로 이어진 최초의 철학 학파인 ‘밀레토스학파(Milesians)’는 최초로 사물의 궁극적 본성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였고, 무엇이 실제로 자연을 구성하는가를 탐구하였다. 그들이 있었기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존재할 수 있었고, 그들이 있었기에 학문이 탄생할 수 있었다. 다음은 초기 철학자들의 주장한 ‘아르케’에 대한 견해들을 종합해 놓은 것이다.
1) 탈레스(Thales, 624-546 BC.) : 존재의 근원은 신이 아닌 물질,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2)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 610-546 BC.) : 만물의 근원은 ‘무한(aoriston)’이다.
3)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588-524 BC.) : 만물의 근원은 ‘공기(pneuma)’이다.
4)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570-480 BC.) : 만물의 기본 요소는 ‘흙’이다.
5)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541-475 BC.) : 모든 물질의 본질은 형상이 없고 변화하지만, 가장 활기찬 것은 ‘불’이다.
6)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499-428 BC.) :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물질 변화의 수만큼의 ‘원소’가 있다.
7) 엠페도클레스(Empedokles, 483-435 BC.) : 4원소설(흙, 물, 불, 공기)을 주장하였다. 만물은 4개 원소의 각 부분이 ‘사랑(philia)’과 ‘미움(neikos)’의 두 개의 힘에 의하여 혼합되거나 분리되어 형성된다고 하였다.
8) 플라톤(Platon, 427-347 BC.) : 4원소설을 수학적, 기하학적으로 변형하였고, 4원소 이외에 제5원소로서 ‘에테르(aither)’를 언급하였다.
9)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 : 4원소는 하나의 원질(primary matter)로 되어 있고, 이 원질에 ‘건(dry), 습(wet), 냉(cold), 열(hot)’ 4개의 촉감적 성질(quality)이 두 개씩 조를 이루어 부가되어 현실적 원소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10) 레우시푸스(Leucippus, 500 BC.) :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졌다.
11)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460-370 BC.) : ‘원자설’을 완성하였다.
① 세계는 더 이상 분할 할 수 없는 것(atomos, 원자)과 공허한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원자는 모두 같은 원질로 구성되지만 형태, 크기 무게는 다르다.
② 무에서 새로 생기거나 존재하는 것이 소멸하지 않는다. 소멸처럼 보이는 것은 원자 운동으로 다른 것으로 변환된 것이다.
③ 원자의 운동은 기계적이며 필연적이다.
12) 에피쿠로스(Epikuros, 342-271 BC.) : 데모크리토스는 원자의 운동이 신에 의하여 예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는 그 운동은 무작위적이며 자유 의지 같은 무엇인가의 결과이며 신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13) 루크레티우스(Lucretius, 95-55 BC.) : 기원전 57년에 라틴어 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지었다. 이 시가 1417년에 발견되어서 ‘원자설’이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4체액설(four humor theory)’은 그의 제자들이 처음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의 몸은 ‘냉‧건‧습‧열(cold‧dry‧moist‧hot)’의 성질을 가진 4가지 체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이 균형 잡힌 상태일 때 건강하다는 학설이다.
4가지 체액은 ‘혈액(血液, blood), 점액(粘液, phlegm), 황담즙(黃膽汁, yellow bile) 그리고 흑담즙(黑膽汁, black bile)’이다. 피는 열하고 습하며, 점액은 차고 습하다. 황담즙은 열하고 건조하며, 흑담즙은 차고 건조하다. ‘4체액설’에 의하면 한 원소가 많을 때 반대가 되는 원소를 보충해주는 것이 좋은 치료법이다. 또 각각의 사람은 어느 한 가지 체액을 중심으로 평형을 이루고 있는데, 그것으로 개인의 체질을 구분할 수 있다는 일종의 의학 이론이었다.
기원전 4세기 의술의 기반을 다져 의학의 아버지로 칭송되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of Cos)는 엠페도클레스의 이론을 도입해 ‘4체액설’을 정리했는데, 이는 질병의 원인을 액체의 변화에서 찾는 일종의 ‘액체병리학(humoral pathology)’ 이론이었다. 히포크라테스의 ‘체액설’을 간단히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육체란 ‘피(blood), 점액(phlegm), 황담즙(yellow bile), 그리고 흑담즙(black bile)’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체액들이 육체의 각 부분을 형성하고 질병과 건강의 원인이 된다.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때 관계된 구성 성분들이 강도와 양 두 측면에서 정확한 비례를 이루면서 잘 섞여 있다. 그 구성 성분들 중 하나가 너무 부족하거나 혹은 과다할 때 또는 육체에서 빠져나가거나 혹은 다른 것과 섞여 있지 않을 때 고통이 발생한다.
히포크라테스의 ‘4액체설(四體液說, Humor theory)’은 그리스의 자연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주의 구성 원소가 ‘흙‧공기‧물‧불’이라는 ‘4원소설(四元素說)’을 도입해 사람의 몸도 ‘냉‧건‧습‧열’의 성질을 가진 네 가지 체액인 ‘피‧점액‧황담즙‧흑담즙’으로 구성돼 있으며, 모든 체액이 균형을 이뤄야 건강하다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이 정액(精液), 즉 체액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액체가 생명의 근원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공통적으로 ‘혈액(blood), 담즙(bile), 점액(phlegm)’ 세 가지 체액이 사람의 몸을 이룬다고 인정했다. 네 번째 체액은 초기에는 ‘물(water)’이었으나, 후일 ‘흑담즙(black bile)’으로 바뀌었다. 두 종류의 서로 반대되는 두 쌍의 체액 간의 불균형이 병이 된다는 이 학설은 대칭과 균형을 추구했던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추정된다.
신체를 구성하는 4개의 체액이 존재한다는 ‘4체액설(four humor theory)’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체액 사이의 불균형으로부터 병의 원인을 찾았다. 이 ‘4체액’은 성질상으로는 ‘뜨거움(hot), 차가움(cold), 습함(moist), 건조함(dry)’을, 계절상으로는 ‘봄, 겨울, 여름, 가을’ 등을 나타냈다. 히포크라테스 학파들은 치료를 위해서 질병뿐만이 아니라, 환자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질병에 대한 기후, 계절 변화의 영향에 대해서도 연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학적 사색을 중시한 피타고라스학파는 ‘4’라는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모든 체액은 각각 만들어지는 관련 장기가 있었다. 혈액은 심장에서, 점액은 머리에서, 담즙은 담낭에서, 물은 비장(脾臟) 또는 지라(Spleen)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상하였다. 이 체액들은 음식물을 통해 항상 새로 보충되기 때문에 영양이 중요했다. 질병은 체액이 남거나 모자라는 경우, 몸이 충격을 받거나 피로한 경우, 기압의 변화로 체액이 굳거나 녹아 다르게 변한 경우 생긴다고 설명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신(神)에 의지하던 의술에서 인간이 치료하는 자연과학적 의학을 주장했다. 초자연적,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나 합리적 의술을 추구했다. 히포크라테스에 대한 최초 기록은 플라톤(기원전 427~347)이 남겼다. ‘프로타고라스’에서 ‘돈을 지불 할 가치가 있는 의사’로 소개했다. <파이드로스(Phaedrus)>에서는 인간 본성의 철학과 기술의 의학을 동시에 다루는 의사로 표현했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년)도 <정치학>에서 그를 위대한 의사로 인식했다.
원래 슬픔을 동반하는 우울한 정조(情調), ‘멜랑콜리(mélancholie, Melancholy)’는 그리스어 ‘멜랑(melan=검다)’과 ‘콜레(chole=담즙)’의 합성어로 ‘우울 또는 우울증’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가 정립한 이론인 ‘4가지 체액설’ 중 흑담즙 과잉으로 인한 질병을 ‘멜랑콜리아(melancholia)’라고 정의하고, 그 특징을 건조함과 차가움으로 규정한 것이 ‘멜랑콜리’라는 단어를 사용한 시초로 보고 있다. 체액 중에서 흑담즙이 과잉해지는 상태가 이 병으로, 그리스어로는 ‘멜랑콜리아(melancholia)’라고 불렀다. 속담에 ‘우울하지 않으면 천재도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당시 기록에 의하면 ‘멜랑콜리’의 원인과 증상이 참 다양한데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체액의 불균형, 운동 부족, 과도한 공부, 타고난 기질 등이 원인이 되는 질병으로 광기, 두려움, 집착, 의심, 간질, 우울증, 발작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적혀있다. 보통 서양의 문화적 전통에서는 검은색을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멜랑콜리(검은 담즙)는 자체가 부정적 요소로 이루어진 단어이니 나쁜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데 ‘멜랑콜리’가 르네상스 시대에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철학이나 예술과 결부되어 인기를 끌기 시작한 때가 있었는데, 당시 ‘철학과 정치, 시나 예술에서도 재능 있는 걸출한 인물은 모두 멜랑콜리이다’라는 사회적 인식이 퍼지면서 많은 예술가들이 멜랑콜리를 찬양하는 예술작품들을 내놓게 된다.
덕분에 멜랑콜리는 천재들이 피할 수 없는 질병, 천재성에 따르는 부작용 등으로 인식되면서 이전의 부정적이기만 했던 이미지를 탈피해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뇌전증(腦電症, epilepsy)’, 즉 ‘간질병’이 대표적인데, 이는 천재들만 걸리는 병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예술 쪽에서는 바이런, 도스토옙스키, 고흐, 또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정치가인 나폴레옹, 알렉산더, 카이사르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위인들이 ‘뇌전증’을 앓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뇌전증’을 특별하게 대우했다. 신이 인간의 몸에 들어온 ‘신성(神聖) 병’으로서 두려우면서도 성스러운 징표로 인식하였다. 신이 특별히 아끼는 사람에게 내리거나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라 본 것이다.
대제국을 일군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er Ⅲ, BC.356~BC.323)과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Hannibal, BC. 247~BC.183/182)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고대 역사가들은 로마의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100~BC.40)를 기록하면서 ‘뇌전증’과 관련된 여러 일화를 남겼다. 카이사르는 평소 두통과 현기증 등의 증상을 호소했고, 자주 경련에 시달렸다고 한다. 기원전 46년, 탑수스(현재의 튀니지) 전투에서 ‘뇌전증’으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안전한 곳으로 옮겨진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뇌전증’에 걸린 대표적인 인물로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1)가 빠트릴 수 없다. ‘뇌전증’은 그의 인생과 문학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많은 농노와 영지를 소유한 귀족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도스토옙스키, 그는 18세 청년기에 아버지가 농노들에게 살해되는 사건을 겪게 된다. 24세에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Bednye liudi)>로 러시아 문단의 샛별로 떠올랐지만, 바로 이듬해 ‘뇌전증’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뇌전증’의 원인으로 점액의 정체(停滯)를 지목한다. 점액은 건강과 질병을 구성하는 네 가지 체액의 하나였고, 생리학과 병리학의 핵심 개념이다.
<다음호 계속>